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나눔과 교회통합에 여생 바칠 것”
“사랑나눔과 교회통합에 여생 바칠 것”
  • 미래한국
  • 승인 2010.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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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사랑과행복나눔재단 이사장 조용기 목사
▲ 인터뷰중인 조용기 목사



50년 동안 국내외 선교에 매진했던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가 요즘 사랑과 행복의 전령사로 달리고 있다. 조용기 목사가 은퇴 후 2기 사역으로 ‘나눔’을 선택하자 여의도순복음교회는 500억 원을 출연해 재단법인 사랑과행복나눔을 출범시켰다. 강력한 카리스마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이동해 나눔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는 조용기 목사를 만났다. 조 목사는 사랑과행복나눔은 하나님이 시작하신 운동이라고 전했다.

“2008년 은퇴를 앞두고 내 마음 속에 계시처럼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 도와주는 일에 촉매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많은 이들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어도 방법을 모릅니다.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목사로 일한 나를 믿을 테니 도움을 주려는 사람과 도움 받아야 할 사람의 통로 역할을 하려는 겁니다.”

조 목사는 얼마 전 자신을 찾아온 재일교포 김미숙 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본 사람과 결혼한 재일교포 김미숙 자매님이 오래 전부터 모은 3000만원을 들고 나를 찾아왔어요. 남을 돕고 싶은데 누구를 통해 도와야 할지 몰라 갖고 있다가 우리 재단에 맡기기 위해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겁니다. 성금을 기탁한 후 나한테 기도 받고 그 길로 돌아갔어요. 왜 이렇게 먼 길까지 왔느냐고 물었더니 ‘요즘 세상은 믿을 수가 없다. 그동안 3000만원을 가난한 사람한테 잘 전해줄 수 있는 곳을 찾았다’고 하더군요. 신뢰할 수 있는 중매자가 있어야 한다는 걸 더욱 깨달았지요.”

사랑과행복나눔재단에 큰돈이 들어오는 예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대신 우리 재단에는 소소한 돈이 많이 들어옵니다. 1만원 2만원 10만원 정도지요. 티끌모아 태산이고 눈물모아 한강이라고 적은 돈을 모아 그동안 좋은 일을 많이 했습니다.”

세계 최대교회가 운영하는 돈이 많은 곳이라는 인식 때문에 다른 재단과 달리 기업에서 거액의 기금을 기탁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대신 정기적으로 기부금을 내는 여의도순복음교회 교인이 5,000여명에 이른다. 조용기 목사의 제자교회에서도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기부하고 조 목사가 국내외 성회에 가면 동참을 원하는 사람들이 성금을 기부하는 정도이다. 이자 수익과 교회지원금을 합쳐 1년이면 100억 안팎의 기금이 쌓인다. 출발한 지 3년이 안 된 재단으로서는 적지 않은 규모라고 한다.

사랑과행복나눔재단은 수익금으로 긴급생계비, 긴급의료비, 심장병수술비, 주택개보수, 소규모시설 개보수 및 후원물품, 주택임차보증금 등을 지원한다. 2008년부터 2010년 10월 말 현재까지 4,650가정에 77억2,860여만 원의 사업비를 집행했다. 이 재단은 2009년 5월 보건복지가족부장관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 10월에 여성가족부장관상을 수상했다.

-나눔 사역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낀 일은 어떤 것입니까.


“중증 장애인들을 위한 빨래방을 만들어준 것이 기억에 남아요. 그 분들을 만났을 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물었더니 ‘빨래를 자주해서 늘 깨끗한 옷을 입고 싶다’고 해요. 그러고보니 그 분들 옷에 오물이 많이 묻어 있더군요. 그분들을 위한 큼직한 세탁소 만들어드렸는데 굉장히 보람을 느껴요.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그분들이 기뻐하던 모습이 떠올라 흐뭇합니다. 화장실과 부엌이 엉망인 무너져가는 주택을 보수해준 일도 보람을 느낍니다.”

반면 이 사역을 하면서 회의를 느낀 적도 있다고 한다.


목회 시작 때부터 구제사업에 헌신

“매달 10만 원, 20만 원씩 1년 간 도와주는 제도가 있는데, 1년이 지나 중단했더니 나한테 항의 전화도 오고 편지도 왔습니다. 고맙다는 말은 없고 왜 더 안주느냐고 할 때 좀 회의를 느꼈지요. 그 분들은 영원히 주길 원하는데 1년 만에 끊으니 자기 것을 빼앗긴다는 감정이 생기나 봅니다. 그래서 한 번에 200만-300만 원씩 두 세 차례 지원하면 오히려 감정을 안가질 것 같아 그 제도를 연구해보라고 했습니다.”

앞으로 직접적인 물질 지원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인 부분까지 돌보는 쪽으로 사업의 패러다임이 바뀔 예정이라고 한다. 이미 2009년에 8,000만원의 예산으로 위탁아동 심리치료를 실시해 좋은 성과를 올렸다. 올해 정부에서 3억 원을 책정해 이 사업이 확대됐다고 한다.

사랑과행복나눔재단은 다른 재단과 달리 5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상시 대기하고 있다. 필요할 때마다 현장으로 달려 나가 불우한 이웃들의 손을 잡고 축복기도를 해준다. 체온과 함께 사랑을 전해 진정한 행복을 안기는 것이 사랑과행복나눔재단의 목표이다.

-나눔 사역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1958년 목회 시작할 때부터 했지요. 내가 뼈저리게 가난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신학교 시절 최자실 목사님이 아무 것도 없는 나를 도와주어서 공부할 수 있었어요. 그때부터 살만하면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천막교회 때부터 쌀을 나눠주고 밥을 나누어 먹는 일이 몸에 배었어요. 1961년 서대문으로 교회를 옮기면서부터 정식으로 구제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나의 생애와 구제는 끊을 수가 없어요. 은퇴하면서 세계적인 규모로 구제활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동안 굿피플을 통해 캄보디아 라오스 아프리카에 학교와 병원을 짓고 우물을 파주었어요. 상당히 많은 일을 했지만 더 열심히 해야지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해외 구제를 담당하는 NGO 굿피플, 노인요양과 청소년직업훈련을 실시하는 엘림복지타운 등 국내외에서 대규모 나눔사역을 펼치고 있다. 조 목사는 이 두 단체의 이사장도 맡고 있다.

전 교인이 폐지를 모아 1984년부터 4,500명의 심장병 어린이에게 새생명을 안겨준 사역을 사랑과행복나눔재단에서 이어받았다. 조 목사는 평양의 심장병원 건축이 중단된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외부는 다 짓고 내부공사만 하면 되는데 중단됐어요. 내부공사 자재를 보내달라고 자꾸 요청해서 여기저기 의뢰해 겨우 허락을 받았는데 북한에서 연평도를 공격했습니다. 도움 받을 거 다 받으면서 기회만 있으면 우리나라를 공격하니 참 나쁩니다. 평양에 병원 짓는 걸 포기할까 싶어요. 북한의 행태도 문제지만 내가 마무리를 못 지으면 후임인 이영훈 목사에게 그 부담이 넘어갑니다. 좋은 후계자인 이영훈 목사님을 나도 존경합니다. 설교도 잘하고 착실하고 친아들 같아요. 이 목사가 계속 해주면 좋겠지만 내 편에서 털어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평양 심장병 병원 건축 포기도 고려

-평화적으로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텐데 북한이 너무 무리수를 두는 것 같습니다.

“세대 교체를 위한 거죠. 위대한 김정은이 전쟁에 이겼다고 추켜올리려고 한 건데 작전을 잘못 세웠어요. 여기서 물자가 안 올라가면 중국이 줍니까, 러시아가 줍니까. 북한주민들의 평균 수명이 66세라고 합니다. 못 먹어서 그렇지요. 자꾸 도발을 하니까 도와줄 마음이 사라집니다.”

-애초에 사업을 결정할 때도 고심을 하셨을 거 같습니다.

“내 마음 속에 사랑을 베풀면서 전도도 해야 하지 않겠나, 북한을 위해 뭘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람들에게 무엇을 해줄까, 알아보는 중에 어린이 심장병을 세워주면 좋겠다는 대답이 나왔어요. 부담이 많이 됐지요. 건물만 300억 원이고 수술 장비까지 도입하면 200억 원이 드는 500억 원 공사인데 힘들지만 지원하려 했어요. 지금은 그만두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2007년 조용기심장전문병원 착공식 때 북한에 가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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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화려한데 안은 텅 비어 있었어요. 차를 타고 갈 때 가로등이 켜져 있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깜깜해요. 전기 사정이 나쁘니까 차가 지나간 뒤에 다 꺼버린 거지요. 다른 사람 몰래 ‘목사님 살려주세요’ 그러는 분이 있었습니다. ‘다 있다면서 왜 그러냐’고 했더니 ‘있는 사람은 있고 없는 없어요’ 그러더군요. 봉수교회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에 대해 설교할 때 성가대원들도 울고 교인들도 다 울어서 놀랐어요. 쇼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더군요. 내가 우리 교회에서 설교할 때 워낙 북한공격을 많이 해 ‘남쪽으로 못 내려간다’ 할까봐 좀 겁도 났지요(웃음).”

-예전에 해외 대형집회 하실 때의 설교가 기독교 채널에 많이 방영되더군요.

“오래 전 외국에 나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굉장히 무시를 했어요. 코리아를 제일 가난한 거지 나라로 아니까 자존심이 많이 상했어요. 하나님께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처럼 집회를 많이 해서 하나님이 코리아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리게 해주세요’하고 기도드렸는데 하나님께서 들어주셨어요. 인원이 적게 모이는 집회는 아예 안 갔어요. 유럽은 5,000명 이상, 아프리카와 남미는 10만 명 이상 안 모이면 안 간다고 공표를 했더니 그쪽에서 준비를 많이 해서 나를 청했어요. 큰 집회를 많이 했고 신바람이 났지요.”

-영어를 잘하셨기 때문에 해외 집회가 가능했을 텐데, 어떻게 배우셨나요.

“많은 사람이 ‘한국 사람이 영어로 설교하는 게 겁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했는데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했어요. ‘내가 영어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6·25 전쟁 나면서 공부도 많이 못했는데 성령님 좀 도와주십시오’하고 기도하니까 ‘네가 가진 실력대로 정성껏 설교해라. 설교하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듣는 사람이 문제다. 청중이 알아들으면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위로가 많이 됐지요. 문법이 안 맞아도 담대하게 하니까 영어가 늘어서 잘 할 수 있게 됐지요.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 군비행장에 100만 명 넘는 사람이 모여 집회를 할 때가 가장 감격적이었어요.”

-목사님의 저서가 해외에 많이 번역되었는데 그 가운데서 <4차원의 영성세계>가 널리 알려졌다고 들었습니다.

“1970년대에 외국출판사에서 복음사업 한다며 판권을 달라고 하더군요. 별로 팔리지 않을 것 같아 그냥 사인을 해줬어요. 남미에서만 1,000만부가 나갔으니 다른 대륙까지 하면 어마어마하게 나갔지요. 그 인세만 받았어도 잘 살 텐데(웃음). 스스로를 과소평가했지요. 요즘 유럽과 미국에서 ‘닥터 조의 나라’라며 찾아와서 우리 교회를 방문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영향력을 주신 것에 내가 놀랍니다. 예전에 해외 갔을 때 중?고등학생이었던 이들이 중견 리더가 되어 지금도 자꾸 자기네 나라로 집회하러 오라고 합니다.”

조용기 목사는 이제 해외 집회보다 한국 교회가 하나 되는 데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나도 나를 과소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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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가 한기총과 NCCK로 나누어져 있고 150개가 넘는 교단으로 갈라졌습니다. 며칠 전에 엄신형 목사가 와서 ‘교파를 초월해 하나로 모을 사람은 조 목사님 밖에 없습니다. 조 목사님이 책임 안지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는 겁니다’ 그러면서 전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고문 자리를 나한테 맡겼어요. 엄 목사가 ‘내년부터 대도시를 다니면서 교회가 하나 되는 운동을 합시다. 조 목사님 집회라면 저항감 느끼지 않고 다 모이니까 합쳐질 겁니다’라고 하더군요. 하나님이 그런 책임을 주시니까 한국을 위해 일을 많이 해야겠어요. 교단이 이렇게 나누어져서는 남북통일도 안 돼요. 교회가 하나 되고, 남북통일이 되는 데 열정을 기울이고, 행동으로 지역사회에 사랑과 행복을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이 운동을 전개하는 데 여생을 바쳐야겠어요.”

-북한이 연평도를 폭격한 이후로 국민들이 많이 불안해 합니다.

“북한이 더이상 전쟁은 안 일으킬 거라고 봅니다. 언제나 별볼일 없는 쪽이 협박합니다. 김정일이나 김정은은 중국이 공산주의인 걸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제도는 공산주의지만 실천적 자본주의입니다. 미국과 맞설 정도인 중국이 공산주의식으로 돈을 통제하면 경제가 흘러가지 않아요. 중국도 경제에 타격이 오니까 전쟁 나는 걸 원치 않아요. 중국이 한국 중심으로 통일되는 걸 용납한다는 정보가 나왔는데 어느 정도 진실이라고 봅니다. 중국 경제가 발전하려면 한국과 함께 해야 해요. 한국 회사들은 중국에 공장을 지어 도움을 주지만 북한이 중국에 해주는 게 뭐 있습니까. 3대째 정권 세습은 중국에도 없는 일입니다. 중국도 북한을 이용하기 위해 그러는 거지 좋아서 하는 건 아닙니다. 전쟁이 나면 북한은 날아가요. 능력이 없으니 더 큰 소리치면서 선제공격을 하는데 직접 붙으면 달라집니다. 미국도 독이 올랐어요. 전쟁은 안 나지만 북한이 자꾸 협박을 하니 우리 국민이 귀찮지요. 저러다가 제 풀에 가라앉아요.”

-최근에 국민일보 발행인을 맡으셨는데 어떻게 이끌어 가실 건가요.

“국민일보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시작했고, 지금처럼 발전한 건 기적입니다. 한국 기독교인이 1200만 명인데 더 확장을 해야지요. 국민일보를 한국 교계에 넘겼는데 잘 이끌어 가지 못해 파워 형성이 안 됐어요. 나보고 맡으라고 해서 다시 맡았는데, 노조와 다투고 분쟁이 있지만 원래 인생은 다투는 거예요. 부부도 다투고 여야도 다툽니다. 다투지 않는 건 독재하는 겁니다. 사장단들한테 사원들에게 줄 수 있는 건 다 주라고 했어요. 연말에 사원 가족들을 초청해서 파티를 열 생각입니다.”


“국민일보 좌파논조 바뀔 것”

-국민일보 논조가 좌편향이어서 구독을 끊겠다는 기독교인들이 많습니다. 그 점을 어떻게 보십니까.

“어제도 들어가자마자 편집국장한테 ‘나하고 매일 만나자’고 했어요. ‘국민일보를 좌파 신문이라고들 하는데, 이제 좌파 논조는 안 된다. 논설을 바꾸라’고 얘기했습니다. 이제 읽어보세요. 달라졌어요. 그 문제는 해결될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를 맡으시고 여러 단체를 이끌어오셨는데 어떤 주관을 갖고 일하셨나요.

“남의 쓰레기통 뒤지지 말자는 생각을 하며 일했습니다. 쓰레기통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크기만 다르다 뿐이죠. 덮어주어 살맛나게 해주어야 합니다. 고통스럽게 하지 말자는 게 내 주장입니다. 내 원칙은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끌어안는 겁니다. 싸웠으면 5년도 못하고 쫓겨났을 겁니다. 내 마음에 안 맞는 사람도 있지만 끌어안아서 그 안에서 정반합을 이루어 나왔습니다. 지금도 다투다가 나한테 와서 고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시는 얘기를 그냥 들어줍니다. 그러면 ‘왜 자꾸 고개만 끄덕이냐’고 하는데 좀 더 기도해보자고 하면서 지나갑니다. 내 목회철학은 끌어안는 겁니다.”

-조 목사님은 요즘 어떤 꿈을 꾸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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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중복음과 삼중축복, 사차원의 영성을 통해 인생이 어떻게 무에서 유로 바뀌는지 체험하며 살아왔습니다. 우리 교인들을 비롯해 한국동포들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고,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내 꿈입니다. 내가 가난하게도 살아보고 부자로도 살아보니 부자로 사는 게 나아요. 가난하게 사는 게 경건한 삶이라는 분도 있는데 가난하면 남을 도와줄 수가 없어요. 얼마 전 시골교회 목사님 부인이 신장이식 수술할 돈 1600만원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방송됐어요. 사랑과행복나눔재단에 전화해서 ‘내가 돈을 댈 테니까 연락하라’고 했어요. 내 저금통장에 돈이 있어야 도와줄 수 있어요. 이제는 고아와 과부,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경건입니다.”

-곧 새해를 맞는 독자들에게 좋은 말씀을 들려주세요.

“새해에 잘 살아가려면 마음 속에 꿈이 있어야 합니다. 꿈을 가지면 목표가 생기고 목표가 있는 인생은 성공합니다. 나는 한평생 꿈을 가졌고 다 이루어졌어요. 지금 꾸는 꿈도 이루어지고 있으니 감사하며 삽니다. 꿈을 가졌으면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하루에 오만가지 생각을 합니다. 그 가운데 85%가 부정적인 생각이고 대화의 75%가 부정적입니다. 부정적인 씨앗을 심어놓고 긍정적인 열매를 거둘 수는 없어요.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출발은 말입니다. 언어중추신경이 온몸의 신경을 지배합니다. 말이 굉장히 중요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인 말을 하면서 꿈을 꾸면 절대 패하지 않습니다.”#


이근미 편집위원 www.rootlee.com
사진·이승재 기자 fotolsj@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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