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녹색의 가면 '에코 파시즘'
[심층분석] 녹색의 가면 '에코 파시즘'
  • 미래한국
  • 승인 2011.09.2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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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보수진영 ‘공생’의 생태주의 경계해야

 생태주의 환경 파시즘은 자유주의 진영에 새로운 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 인간을 자연과 단절시키는 것, 즉 삶의 총체를 자연으로부터 절연시키는 것은 인류 자체의 절멸과 자연의 죽음을 초래할 뿐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대단히 익숙한 메시지의 주인공은 오늘날의 환경보호론자가 아니다. 그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인 동시에 파시스트 교육자였고 히틀러의 나치즘을 완성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1934년 나치의 저명한 식물학자이자 교육자였던 레흐만(Lehmann)이 주인공이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 우리가 태어난 자연과 결합하려는 정신이야말로 나치즘의 가장 깊은 의미이자 진정한 본질이다.”

‘공생’, ‘생태적 발전’의 원조는 파시즘

나치 정권의 농림부 장관 발터 다레(Darre)가 레흐만의 이론에 입각해 피(민족)와 대지(고향)의 통일론을 주장했을 때 독일 청년들은 과거 우리의 ‘통일겨레 백두대간 보존운동’처럼 열광했다. 청년들은 너도 나도 나치에 입당했고 열렬한 자연보호운동이 독일 사회에서 전개됐다. 청년들은 녹색 갈고리 십자가 완장을 차고 국민들에게 숲과 나무를 지키자고 길거리에서 호소했다.

1935년 인류사회 최초의 자연보호법이라 할 수 있는 라이히 자연보호법(Reich Nature Protection Act)이 제정됐다. 법의 핵심은‘영원히 지속가능한 숲’(Dauerwald) 이었다. 곧이어 대기(大氣)보호법도 만들어졌다. 나치의 환경이념은 순수 종의 보호를 위해 유태인을 학살하는 이론적 명분을 만들었다.

‘나찌는 얼마나 푸르렀던가?’(How Nazis were Green?)의 저자 조나단 올센(Olsen)은‘대중선동을 목적으로 최초의 환경운동은 그렇게 시작됐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학자들은 나치의 이러한 환경이념을‘에코 파시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녹색 파시즘은 오늘날 생태주의(ecology)에 중요한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대 생태론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어머니 지구’곧 가이아(Gaia) 이론은 이미 1913년 헤켈과 함께 나치즘을 육성한 루드비히 클라게스가 <지구와 인간 : Mensch und Erde,1913>이라는 저서를 통해 완성한 이론을 재해석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클라게스는 전지구적 차원의 환경파괴, 동식물의 멸종, 삼림남벌, 고래포획, 도시확장, 기독교와 자본주의 등을 민중운동의 시각으로 비판했고, 지구를 생태적 총체로 해석함으로써 자연과 사회를 일치시키려는 독일의‘유기체적 전체주의’사회 이론을 만들었다. 오늘날‘공생 ’과‘생태적 발전‘의 모든 이론은 이 파시스트 이론가 클라게스로부터 빚지고 있다. 그런데 그의 ’유기체 사회‘라는 사상 배경에 자리잡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고대 미신적 종교, 민족주의, 공동체주의, 자연 신비주의, 종말론, 반기독교주의 등이었다.
 

2003년 천성산 도룡뇽 소송사건은 우리 사회의 심층적 생태주의 운동이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환경 파시즘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환경 파시즘이 100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다시 부활하고 있다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2005년 국민들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하나의 기이한 사건과 마주했다. KTX 경부고속철도 공사가 한창이던 그해 10월, 400억원 규모의 천성산 터널공사가 한 마리의 도롱뇽이 원고가 돼 제기한 소송 때문에 중단됐기 때문이다. 흔히‘천성산 도롱뇽 소송’이라고 불린 이 사건에는 조계종 비구승‘지율’과 함께‘도롱뇽의 친구들’이라는 3개의 환경단체 소속원들이 있었다. 소송의 요지는‘ 사전 환경평가에서 도롱뇽의 서식처 문제가 빠져 있다“라는 것. 2006년 대법원의 기각판결이 나올 때까지 이 소송으로 공사는 6개월간 3차례나 중단됐고 시공사들은 145억원이라는 손실을 입었다.

도롱뇽 소송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지대했다. 2005년 2월, 정부가 공사중단을 천명하고 단식농성에 들어갔던 지율과 환경영향평가 공동조사에 합의하자 환경단체들은 환호작약했고 법당에는 승전의 목탁소리가 요란하게 퍼졌다. 한 언론은 비구승 지율을‘생명의 어머니’라고 표현했다.

이 사건은 겉으로 보기에는 불교계의 생명존중 운동으로 보이지만 참여한 환경단체들의 이념에는 어머니 지구, 생명 공동체와 같은‘생태주의’환경 파시즘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종종 간과된다. 비록 대법원 결정에 의해 도롱뇽 소송은 기각됐고 천성산의 도롱뇽은 아무런 문제없이 번식되고 있다지만 2003년 이 낯선‘생태주의’이념은 어느 새 우리 사회 곳곳에 깊은 서식처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0년도 안 돼 실패한 사회주의를 대신해 ‘공생’과 ‘생태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미국의 저명한 에너지 경제학자 앱스타인이 “과거 사회주의는 붉은 옷을 입었지만 지금은 녹색이라는 옷으로 갈아입었다”라고 한 말은 바로 이 생태주의가 어떻게 사회주의를 포섭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생태주의는 진보와 보수, 좌와 우,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모두를 초월해 ‘공생’이라는 이름으로 사회를 변혁하고 통합할 것을 요구한다.“민족의 깊은 곳에서 녹색 아돌프(Green Adolf)에 대한 요구가 있다”고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독일의 대표적인 녹색 정치인 루돌프 바로(Rudolf Bahro)였다.

그는 모든 생태주의적 공동체는 민주주의가 아닌‘권위’에 의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한 생태주의 안에는 자유와 정의 같은 개념은 없다. 국내에는 이러한 생태주의로서‘백두대간 氣생태주의’(한면희 2002)나 전일(全一)주의로서의‘온생명사상’(장회익 1989) 등이 각광을 받고 있다. 자연의 질서를 사회질서에 투사해서 사회 내에 자연적인 생태계를 만들려는 이 시도들이 공통으로 주장하는 것이 바로‘공생’이다. 송명규 단국대 교수(도시계획)는 그의 논문‘생태 파시즘과 그 교훈(2006)’에서 “자연질서를 사회에 투사하려는 노력들은 자칫 전체주의, 권위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회학자들의 비판을 인용했다. 실제로 심층 생태주의의 가장 큰 진영인 ‘지구 먼저!’(Earh First!)는 자연보호를 위해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수단을 동원한다.

그린피스가 북극해에서 고래잡이 포경선의 어업을 방해하는 수준이라면 ‘어스 퍼스트’는 포경선을 폭침시키는 전법을 쓴다. 이 ‘어스 퍼스트’의 편집장 존 데이비스의 발언은 유명하다. 그는 2000년 중반 한 저널에 “종(種)으로서의 인간은 벌레만큼의 가치도 없다”라고 했고 다른 저널에서는“에이즈가 인류 감소를 초래하기 때문에 찬성한다”라는 표현으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인간이 결코 한 마리의 도롱뇽보다 우월하지 않다고 믿는‘심층적 생태주의’(Deep Ecology)가‘천성산’사건에 있었다면 반자본, 반시장, 반체제의 녹색사회주의는 부안 방폐장에서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해방구’라는 구호로 그 진가를 발휘했다. 2003년 부안에 방사능 핵폐기장 처리시설 구축을 둘러싼 주민 갈등이 선동과 폭력으로 치달았던 원인에는 무엇보다 사회주의이념을 가진 환경단체들의 개입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심층적 생태주의의 가장 큰 운동 진영<Earth First!>. 인간이 다른 자연의 종보다 결코 우월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환경보호에 테러와 폭력도 불사한다.
부안 방폐장과‘녹색사회주의’

2003년 4월 25일자 전라일보는‘방폐장 사태 외부세력이 좌우’라는 제목의 사설에서‘주민과 이해관계가 없는 외부세력이 마치 불난 집에 부채질 하듯 유언비어마저 서슴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당시 주민들의 평화적 토론은 환경운동연합을 비롯 반미, 종북 단체들의 선동으로 폭력화됐고 환경운동과 사회주의가 결합하는 계기가 됐다.

2006년 환경운동연합의 사무총장이었던 김혜경이‘진보개혁의 위기’라는 토론에서“진보와 개혁에 녹색이 빠져 있다”며“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에서 부안 주민들이 처음부터 투쟁했겠나. 평화시위로는 안먹혔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 것이나  또“ 국가는 자신의 국토 관리 권한을 자본에 넘겨버렸다”라는 주장은 환경운동연합의 환경이념이 곧 반자본, 사회주의에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부안 방폐장 사건을 계기로 환경운동이 사회주의 운동에 새로운 모멘텀이 됐다는 사실은 올 봄 서영표 성공회대 교수가 <진보평론>이라는 잡지에 투고한 ‘21세기 사회주의 전략 : 녹색사회주의 + 급진민주주의’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새로운 사회주의 전략은 지구생태계의 지속가능성과 자본주의체제는 서로 모순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경제규모의 지속적 확장, 그리고 이에 동반되는 엄청난 규모의 자원과 에너지의 낭비가 자본주의경제의 기저를 형성한다면 이 체제 아래서는 생태적 지속가능성은 성취될 수 없다. 사회주의적 대안전략은 빈국과 부국 사이의 불평등,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의 사회적 분할이 극복되지 않고서는 지속가능한 사회에 도달할 수 없음을 주장해야 한다.”

자유보수진영 ‘공생’의 생태주의 경계해야

환경운동이 순수한 환경보호차원의 운동이라고 믿는 국민은 없다. 환경운동연합의 2000년 총선 낙선운동, 스크린쿼터 반대운동, 한.미 FTA 반대 운동 등은 자신들과 무관한 운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환경단체들의‘민중’,‘반미’,‘반자본’등의 사회주의 정치이념은 정작 환경이 아닌 자신들의 좌파 이념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유보수진영에서 정작 우려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녹색사회주의가 아니라 바로 천성산의‘생태주의’다. 생태주의가 근대적 정치 이념을 초월해서 자연모방이라는 21세기 새로운 사회변혁 운동으로 발전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생태학의 거두 머레이 북친(Bukchin)은 ‘어떻게 자연과 사회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사회문제(성차별, 인종차별, 계급주의, 자본주의, 중앙 집권 구조의 국가주의 등)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에 실천 가능한 해결 방법은 ‘사회적 비판과 사회적 변혁에 뿌리를 내린 생태주의 뿐’이라 결론을 내린다. 그러한 북친이 실천 모토로서 ‘공생’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은 오늘 우리 한국사회에 대단히 불길한 전조를 드리우고 있다. 

지난 8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은 새로운 국정이념으로 ‘공생발전’을 내세웠다. 그리고 이 공생발전에 대한 해석으로 ‘생태계형 발전(Ecological Development)’을 이야기했다. 한마디로 상생과 공존이라는 이 개념은 사회적 생태론의 바로 그것이다. 최근 돌풍을 일으켰던 안철수 씨 역시 ‘중소기업과 IT산업의 생태계’를 화두로 내세웠다. 우리 사회 내부에 이러한 생태론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배경에는 다름 아닌‘승자독식’,‘양극화’라는 문제를 자유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성찰해 본다면 바로‘천성산 도롱뇽’에서 드러났던‘생태주의’라는 환경 파시즘이 사회변혁운동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경계를 지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이 다름 아닌 대중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나치의 상징투쟁이었고 포퓰리즘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

환경 파시스트들은 브라질 산림파괴를 예로 들며 자본주의 시장과 개발이 환경을 파괴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파괴되는 브라질 산림의 60%는 가난한 원주민들이 화전농업을 하기 위한 것이고 산림은 또 매년 새로이 생겨난다. 개발이 환경을 파괴한다면 후진국보다 선진국의 환경이 훨씬 깨끗하고 잘 보존되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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