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시민과 실버시민운동
실버시민과 실버시민운동
  • 미래한국
  • 승인 2012.03.26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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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의 환한 연두색 조끼를 입은 활기찬 사람들이 동네 어귀에 나타났다. 이들은 이 마을 노인복지회관의 남녀 실버시민들이다. 오전에 있었던 건강식이요법 강의를 듣고 건강식 점심을 한 이들은 익숙한 솜씨로 동네에 와상노인과 장애·치매노인 집들을 찾는다. 가져온 혈압계, 혈당계, 간단 소독기구와 외용제가 큰 역할을 한다.

원격 진료기구 상태 점검까지 마친 후 치매노인 환자 주간보호를 위해 두 사람만 남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음 동네로 떠났다. 떠나면서 당뇨병 환자상태가 불안하다고 느낀 팀장은 노인복지관 노인전문간호사에게 이 사항을 보고한다. 문제를 파악한 노인전문간호사는 자매결연 동네 노인전문클리닉에 환자 상태에 관해 의논하고 자매 심부름센터에 파견나간 실버시민에게 연락해서 환자의 이송을 부탁했다.

한편 노인복지회관 포괄적 재활치료센터에는 은퇴 의사 동료의 주관 하에 다양한 재활훈련을 위해 모인 동네 노인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스스로 재활운동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세미나실에서는 인근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나온 전문가의 항노화 교육이 한창이고, 대강당에선 마을 호수 주위 U-health 체육시설 건설, 운영 관련 사회적 기업 창업을 위해 체육, 행정, 원예, 도시공학 전공 은퇴 교수들 중심으로 많은 실버시민과 지자체 간부, 투자를 고려 중인 지역기업 간부들이 마을 주민 전체 특히 청소년에게 많은 편익이 가게 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열띤 토의를 하고 있다. 회관 입구 게시판에는 실버시민 양성 교육 프로그램, 사람間 소통기술 강좌, 지역노인회 개최 일정 등 정보로 가득하다.

실버시민운동 주체로서의 베이비붐 세대

은퇴 후 평등 나눔의 노동 가치를 살려 자활적인 공익사업에 참여하면서 ‘받는 복지’ 아닌 ‘주는 복지’ 실현 공동체를 지향하는 액티브 시니어들을 실버시민이라고 칭하고 이러한 실버시민들이 활동해 이루어지는 마을시민공동체, 마을기업 구축 과정을 실버시민운동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핵가족시대보다 더한 전자(e-)시대에 살면서 직장 중심의 사회에 익숙한 사람들은 과거와 같이 가족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지역사회 시설 및 인적 인프라에 점점 더 의존해야 할 상황이다. 이에 부응한 몇몇 지역 주민들과 종교단체 중심의 지역 자치운동의 성공적 사례들이 있지만 산발적이고 소규모여서 수요를 따라가기엔 역부족이다.

전국 규모의 유비쿼터스 풀뿌리 시민운동의 시대적 요구가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이러한 요구에 대한 성찰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풀뿌리 시민운동을 주도할 사회 주체가 없었기 때문에 이론적 유토피아로 치부됐다.

한국사회의 미래에 분명 영향을 줄 거대 인구집단 715만명의 베이비붐 세대. 격동기 한국 산업화, 민주화를 이끌어 왔고 새마을운동과 글로벌 위기를 겪었고 중동은 물론 전 세계를 누빈 현장 경험과 열정으로 살아왔던 세대이다. 준비가 덜 된 그리고 기대수명이 아주 길어진 베이비붐 세대는 권리의식이 강한 집단으로서 실버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정치인과 투표권을 놓고 협상하며 보상적 복지 요구에 집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인들은 불가능한 공약의 이면은 함구한 채 분에 넘치는 복지공약에 경쟁적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경쟁·성과 중심으로 산업의 성장, 발전을 이뤘지만 이후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미래학자들은 21세기는 노인과 컴퓨터의 시대라고 말한다. 즉, 21세기 미래 한국의 흥망은 베이비붐 세대와 같은 실버세대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우리 선조들의 선비정신, 품앗이 전통과 같은 사회자산을 많이 잃어버린 한국사회는 우울증 환자, 자살률 및 사회적 비용의 증가에 속수무책이다.

지금 급한 것은 곤경에 처한 약자를  보호하고 소외된 자들의 말을 들어 주는 누군가가 옆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예산이나 정책은 그 다음의 일이다. 지역사회에 즐비한 보건 복지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냉담한 개인 고립주의자들을 어떻게 따뜻한 휴머니즘 공급자로 변하게 할 수 있느냐가 문제의 관건이다. 능력 있는 베이비붐 세대들이 풀뿌리 시민운동의 주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역밀착형 보건 의료 복지 발판

노인세대가 자기 실현을 위해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설 만하지 않은가? 지역 의료와 복지 일꾼의 역할을 찾아 스스로 건강 약화를 예방하고 장애와 질병이 심한 동료와 친지를 총괄적으로 돕는 거대한 생태복지의 틀에 동참한다면 그것이 실버시민운동이 아니겠는가?

봉사와 희생정신은 깊은 사랑과 인문학적 가치의 근원, 직접민주주의도 경험하게 할 것이다. 인문학적 가치란 지역 문화창조 공동체 형성의 에너지로  철학이나 윤리에 머무는 관념적 이해가 아니라 민간 차원의 통일 열망, 탈북자 북송의 아픔을 보며 아가페를 실현하기 위해 고뇌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저출산 고령사회에서 수혜의 대상인 베이비붐 세대가 오히려 제2 경제성장의 발판이 돼 천문학적 복지예산의 수요를 줄이고 효율적인 집행을 위한 기획자, 감독인, 관리자가 되고자 한다면 이 자체가 큰 일자리 창출이요 생산적 복지, 참여·능동적 복지이며 세대갈등의 완화인 것이다. 현재를 있게 한 긍지, 민족과 국가에 대한 애국심, 스스로 꾸려나가는 지역공동체의 자활 의식이 한국 베이비붐 세대의 자산이다. 실버시민들은 환자이면서 지역사회 자원봉사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민자치단체 활동 요원이면서 가족의 주역이므로 노인의 움직임은 그 지역 전체에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실버시민 주민자치회는 풀뿌리 시민운동의 기본단위이며 지속적인 시민운동의 토대이다. 그동안 복지예산이 시설에 주로 투자돼 시설인프라는 지역사회에 꽤 구축돼 있다. 노인복지회관과 주민자치센터, 사회복지, 장애인 복지회관, 양로원 등 여러 종류의 하드웨어에 사람의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복지를 실현할 실버시민운동이란 소프트웨어 도킹이 성공적으로 돼야 할 것이다. 질 높은 한국형 복지 창출을 위해 실버시민운동은 꼭 필요한 일이다.

1000만 노인시대를 맞아 젊은이들과 함께 사회를 책임지자는 대한노인회중앙회의 선언도 있고 시니어 코리아 조직이 있을 정도로 시대적 정신도 무르익었다. 단지 화룡점정의 터치만 남았을 뿐이다.

윤성철  단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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