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락하는 한국교회, 부흥의 열쇠는…
쇠락하는 한국교회, 부흥의 열쇠는…
  • 미래한국
  • 승인 2011.10.25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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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피터스 헬핑핸즈코리아 대표 / 해외선교사의 한국기독교 진단

 
NGO 활동가인 팀 피터스(Tim Peters)는 오랫동안 한국에서 활동해온 선교사이기도 하다. 탈북난민들이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돕고 북한으로 강제송환된 탈북여성들의 자녀들을 보호하는 단체인 ‘Helping Hands Korea’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의 다양한 이슈를 두고 기도하고 토의하는 주간 모임 ‘카타콤’을 이끌고 있다. 10월 초 탈북민 지원을 위해 장기간 해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그를 도널드 커크 <미래한국> 편집위원이 인터뷰했다. 주제는 본지가 지난호(405호)에서 커버스토리로 다룬 기독교의 사회적 역할, 특히 외국인으로서 그가 관찰해온 한국 내 기독교의 위상에 관한 것이었다. 

-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에서 기독교가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왔는데 그 동력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여러 요인이 복합돼 있다. 역경, 가난, 일제의 압제 등으로 한국인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한국전쟁으로 한국사회는 완전히 뒤엎어졌고 뒤이은 희생적인 재건을 통해 사고의 변화를 가져오는 기초가 놓였다. 신약성경의 가르침이 새로운 사고를 가져오는 주된 이유가 됐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역사적 비극들은 굳은 땅을 갈기 위해 농부가 땅을 기경하는 것과도 같았다고 본다.  이를 통해 한국인들의 마음 밭은 복음의 씨앗이 심겨지기에 적합한 옥토가 됐고 지난 한 세기 동안 한국인들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신앙인들이 나오게 됐다. 이 과정에서 선교사들의 기여와 한국인 교회 리더들의 역할이 컸다. 

한국, 시련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인 증가

- 복음주의 개신교, 가톨릭 및 다른 기성교파 등 현재 한국 기독교가 서 있는 한국사회 내 위치가 어디쯤일까.
누구도 그 질문에 정확한 대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내가 보기에 한국 개신교는 중대한 기로에 있는 것 같다. 지난 수십년 간의 폭발적인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농업사회에서 가난에 찌들었던 한국이 급속하게 현대화, 도시화되면서 물질주의가 한국 개신교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또한 많은 대형 한국교회의 리더십 구조가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겸손한 종의 모델이 아닌 회사와 상당히 흡사하다. 담임목사들은 맡겨진 교인들을 섬기는 자가 되려 하기 보다 교회를 ‘기업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참된 영적인 스승을 찾는 젊은 목사들에게 큰 실망이 됐다.

한국 기독교인들 가운데 세계적으로 생각하는 새로운 세대가 늘어나면서 이들은 권위주의적인 한국교회 지도자들과 지구 반대편의 좀 더 겸손한 교회 리더들 간의 차이를 보며 괴리감을 느꼈다. 아마도 이것이 한국에서 개신교인 수가 계속 감소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반면, 가톨릭 교회는 한국에서 최근 몇 년 동안 교인 수가 늘고 있다. 로마 가톨릭 사제들이 요구하는 섬기는 리더십을 강조해서 그런 것 같다.

- 일부 한국교회는 매주 일요일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교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해외의 다른 교회와 비교해 볼 때 어떤 비결이나 차이점들이 있다고 보는가.  
역사적으로 한국인들은 종교성이 강했다. 불교와 다른 종교들도 한국에서 깊이 뿌리를 내렸다. 예수 그리스도의 변함없는 복음은 근대에 많은 한국인들의 영적인 갈급함을 충족시켰다. 한국에서 기독교인의 비율은 전체 인구의 약 1/3 이상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기독교인들의 영향력은 기독교인 정부 관리, 학자, 사업가들 때문에 훨씬 크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을 소개하는 데 매우 열정적이다. 그래서 친척, 이웃, 심지어 지나가는 행인들을 설득해 교회나 성경공부 모임에 출석하도록 하고 있다. 고도로 얽혀 있는 한국사회의 가족제도와 사회적 관계들은 복음이 도미노 효과식으로 전달될 수 있는 바탕이 돼 한국 개신교인들의 수는 놀랍게 성장했다.

하지만 한국의 대형교회 교인들 중 상당수는 영적인 회심을 통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겠다는 순수한 목적으로만 교회에 출석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인간관계, 사업, 심지어 같은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 간의 네트워크 확장을 위해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데 이런 교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모습은 특히 해외 한인교회들 가운데 두드러지는데 해외에서 한인사업가들과 학생들은 지역 한인들과 연결되고 그 역동성을 활용하는 가장 빠른 방법으로 교회를 찾고 있다.

선교 프로그램 질적으로 향샹돼야

대형교회의 대규모 교인 수와 관련해 한 가지 이해해야 할 것이 있다. 한국교계의 상당수는 수만 명 혹은 그 이상으로 교인이 많을 때 성공한다는 이른바 ‘대형교회 의식’에 빠져 있다. 겉으로 보면 대단해 보이지만 이렇게 많은 교인수는 다른 교회에서 수평이동해 온 사실을 숨기고 있다. 또 많은 대형교회 교인들의 신앙은 영적인 지도를 제대로 받지 못해 깊이가 낮은 경향이 있다. 대형교회의 특징들은 최근 한국말로도 번역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데이빗 플랫(Platt)의 ‘Radical’에서 잘 나타나 있다. 플랫은 이 책에서 대형교회 목사들과 교인들 모두가 초대교회의 급진적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섬기는 리더십, 진정한 복음주의와 제자도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한국의 기독교는 전 세계 다른 지역의 그것보다 훨씬 더 역동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과연 그런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역사는 그리스도의 복음 자체가 가장 역동적인 힘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복음이 전파되고 참된 영성으로 그 복음을 행할 때 역동적이 되는 것이다. 그런 역동성은 특별한 문화와 상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 미국, 중국 등 어느 나라와 상관없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좀 더 역동적인 것은 역사적으로 짧은 개신교 역사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젊다. 개신교는 13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가톨릭은 조금 더 길지만 이런 역동성은 한국과 전 세계에 있는 젊은 교회들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한국은 놀랍게도 해외에 많은 선교사를 보냈고 이 사실이 역동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인용되고 있다. 숫적으로 봤을 때 나는 이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전반적인 선교 프로그램은 지난 수세기 동안 이뤄진 미국과 영국 선교 운동을 지나치게 모방하면서 북한 선교를 간과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말까지 나타났던 한국 기독교의 역동성은 2011년 오늘 많이 약해졌다. 지금 ‘역동성의 중심’은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하며 기독교인 수가 1억 명에 이르는 중국 가정교회로 넘어가고 있다.

한국교회가 역동성을 새롭게 회복하기 위해서는 선교의 방향을 북한주민들에게 두는 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통일이 이뤄질 때까지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 결정은 교회 지도자들의 큰 용기를 요구할 것이다. 마치 배의 선장이 그동안 잘못된 방향으로 왔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수를 180도 돌리는 것과 같다.

- 유감스럽게도, 한때 기독교가 번성했던 북한에서 종교가 사라졌다. 북한에서 기독교가 부활할 가능성이 있을까.
북한에서 기독교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대다수 교회는 지하에 숨겨져 있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물론, 지난 65년 동안 북한에서 기독교의 구조적인 틀은 제거됐다. 하지만 이런 조치들로 건물이나 행정조직과 전혀 상관이 없는 참된 교회를 파괴할 수 없다. 초대교회 한 교인의 지혜로운 말처럼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 이것은 북한에서도 사실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북한, 당국의 탄압에도 지하교회 성장

- 북한 내부의 지하 혹은 비밀 기독교인들의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 그들의 수가 늘고 있는가,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위험과 처벌은 무엇인가. 
북한에는 지하교회가 분명히 존재한다. 북한에 존재하는 지하교회는 두 가지 기원을 갖고 있다. 하나는 1907년 북한 원산과 평양에서 일어난 부흥 때 세워진 역사적인 교회들이다. 이 교회들은 세워진 후 바로 박해를 받았고 1910년 일제 식민지와 1948년 무신론의 북한이 세워지면서 지하교회가 됐다. 이 교회들은 소련시대 러시아 교인들처럼 엄청나고 긴 역경들을 견뎌내고 있다. 지하교회 대다수는 복음 전파의 제약으로 조금씩 성장하며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

북한 지하교회의 두 번째 기원은 중국으로 넘어온 탈북민들 가운데 북한으로 강제송환되기 전 중국에서 복음을 듣고 새롭게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에게 찾을 수 있다. 이 기독교인들이 역사적인 북한 지하교회들과 연결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들은 탈북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고 집으로 돌아간 뒤 역사적인 지하교인들보다 훨씬 용감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현재 북한교회의 성장은 이들이 개척한 지하교회들 때문이라고 믿는다.

북한에서는 성경을 갖고 있고 기도회를 가지고 복음을 전파하면 3대가 감옥에 갇히고 최고형인 공개처형을 당하는 등 매우 가혹한 처벌을 받고 있다. 국제적으로 공신력이 있는 단체인 오픈도어(Open Doors)는 지난 8년 연속 북한을 세계 최악의 기독교인 핍박국으로 선정해왔다.

- 여행객들이 북한에 가면 보는 개신교 교회와 가톨릭 교회, 그리고 새롭게 세워진 러시아 정교회는 무엇인가.
이 3개 교회들은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있다는 것을 외부의 성직자, 외교관, 학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허울에 불과하다. 나는 지성을 지닌 많은 북한 방문객들이 이 미끼에 걸려서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놀라곤 한다. 그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데이빗 호크는 자신의 저서 ‘숨겨진 수용소’(The Hidden Gulag)에서 1907년 평양 부흥 시대에 교회에 등록한 가족의 직계 후손들 중 극소수의 평양시민들이 봉수교회에 출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됐다. 예배에 참석한 나머지 사람들은 북한을 방문자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북한정권이 아리랑 게임에서 경기장을 가득 채울 목적으로 사람들을 동원한 것처럼 동원된 사람들인 것 같다.

- 한국교회가 세계에 미치고 있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한국교회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한 국가라고 한다. 중국과 인도 교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선교사를 보내고 있는 것을 볼 때 이 주장은 확인이 필요하지만 한국과 같은 작은 나라가 선교사 파송 세계 10대국에 들어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한국의 선교사들은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존경할 만한 70대의 한 한국인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한국선교사들이 다른 한국선교사 뿐 아니라 다른 나라 출신의 선교사들과 협력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하며 안타까워했다. 이런 취약함은 그들의 해외 사역을 제한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에 한국교회들은 한국의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많은 시간과 인력을 사용하고 있고 이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북한 선교에 관심 가져야

하지만 많은 해외 기독교인들은 한국의 교회와 선교단체들이 억압적인 북한을 탈출한 북한사람들을 겨냥한 선교 사역을 많이 하지 않는 것에 의아해하고 있다. 2011년 북한은 복음주의 언어로 ‘미전도 종족’이 되었는데도 해외의 기독교인들은 한국선교사 군대들이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및 중동에는 가면서 북한 김씨 정권을 거부하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탈북민들은 마음이 무르익어 복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데도 이들에게 별다른 집중을 하지 않는 것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소수의 한국선교사들이 교회나 교단의 후원이 부족한 데도 자비량으로 북한 인근 국가에서 탈북민을 섬기고 있다. 나와 우리 단체 역시 지난 15년 동안 탈북민들에게 선교사를 보내고 이 목적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한국교회에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나라가 가장 가까운 이웃을 방관하고 있는 아이러니는 외부인들에게는 매우 이상한 것이다.

- 한국사회 내 보수와 진보 논란이 상당한데, 교회들도 이러한 논쟁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다. 어떻게 보고 있는가.
일반적으로 한국교회의 상당수는 신학적, 사회적,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다. 한편 자유로운 사회에서 좀 더 진보적인 성향을 띤 목사와 기독교 활동가가 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들은 교인수를 늘리는 것보다 오랜 사회문제나 사회 내 가난하고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을 돕는 데 더 관심을 두고 있다. 남북한 간의 오랜 분단으로 목사들 가운데 누가 ‘좌파’이고 누가 ‘보수’인지를 규정할 때 이들이 북한의 어려움을 어떻게 보느냐가 주요 요인으로 포함되면서 더 복잡해졌다.  

 - 한국 기독교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전망하는가. 신도수나 사회적 영향력이 늘 수 있으리라 보는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국에서는 특히, 젊은이들이 성경공부와 심지어 철야기도까지 몰려들었다. 하지만 한국사회가 부유해지면서 기독교 공동체는 유감스럽게도 그들의 주된 관심이 복음 전파와 제자도에서 청소년들에게 이른바 ‘명문대 꿈’이라는 세속적인 교육의 목표를 심어주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성경공부와 기도에 대한 강조가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최근 복음을 믿고 기독교인이 되는 청소년수의 감소는 가속화되고 있다. ‘세속적인 교육 숭배’는 성경 원칙들을 심각하게 타협한 것으로 한국교회의 기초를 약화시키고 있다. 이처럼 세속적인 출세를 위해 교육을 우상화해온 것에 대한 회개가 없다면 유감스럽게도 한국교회의 진정한 역동성 상실과 하락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가 북한 선교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탈북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노력을 강력히 추진하지 않으면 한국교회가 지난 수십년 간 경험했던 놀라운 축복을 계속 영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는 이 두 가지 문제가 수년 내 고쳐지도록 기도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지금 필요한 한국교회의 역동성과 열정이 계속 약해지는 것을 보는 것만큼 슬픈 것은 없다.  (미래한국)

번역/ 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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