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맥 못추는 사회주의세력...왜?
미국에서 맥 못추는 사회주의세력...왜?
  • 이상민 기자
  • 승인 2011.11.22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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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토양인 봉건적 구조 부재와 노동계층 흡수한 민주당으로 지리멸렬

미국에서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정치세력은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영향력이 미약하다.

현재 미국 최대의 사회주의 조직이라는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의 회원수는 약 5,000여명. 이들은 지난 9월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시위가 뉴욕 맨하튼에서 일어날 때 회원 몇 명이 자신들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을 들고 겨우 참석했다. 이들의 계보를 거슬러가면 1876년에 설립돼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사회노동당’(Socialist Labor Party)과 한때 미국 대통령 후보까지 냈던 미국사회당(Socialist Party of America)이 있다. 1919년에 설립된 미국공산당(Communist Party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은 활동을 계속 줄여오다 오프라인으로 발행했던 ‘People’s World’라는 신문을 지난해부터는 비용 때문에 온라인으로 바꿔서 운영하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사회당, 노동당, 사회민주당 등 진보적 이념을 둔 정당들이 지금도 정권을 잡는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는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세력이 자리를 못잡고 실패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 회원 5,000여명

미국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은 1876년 마르크스.엥겔스 등과 함께 활동했던 독일 이민자들에 의해 창당된 ‘사회노동당’이다. 하지만 미국 사회주의운동은 1901년 창당된 ‘미국사회당’을 중심으로 전개됐다. 미국사회당은 당시 결성된 노동기사단, 미국노조연맹(AFL), 세계산업노동자(IWW)와 함께 파업을 벌이며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 결과 미국사회당은 1912년 선거에서 유진 뎁스를 대선 후보로 출마시켜 6%의 득표율을 올렸고 당시 선거에서 연방하원의원 2명, 33명의 시장을 당선시키며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당내 분열로 과격한 노동운동을 지지하는 당내 좌파세력이 제명되면서 2만여명이 한꺼번에 탈당했다. 이어 1918년 레닌이 러시아에서 공산혁명을 성공한 후 레닌의 ‘코민테른’ 참여를 둘러싼 갈등으로 당내 좌파들이 대거 탈당하면서 미국사회당은 중도성향의 당원 1만여명만 남게 됐다. 이때 탈당한 사람들이 1919년 무정부주의자들과 함께 미국공산당을 창당했다.

미국사회당은 1917년 1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하자 이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이에 윌슨 행정부가 간첩 혐의로 당 지도부를 구속수감하는 등 강경대응하자 미국사회당은 더욱 약화됐다.

당시 미국에서는 러시아혁명으로 반공의식이 커졌고 무정부주의자들이 유명 기업가와 고위 관리 앞으로 폭탄 메일을 보내면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세력은 이들과 한 통속이라며 단속이 이뤄져 하루에 6,000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여론 역시 이들에 대해 ‘믿지 못할 극단주의자’들이라며 등을 돌렸다.

미국사회당은 1932년 노먼 토마스를 새 지도자로 세우고 대공황으로 길거리로 나 앉은 노동자들을 대변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루즈벨트 대통령이 실업자 구제 등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담은 뉴딜정책으로 도시 노동자, 빈민, 소작농 등에 다가섰고 그 전까지 공화당을 지지했던 흑인들을 포함, 이들은 ‘뉴딜 연합’을 구성하며 민주당의 열렬한 지지층이 됐다. 이를 계기로 민주당은 진보주의 색채가 완연해졌고 1932년 대선에서 미국사회당의 토마스가 88만표를 득표하며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패하자 사회당 소속의 사람들이 민주당으로 옮겨갔다.

이후 미국사회당은 정권을 잡기보다 민주당이 좀 더 사회적 민주주의를 표방하도록 제안하고 협조하는 재야단체로 전락했다. 미국사회당은 1972년 ‘미국사회민주주의자’(Social Democrat, USA)로 개명했고 학자, 정치가, 노조지도자를 초청해 간담회를 하거나 정책제안서를 발표하며 사회주의 리더 교육 활동을 해왔다. 미국사회당은 베트남전쟁에 대한 입장 차이로 분열, 탈당한 사람들이 ‘미국민주사회주의자들’(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전신인 민주적 사회주의 구성위원회(Democratic Socialist Organizing Committee)를 구성했다. 한편, ‘미국사회민주주의자’는 2005년 활동을 중단했다.

미국 공산당은 소련 해체 이후 약화

미국공산당은 1919년 7월 설립 당시 회원이 6만여명으로 미국사회당보다 많았다. 이들은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미국에서 노동운동이 한창일 때 영향력이 가장 컸다. 1936년 대선에서 10만표라는 저조한 성적표를 받은 미국공산당은 민주당의 루즈벨트 정부를 맹비난하다 1935년 코민테른의 지시로 루즈벨트 정부를 지지하는 쪽으로 급선회했다. 미국공산당은 1940년 대선에서는 고작 4만6,000표를 얻었고 1944년 대선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을 지지했다. 이 일로 당이 분열됐고 동시에 노동계의 민심을 얻지 못하면서 미국공산당은 더 이상 대선에 후보를 낼 수 없는 식물 정당이 됐다. 냉전과 함께 매카시즘 열풍과 반공주의에 따라 정부의 탄압이 이어지며 미국공산당은 붕괴 직전까지 갔다. 미국공산당은 소련 해체 후 마르크시즘과 레닌이즘의 실패 인정 여부를 두고 분열돼 더 약화됐다.

미국 학자 중 유일하게 미국 정치학회와 사회학회 회장을 모두 역임한 세이무어 마틴 립셋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그의 저서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에서 미국에서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를 미국의 예외주의(Exceptionalism)에서 찾았다. 유럽과 다른 미국의 독특한 특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립셋은 미국에는 유럽과 달리 봉건적 전통의 계급 구조가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봉건제 없이 사회주의는 없다’는 말처럼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투쟁은 귀족과 싸우는 신분투쟁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유럽의 봉건적 구조, 군주제 및 귀족주의 문화, 사회적 위계가 싫어서 떠나온 사람들이 새롭게 세운 미국에는 이런 유산이 없어 사회주의의 기본 토양이 처음부터 없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자유, 평등주의, 개인주의, 포퓰리즘, 자유방임주의에 기초해 유럽국가들보다 훨씬 덜 복지지향적이고, 덜 국가주의적이며, 더 방임주의적이고, 더 권리지향적이고, 더 애국적이며, 더 도덕주의적이고 종교적이라는 점에서 ‘예외적’이라고 그는 밝혔다.

봉건제 따른 계급투쟁 없어

미국에서 노동자 계층이 영위하는 생활수준의 꾸준한 향상, 교육 기회 확대에 따른 계층 상승의 기회 증대 등으로 사회주의가 노동자들에게 자리잡을 토양이 역시 되지 않았다고 그는 지적했다.

백인 남성에 한하지만 거저 얻은 선물로서의 투표권으로 사회주의 세력들은 선거권 쟁취투쟁 속에서 노동계급의 세력화가 이뤄지는 기회를 잡지 못했고 다민족, 다인종의 특성은 노동계층의 단결을 저해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가령, 1840년대 유럽의 흉년으로 독일, 아일랜드 노동자들이 미국으로 이민 왔는데 먼저 이민 온 다른 노동자들은 이들을 차별했고 흑인들에 대해서는 평등권과 참정권을 반대했다.

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 한 사람만이 당선되는 미국의 선거제도 역시 사회주의 정당이 자리를 잡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분석되고 있다. 비례대표제는 다수의 정당을 출현시킬 가능성이 크지만 ‘단순 다수 득표에 따른 단일 승리자’ 원칙은 제3당의 출현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대중운동 그리고 제3의 정당 형태로 명백하게 표출되는 만연된 불만을 흡수하거나 그에  대응할 수 있는 연합적인 야당체계의 유연성을 민주당이 보인 것도 사회주의 세력이나 정당이 미국에서 자리잡지 못한 이유 중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애틀랜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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