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에 대한 5大 왜곡
6·25에 대한 5大 왜곡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06.21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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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은 공산주의자들이 사전에 치밀한 계획에 입각해서 시작한 침략 전쟁이라는 부동의 믿음과 학설을 ‘전통주의’ 라고 말한다. 그러나 좌파 사상의 세례를 받은 미국의 한 세대가 대학, 언론 및 사회의 주요 세력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1960년대 후반 소련보다는 미국이 오히려 더욱 침략적인 나라라고 주장하며, 공산주의 국가들이 오히려 방어적이었다고 주장하는 ‘수정주의’(revisionism)이론이 등장하면서 한국 전쟁도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했다.

이들 좌파 수정주의의 영향은 공산주의 진영이 줄줄이 붕괴되는 1980년대 후반까지 상당히 큰 학술적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한국의 수많은 젊은이들도 이 학설에 큰 영향을 받았고 그 여파는 아직도 한국 사회를 갈등과 분열로 몰아넣고 있다. 그 대표적인 왜곡 사례와 진실을 살펴보자. 이 내용은 6·25전쟁에 대한 수정주의 비판 전문가인 한국경제연구원 이춘근 박사의 주장에 근거한다.

1. 6·25전쟁이 아니라 ‘한국’전쟁이다.

영어를 사용하는 지역의 외국 사람들은 이 전쟁을 Korean War 라고 부른다. 그러나 영어 이름의 명명법은 틀린 것이다. 6·25전쟁에서는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영국, 프랑스 등 당대의 강대국 군인들이 모두 참전했을 뿐 아니라 국제연합의 깃발 아래 총 16개국 군대가 참전했으니 한국, 북한, 중국, 소련까지 한국전쟁의 참전국이 20개국에 이른다. 참전국의 숫자와 그 내용을 볼 때 한국전쟁은 가히 세계대전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전쟁이었다.

잭 리비 교수(Levy)는 전쟁을 치르는 국가들 중에서 적어도 한 편에 당대의 주요 강대국이 포함돼 있는 전쟁을 ‘강대국 전쟁’(Great Power War)이라고 분류하고 있는데 그는 한국전쟁을 대표적인 ‘강대국 전쟁’의 하나로 분류하고 있다. 북한은 한국전쟁을 ‘조국해방전쟁’ 이라는 보통명사로 부르고 있다.(북한판 조선통사) 북한은 결코 자신이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저들이 6·25 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말하는 자체가 자신들이 전쟁 도발국이라는 증거다.

2. 한국전쟁은 공산주의 팽창을 역전 시킬 계기를 찾고 있던 미국이 북한을 유혹함으로써 전쟁을 도발토록 하고 이를 빌미로 공산주의 정권들을 무력으로 붕괴시키려는 음모였다.

6·25전쟁의 발발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소위 남침 유도설이다. 이 이론은 1950년 1월 12일 애치슨 장관의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 대한 선언에 주목한다. 그날 애치슨 장관은 미국의 극동 방위선을 알류샨 열도, 일본 열도, 오키나와를 잇는 선으로 한정 했다. 남한을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빼놓은 것이다. 수정주의자들은 이를 미국이 북한 및 소련을 유인한 음모라고 본다.

애치슨 선언의 진정한 의미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당시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미국은 한국을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평가하지 않았고 한국을 지킬 군사적 능력도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미국은 1950년 1월 12일 애치슨 장관의 연설을 통해 한국을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서 ‘제외’ 시킨 것이 아니라 일본은 미국의 극동 방위선 속에 확실하게 ‘포함’ 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즉 미국은 공산주의자들에게 한국을 무력 정복해서 가져도 된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일본을 건드리면 미국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의도를 전달한 것이다.

3. 미국의 반격이 38선을 넘은 것도 미국의 음모를 증명한다.

미국이 신속하게 개입했다는 사실, 미국의 반격이 38선에서 멈추지 않고 38선을 넘었다는 사실은 남침 유도설의 또 다른 근거들이다. 전쟁은 한번 시작된다면 그 전개 과정에서 스스로의 역동성(dynamics)을 가지게 된다.

전쟁이 스스로의 논리를 가지기 때문에 전쟁의 와중에서는 의도하지 않았던 양민학살 등의 제반 사건들이 왕왕 일어나는 것이다. 세상에 애초에 의도한대로 진행되는 전쟁은 없다. 미국이 진짜 음모를 가지고 전쟁을 준비하려 했다면 그것은 아시아의 변두리가 아니라 유럽이어야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더 중요한 곳에 병력과 노력을 집중 시키는 것이 전략적으로 맞는 일이기 때문이다.

4. 스탈린이 남침의 기획자였고 김일성은 꼭두각시였다.

공산주의자들이 침략 전쟁을 도발했다는 사실을 명백히 밝혀 준 구소련의 외교자료들은 고르바초프 대통령 재임 당시부터 부분적으로 공개되기 시작하다가 1994년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의 옐친 대통령이 6·25전쟁에 관한 소련의 당 및 정부의 비밀 자료들 상당량을 한국 정부에 넘겨줌으로써 대대적으로 공개됐다. 새로 공개된 6·25전쟁에 자료들은 “김일성은 괴뢰라기보다 한국전쟁을 주도한 자다”라는 흐루시초프가 자신의 회고록에서 제시했던 주장이 근거 있음을 주장임을 확인 시켜 주었다.

그 결과 한국전쟁은 스탈린이 전적으로 주도하고 김일성은 오로지 괴뢰로서 침략전쟁을 대행한 것일 뿐이라는 전통주의 학설을 일부 수정하도록 했다. 전통주의 이론을 일부 수정하게 만든 6·25전쟁 관련 소련 외교자료의 공개는 수정주의의 학설들을 완벽하게 무너뜨려 버리는 계기가 됐다.

5. 한국전쟁은 내란이며 내란이기 때문에 누가 먼저 전쟁을 도발했느냐의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선 혁명이란 한 국가 내에서 야기되는 것이며 권력을 가진 편이 아니라 권력을 가지지 못한 민중들이 일으켜야 혁명이 된다. 한국전쟁은 자신 스스로가 독립국임을 명백하게 주장했던 북한에 의해 야기된 것이다. 인민군 총사령관의 명의로 시작한 전쟁을 내란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특히 당시 최고의 소련제 무기를 가지고 시작한 전쟁을 어떻게 내란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세상 어떤 내란에서도 내란을 먼저 일으킨 상대방이 탱크와 전투기를 동원한 적이 있는가? 당시 북한은 2차 대전의 혁혁한 수훈자인 T-34 소련제 탱크를 수백 대 동원해 전면 전쟁을 야기했던 것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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