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논쟁은 자본주의 가치 논쟁이다
상속세 논쟁은 자본주의 가치 논쟁이다
  • 미래한국
  • 승인 2012.05.0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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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속세가 50%나 되기 때문에 3대까지 상속하면 남는 게 9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가업을 상속하는 경우 피해를 보지 않도록 가업상속세를 완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

지난 4월 16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말이다. 박 장관의 이러한 상속세 발언은 대한상공회의소 조찬 강연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해 과표 구간 현실화를 통한 세제 개편 방향을 정리하면서 나온 이 발언에 대한 여론은 의외로 잠잠했다. 여야 모두 4.11총선의 후폭풍에 휩쓸려 있었고 시민단체 역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둘 여지가 없었던 것. 하지만 상속세 문제는 삼성가의 유산 상속 다툼과 부자감세 논쟁과 맞물려 대선정국에서 언제든 도화선이 될 수도 있는 인화력을 안고 있다. 따라서 이 상속세 문제에 대한 고찰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치관의 검토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상속세에 대해‘증오세’라는 별명이 따라붙고 있겠는가.

상속세 문제는 자본주의 정신의 리트머스

현재 우리나라 세수 중에서 상속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 내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속세는 부익부 빈익빈의 원흉으로 종종 지목된다. 상속세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이 상속세가 ‘자본주의 정신’을 훼손하는 사회주의적 세금(Socialistic Tax)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정당하게 벌어서 세금을 모두 내고 남은 자산을 유산으로 물려 주는 것에 과세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래서 상속세 대신 자본이득세로 전환하자는 타협안도 나오고 있다. 반면,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거나 이 상속세를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부자의 상속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주장이 그 논지다. 찬반 양론 모두 실제로 상속세의 효과보다는 이 상속세가 의미하는 상징성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자본주의체제에서 부의 축적을 미덕으로 보느냐 아니면 악덕으로 보느냐의 가치판단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속세 폐지를 둘러싼 논쟁은 우리 사회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격렬한 토론 주제다. 2001년 부시 대통령이 2010년까지 한시적으로 상속세를 폐지하는 법안을 상하양원으로부터 얻어냈고 다시 이 상속세 폐지 법안을 영구화 시키고자 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타결됐지만 클린턴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 미국도 상속세의 최고 구간은 우리처럼 50%에 달한다. 반면에 상속세를 폐지한 나라들도 있다. 홍콩, 대만, 싱가포르, 캐나다, 뉴질랜드, 이탈리아 등이 상속세를 폐지했고 스웨덴의 경우 30%의 상속세가 2004년에는 완전 폐지됐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속세를 부과하는 나라는 한국, 일본, 미국 등이다.

상속세가 재벌에 대한 특혜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의란 계층과 신분을 초월한 보편적 논리를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할 수 있다면 이 상속세를 바라보는 시각은 무엇이 정의냐고 묻는 질문이 된다.

우리는 사실 이러한 질문에 필요한 대답을 미루어 왔다. 그 결과는 포퓰리즘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부자의 재산은 사회적 재산이라는 생각이 더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질문 하나. 상속세 폐지는 부익부 빈익빈을 고착화하는가?

상속세 폐지에 관한 가장 흔한 주장은 상속세가 부익부 빈익빈을 고착화시켜 기회의 평등을 제약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그럴까? 만일 이 주장이 타당하다면 최고 세율을 부과하는 상속세를 가진 한국, 미국, 일본의 소득불평등은 상속세가 일찌감치 폐지된 나라들 보다 개선됐어야 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결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미셀 그래츠(Michael Graets)와 같은 학자들의 실증 연구는 지난 7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상속세가 부의 집중완화나 소득의 재분배에 기여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보고한 바도 있다. 상속세 존속론자들은 또 상속세를 폐지하면 사람들이 일할 의사를 갖지 않고 오히려 게을러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이런 점은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폐지론자들의 입장인데,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을 자식이나 가족에게 온전히 물려줄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역으로 상속세가 높다면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상속보다는 자기 세대에서 재산을 모두 소비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한 사회의 자본축적은 감소하고 투자도 줄어들며 오히려 상대적 빈곤이 심화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상속세를 피하려는 편법증여나 해외로 부를 유출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상속세가 없다면 사람들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노력하리라는 것은 상속세 폐지에 대한 미국인들의 70%가 넘는 지지율이 말해준다. 그래츠 교수는 이를 “70%의 미국인들은 자신도 언젠가는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물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러한 생각은 많이 줄어들었겠지만 지난해 다른 한 조사에서 미국인의 60%는 ‘세금은 적을수록 좋다’는 응답에 비춰 볼 때 여전히 상속세 폐지에 대한 지지율은 높다고 볼 수 있다.

질문 둘. 상속세 폐지가 국가 세수에 악영향 주나?

상속세 존속론자들의 두 번째 주장은 비록 상속세가 국가 세수에 기여하는 바는 적지만 복지가 필요한 상황에서 상속세 폐지는 세수악화를 초래한다고 하는 점이다. 이러한 주장의 기저에는 복지재정을 부자 증세로 할 수 있다는 포퓰리즘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속세가 차지하는 국가 세수의 크기는 2% 내외다. 게다가 상속세와 증여세는 GDP의 0.2%, 가계 보유의 순자산 대비 0.3%에 불과하다. 국내 조세법의 석학으로 인정받는 최명근 교수는 “한 시기에 이러한 계층으로부터 세수를 올려서 복지예산을 충당한다는 것은 넌센스”임을 밝힌 바도 있다.

이러한 문제는 부자 증세의 문제와 함께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복지문제가 지금 우리 사회에 최대 화두가 돼 있고 야당과 좌파 시민세력은 부자 증세가 그 해결 방안이라고 서로 경쟁적으로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은 한마디로 부자 증세로만은 실효성이 없다는 결론이다. 박기백 서울시립대 교수에 의하면 "정치권에서 복지 재원 확충 방안으로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을 더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부자 증세의 세수효과는 사실상 미미하다"고 지적한다.

그 이유로는 현재 민주당에서 제시한 3+1(무상보육·급식·의료 및 반값 등록금) 보편적 복지정책 등 정치권 복지공약을 실현하려면 지금보다 약 20조원 이상의 추가 재원(GDP 대비 약 2%)이 필요하지만, 최고 50%의 세율에 해당하는 상속세 대상의 자산이 GDP의 0.2%를 차지하는 점을 볼 때 이들 상속세 대상자들의 전 재산을 몰수해 봐야 GDP의 1%도 안 된다는 계산이 나오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세수의 80%는 상위 1% 대기업의 법인세가 차지하고 있다.

결국 복지라는 것은 경기가 좋을 때 확충된 세수를 거둬 시행해야 하는 것이지 불황에서 세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세금은 경기를 둔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경기 진작을 위해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해 총 4000억 달러의 경기부양 금액 중에 약 2,500달러를 감세와 세금환급조치로 마련한 바 있다.

질문 셋, 상속세는 징벌적 이중과세 아닌가

상속세 폐지론자들은 상속세가 이미 소득세 등을 납부하고 남은 재산이므로 이 재산에 또 다른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이중과세라고 주장한다. 더구나 상속재산이라는 것이 가족에게 이전된다는 점에서‘부잣집에 태어난 것에 대한 징벌세’라는 입장이다. 물론 재산을 상속할 경우 소득세를 냈다 하더라도 그 재산으로 인한 자본이득, 즉 이자라든지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소득이 있으므로 자본이득세를 내야 하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상속세 존속론자들은 상속재산 그 전체가 실질적인 자본이득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상속재산이란 결국 자본이득이 상속된다고 보기에 세금이 매겨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문제는 흔히 ‘캐리오버’(carry-over)라고 불리는데 상속제 폐지론자들은 이 캐리오버를 조세로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본다. 다시 말해 부의 대물림은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해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인간의 DNA와 상속재산은 함께 후대에 이전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부의 세습이 기회 평등의 예외로 인정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상속제도를 집중 연구해온 아스처(Mark.Ascher) 교수는 “일반적으로 미국은 기회의 평등 나라라고 인식되지만 부자들의 자식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등하게 태어난다고 표현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 바도 있다.

상속제도는 인류의 가치로운 유산

그렇다면 도대체 상속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이제 본질적인 질문으로 되돌아 온다. 상속이 기회의 평등을 파괴하지만 그것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인정될 수 밖에 없는 보편적 논리의 배경에는 ‘소유권적 정의’라는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이제까지 롤스나 센델의 분배적 정의와는 다른 개념이다. 기존의 정의론은 생산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생산된 부를 분배하는 문제만을 다뤘다. 이러한 문제에 반기를 든 것은 바로 자유주의 철학자 노직(R.Nozick)이었다. 그는 70년대 하버드대 교수로서 공리주의 정의론자 롤스와 치열한 논쟁을 주고 받았다.

노직은 인간사회에 다수결의 민주적 방식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음을 논증했다. 그것은 신체의 자유였다. 국가라 할지라도 나의 신체는 나의 동의 없이 타인에게 강제 배분할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한 노직은 그러한 나의 신체로 인한 노동의 결과인 ‘정당한 소유권’ 역시 소유불가침임을 증명한다. 합법적으로 획득한 내 소유물의 처분권은 오로지 나 자신에게 있으며 그것은 국가라도 내 동의 없이 타인에게 강제로 배분할 수 없다는 소유권적 정의론이 그것이다.

이러한 노직의 정의론은 국가의 세금이 그 본질적 속성에서‘강제노동’임을 증명하는 데 성공한다. 현재 미 공화당의 보수운동인 티파티(Tea Party)운동은 이러한 노직의 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티파티운동은 기존의 자유와 평등 개념을 가진 민주당의 리버럴(Liberal)과는 다른, 책임적 자유와 독립의 가치를 가진 공화당의 리버테리언(Libertarian)운동으로 차별화된다. 과거 뉴라이트와는 다른 참보수(Real Conservatives)운동이라고 해서 ‘리얼콘’이라는 명칭도 있다.

미국의 상속세 폐지 주장이 이러한 리버테리언적 사고에 근거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보수주의 진영에서는 이러한 소유권적 정의 문제에 명확한 견해를 마련하고 있지 않다. 복지가 왜 경제성장의 장애물인지, 부자 증세가 왜 잘못된 것인지, 상속세는 왜 정의가 아닌지에 대한 보수진영의 명확한 논리 부재는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서 겪는 방황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약점은 좌파의 사회주의 포퓰리즘 선동에 무력함을 노정하기도 한다.

이제 결론에 다가서 보자. 인류의 오랜 관습과 전통은 검증된 것이다. 공동체를 파괴하는 유해한 전통이 수천년을 살아남아 우리에게 전수됐을 리 없다. 상속은 그러한 전통이다. 인류의 상속제도는 멀리 이집트와 고대 수메르의 시대, 즉 인류가 문명의 여명을 열었던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주의는 그러한 상속제도가 자본주의적 가치라는 점에서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상속은 한 개인이 유산을 남기는 차원을 넘어 문명과 전통을 후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유산의 상속은 우리 조상들에게도 중요한 사회적 가치였고 가능한 이 상속이 손실 없이 온전하게 자손들에게 이뤄지도록 법규들을 만들어 왔다. 그것이 보수가 지켜야 할 덕목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므로 상속세는 이제 폐지돼 마땅하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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