240만 해외유권자, 2012년 정치지형 바꾼다
240만 해외유권자, 2012년 정치지형 바꾼다
  • 미래한국
  • 승인 2010.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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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7일, 중앙선관위에 때 아닌 비상이 걸렸다. 오는 11월 14~15일 양일간 치러지는 재외국민 모의투표 신청마감에 7,000명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1만여 명이 접수됐기 때문이다. 예상치의 무려 35%가 넘는 숫자였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10월 19일부터 3일간 열리는 제9회 세계 한상(韓商)대회로 일제히 시선을 옮기고 있다. 다름 아닌 이 한상대회야말로 2012년 4월 총선과 11월 대선에 240만이라는 새로운 ‘표밭’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전략가답게 가장 먼저 반응했다. 홍준표 최고위원은 10월 7일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우후죽순 격으로 각 정당과 연계를 주장하는 단체가 난무하고 있다”며 “현지의 유력인사를 중심으로 공식적인 한나라당 후원회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던 것.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많게는 2~3명의 해외 비례대표의원을 숙고하는 와중에서 각 정당의 해외 공식 후원회는 앞으로 상당히 민감한 문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민주당도 재외국민 투표와 관련해 한나라당 못지않은 빠른 발걸음을 보여 왔다. 손학규 신임 민주당 대표가 공식 활동을 시작했던 지난 10월 4일, 손 대표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민주당의 실질적인 해외교민 전략 교두보인 ‘세계 한인민주회의’창립식에 참석했다.


재외국민 30%, “반드시 투표하겠다”

손 대표는 이 자리에서 “이명박 정부를 이대로 두었다가는 남북평화가 가로막혀 자칫 한반도가 전쟁의 도가니로 갈 수 있다”고 주장하며 해외 유권자의 민주당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렇듯 여야가 재외국민 참정권에 발빠른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240만 명의 재외국민 유권자의 높은 관심과 투표율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2009년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이 한길리서치와 공동으로 재외국민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투표 의향 설문조사가 눈길을 끈다. 일반 예상(10%선)과는 달리 재외국민들은 공관에 가서 하는 투표에 ‘반드시 투표하겠다’가 29.7%, ‘가급적 투표하겠다’가 29.8%로 비슷한 응답을 보였던 것. 반드시 하겠다는 응답은 투표수로 70만을 넘는 숫자다.

과거 대선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 후보 간의 표차가 1997년(39만여 표), 2002년(57만여 표)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240만 명에 달하는 재외국민 투표는 경우에 따라 여야간의 승부를 가를 최대 ‘표밭’이라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중앙선관위가 발표한 2009년 기준 재외국민 유권자 수는 미국이 약 87만 명으로 가장 많고 약 48만 명인 일본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지역의 유권자는 약 34만 명이며 그와 비슷한 규모로 在中유권자가 약 33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미국, 87만 교포의 최대 격전지, ‘한나라당 유리’ 전망 속 혼전 예상

미국은 재외국민투표의 최대 격전지다. 전체 재외유권자수의 1/3이 넘기 때문이다. 그 만큼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가장 공을 들이고 있다. 우선 민주당의 거점은지난 8월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에서 발기인 대회를 갖고 출범한‘세계한인 민주회의’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약 200여 명이 발기인으로 참석했고 1,000여 명이 서명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나라당 쪽에서는 ‘뉴 한국의 힘’이 지난달 30일 로스앤젤레스에서 지부 자격으로 정식 출범했다. ‘뉴 한국의 힘’은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지지 활동을 폈던 외곽조직인 것으로 알려진다.

뉴욕에서도 이달 중 뉴욕·뉴저지 지회 발대식을 열 예정이다. 또한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한나라당 정책을 지지·후원하는 미주 한인 1,000여 명으로 구성된 ‘US 한나라포럼’(대표 김진형)도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는 한나라당의 해외조직은 아니지만 당 중앙위원회 해외분과위와 연결돼 있다.

오는 11월 14~15일 열리는 모의투표에서 로스앤젤레스를 비롯 3곳이 등록인원 목표인 500명을 넘어섰다는 점에서도 재외국민 투표에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곳은 미주지역이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이고 크리스천 중심인 한인들이 많아 한나라당에 유리하다는 게 일반적 평가이긴 하지만 젊은 층의 투표가 늘어날 경우 결과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중국, 33만 전략적 표밭, 韓-中관계에 민감·北 선거공작 가능성

중국은 미국, 일본과는 달리 한인들의 상업적 진출이 많은 편이고 한국과 거리가 가까워 국내 정치풍향, 특히 한-중 및 대북관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지역이다. 지난 대선의 경우 재중한인 70만 명 중 약 9만여 명이 투표를 위해 방한한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재중교포들이 베이징과 칭다오 등 대도시에 조밀하게 모여 있다는 점에서 투표율이 높고 여론 형성이 빠를 것으로 여겨진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대중교역이 대단히 활발했고 이 시기에 정권의 도움으로 중국에 진출한 한인들이 많다는 점에서 중국 내 한인 유권자들의 성향이 미국처럼 이념적으로 한나라당에 유리할 것만으로 볼 수 없다는 관측들이 존재한다.
이와 더불어 중국은 2012년 재외국민선거에서 선거법 위반 논란이 가장 대두될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그 이유는 중국이 정치와 관련된 집회나 활동 등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각 정당의 후원행사나 선거유세가 은밀하게 이뤄질 수 밖에 없다는 사정에 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인권 및 대북정보단체 사단법인 세이브엔케이(NK)의 한 인사는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볼 때 2012년 한국에 친미보수적 성향의 정권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것”이라며 “북한이 중국의 이러한 점을 이용해 2012년 총선이나 대선에서 중국의 묵인 또는 협조 하에 대남 선거공작을 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시 말해 중국 내에서 한나라당의 부정선거를 유도한 후 한나라당의 집권이 확실해질 경우 이를 중국 내에서 공론화시켜 남한 내 극심한 국론분열을 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중 친북성향의 우수근 중국 상하이 동화대학 교수는 좌파매체인 프레시안의 기고를 통해 “중국교민들은 금번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무능한 대중외교능력에 상당히 실망했다”며 “한나라당은 2012년 중국에서 ‘불똥’을 맞게 될 것’이라는 협박성 주장을 게재한 바 있다.

한나라당에선 조진형 재외국민협력위원장과 재중한인회 간부 출신인 조원진 의원 등이, 민주당에선 재외동포사업추진단장인 김성곤 의원 등이 대중 교민창구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 48만 높은 투표율 예상, 중립적 성향 분석

일본 법무성 통계로는 2009년 말 현재 재일 한국인은 약 59만 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재외국민 투표권자 수는 48만여 명인 것으로 추산된다.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일본교민들의 국내 참정권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좀 복잡하다. 일단 일본 내에서 재일한국인들의 차별적 위상문제와 국내의 반일정서, 일본 내 우파의 시각 등이 얽혀있다. 특히 일본 내 우파세력이 보는 재일한국인의 참정권에 대한 시각은 냉정하다.

일본의 공동여당인 공명당과 제1야당인 민주당이 “재일동포 등 영주 외국인에게 지방 참정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긍정 검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재일동포들이 한국의 대선과 총선에 투표할 경우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선거하는 것은 문제’라는 일본 내 보수진영의 주장에 힘이 실릴 수도 있다.

서원철 민단 국제국장은 “재외국민투표법을 가지고 재일한국인들이 본국(한국)에 뭔가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일본 정치에 간섭할 우려가 있다”며 일본 내 분위기를 설명한다. 그는 또 “60만 재일동포 가운데 45만 명 정도가 선거권을 갖고 있으며 일부는 친 조총련계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민단 전체의 표심이 한나라당만의 것으로 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천안함 사건 이후 한-미-일 공조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점에서 재일한국인의 표심이 보수정당을 선호할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예상되고 있다.

11월 실시될 모의투표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도쿄 주일대사관은 9월 30일까지 등록인원 목표 500명의 3배에 육박하는 1,470여 명이 참가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주일 한국대사관은 재외국민 투표와 관련해 현지에서 약 30여 차례 설명회를 열었다. 다만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한 탓인지 여,야 모두 대일 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재일 한국인 사회에서는 민단이 그 대표성을 띠고는 있으나 최근 10년간 일본에 진출한 소위 ‘뉴 커머’들이 민단을 비판하며 새로운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불법 선거운동 등 교포사회 부작용 우려

재외국민의 참정권이 700만 교포사회의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게 제기된다.

은종국 아틀란타주 한인회장은 본지 <미래한국>과 인터뷰를 통해 “재외국민투표가 미주한인들의 정착에 궁극적으로 방해가 된다”고 밝혔다.

또한 뉴욕 한인유권자센터의 김동찬 대표는 국내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동포들 중에서 투표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정작 투표권이 없는 (미국) 시민권자들이 더 많다”며 “영주권자들은 대부분 정착하느라 다른 곳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인들이 국내 정치바람에 휩쓸려 정작 미국 사회에서 한인의 목소리를 내는 데 관심이 떨어질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인사회마다 금번 재외국민 투표권과 관련해 비례의원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국내 정계에 줄을 대려는 유력인사들의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아울러 불법선거 운동을 미연에 차단할 수 있는 방안도 아직 미비한 상태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헌재로부터 헌법불합치로 판결난 재외국민들의 참정권 배제 문제를 방치할 수만도 없다는 점은 이 문제에 여·야를 떠나 정치권이 머리를 맞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재외국민 투표를 둘러싼 사전선거와 불법선거 논란은 여·야간 최대의 쟁점으로 떠오를 수 밖에 없다.

투표권에 대한 재외한인 유권자와 각 정당간의 입장조율도 시급한 상황이다.

▲ 세계한인유권자총연합회는 우편투표제를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냈다. 여야의 입장은 갈리고 있다
현행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재외 한인 유권자들은 선거일 전 150~60일 사이에 한국 공관을 직접 방문해 ‘재외선거인 등록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고 투표는 한국 공관에서만 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 세계한인유권자총연합회가 재외국민 투표규정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며 지난 6월 헌법소원을 냈다.

민주당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우편투표와 인터넷 투표 도입을 주장하는 반면 한나라당은 신중한 입장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미래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우편투표나 인터넷투표는 우리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직접투표를 보장하지 못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리투표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홍 최고위원의 주장이다.


보수진영 분열, 재외국민 투표 포기로 이어질 수도

재외국민 투표가 향후 총선과 대선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나라당의 해외 외곽지부가 ‘친이-친박’으로 난립하고 있다는 점에서 홍준표 최고위원의 ‘한나라당 공식적 해외 후원단체 정립 필요’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아울러 이러한 재외국민 참정권문제에 대한 자유보수진영의 각별한 관심과 대응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국내 거주 한국인의 8촌 방계 중 2명이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는 발표도 있다. 해외 한인사회가 국내에서처럼 향우회, 동문회 등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외에 나가면 모두 애국자’라는 관념은 오히려 위험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되는 문제는 자유보수진영의 분열이 불러올 애국적 해외한인들의 투표 포기 가능성이다. 최근 자유보수진영 내에 벌어지는 ‘반공’을 둘러싼 논쟁과 이명박 정권에 대한 ‘포퓰리즘’논쟁은 보수진영 내의 갈등을 넘어 재외국민들의 보수이념 분열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모두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재앙이 초래될 수도 있다.
자유보수를 지지할 만한 해외한인들 가운데 대한민국의 자유보수세력이 없으면 안 된다거나 그런 싸움을 지켜볼 한가한 사람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정석 편집위원·前 KBS PD

kalito7@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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