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미래, 급진이슬람이 좌우한다
이집트 미래, 급진이슬람이 좌우한다
  • 미래한국
  • 승인 2011.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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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해석 선교사(FIM 국제선교회 대표)
▲ 유해석 선교사



- 이번 이집트 사태가 시작된 배경은 무엇인가요?

이집트에서 일어난 시위를 코쇼리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코쇼리는 한국의 복음밥 처럼 생긴 이집트 전형적인 음식이에요. 쌀에 약간의 콩과 마카로니를 섞어 매운 맛으로 양념을 해서 먹는 서민들의 별미입니다. 코쇼리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서민들로부터 시작된 시위라는 것 때문이죠. 이번 사태는 이집트인들의 주식인 빵값이 상승하면서 서민들이 거리로 나오게 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집트에서 빵을 에이쉬 (아랍어로 생명이라는 뜻)라고 불러요. 빵은 90%가 정부에서 보조해 지급됩니다. 이집트에서의 빵값은 한 개에 5피아스트, 한국 돈으로 약 9원이었습니다. 이집트 인구 약 8천만 명 가운데 40%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사는 저소득층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곡물사태가 일어나면서 빵값이 상승하게 됐어요. 이러한 원인으로 서민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언급할 것은 이번 시위의 주된 세력은 젊은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집트는 25세 미만의 인구가 52.3%를 차지하고 있어요. 이집트의 실업률이 9.7%인데 전체 실업자의 90%가 이 젊은이들입니다. 따라서 젊은이들이 중심이 돼 시위가 진행된 것이에요. 종합적으로 볼 때 세계적인 현상인 인플레이션과 곡물 부족으로 인한 빵값의 상승 그리고 높은 청년실업률은 무능한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를 낳았고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졌습니다. 


무슬림 형제단, 시위대 대표 세력으로 인정
 
- 시민혁명주체세력이 이슬람세력과 연관성이 있습니까?

시위가 시작됐을 때 이슬람근본주의세력이 주도적으로 시위를 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이 힘을 얻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1920년대에 이집트에서 시작된 무슬림 형제단(muslim brotherhood)은 전 세계로 퍼져 하마스, 알카에다와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의 정신적 중심이 됐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집트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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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형제단은 1954년부터 이집트 정권에 의해 불법단체로 규정됐습니다. 또한 지난 30년 동안 무바라크의 철권통치 아래에서 힘을 잃었어요. 그들은 이집트를 떠나서 전 세계에 이슬람근본주의의 인력 공급원이 됐죠. 그러나 그들은 미래를 준비하면서 서민 속으로 들어가 이집트 서민들에게 지지를 받게 됐습니다. 그 증거가 지난 2005년 실시된 총선에서 무슬림 형제단은 무소속으로 출마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국회의원의 20%를 차지한 것입니다.

이번 시위에서 무슬림 형제단을 시위대를 대표하는 세력으로 정부에서도 인정했죠. 따라서 현재 군부 외에는 대안이 없는 이집트 상황에서 무슬림 형제단이 힘을 얻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 이슬람종교와 민주화의 공존이 가능할까요?

서구사회에서 무슬림들이 집회를 할 때 흔히 사용하는 피켓에 ‘Democracy is hypocrisy’라고 쓰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위선적이라는 뜻입니다. 사실 이슬람에서 추구하는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닙니다. 부시 미 대통령이 이라크의 민주화를 위해 침공한다고 했을 때 우려했던 일들이 지금 이라크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슬람에서 추구하는 사회는 움마(Umma) 공동체 즉 이슬람 공동체입니다.

이슬람 공동체의 특징은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하마드를 통해 볼 수 있는데 무하마드는 정치적 지도자와 종교지도자였습니다. 동시에 군대의 총 사령관이었습니다. 무하마드 이후 알라에 의해 선택된 사람들 즉 종교지도자들을 통해 지배되는 사회를 말합니다. 오늘 날 중동에서 민주화된 나라를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왕정에 의한 통치 그리고 독재자에 의한 통치를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이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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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 대통령은 최근 이집트가 한국과 같은 민주사회로 나가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일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 이란의 경우처럼 신정정치로 갈 우려는 없나요?

1979년 이란이 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이란의 이슬람종파가 시아파라고 하는 특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호메이니라고 하는 이란 국민들이 지지하는 종교적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이집트는 이슬람 종파에서 수니파에 속합니다. 또한 호메이니와 같이 국민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종교지도자가 없기 때문에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이란의 정치 스타일도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란의 정치형태가 이집트의 모델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 무바라크의 퇴진 이후 이집트의 상황은어떻게 전개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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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상황이 시위대의 요구처럼 쉽게 호전될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빵값 인상으로 시작된 시위는 빵값의 상승을 가지고 왔습니다. 지금 이집트 시장에서 빵값은 5 피아스트에서 10배로 올랐는데 이마저 그 가격의 빵을 구하기는 어려워요. 유럽에서 이집트 관광객을 실어 나르던 전세기는 전면 스톱된 상태입니다. 매년 이집트 경제의 10%를 차지하는 1,200만 명의 관광객들이 당분간 들어가지 않을 것이에요. 다만 1975년 이후 230억 달러를 지원해 준 미국의 원조는 매년 15억 달러 씩 계속 지원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의 군부는 미국의 요구에 순응하게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로 인해 눈에 보이는 개혁의 성과가 조금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이집트 경제가 호전되기는 어렵습니다. 작년에 이집트는 법정 최저임금을 400파운드(한화 약 8만원)에서 1,200파운드(한화 약 24만원)로 인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것이 지켜지지 않았어요. 지난 주부터 최저임금을 보장하라는 총파업이 시작됐어요. 매년 불어나는 130만 명의 인구도 문제가 됩니다.

불과 한 달 전에만 해도 이집트에서는 이슬람과 기독교가 충돌해 내전이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이집트 북부의 알-키신디 교회에서 기독교인에 대한 차량 폭탄테러로 21명이 숨지고 교회 안에서 폭탄을 터트려 30명의 사상자가 났어요. 이집트에는 콥트 기독교인들이 전체 이집트 인구의 약 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무바라크의 철권 통치가 막을 내리면서 이슬람 근본주의를 어떻게 장악하느냐에 따라서 이집트의 미래는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어요.

-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 선교가 가능할까요? 문제점이나 부작용은, 이를 극복하는 방안은 무엇인가요?

기독교 선교는 당분간 호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혼란기에는 모든 것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슬람은 이집트인의 삶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슬람사회의 부조리와 한계를 인식하는 젊은이들에게 서구사회는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또한 서양인들의 종교는 무조건 기독교라고 믿고 있는 이슬람 사회에서 기독교는 새로운 대안을 다가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또 한 가지 이슬람에서의 선교는 전통적인 선교의 사고를 가지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번에 시위가 성공할 수 있었던 도구는 방송, 인터넷, 트위터, 이동전화 등이었어요. 지금 중동에서 기독교 방송은 엄청난 효력을 발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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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위성방송 가운데 기독교 방송의 영향력이 확대돼 가고 있어요. 나는 지난 달에 시리아에 있었는데 시리아에서 방송되는 위성방송 가운데 4개의 채널이 기독교 방송이었습니다. 위성방송이 보편화돼 있는 중동에서 기독교 방송은 큰 힘이 되고 있죠. 인터넷과 트위터를 통한 선교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동선교를 위한 인재들을 양성해야 합니다.

- 기독교의 공격적 선교로 이슬람권에 마찰이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아프가니스탄 단기선교 때 피랍 살해 등으로 과연 어떤 선교방법이 좋은 가에 대한 논쟁에 있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 주십시오.


이슬람 선교는 문화적 이해에서 출발해야

1866년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국에 와서 순교한 토마스 선교사는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위대한 선교사였어요. 단 한 명의 기독교인이 없던 한국에 대해 “겸손하게 이야기해서 한국인들은 기독교의 진리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습니다. 한국에는 불교도 약하고 한국 사람들의 수준은 중국의 교육받은 사람들 수준입니다.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한국인들은 종교서적을 열심히 읽습니다.”, “한국인들은 기독교 진리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좋은 간증이 됩니다”라고 말했던 선교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마스가 비판받는 것은 그가 식민주의적 상선인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식민주의 만큼이나 위험한 것이 오늘날에도 많이 있습니다.

이슬람지역에 단지 몇 주간 머물면서 마치 이슬람권을 뒤집을 듯이 대형집회를 하고 노방전도를 하고 일방적으로 무슬림 가정에 가서 재워달라고 머물면서 민폐를 끼치는 등의 선교방법은 무슬림들의 반감으로 연결돼 선교사역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을 무슬림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무슬림 속에 들어가는 상황화 전략 또한 복음의 혼합화를 조장할 가능성이 있어요. 오늘날 이슬람선교는 이러한 두 극단을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33년 동안을 사셨습니다. 그 가운데 30년은 겸손하게 배우셨습니다.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배우고 유대교를 배우신 후에 3년 동안 사역하시고 올라가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어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 2:6) 말씀은 이슬람선교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들 속으로 들어가는 문화적 성육신이 동반돼야 합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의 종교적 상황 아래에서 겸손하게 배우셨던 것처럼 이슬람 언어를 배우고 문화를 배우고 그들 속에서 빛 가운데 살아갈 때 그 빛을 통해 예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기대하는 조급증은 무슬림의 반대와 혐오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따라서 이슬람선교는 예수님의 삶을 실천하는 데서 시작돼야 합니다.


다문화정책의 치명적 문제점

- 이번 사태를 통해 한국교회나 한국정부에 교훈이 되는 내용이 무엇이 있을까요?

이번 사태로 인해 많은 이집트 젊은이들이 이집트를 떠나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이미 언급했지만 이집트 경제는 어려워지기 때문에 희망이 보이지 않아요. 이번 기회에  떠나려는 젊은이들이 많이 나올 것으로 봅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시위가 일어났던 튀니지 난민들이 유럽 각국으로 배를 타고 넘어가고 있습니다.

시위에 참가했던 젊은이들이 정치적 망명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탈리아 남부의 람페두사 섬으로 매일 1,000명의 튀니지 난민들이 들어오고 있으며 지난 2월 20일에는 하루에 1,400명이 배를 타고 람페두사에 상륙했어요. 이집트 또한 마찬가지가 될 것이며 앞으로 중동의 젊은이들이 한국으로도 몰려올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재 한국정부가 다문화사회 정책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다문화정책은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 사회를 위험에 빠뜨릴 것입니다.

지난 해 10월 메르켈 독일 총리가 독일에서의 다문화가 완전 실패했다고 선언했고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2월 10일 방송을 통해 프랑스에서 다문화주의의 실패를 선언했습니다. 영국에서도 처음으로 캐머런 총리는 지난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회의에서 영국의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가 실패했고 이로 인한 이슬람 극단주의가 뿌리를 내렸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습니다. 그 무렵 영국에서는 영국인들이 3,000명이 모여 이슬람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고 있었어요. 엄격하게 말해 다문화주의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이 들어오는 다문화주의가 실패한 것입니다.

지난 2005년 런던 도심에서 52명의 생명을 앗아간 7.7 테러를 일으킨 주역들은 모두 영국에서 태어난 이슬람 2세들이었어요. 현재 영국의 이슬람 인구는 280만 명입니다. 전체 인구의 4%를 차지합니다. 물론 이 인구는 영국인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이슬람 인구입니다. 시민권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거나 공부나 사업을 위해 영국에 거주하는 이슬람 인구를 합하면 약 450만 명 정도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슬람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는 데 따른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어요. 2030년 시민권자 인구는 550만 명, 전체 이슬람 인구는 최소한 천만 명에 이르게 된다는 통계를 내놓고 있습니다.

다문화사회가 모두 위험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이 중심이 된 다문화사회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교회와 한국정부는 이에 대한 대안을 지금 준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곧 중동의 젊은이들이 몰려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


강시영 편집국장 ksiyeong@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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