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복지 포퓰리즘 심판했던 215만표는 어디로?
[심층분석]복지 포퓰리즘 심판했던 215만표는 어디로?
  • 미래한국
  • 승인 2011.09.14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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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6일 서울시장 재보선을 위한 후보경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재보선의 원인이 된 복지 포퓰리즘 문제는 온데간데 없는 모습이다.

지난 9월 1일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서울시장 후보 출마의사를 공식 밝힌 이후 6일 박원순 변호사와 후보 단일화 선언을 하기까지 100여 시간의 숨가빴던 드라마는 결국 박원순 띄우기로 끝났다. 그 와중에 안 교수의 지지율은 최대 50%대에 육박했고 지지율이 5% 남짓한 후보에 대한 양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남겼다. 이에 신선한 감동도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정치 쇼’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한편 한나라당은 8·24 서울시 무상급식투표에 대해 애초에 ‘상관하지 않겠다’는 오불관언(吾不關焉)의 입장이었다가 투표율이 33%에 미달해 패배하고 오세훈 시장이 즉각 사퇴하자 혼란에 빠졌다. 처음부터 어정쩡한 입장이었다보니 무상복지 포퓰리즘을 막아내기 위해 ‘공개투표장’에 나선 215만명의 용감한 서울시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서울시장 후보 지원의 조건으로 ‘복지에 대한 당론 정리’를 들고 나왔다. 한 당내 중진의원은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무상급식 2라운드가 돼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무상급식 2라운드는 안된다?

한나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를 자처하는 민주당 등 야권에서도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씨에게 후보를 양보하기 전까지는 무기력에 시달렸다. 진보논객 진중권 씨가 “안철수는 진보를 한 순간에 잉여로 만들었다”고 쓴 자조적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년 대선의 야권 통합후보로 거론돼온 문재인 씨가 “안철수의 독자행보는 한나라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협박성 멘트를 서슴지 않았던 것은 동지가 아니면 모두 적(敵)이라는 살벌한 한국 조폭정치의 메시지였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한명숙과 야권의 박원순은 단일화를 전제로 서울시장 후보 반열에 올랐다. 문제는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의 후보다. 복지 포퓰리즘을 반대하며 지난 서울시 주민투표를 주도한 보수진영에서는 ‘대한민국에 주인이 없고 객들이 설친다’며 우려하고 있다.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자신의 사이트에서 ”차라리 한나라당은 이번 서울시장 보선에서 후보를 내지 말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에서는 나경원 의원이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한나라당 지지자층에서는 ‘나경원+오세훈’ 구도라면 해볼만 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오지만 박근혜 의원의 지지가 없다면 장담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암초는 대권후보로서 최근 안철수 교수에 대한 지지율이 박근혜 의원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게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일 미디어리서치가 서울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는 40.7%로 안 교수(41.5%)에게 0.8%포인트 뒤졌다. 안 교수가 20~40대 연령층에서 15~17%포인트가량 박 전 대표보다 앞섰다. 이런 결과는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하더라도 안철수 교수가 지지한 박원순 씨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을 내놓게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 8·24 주민투표를 주도했던 보수진영에서도 행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 9월 8일에는 복지포퓰리즘추방국민운동본부 등 보수단체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범우파 시민후보 추대위원회’를 결성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추대하겠다고 밝혔다.

보수진영에서도 자체 시민후보 거론

보수 시민사회와 기독교 진영에서 서울시장 시민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로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이석연 전 법제처장, 전원책 변호사, 송대성 세종연구소 소장 등이 있다. 보다 젊은 층 인물로는 이정훈 연세대 교수, 이헌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들 공동대표 등이 있다.
교계에서는 이번 보궐선거와는 무관하게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기독교 정당 창당 움직임이 있으나 구체적으로 실체가 드러나고 있지 않으며 실제 정치세력화로 연결되기를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렇듯 좌파진영은 물론 우파 시민사회에서도 독자적 후보를 내려는 움직임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기성 정치권에 대한 깊은 불신과 실망에 기인한다. 8일 ‘우파 시민후보 추대’ 기자회견을 진행했던 이재교 변호사는 “한나라당은 오합지졸들이 자중지란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이라며 “이런 한나라당에게 수도 서울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고 각오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10·26 서울시장 선거 지원조건으로 복지문제에 대한 당론정리를 요구한 것은 보수진영이 제기하고 있는 복지포퓰리즘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박근혜 전 대표의 복지론은 아직 그 실체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야5당이 주장하는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와 같은 무상복지시리즈와는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이 어떻게 지속가능한 것인지, 얼마나 세금을 거두어야 하는 복지인지 판단해 볼 근거가 제공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친박진영에서는 박 전 대표의 ‘생애주기형’ 맞춤형 복지가 자칫 복지 포퓰리즘이라고 비판받는 야권의 무상시리즈에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것을 경계하는 눈치다. 반면 야권과 좌파진영에서는 복지가 사회주의나 좌파가 아닌 유럽의 보수우파가 고안한 정책이라며 한국의 보수는 ‘엉터리’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과연 그러한 주장에 근거가 있을까.

오늘 한국사회에서 첨예하게 일고 있는 복지논쟁의 뿌리는 바로 한 세기 전 독일의 상황에 맞닿아 있다. 그 모습은 마치 데자뷰같다. 해방 후 건국과 공산주의의 도전,비약적인 경제발전과 경제위기, 그리고‘사회주의’와‘자유주의’간에 한 치 양보 없는 이념대립이 그렇다. 

 독일제국의 재상 비스마르크
비스마르크가 생각한 ‘사탕과자’ 포퓰리즘

대한민국이 그랬듯이 낙후된 독일도 프랑스의 전쟁 배상금 50억 프랑으로 뒤늦게 산업화에 성공하고 자유주의 경제체제로 비약적인 발전을 경험한다. 아울러 사회주의세력이 1875년, 정당을 결성해 독일제국에 등장했다.

비스마르크는 타협 없이 ‘사회주의 탄압법’을 제정해 독일 사회주의 세력을 억압했고 그 효과를 보았다. 그런데 불황이 찾아왔다. 비스마르크와 보수정권은 거리에 넘쳐나는 실업자에 당황했다. 사회주의 세력은 그들 속에서 다시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1883년, 비스마르크는 고심 끝에 소위 채찍(Peitsche)과 사탕과자(Zuckerbrot)라는 두 가지 상반된 정책을 고안하기에 이른다. 사회주의 정당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를 대상으로 1883년부터 건강보험과 재해보험, 그리고 노령보험이라는 3대 사회보장제도를 실시했다. 그것이 근대 최초의 사회보장제도와 복지정책의 기원이 됐다. 흔히 ‘복지정책은 사회주의 좌파가 아니라 보수 우파가 최초로 시행했다’라고 주장하는 좌파논리의 근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시 비스마르크의 생각은 엉뚱했다.“노인들은 돈을 준다고 하면 쉽게 설득할 수 있다”라는 비스마르크의 유명한 발언은 현실주의자 비스마르크가 궁극적으로 포퓰리즘에 빠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소장은 비스마르크의 복지정책에 대해 “한마디로 지배권력이 지지를 얻기 위해 국민에게 사회적, 정치적 뇌물을 준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탕과자’ 복지정책으로 비스마르크는 성공할 수 있었을까.

사회보장 실시 12년만인 1890년, 사회주의 탄압법은 폐지됐고 독일 사회주의당은 마르크스 노선을 공식화했다. 같은 해 비스마르크는 빌헬름 2세에 의해 해임되기에 이른다. 복지 수혜를 입은 노동자들은‘사회주의 하에서는 이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꾀임에 대부분 넘어갔다. 독일제국 초기에 자유주의와 연대했던 비스마르크는 시간이 흐르면서 보호관세를 채택하고 오히려 자유주의를 억압했다. 교회에도 박해를 가했다. 결국 채찍과 사탕과자라는 비스마르크의 복지 포퓰리즘은 사회주의 좌파에 의해 평등의 사회권으로 포장되기에 이른다. 현실주의자인 비스마르크는 이념戰에서 사회주의에 패배했고 교회와 기업가,그리고 주류세력으로부터도 배척됐다.

유럽의 경제성장은 복지때문이 아니다

사회주의 좌파세력을 막기 위해 고안된 비스마르크의 복지정책이 오히려 오늘날 사회주의자들의 무기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국내 자유주의 경제철학의 대표적인 학자인 민경국 강원대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좌파는 복지를 사회적 권리로 주장합니다. 하지만 사회권은 공민권, 참정권과는 달리 그 철학적 기초가 분명하지 않죠. 그것은 시장경제에 기초한 자유가 가진 자들만을 위한 자유라는 잘못된 생각에 기인합니다. 하지만 가진 자는 누군가에게 가치를 제공했기 때문에 그 대가를 가진 것이죠.”

민 교수는 올바른 복지란 보편적도 아니고 선별적도 아닌‘잔여적(殘餘的)’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스스로 자립할 수 없을 정도의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주어지는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복지란 그 경제 원리적 측면에서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지란 성장이 정체된 사회에서 나오는 요구입니다. 성장과정에 있는 사회에서는 그러한 요구가 없죠. 성장이 정체된 사회에서 분배가 어떻게 지속가능합니까?” 민 교수의 이어지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든다. 유럽의 경제는 높은 수준의 복지체제를 갖추고도 경제성장을 이루어 오지 않았던가. 민경국 교수는 그러한 점에 대해 ‘복지에도 불구하고’라는 시각으로 문제를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취하고 있는 높은 수준의 자유주의정책들이 간과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高복지 국가들의 기업활동은 대단히 자유롭다. 해고나 신규사업에 대한 진입규제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부자와 자본가,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하지 않는다. 부가세도 우리보다 2배정도 높으며 개인에게 나라들마다 40~60%에 달하는 높은 세율을 적용한다. 한마디로 많이 벌어 많은 세금을 내달라는 주문이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진정성을 담은 논쟁이라면, 고세율 고복지냐 저세율 저복지냐, 그도 아니라면 중세율 중복지냐를 가지고 따져야 합니다. 무상이라고 하면, 저(중)세율 고복지를 말하는 것이 되고, 이 경우 국채부담은 후세대로 전가되게 되죠.후대의 동의를 얻지 않고 이런 결정이 이루어지게 되면 현세대만을 위한 포퓰리즘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3無1半 야5당의 복지정책은 국가파산전략?

이렇듯 우리의 복지정책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철학이 부재한 상태에서 야5당은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을 모토로 복지동맹을 추진하고 있다. 지경부의 분석에 의하면 매년 총 16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

유럽의 복지정책이 성공적이지 않다는 증거는 많다. 스웨덴은 1950년대부터 복지확장으로 성장이 추락해 왔고 독일은 1970년대 복지확장으로 실업률이 증가하고 있다. 영국은 최근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복지의 바이블, 비버리지 보고서를 포기했다. 1990년대부터 이들 국가의 복지정책에 대대적인 수술이 진행되고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좌파와 민주당이 이런 무책임한 복지 포퓰리즘을 들고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한나라당이 여기에 끌려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포퓰리즘의 중력 때문일까.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는 이런 물음에 의미심장한 해석을 내놓는다. 북한 김정일 정권과 종북세력의 ‘자유민주통일 포기 전략’의 가능성에 대해 열어 놓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산주의 이념투쟁에서 패배한 북한과 종북세력이 북한의 급변사태 시 남한의 흡수통일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국가재정 파탄’이라는 새로운 대남전략을 설계할 수 있다는 조 대표의 분석은 북한 입장에서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는 그림이다. 실제로 종북주의에 함몰된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내 종북세력이 무상복지의 열렬한 전도사라는 점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 문제는 한나라당에는 그러한 존재들이 없는가 하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전 대표가 생각하는 복지정책은 무엇일까. 혹시  그들의 마음 속에 대한민국은 이미 지워진 것은 아닐까. 사회주의 압력에 굴복해 자유 독일을 마음 속에서 지웠던 비스마르크처럼 말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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