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회담 뒷돈거래·노벨상 불법로비 폭로
남북회담 뒷돈거래·노벨상 불법로비 폭로
  • 미래한국
  • 승인 2012.02.21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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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터뷰]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

 
8년 법정투쟁 끝에 최근 미국서 망명허가 받은
전 국정원 직원 김기삼

국정원 출신의 김기삼 씨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2002년 아내와 두 자녀와 함께 한국을 떠났다. 그는 이듬해인 2003년부터 미국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돈거래가 있었다는 내용과 정부의 불법 도청 감청 의혹 등을 공개적으로 폭로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의 김씨는 1993년부터 2000년까지 7년간 국정원에서 일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로비 특별부서를 비롯, 정보업무를 담당했다. 그는 2003년 한국정부와 북한으로부터 위협을 받을 수 있다며 미국에 망명 신청을 했고 8년간의 긴 법정투쟁을 거쳐 지난해 12월말 필라델피아의 이민 법정에서 망명 신청을 최종 승인받았다. 찰스 허니맨 판사가 미국 국토안보부의 주장을 뒤엎고 김 씨의 망명을 인정한 것이다.

당시 청문회에서 김 씨를 대신해 증언하기도 했던 도날드 커크 본지 <미래한국> 편집위원이 2월초 펜실베니아 해리스버그에 소재한 김 씨의 집에서 그를 인터뷰 했다. 그는 뉴욕주 변호사 시험과 美특허상품관리사 시험에 합격한 후 미국에서 살고 있었다. 커크 위원은 ‘배신당한 한국: 김대중과 햇볕정책’(Korea Betrayed: Kim Dae Jung and Sunshine)을 집필한 바 있다.

 미국 정부가 망명을 늦춘 이유

- 미국 망명신청이 만 8년만에야 받아들여졌는데, 미 정부가 왜 당신의 망명을 막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썼다고 보는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미국이 한국의 강력한 동맹이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들은 한국 정부 내 친구들의 면목을 세워주고 싶어 했을 것이다. 

- 한국의 정부 관료들은 왜 당신에게 분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도록 한국 정부가 불법적으로 펼친 비밀활동과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독재자 김정일에게 15억 달러를 전달한 사실을 4차례에 걸쳐 구체적 자료를 가지고 폭로했다. 햇볕정책 구상자인 임동원 전 장관이 실제 북한의 간첩일 수 있다는 의혹도 폭로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나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 당시 그 밖에 어떤 내용들을 폭로했는가. 
나는 한국 정부가 무기를 구매하며 벌인 부정부패와 김대중 뿐 아니라 김영삼 등 전직 대통령들의 비자금을 폭로했다. 국정원이 벌인 불법도청활동도 밝혔다. 

- 당신의 망명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한국으로 강제로 보내졌다면 국정원이 당신에게 어떻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한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돼 고문을 포함한 가혹한 형태의 취조를 받았을 것이다. 그들은 나를 체포하면 군복을 입게 한 후 한 시간 이상 두들겨 팼을 것이다. 그리고 물고문과 전기충격요법을 가했을 것이다.

- 국정원이 정말로 오늘날 그런 기술을 사용하는가.
대다수는 그럴 필요가 없다. 죄수들은 이미 상당히 위협을 받은 상태라 심각한 고문을 받기 전에 국정원이 원하는 것을 다 말하기 때문이다.

- 국정원이 결국 당신을 잊고 이 사례를 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국정원은 나를 기관의 역사상 최악의 배신자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내가 국정원의 불법도청을 폭로했기 때문에 매우 화가 나 있다. 2005년 7월 불법도청에 대한 대규모 조사가 이뤄지면서 당시 검찰은 증거를 찾기 위해 국정원에 쳐들어갔다. 그것은 국정원에 대한 큰 모욕이었다. 국정원은 김대중의 활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그들은 반역의 공범들이었다. 그들이 내 입을 막으려는 이유다.

- 당신의 시각은 보수적이고 그렇다면 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그리고 국정원 고위직 사람들의 입장과 유사한 것이 아닌가. 왜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가.  
나는 내 눈으로 모든 위선과 악을 보았다. 나는 양심을 따르기로 결정하고 내 나라에 바르고 애국적이 돼야 한다고 믿었다.

- 당신이 폭로하지 않았다면 한국인들은 노벨상을 받기 위해 혈안이었던 김대중의 뒷거래에 대해 알았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폭로한 만큼 자세히는 모를 것이다. 월간조선과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특별검사는 추가자료를 공개했지만 내가 폭로한 것에 대한 추가 설명에 불과했다. 나는 미국에서 월간조선과 인터뷰를 했고 그때 주요 정보를 제공했고 내 주장이 알려진 직후 특별조사가 시작됐다.

“한국정부는 날 용서하지 않을 것”

- 추가로 폭로할 정보가 있는가. 다른 계획이 있다면? 이곳 미국에서의 새로운 생활은 당신과 가족들에게 어떤까?
나는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지만 핵심은 다 폭로했다. 나는 이런 고초에 지쳤다. 지금 나는 가족들에게 집중하고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할 곳을 찾고 있다.

- 당신은 자신의 경험을 소개한 책 한권을 이미 썼다. 그 책은 어떤 것이며 또 다른 책을 쓸 생각이 있는가?
지난해 나는 ‘김대중과 대한민국을 말한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 책에서 나는 7년 간의 국정원 근무 경험과 2003년과 2004년 인터넷에 발표한 4가지 글에 대해 설명했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상을 추구한 것에 집중한 또 다른 책을 쓸 생각이다.

- 당신은 미국 생활 10년이 지나가면서 한국이 그리울 것이다. 당신의 친구, 친척 등을 보지 못하고 요즘 돌아가는 변화들을 보면서 마음이 어떤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언제 가능할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한 달 전에 돌아가셨는데 나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것은 슬픔 이상이다. 자식 된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아버지는 임종 순간에 내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메시지를 남기셨다. 애들을 잘 키우라고. 그리고는 내가 항상 좋은 아들이었다며 한국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내가 어려움에 빠지는 것을 보기를 원하지 않으셨다.

- 최근 한국 언론에서 1968년 김신조의 청와대 습격사건 당시 북한에서 내려온 무장공비가 알려진 것처럼 31명이 아니라 33명이고 이중 2명이 전향돼 북한에 보내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후 인민군 장성에 오른 이들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직후 남한간첩으로 밝혀져 처형됐다고 보도됐다. 이러한 내용을 알고 있는가.

1968년 청와대 습격사건에서 살아 돌아간 이가 인민군 내 최고위급으로 별넷을 단 박재경이다. 그는 2000년 9월 북한산 송이버섯 몇 톤을 가지고 한국을 방문했다. 그때가 대남공작 총책임자 김용순이 제주도에서 임동원을 만났을 때이다. 당시 청와대 사건의 생존자인 김신조 씨가 박재경의 존재를 확인해 줘서 그 사실이 알려졌다. 개인적으로 최근 한국 언론의 보도를 신뢰할 수 없다. 미국 펜실베니아 / 
인터뷰 / 도널드 커크 편집위원 
번역 / 이상민 특파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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