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나키스트들이다”
“우리는 아나키스트들이다”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1.12.2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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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월가점령시위 현장에 가다

뉴욕=월가점령(Occupy Wall Street)시위는 아직 계속되고 있었다. 다만 몇 달전 온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며 세계금융의 본산지 월가를 ‘점령’하겠다고 달려들던 애초의 기세나 호기는 느낄 수 없었고, 기자가 뉴욕을 방문했던 지난 12월 6일, 시위대의 한 무리는 월가의 한 건물 귀퉁이에 삼삼오오 모여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명색이 맨하탄 다운타운 월가에 위치한 번듯한 고층건물의 공공장소에 자리를 틀고 있었다는 점과, 야외 행사가 없던 평일 이른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10여명 인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그들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건물 밖 거리를 발빠르게 오가는 생활전선 속의 수많은 일반 뉴요커들과 비교해볼 때 이들 시위대는 팔자 좋고 생경한 휴가 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자가 다가가 말을 건네자 시위대 중 한 사람이 즉각 인터뷰에 응했다. 마침 그는 시위대 대변인(press relations working group member)을 자처했다.  

           
노동운동, 반세계화운동 활동가
    
- 먼저 자신을 소개해 달라. 월가점령 시위에는 언제부터 참여하게 됐는가.

이름은 마크 브래이(Bray), 뉴저지 러커스트대학 박사과정에서 유럽역사를 공부하고 있다. 지난 9월 17일 시위가 시작된 처음부터 참여했다. 시위대 내 지도부에 속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9월 말부터다. 

- 시위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2가지 이유가 있다. 내 주변에 현재 많은 미국인들이 처해 있는 것과 비슷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 이들은 직장을 잃고 은행에 저당 잡힌 집이 넘어갈 위기에 처해 있고, 학생들은 빚에 쫓기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많은 정치적 운동에 관여해 왔다. 노동운동, 반세계화운동, 학생인권, 이민자인권 증진 운동 등. 나는 교육문제와 헬스케어 문제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가져왔다. 

 - 반월가 시위대의 구체적 목표는 무엇인가. 단기, 혹은 장기적으로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가.  

 

단기적으로는 민주주의가 뭔지, 경제와 정치의 관계가 뭔지, 어떤 정당이 금융위기에서 올바르게 대처하는지,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은 왜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는지, 국민들이 어떻게 민주적으로 우리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문제인식을 국민 가운데 확산시키는 것이다. 또한 어떻게 자원과 돈을 소수가 아닌 대다수에게 분배할 수 있는지, 주택에 대한 금융담보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와 인식을 알리고자 한다. 

장기적으로는 높은 대학 등록금 문제, 왜 5명 중에 1명의 미국 아이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는지, 왜 많은 럭셔리 제품이 소비되고 있는데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굶주리고 있는지 등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 그러한 목표를 어떤 방식으로 이뤄내려 하는가. 시위대에는 지도부가 있는가. 어떻게 시위를 조직하고 관련된 논의와 결정을 하는가. 

모든 중요한 결정은 총회(general assembly)에서 결정된다. 총회는 원칙적으로 1주일에 4번 모인다.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고 아무나 참여할 수 있으며 야외에서 개최된다. 주코티공원에서 열리는데 지금은 우리가 그곳에서 쫓겨났지만 그곳에서 잘 수는 없어도 여전히 그곳에서 회의는 가질 수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결정들이 소위원회(working group)에서 이뤄진다. 각 위원회는 구체적인 이슈들에 대해서 다룬다. 나는 공보(press relations) 위원회에 속해 있다. 그래서 이처럼 기자들과 얘기를 나누고 그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의사결정기구

- 아무나 총회에 참석해서 시위대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면 문제의 소지도 커 보인다. 실제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나. 

총회는 기본적으로 모두의 합의에 의해 진행된다. 어떤 의제가 제안되면 그것에 대한 질문들과 관련 이슈들에 대해 토의하고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해결점을 도출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반대가 있을 때에는 90% 이상이 찬성하면 통과되는 투표를 한다는 원칙이다. 총회는 사람이 안오면 1주일에 1,2번만 할 수도 있다. 요즘은 그렇게 한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결정들이 위원회에서 결정되니까 문제될 게 없다. 이벤트를 조직하는 위원회, 돈을 관리하는 위원회, 내가 속한 공보 위원회 등이다.  

- 시위대 참여자들 중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할 일 없이 놀고 있는 사람들이거나, 홈리스 건달들이라는 인식이 있다.

주류 언론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한다. 우리가 마약중독자나 성범죄자들이라고 한다. 물론 우리가 공원에 있을 때 홈리스들이나 일부 범법자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난 11월 17일의 예를 볼때 3,000여명의 시위자들이 참여해 브루클린다리를 넘었는데, 많은 참여자들이 노조회원, 선생, 학생 등 여러 부류의 국민들이 모두 포함돼 있었다. 문제는 주류 언론들이 우리의 취지를 폄하하고 비정당화하기 위해 그러한 부정적 이미지를 고의로 덮어씌우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감이다.

- 지금 반월가 시위대가 지적하고 있는 경제적 문제들과 부조리들이 특히 현 시점에서, 그리고 특히 미국에서 불거진 이유가 뭔가. 과거와 다른 특수성이 있다고 보는가? 

그렇다. 물론 미국에서는 과거에도 많은 사회운동이 있었다. 여성의 참정권을 위한 운동, 노동운동, 시민권리를 위한 운동 등. 하지만 그러한 분야에서 개혁이 가능했던 건 당시 정치인들이 어떤 정치적 사회적 압력을 받고 나서야 변화를 받아들였던 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무엇인가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할 때 그것은 선거에서 투표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압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최근의 금융위기가 그러한 필요를 더욱 증대시켰다. 버락 오바마가 유세 때 했던 공약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당정치와 경제와 사회의 한계 때문에 결국 국민들이 아니라 금융기관에 유리한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접하면서 특히 젊은이들이 실망을 하고 분노하게 됐다.

또한 국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1980년대에 남미와 아프리카 지역까지 확대되고 최근에는 유럽 전반에 확대됨에 따라 그 지역에서 사회복지정책 예산이 줄어들고 있고 그러한 현상이 미국에도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 세대는 아마도 중산층의 자녀들이 그들보다 경제적으로 더 못살게 되는 첫 세대가 될 것이다. 중산층의 생활수준이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 지금의 위기이다.  

“우리는 순수한 좌파, 사회주의, 무정부주의자들”

- 당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우리 대부분은 민주당이나 공화당이 아니라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당원이다. 어떤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일방적으로 그들 정당 정책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 지지가 바뀐다.

- 오바마의 경제정책에 반대하는가?

내가 모든 시위자들을 대표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만난 대부분의 시위대 사람들은 오바마가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그에게 압력을 가하고 더욱 그를 지지할 수 있도록 그가 움직여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우리가 합의하는 공통점은 우리가 독립적인 사회적 운동을 통해 독립적인 목소리를 갖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는 것이다.

- 당신은 좌파(leftist)인가?  

미국에서는 좌파하면 진보(liberal)를 지칭하고 민주당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위대의 많은 사람들은 민주당에 실망하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진보라고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 민주당이 사이비 좌파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 등에서 보면 실망스럽게도 많은 긴축정책들이 사회주의 정치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집행됐다. 여기서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의미에서 사회주의, 혹은 무정부주의, 혹은 공산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다. 

- 대다수가 그렇다는 말인가. 그러한 이념의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고 스스로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가?

그런 성향을 갖고 있다는 말이지 대부분이 스스로를 그렇게 규정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성향에도 불구하고 이념적 레이블보다는 어떤 사안별로 얘기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월가점령 시위대의 특징이다. 내 경우는 좀 특별한 것 같고. 우리의 의사결정 구조와 이념은 70년대의 페미니즘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고 그것을 모델로 하고 있다. 우리는 의회 민주주의가 아니라 직접민주주의를 꿈꾸고 있다. 정치인들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 그리고 우리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해결해야 한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 의회민주주의가 아니라 직접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말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의 주장처럼 들리는데.

우리는 순수한 아나키스트들이다. 지금 상하원 의원들이 갖고 있는 입법 권위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너무 많은 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권리를 빼앗아 국민에게 나눠줘야 한다.

- 대다수 미국 국민들이 시위대에 동조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다른 국내 조직이나 국제단체들과 어떤 협력관계를 갖고 있는가, 개인적으로 핵심지도부를 알고 있는가?  

우리는 국민 99%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믿는다. 국민들이 시위에 참여하는지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국내적으로는 주요 도시의 점령시위대와 커넥션을 갖고 있다. 런던 등 유럽에서도 점령시위가 열렸다. 지난 10월 15일이 세계 행동의 날이었는데 도쿄와 서울에서도 점령시위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우리는 전문조직가들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총회와 소위원회에서 모든 결정이 이뤄진다. 

“시위대는 빌어먹을 낙오자들”

20여분간의 인터뷰가 끝날 때쯤 마침 이 대변인이 속해 있는 공보 소위원회가 현장에서 즉석으로 소집됐다. 기자도 잠시 끼어들어 회의 내용을 엿들을 수 있었는데 어떻게 언론의 관심을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안건이었다. 그러나 대변인의 말과는 달리 회의는 비공개였고 ‘외부인’인 기자는 회의에서 곧 쫓겨나고 말았다.

그렇다면 정작 다른 뉴요커들은 월가점령 시위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월가 시위대 현장의 바로 옆 건물에 미국 본사를 두고 있는 도이치뱅크의 부행장(vice president)은 익명을 요구하면서 이렇게 평가했다.

“한마디로 빌어먹을 낙오자(f***ing loser)들이지. 주변의 뉴욕시민 대부분이 저들을 그렇게 보고 있다. 자신들이 99%라는건 구호일 뿐이고. 일자리를 못찾고 집에서 놀면서 비난 대상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직장을 찾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나은 것이고...”

- 그래도 저들의 주장을 보면 일리있는 말이 없지 않다. 일례로 50위권 펀드매니저들의 평균연봉이 6억달러(약 7,100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라는 건 아무리 차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충분히 자극적이다. 

“그건 대단히 소수의 탑 0.1%의 이야기고.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월가뿐 아니라 어디에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0.1% 혹은 1%의 사람들이 집안 좋고 머리 좋고 아이비리그를 나와 줄을 잘타서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도 모두 자리에 상응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아직 미국은 아메리칸드림이 살아 있는 나라다. 나만 해도 이민자로서 각고의 노력을 거쳐 오늘 이 자리에 있다. 내 상사나 동료들을 봐도 모두가 그들이 받는 대가에 상응하는 엄청난 양의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 反월가 시위대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제도를 근본적으로 반대하고 있다고 보는가?  

 “저들에게 무슨 이념적 특성이 있는 게 아니다. 분명한 구호나 목표도 없다. 구호를 보면, ‘우린 실업자다, 직장을 달라’ 이런 수준이다. 시간당 최소 급여를 20달러하고 최고 급여를 90달러로 하자는 어이없는 주장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누가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겠나. 이건 말 그대로 공산주의와 다름없다. 저들은 이념적으로 무슨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이기 이전에 모두 비판의 대상을 외부에서 찾고 있는 낙오자들일 뿐이다. 현재 실업률이 예전 대공황 때와 비슷하다는 통계도 봤지만 어려운 시기는 언제나 있어왔다. 고통의 책임을 정부 등 외부에서 찾지 말고 스스로 어려움을 개척해야 한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여전히 그렇게 스스로를 책임지며 살고 있다.” (미래한국)

뉴욕=김범수 편집인 www.kimbumso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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