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와 말 바꾸기 선수들
한미 FTA와 말 바꾸기 선수들
  • 미래한국
  • 승인 2011.10.27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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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 김상백 한국국가전략포럼 연구위원

세조 때 불교 배척을 주장했던 홍일동(洪逸童)이 임금으로부터 그 말을 철회토록 강요받았다. 이에 홍일동이 부복하고 아뢰었다. “죽는 게 마땅하면 죽고 사는 게 마땅하면 사는 것인데 어찌 한 입 갖고 두 말을 하겠으며 또 마음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옛날 선비들은 소신과 신의를 그토록 목숨처럼 소중히 여겼다. 절대권력 소유자 왕까지도 자신이 한 말을 자기중심적으로 바꾸지 않았다. 일구이언(一口二言)은 이부지자(二父之子)라, ‘한 입 갖고 두 말 하는 것은 아비가 둘’이라는 차마 입에 담기조차 거북스런 상욕(常辱) 표현까지 쓸 정도로 옛 선비들은 아침에 한 말을 저녁에 바꾸는 조변석개식 일구이언을 금기시하고 모멸했다.

그런데 요즘 세태는 어떠한가? 똑 같은 사안을 두고도 아침에 한 말 저녁 되면 바뀌고 어제 한 말 날 밝으면 달라진다. 신의고 뭐고 없다. 자신의 이해타산에 따라 이 말이 저 말 되고 저 말이 이 말 되곤 한다. 필부필부들의 일상어라면 굳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랏일을 다루는 정치 지도자급들이 중대한 국사를 놓고 말 바꾸기를 식은 죽 먹 듯해 국정을 흐트러뜨림으로써 국익을 해치고 있으니 그것이 문제다.

‘말 바꾸기 5인방’, 주인공은?

 유튜브 동영상 캡쳐 화면
지난 20일 정치인들을 등장시킨 ‘말 바꾸기 5인방’이 동영상 포털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배포돼 화제가 됐다. 주인공으로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같은 당 김진표 원내대표, 정동영 최고위원, 천정배 의원, 그리고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가 등장하고 있다. 한때는 한미 FTA를 앞장서 지지하던 이들이 어느 날 돌변해 이를 반대하고 나온 이중성을 꼬집은 것이 그 내용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들이 말 바꾸기를 어떻게 했기에 그러한지 한번 살펴볼 일이다. 먼저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기며 정체성 논란을 빚어온 손학규 대표는 원래 한미 FTA 찬성론자였다. 그는 “한미 FTA는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크다”며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국가 생존전략”이라고 했다. 한미 FTA에 우리의 생사가 걸린 양 절규하듯 이를 옹호하던 손 대표는, 그러나 그 뒤 반대론자로 돌아섰다.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가히 ‘말 바꾸기의 달인’ 같다. 참여정부 시절 장관과 여당 대표에다 대통령 후보까지 지낸 그는 “한미 FTA로 미국시장을 넓혀가는 것이 국익”이라고 했다. 그러했던 그가 지난 20일엔 국회에서 한미 FTA를 ‘신을사늑약’으로까지 비하시키며 이의 반대에 게거품을 물었다. 삶은 소가 웃다 꾸러미 째질 일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한미 FTA 추진 로드맵 주도자였던 김진표 원내대표는 지난날 자신의 업적까지 스스로 부정해가며 한미 FTA 반대 대열에 섰다.

독설가 천정배 최고위원도 ‘말 바꾸기’ 선수다. 노무현 정권의 법무부 장관을 지낸 그는 2006년 7월 7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한미FTA) 반대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그래놓고서는 이를 앞장서 반대하고 있으니, 까닥했다간 자신이 법적 책임의 물음을 받을지도 모르게 됐다.

노무현 정권 때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국민참여당 유시민 대표도 그렇다. 그는 경제학자로서의 소신을 내걸고 한미 FTA를 옹호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소신을 바꿔 이를 반대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미 FTA는 2007년 6월 노무현 정부가 공식 서명했고 올해 추가협상을 통해 마무리 됐다. 자그마치 4년 반이나 걸렸다. 미국은 지난 13일 비준안이 상.하 양원을 통과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을 끝냈다. 그러나 우리는 여야가 그 무슨 ‘끝장토론’이란 것까지 벌여가며 요란을 떨었지만 민주당이 이를 정치공세의 볼모로 잡는 바람에 비준동의안이 언제 국회에서 합의 처리될지 부지하세월이다.

우리는 소위 ‘말 바꾸기’ 5인방들의 표변을 보면서 인생의 덧없음을 느낀다. 지난날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까지 지내며 한미FTA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했던 사람들이 주군이 떠났다고 해서 그렇게 표변하다니, 주군이 생존해 있어도 그럴까?

주군(主君) 노무현이 생존해 있었다면?  

선량이란 국회의원들은 걸핏하면 “민의를 대변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서둘러 통과시켜야 한다. 그것을 원하는 것이 민의이기 때문이다. 최근 동아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 국회 처리에 찬성하는 서울시민(58.8%)이 반대(27.7%)보다 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언론기관에서 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들의 67%가 한미 FTA에 찬성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어디 국민들만 그러한가. 민주당 내에도 “국가 미래를 위해 한미 FTA가 필요하다”는 소신을 펴는 의원이 늘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한미 FTA가 한국의 주권을 침해한다는 생억지를 쓰며 이를 반대하고 있다.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 시작됐고 협상도 마무리됐다. 따라서 민주당이 이제 와서 재재협상과 같은 비현실적 요구를 내세워 이를 반대하는 것은 무책임한 정치적 발상이다.

정치인은 말로 먹고 산다고 한다. 그러하기에 그들의 말은 신중해야 하고 무게가 실려야 한다. ‘말 바꾸기 5인방’처럼 이랬다저랬다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파렴치하다. 장삼이사들은 말 바꾸기에 핀잔이라도 들으면 부끄러움이라도 느낀다. 그러나 얼굴 두껍기가 곰 발바닥보다 더한 그들은 부끄러움도 없다. 정치적 계산에 따라 입으로는 이런 말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벌써 또 다른 정치적 셈법으로 더 유리한 말이 있으면 이를 바꿀 생각부터 한다.

인간관계에서 가장 신뢰를 얻기 어려운 사람은 상황에 따라 쉽게 말을 바꾸는 사람이다. 그들은 상황에 따라 자신의 유.불리를 따져 쉽게 말을 바꾼다. 쉽게 말을 바꾸는 유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주관이 뚜렷하지 못해 주변 이야기에 휩쓸리는 유약한 사람이다. 다른 또 하나는 상황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다. 보통은 두 가지 성향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

이들은 이미 결정해 놓은 일도 어떤 변수가 생겨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이익이 될 상황이 오면 앞뒤 가리지 않고 잽싸게 말을 바꾼다. 때론 있던 일도 없던 일로, 없던 일도 있던 일로 만들기까지 한다. 이처럼 쉽게 말을 바꾸는 이들은 대체로 안목도 근시안적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말을 자주 바꾼다. 그리고 말 바꾸기로 궁지에 몰리면 억지 주장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또 다른 말 바꾸기를 한다. 말 바꾸기의 악순환이다. 작금 한미 FTA 적극 찬성에서 결사반대로 표변한 5인방이 그런 부류에 속한다.

우리가 해야 할 정치개혁은 먼저 이런 부류의 정치인들을 구축(驅逐) 하는 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일찍이 순자(荀子)는 “사악하고 간교한 말을 그럴 듯하게 꾸며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를 가장 먼저 세상과 격리시켜야 한다”고 했다. 가볍게 말을 바꾸고 교언영색으로 국민을 현혹시키는 그런 정치인은 이제 깨끗이 정리돼야 한다.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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