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집트를 접수할 것인가
누가 이집트를 접수할 것인가
  • 미래한국
  • 승인 2011.03.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포스트 무바라크, 민주화 아닌 군부·무슬림·노조 각축장 된다
▲ .



지난 보름간 전세계의 눈과 귀가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 있는 한 광장에 쏠렸다.‘타히르’(Tahir), 이집트어로‘자유’(Liberty)를 의미하는 이 광장에서 지난 30년간의 군부독재가 종식되는 거사가 일어났다. 시민들의 불복종운동은 철권 통치의 독재자 무바라크(Mubarak, 아랍어로 ‘축복 받은 자’라는 뜻)로 하여금 끝내 권력을 내려놓고 해외로 줄행랑을 치게 했다. 우리 언론들은 하나같이 이집트 사태를‘민주화’로 표현했다.

그러나 지난 1월 25일로부터 발생한 이집트 시위사태를 아랍권과 이집트인들은‘타랏 알 샤밥’(젊은이의 혁명) 또는 ‘타랏25야나일’(1월 25일 혁명)이라 불렀다.


언론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명칭은 ‘18일간의 혁명’이다. 전세계 블로그와 트위터들이 이용하는 ‘글로벌 보이스’에 올라온 광장 시위대의 12개 요구 결의안 중 첫 번째는 ‘무바라크의 사퇴’였고 두 번째는 ‘긴급조치법’의 해제였다. 타히르광장 시민들의 12개조 요구사항 중 현재까지 이뤄진 것은 3가지. 무바라크의 사임,의회해산과 개헌약속, 그리고 이집트 청년부 장관 ‘아나스 엘 피키’(Anas el-Fiqqi)의 해임이다.

의문이 든다. 이집트 시위대는 왜 그 엄중한 사태에 걸맞지 않게 청년부 장관의 해임을 요구했던 것일까?  그리고 도대체 누가 시위대의 요구를 듣고 무바라크를 사임하게 했고 또 의회를 해산했던 것일까?  시위대의 다른 요구는 받아들여졌으면서도 왜 ‘긴급조치법의 폐지’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바로 포스트 무바라크, 다시 말해 이집트의 장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이냐는 물음에 닿아 있다.


이집트 사태의 원인 ‘자유’ 아닌 ‘생활고’

금번 이집트 사태를 주도한 그룹은 다름 아닌 이집트의 노동조합(CTUWS)이다. 이들은 지난 1월부터 수에즈운하노조를 중심으로 산발적인 시위를 벌여왔다. 2004년 이래 이집트의 노조파업과 시위는 총 1900여건, 참여 인원은 약 1700만명에 달했다.

2009년 외교통상부가 중동정세 전문지 <Middle East Quarterly>를 인용한 보고서를 잠시 들여다 보자. 보고서의 첫째 문장은 ‘이집트 경제는 현재 곤란에 처해 있음’으로 시작된다.  실업률은 이집트 정부가 공식 발표하는 10%의 두 배에 달하는 20%대에 달하며 인구 8500만의 약 45%가 하루 2달러로 생활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무바라크 대통령이 집권할 당시 이집트 경제는 현재보다 훨씬 양호했으나 1980년대 중반 이후 정체 상태에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기록돼 있다. GDP 증가율은 거의 제로 상태에 머물렀으며, 무바라크 대통령은 실업과 인플레이션, 주택공급과 식량 증산 등 국민들이 당면한 곤궁상태의 해소에 필요한 경제적 개혁 조치를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는 것이 보고서의 평가다.

보고서가 지적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청년층들이 처한 생활고다.

이집트는 인구의 37%가 15세, 58%가 25세 이하로 청년층이 인구의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노동 가능 인구가 해마다 3%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청년 남성의 약 25% 이상, 청년 여성의 약 59%가 실업상태에 있었다. 지난 10년간 이집트 파운드는 달러 대비 50% 이상 하락했고 그 결과 물가는 치솟았다.‘많은 청년층 인구가 혼인은 물론 주택을 구입하거나 임차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최근 일부 청년층이 급진 이슬람 그룹에 포섭되는 위험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서는 말한다. 타히르광장의 이집트 시위대가 난데 없이 청년층의 고용과 복지를 담당하는 청년부 장관의 해임을 요구했던 이유와 이집트 사태를 ‘타랏 알 샤밥’(젊은이의 혁명)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집트의 향방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즉, 이집트에 그 어떤 체제가 등장하든, 누가 권력을 잡든, 화가 난 이집트 젊은층의 민생고를 해결할 수 없다면 그 체제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지금 이집트 인들이 원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이집트의 빵‘에이쉬’인 것이고 누구든 그들에게 ‘에이쉬’를 줄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약속을 할 자가 나타난다면 그가 군부든, 무슬림 형제단이든 다른 정치세력이든 바로 포스트 무바라크의 미래 권력자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집트의 개혁 요구가 노조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과 여기에 서구의 자본주의 경제와 민주주의가 들어설 공간이 제대로 보이지 않다는 점에 있다.


누가 이집트인들에게‘빵을’를 줄 것인가

이번 이집트 사태에서 군부가 보여준 행동은 실로 의아하다. 그들은 과거 이란에서처럼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탄압하지 않았다. 많은 병사들이 시위대의 요구에 동조했으며 무바라크가 한때 사임을 거부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한 배경에 군부의 ‘무바라크 버리기’결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시위대의 요구를 처리하고 있는 것도 군부다. 군부는 왜 30년간 충성을 해온 무바라크를 하루 만에 버릴 결정을 했을까.

스타인버그 미 해군대학원 교수는 이러한 의문에 명쾌한 설명을 한다. 그는 한때 이집트에 살면서 이집트 군부를 연구하며 비즈니스 컨설팅을 해왔고 군부가 운영하는 여러 사업에 정통한 학자다. AP가 보도한 그의 블로그를 통해 설명을 들어보자. 그의 블로그 제목은 ‘왜 이집트 군부는 가전사업에 열중하는가?’이다.

▲ .

“ 만일 여러분이 이집트에서 솥과 프라이팬을 샀다면 그건 군부가 만든 겁니다. 가전제품을 샀다면 그것도 이집트 군부가 만든 겁니다. 당신이 이집트의 도로와 부두를 걷는다면 그 역시 군부가 건설한 것이죠. 자동차 부품, 의류, 농업 모두 군부에 의해 생산되고 유통됩니다.”

스타인버그는 이집트 군부가 시민들의 편에 서야만 했던 까닭이 바로 그러한 이유에 있다고 주장한다. “군부는 보이는 모든 산업에 연관돼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다시 말해 군부는‘자신들이 장악한 이집트 경제가 소요사태로 혼란에 빠지느니 차라리 무바라크가 쫓겨나는 것이 낫다’라는 판단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스타인보그의 이러한 설명은 군부가 왜 지난 19일과 20일, 양일간에 발생한 노조의 시위에 대해서는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엄포하고 나섰는지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집트 군부는 소요사태의 원인이 된 이집트 경제난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과연 군부는 자신들이 개입하고 있는 돈 줄을 민간에 순순히 이양해 줄 것인가? 군부에 의해 경제난이 해결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자가 있다면 아마 북한의 김정일이 유일할 것이다. 군부에 의해 이집트 경제가 나아질 가능성은 한마디로 “제로”다. 따라서 군부는 이집트의 미래를 담보할 주체가 아니다. 그 보다는 오히려 이집트 개혁에 최대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알라흐 악바르”(알라는 위대하다).

인구 8500만의 이집트인들은 매일 이러한 기도를 하루 다섯 번 듣는다. 이집트 인구의 90%는 수니파 이슬람을 믿고 있다. 이러한 이슬람 사회 이집트의 정신적 기둥은 바로 200만 회원을 거느린 무슬림 형제단이다.‘알라는 우리의 모든 것’,‘예언자가 우리의 지도자’,‘코란이 우리의 법‘,지하드(聖戰)는 우리의 길’,‘알라를 위한 순교는 우리의 희망’. 이러한 근본 강령을 가진 무슬림 형제단은 1928년 수에즈 노역에 항의하며 이집트에서 설립돼 현재 이슬람연맹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문제는 이슬람 국가를 이상적 목표로 하며 이집트에 본부를 둔 최대 민간조직 무슬림 형제단이 정작 이집트 군부에 의해 철저한 탄압을 받아왔다는 사실이다. 이집트의 법은 종교를 기반으로 한 정당의 설립을 불법화 하고 있다.

무슬림 형제단은 금번 이집트 시위를 주도하지는 않았으나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2005년 실시된 11월 총선에서 무바라크 정권의 온갖 불법 동원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약 20%에 달하는 88석의 무슬림 형제단 출신의 의원들을 당선시킨 저력이 있다. 무슬림 형제단은 최근 대통령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실질적으로 의회를 장악하게 될 가능성은 매우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무슬림 형제단은 종교정당의 활동을 금한 이집트 헌법을 이 기회에 개정하려 하며 이 부분이 향후 군부와 충돌하게 될 가장 큰 변수로 남아 있다.

무슬림 형제단이 이번 이집트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은 대단히 기회적이다.

지난 2월 8일 무슬림형제단 알 바유미 부의장은 카이로에서 가진 국내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이란과 같은 (신정)국가를 원하지 않는다"며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를 원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스라엘 친선협정에 관해서는 "그 협정은 국민의 동의 없이 체결된 것"이라며 "국민의 의견을 다시 물어보고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사실상 반대한다는 뜻이다.‘이슬람이 해답이다’라며 지하드(聖戰)를 모토로 하는 무슬림 형제단에 의해 이집트가 친이스라엘의 정책을 버리는 순간 팔레스타인 문제로부터 이집트는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범이슬람주의와 이슬람민주주의를 주장하는 무슬림 형제단의 정치세력화의 모멘텀이 바로 이집트의 향후 對이스라엘 정책에 놓여 있다.

문제는 과연 무슬림 형제단이 이집트의 경제난을 해결할 수 있는 카드가 있느냐는 것이다. 무슬림 형제단은 샤리아(율법)에 따른 이슬람 금융조직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1988년에 스위스에 세워진 알타크와 은행의 핵심설립자는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의 최고위원 중 한사람이었던 사이드 라마단(Said Ramadan)이었고 그는 이집트 무슬림 형제단의 창립자 하산 알 빈나의 사위였다. 알타크와은행은 이후 알카에다를 비롯 이슬람 테러리스트에 대한 자금지원문제로 9.11이후 폐쇄됐다. 이렇듯 무슬림 형제단이 금융조직을 건설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쿠크’라고 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른 채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슬람금융은 율법에 의해 이자를 금하기 때문에 임차료와 같은 수수료로 배당을 받으며 이는 이슬람사회에서 독특한 경제구조를 만들어 냈다.

국제 무슬림 형제단의 자산은 50억~100억 달러로 추산되지만 실제로 이러한 돈은 이슬람 계율, 즉 샤리아 위원회가 정한 사업에만 투자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 이집트의 경제난을 구제할 수 있는 근본적인 수단은 되기 어렵다. 이집트의 산유량이 중동과 아프리카의 2.2%밖에 안 된다는 점에서 설령 무슬림 형제단이 권력을 잡고 산유시설을 국유화한다하더라도 이것으로 이집트의 경제난을 타개해 나간다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이집트의 최대 실력그룹인 군부와 무슬림 형제단이 이집트 사태의 원인인 경제난을 해결할 주체가 되지 못한다면 이집트의 향후는 대단히 불투명하다고 할 수 있다. 유일한 대안은 오로지 서구식 자유경제 시스템을 도입하는 길이겠지만 5천년 이집트 역사에서 그런 경험은 전무하다. 따라서 사회주의 포퓰리즘은 유력한 집권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이집트 시위를 주도한 이집트 노동조합(CTUWS)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국내외 언론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지난 2월 10일 이집트 연합노조는 새로운 개편체제에 들어갔다. 이슈는 무바라크의 재산과 군부가 장악한 산업주도권을 노조가 환수하겠다는 것으로 전개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군부와 노조연합세력 간에 권력투쟁은 피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래서 이집트 시민혁명의 제2라운드는 피범벅으로 얼룩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미국의 입장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노조-무슬림 형제단의 연합 집권을 막기 위해 미국이 군부 편을 들었다가 민심이 반미로 돌아서서 이스라엘의 안전마저 보장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다. 美 NSC 고문으로 활동한 민주주의수호재단의 레딘 박사가‘이집트의 노조문제를 주목하라’고 워싱턴에 경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난과 실업으로 성난 이집트 청년들에게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힘을 미국이 설득하지 못한다면 이번 이집트 사태는 모두가 패배자가 되는 게임이 될 수 밖에 없다. #


한정석 편집위원·前 KBS PD
kalito7@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