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 오세훈은 누구인가
[인물탐구] 오세훈은 누구인가
  • 미래한국
  • 승인 2011.08.16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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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돈 안드는 선거법’ 발의, 2006년 지방선거 압승 주역

 
오는 8월 24일로 예정된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아니었으면 성사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개인적으로 어떤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는지의 여부를 떠나, 정치권의 무분별한 포퓰리즘 정책 남발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오 시장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평가가 높아지고 있다.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그의 배경과 활동을 돌아본다.

‘변호사 방송인’ 출신, 2000년 원내 진입

1984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오세훈 시장은 1991년에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했고, 1994년에는 MBC TV〈생방송 오변호사 배변호사>를 진행하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 96년부터 97년까지는 SBS 다큐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자로 ‘스타 변호사’로서 인지도를 쌓았다.
총선을 앞두고 있던 2000년 2월, 그는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제안으로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4·13 총선 선거대책위원회 부대변인을 지낸 그는 서울 강남을 지역구에서 당선돼 원내에 진입했다. 2001년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미래를 위한 청년연대> 공동대표를 지낸 그는 2002년 대선에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후보비서실 부실장으로 활약했고, 이듬해인 2003년에는 원내부총무를 지내기도 했다.

오세훈 시장이 국회의원으로서 국민들에게 분명한 인상을 남긴 시기는 2004년이다. 그해 4월 총선을 앞두고 그는 돈 안드는 선거문화 정착을 위한 이른바 ‘오세훈법’을 발의한 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의 지역구가 한나라당의 텃밭인 서울 강남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불출마 선언은 기득권을 전격 포기했다는 점에서 감동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2년 뒤, 그는 정권교체를 돕기 위해 한나라당에 복귀한다. 당시 한나라당은 노무현 정권의 실정에 힘입어 2006년 5월 3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서울시장 선거였다. 국민적 인기가 높은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를 선언하면서 각종 여론조사 결과 서울에서만큼은 한나라당의 열세가 예상되고 있었다.
실제로 서울시장 선거는 그해 4월 초까지만 해도 열린우리당의 압승이 예상됐었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맹형규, 홍준표 등 기존 한나라당 후보군에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며 한나라당 지지자들을 긴장시켰다.

이에 ‘오세훈 카드’가 급격히 부상했다. 오세훈의 강점은 첫째 강금실에 맞설 수 있는 인지도와 대중적 인기를 보유했다는 점, 둘째 참신한 이미지와 깔끔한 외모로 여성표를 흡수할 수 있다는 점, 셋째 당선이 확실시 되던 2004년 총선에서 불출마 선언을 했으면서도 한나라당 당적은 유지하고 있어 경선 참여 가능성도 높다는 점 등이었다.

2006, 2010년 ‘서울 사수’ 주인공

실제로 그는 대흥행으로 끝난 한나라당의 서울시장 후보 경선 직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강 후보에 20%p 이상 앞서며 단 한 차례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오 전 의원은 한나라당이 ‘강풍(康風)’을 만나서 신음하고 있던 어려운 상황에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경선에서 승리한 후 본선에서 파죽지세로 승리를 이끌었다.

오세훈 시장이 재선에 성공한 2010년 6월 지방선거 역시 한나라당 지지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 선거다. 당초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상됐던 서울시장 선거였지만,  투표일 오후 6시 투표 종료와 함께 발표된 출구조사 결과는 한나라당과 오세훈 캠프 관계자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오 후보가 한명숙 후보에 불과 0.2%p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 것.

오세훈 후보는 개표 초반부터 밀리기 시작했다. 특히 개표 21%가 진행된 상황에서는 한명숙 후보에 무려 3만5천표 가량 뒤지고 있었다.
그러나 3일 새벽 2시 이후로 한나라당의 텃밭인 강남-서초-송파구의 개표가 속도를 내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새벽 4시경에 오세훈 후보가 처음으로 재역전에 성공했고, 이후 표차를 점점 벌려가며 최종 승리했다.

이 지방선거 결과 한나라당은 2006년과 달리 인천, 강원, 충북, 충남, 경남, 제주 등에서 좌파에게 패배하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상징적인 의미가 큰 서울시장 선거를 오세훈 시장의 인물 경쟁력에 힘입어 승리했다는 것은 큰 성과였다. 좌파진영 내에서 신망이 두터우며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 중 하나였던 한명숙 전 총리를 상대로 거둔 승리였기에 더욱 의미가 깊었다.

포퓰리즘과의 전쟁, 자의인가 타의인가?

오세훈 시장이 무분별한 무상급식을 앞세우는 포퓰리즘 세력과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 10월이다. 그는 당시 한나라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시도지사 연석회의에 참석해 “우리나라는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양극화 현상이 심해졌고 많은 분이 소외감을 느끼고 있는 가운데, 야당에서 ‘보편적 복지’를 화두로 정국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산이 들여다 보인다”며 “보편적 복지라는 야당의 정치 공세에 휩쓸리기 전에 무엇이 진정으로 대한민국 미래에 필요한 일인지 노선을 분명히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 시장이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를 염두에 두기 시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가 주민투표를 공식 제안한 것은 금년 1월 10일 서울시의회가 제시한 서울시내 학교의 전면 무상급식안을 거부하는 자리에서였다.
하지만 그가 당시 제안한 것은 주민발의에 의한 주민투표가 아니라 시의회 발의에 의한 주민투표였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이 장악한 시의회에서 무상급식 관련 주민투표가 발의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기에 당시만 해도 오 시장의 주민투표 제안이 정치적 제스처로만 여겨졌던 이유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그 과정이나 오 시장 개인의 정치적 의미보다는 전면 무상급식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현재의 입장과 각오이다. 한나라당도 이번 주민투표 승리를 위해 당력을 동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세훈 시장은 “이번 주민투표에서 승리할 경우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보수진영이 ‘낙동강 전선’에 비유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승리한 후 2012년 5년만의 좌파정권 재출범을 저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주년 객원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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