基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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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철
  • 승인 2012.04.0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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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보는 눈]

발행인 金尙哲
전 서울시장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모든 것이 바뀌는 것 같은 세태에 무엇으로 선택기준을 삼아야 할까. 본래 기준(基準)이란 바뀌지 않아야 하는 것인데 세상에 바뀌지 않는 것이 있을까.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본질적인 차이는 세상에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고 믿느냐 여부에 있다. 진보주의는 만사가 다 바뀔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인 반면, 보수주의는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고 믿는 입장이다. 본래 보수주의는 기득권을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가치를 보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앙을 가지게 될수록 보수주의적 입장에 서게 된다. 신앙이란 진리를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진리가 있다. 피조물이 있으면 창조주가 있고, 창조질서가 있고, 자연법칙이 있다. 빛이 있고 어두움이 있다. 위가 있고 아래가 있다. 살리는 생명의 길이 있고, 죽이는 사망의 길이 있다. 선이 있고 악이 있다.

오늘날 국가공동체의 이념과 가치에 명백한 기준이 세워져 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의 존중, 자유인권의 보장, 3권분립 등 법치국가의 원리, 시장경제질서, 국제협력주의 등 自由民主的基本秩序가 바로 그 기준이다. 이 기준을 무시한다면 정당한 국가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북한정권은 정당한 국가가 아니다. 지상 최악의 불법무도정권이다. 그 주민은 억압에 신음하고 있으며, 역대 지도자들은 폭압자였다. 그런 독재자에 대한 예찬은 정의감의 상실과 마비를 의미한다.

반면 대한민국은 정당한 국가이며 매우 성공적인 발전을 해온 자랑스런 조국이다. 이러한 선악의 판단은 ‘냉전사고’의 산물이 아니라 사실에 입각한 것이고 문명세계의 보편적인 척도로 잰 결과이다.

그런데, 기회만 있으면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부정하고 정당성을 냉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하고자 살상을 자행한 좌익폭동에 대해서 동정적이고, 대한민국의 체제전복을 위해 불법투쟁을 해온 것을 가지고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자랑하거나 예찬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못된 생각이다.

그리고, 한국의 역대 정권을 모조리 독재정권, 부패정권이라고 비난하면서 북한정권의 악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고 도리어 미화시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균형감각의 상실 정도가 아니라 양심의 실종을 보이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1948년 대한민국 건국 당시 문맹률은 거의 80%, 국민소득은 50달러도 되지 않는 극빈상태였기에 민주주의 수준이 저열할 수 밖에 없었다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지난 반 백 년 동안 지속적으로 또한 괄목할 만한 민주주의 발전을 해왔고, 따라서 그동안 국가지도자들의 공로가 컸다고 보는 것이 온당한 평가일 것이다.

한국 지도층의 부패는 부인할 수 없는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과거 이승만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스위스은행에 거액을 숨겨놓았다는 말들이 돌았어도 다 헛소문으로 판명된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실 지도층이 모두 썩어 빠졌다면 나라가 망하고 말았지 이만큼 발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정치자금의 부정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정당마다 후보자마다 다 해오던 일이고, 유권자들도 선거판에 공짜 바라고 다닌 것이 사실이다.

유권자로서 누구나 자기 취향대로 보수를 택할 수도 있고 진보를 택하거나 중도에 설 수도 있다. 그러나 절대 택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親金正日, 反大韓民國, 北核동조, 北韓人權외면 등 親北이다. 이는 不義이고 惡이다. ‘색깔론’이나 ‘守舊’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양심의 문제인 것이다.  (미래한국)
/미래한국 92호 (2004.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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