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나경원과 박원순, 그들은 누구인가
[분석] 나경원과 박원순, 그들은 누구인가
  • 미래한국
  • 승인 2011.10.1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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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서울시장 보선 대격돌

 
정책-이념성향-정치기반 ‘극과 극’, 서울시는 어디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대진표가 정해졌다. 10월 3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좌파진영 후보단일화 경선에서 박원순 후보는 총 52.15%의 최종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박영선 민주당 후보는 45.57%, 최규엽 민주노동당 후보는 2.28%에 그쳤다. 이날 치러진 경선의 최종 투표율은 59.6%로, 총 선거인단 3만 명 중 1만7885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이로써 야권 단일후보로 최종 결정된 박원순 후보는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와 맞대결을 벌이게 됐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시장직 사퇴로 인해 치러지게 되는 이번 보궐선거는 내년 4월 총선과 내년 12월 대선을 앞둔 전초전의 의미가 크다. 이를 시사하듯 나경원 후보와 박원순 후보는 극과 극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다르다. 이로 인해 이번 선거는 좌익 대 우익의 ‘최종 결전’과도 같은 양상으로 가고 있다. <미래한국>은 이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두 후보의 정책, 이념 성향, 정치적 기반 등을 독자들과 함께 검토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정책
부채 절반 감소 vs 토목사업 폐기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는 시장에 당선될 경우 현재 20조원에 육박하는 서울시의 부채를 오는 2014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그는 ‘5대 알뜰살림 프로젝트’ 공약을 지난 10월 2일 발표했는데, 골자는 ▲ 철저하고 강도 높은 사업구조조정과 행사성 사업 축소 ▲ 향후 종료 사업예산 때문에 여유가 생긴 재정으로 부채 상환 ▲ 보수적인 세입추계 및 지방소비세 증가분으로 부채 상환 ▲ 추진 중인 사업의 시기 조정으로 예산 확보 ▲ SH공사 등 투자기관의 경영혁신과 사업구조조정으로 부채상환 등이다. 

 나 후보는 “서울시의 모든 사업의 타당성 검토는 원점(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할 것”이라며 “신규사업은 기존 사업지출을 줄이거나 재원 대책을 의무적으로 마련한 후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강 르네상스 사업과 관련해서는 “완료된 부분은 공공의 활용을 높여야 할 것이며 아직 시행되지 않은 사업은 전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또 지난 8월 서울시 주민투표 당시 논란거리였던 전면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오세훈 전 시장과 마찬가지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서민과 빈곤층에게만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급식비를 낼 여유가 되는 상류층 및 중산층에게는 기존에 해오던 대로 급식을 실시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이에 맞서는 박원순 후보는 오세훈 전 시장의 핵심 정책이었던 한강 르네상스 사업과 디자인서울사업 등을 전면 폐기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는 “한강운하는 폐기하고 자연형 한강을 복원하겠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물론이고 기상이변으로 인한 재난에 대비하는 안전한 녹색서울을 만들겠다”면서 “재건축·재개발의 과속 추진을 방지하고 이주시기의 조절과 새로운 임대정책을 도입하는 것은 물론, SH공사의 개혁을 통해 전세난을 최소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그는 “일자리 문제 해결을 최우선과제로 삼아 소외된 취약계층과 청년들이 일어설 수 있는 사회복지적 일자리와 창조적 벤처기업의 창업과 경영에 필요한 정책지원에 나서겠다. 그 일환으로 사회투자기금과 중간지원기관, 유통지원기구의 설치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념 성향
국보법 폐지론자 vs 미디어법 선봉장

무상급식과 관련해서는 “시의회·교육청과 협의하여 친환경무상급식정책을 조기에 확정하여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혀 나 후보와 분명한 대립각을 세웠다.

이념 성향은 두 후보가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박원순 후보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확고한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다. 1980년대부터 국보법 폐지 운동에 앞장서 온 박 후보는 1991년 5월 “국제사회에 떳떳이 나서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해 1월에는 “민주주의제도가 다원성과 다양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에서 나온 김일성 전기도 남한에서 간행되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1989년 11월에는 저서 ‘보안법은 현대사 모순 비춘 거울’를 출판하고 “이제 북한을 반국가 단체로 볼 수 있느냐”며 국보법 폐지를 선동했고, 앞서 그해 4월에는 “이적서적 압수는 문제가 있으며, 어떠한 내용의 서적이든 이를 금압하는 것은 야만적인 짓”이라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권 중반 국보법 폐지 공방이 격렬했던 2004년에도 그는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박 후보는 2004년 9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라고 부르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는 헌법에 나와 있는 표현의 자유를 포기하고, 이를 억압하겠다는 뜻”이라며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 하에 6·25 남침 전범인 김일성에 대한 찬양행위를 간접적으로 두둔했다.

그는 2004년 4월에도 ‘한겨레’에 실린 김형태 변호사와의 대담 중에서 “민족민주운동사는 곧 국가보안법 위반사...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또 그는 지난 2010년 12월 국군의 정례적인 서해 해상사격훈련에 대해서도 “상식적인 수준의 이야기인데, 북쪽을 자극해서 우리가 얻을 것이 무엇인지 의문”이라며 “누가 우리를 침공하면 당연히 대응을 해야 하지만, 이번 경우는 그런 것도 아니고 왜 이런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에 맞서는 나경원 후보의 이념 성향은 보수우파에 가깝다. 나 후보는 초선 의원 시절이던 2004년 국보법 개폐 공방 때 폐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이는 당시 한나라당의 공식 당론이기도 했다. 또 나경원 후보는 지난 2006년 노무현 정권의 한미연합사 해체 시도에 반대하는 시청 앞 범우파 진영의 대규모 집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에는 박근혜 전 대표를 비롯해 강재섭 당시 대표, 전여옥·나경원 의원 등 한나라당 소속 의원 30여명이 참석했다.

그러나 나경원 후보의 이념적 정체성을 가장 확실하게 규정하는 사안은 미디어법이다. 그는 지난 2009년 국회에서 가장 큰 이슈였던 미디어법 처리 당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간사를 맡아 법안 통과를 주도했다. 당시 좌파진영은 ‘미디어법 5적’ 이라며 나 후보를 공격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미디어법은 언론노조를 비롯한 극좌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기존 방송시장에 시장원리를 도입함으로써 좌파의 ‘전파 독점’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치 기반
둘 다 법조인 출신, 인생 행적은 180도 달라

나경원 후보와 박원순 후보 모두 사법시험에 합격한 법조인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인생의 행적에서는 큰 차이가 있다. 나 후보는 서울법대 졸업 후 판사로 지내다가 2002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대선 지원 유세를 시작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그는 이회창 후보의 대선 패배 이후 변호사로 복귀했다가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원내에 진입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당 대변인을 역임하며 대중적 인기를 누렸고,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가해진 좌파진영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방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서울 중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나 후보는 지난해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에서 오세훈 전 시장에게 패배했지만 만만치 않은 득표력을 보여줬다. 이번 10·26 보궐선거를 앞두고도 그는 높은 대중적 인기에 힘입어 한나라당 후보로 손쉽게 낙점됐다.

나 후보는 대선 정국을 거치면서 친이계로 분류됐지만,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도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박 전 대표에게 지원 유세를 요청할 것이냐는 질문에 “시간이 되면 만나볼 것”이라며 “언론에서 자꾸 묻는데, 박 전 대표께서 부담스러워할 것 같다”고 조심스런 입장을 밝혔다.

박원순 후보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기 이전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좌파성향 시민운동가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실상의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정파성이 뚜렷했다. 박 후보는 참여연대 소속이었던 2000년에 총선을 앞두고 낙선-낙천 운동을 주도했다. 

 당시 참여연대·환경연합·녹색연합 좌익단체들은 ‘2000년 총선 부패정치 청산 시민연대’를 구성, 정치 개입에 나섰다. 박 후보는 당시 총선연대 상임집행위원장 자격으로 이 운동을 선두에서 지휘했다. 이 낙선운동은 선거법 87조를 위반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낙선운동을 계속 했다. 결국 2000년 1월 24일 이들이 발표한 공천 반대자 66명의 명단은 우파성향 정치인을 직접 겨냥했다. 정당별로는 한나라당이 30명으로서 가장 많았고 민주당과 자민련이 각각 16명, 무소속은 4명이었다.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고 좌파진영 단일후보로 선정되기까지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안철수 원장은 지난 9월 초에 서울시장 선거 출마 가능성을 내비쳤고, 단번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후보와 쌍벽을 이루는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승격됐다.

이어 안 원장은 지난 9월 6일 박원순 변호사를 지지한다고 선언한 후 서울시장 선거 불출마 입장을 밝혔다. 안 원장의 지지 선언 이전까지 박 후보의 지지도는 5% 내외에 불과했으나, 이날 이후 안 원장을 지지하던 유권자들 중 과반수가 박원순 후보 지지로 옮겨갔다. 이는 박영선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경쟁에서 그가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좌파진영 단일화 경쟁에서 승리한 박 후보는 “민주당에 입당해 달라는 요구가 상당히 있지만 제도권 정치를 넘어서는 새로운 변화와 혁신에 대한 요구도 내가 안고 있다”며 “협력할 야당들, 시민사회의 폭넓은 의견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박원순 후보와 나경원 후보는 좌우 양측 진영을 대표할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한 정체성과 정파성을 가지고 있다. 좌파와 우파가 내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큰 승부를 앞두고 서울에서 ‘진검승부’를 벌이게 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김주년 객원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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