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수가제 해부] 국민의 생명권은 정부에게 있다?
[포괄수가제 해부] 국민의 생명권은 정부에게 있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07.1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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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수가제, 의사들이 만들고 환자가 선택하게 해야

의료 포괄수가제가 지난 6월 29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가 정부의 포괄수가제를 1년 뒤 재심조건으로 전격 수용한 것이다.

의사협회의 이러한 수용에도 불구하고 포괄수가제는 환자의 생명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여전히 대답하지 못한다. 1년 뒤 다시 제기될 이 문제에 대해 포괄수가제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점들은 생명권의 주체인 국민의 입장에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만일 안과에 찾아가 치료를 받는 중에 의사로부터 “죄송하지만 진료비 때문에 선생님의 상태로는 한쪽 눈밖에 치료해드릴 수 없다”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환자는 아마도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돈을 더 내겠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포괄수가제라는 법 때문이다.

포괄수가제는 일종의 진료비(병원비) 정액제다. 치료 과정이 비슷한 입원환자군을 분류해 질병별로 보험가격을 정하고, 가격을 정할 때는 실제 의료기관의 진료비용을 조사해 반영한다. 보험적용이 안 돼 환자가 전액 부담하던 비용도 일부 포괄수가에 반영하므로, 보험적용범위가 넓어지게 되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환자별 질병의 정도와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과 인센티브가 없어 포괄수가 종목에 대한 의료기술이 발전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원가 이하의 의보수가가 과잉진료 원인

문제는 의사들의 반발이다. 대한의사협회를 비롯 의료단체들은 이 포괄수가제로 인한 ‘의료의 질 하락’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이유로 환자의 검사나 치료, 혹은 치료한 약제 투여를 행위별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고, 한꺼번에 미리 정해진 가격만 지불하기 때문에 병원은 당연히 원가를 줄이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의사들 역시 가급적 싼 재료를 쓰려고 할 것이고, 가능한 검사도 줄이려고 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치료도 줄이려고 할 것이고. 의료비를 많이 쓸 것이 예상되는 고위험 환자를 회피를 하거나, 다른 병원으로 떠넘기는 사례가 많아질 것이라는 게 의사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안과의 경우 포괄수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백내장 수술에 필요한 인공수정체 재료가 4만원에서 28만원으로 대다수 의사들이 10만원 내외의 재료를 사용하고 있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28만원짜리 인공수정체를 사용해야 하는 의료보험 환자도 있다.

하지만 의료 포괄수가제 하에서 이 환자는 필요한 인공수정체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렇듯 포괄수가제에 대한 의사들의 항변에 대해 복지부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포괄수가제가 의료의 질을 하락시키는 사례가 외국에도 없다는 주장이다.

이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박인수 국장은 “포괄수가제와 의료의 질은 관계가 없다. 미국 환자들은 여전히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독일에서도 포괄수가제가 시행되고 나서 의료의 질이 떨어졌다는 보고서는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오히려 상향평준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영국, 독일 등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현행 의료보험 수가가 원가의 73.9%라는 의사협회 주장에 보건복지는 이렇다 할 만한 반박을 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다시 말해 포괄적 수가 문제에 앞서 의료수가가 원가를 밑돌고 있는 상황에서 포괄수가제는 의사와 병원으로 하여금 실질적인 의료포기나 의사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도대체 어떤 재주로 우리 병원들은 원가에 못미치는 의료수가를 받으면서 망하지 않고 병원을 유지해 왔다는 것일까. 여기에는 한 가지 찜찜한 비밀이 있다. 바로 의료보험에 해당하지 않는 비급여종목이 그것이다.

보험수가에 적용이 되지 않는 비급여항목에는 법으로 허용한 법정비급여종목과 의사가 임의로 환자의 상태를 보아 결정하는 임의비급여종목이 있다. 실제로 우리 병원들은 원가를 밑도는 의료보험 수가로 인한 적자를 메우기 위해 이 임의비급여종목들로 그 손실을 보전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성모병원이 지난 2006년 4~9월 백혈병 등 혈액질환 환자에게 법정비급여가 아닌 임의비급여 치료제와 요양급여 비용을 전부 부담시켰다는 이유로 2008년 복지부로부터 의료급여분과 건강보험분 등 169억원에 달하는 임의비급여 환수 및 과징금 처분을 받아 소송을 냈던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현재 이 소송은 대법원에서 판결을 앞두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시각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러한 임의비급여가 환자들에 대한 과잉진료를 의사들이 유발하고 있고 또 이를 위해 고가의 의료장비들을 도입함으로써 의료비 지출을 급속히 상승시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의보기금의 전망이 비관적인 상황에서 의료비 상승을 묶는 포괄수가제는 정부로서 매우 입맛이 당기는 정책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포괄수가제 보다 적정수가가 우선

하지만 정부의 이러한 시각은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의사와 병원은 현재 의료비에 대해 가격결정권이 없고 국가가 가격을 원가 이하로 책정하고 있기 때문에 과잉 진료가 발생하고 있다는 의사들의 주장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통계에 의하면 OECD 평균 의료비는 GDP의 9.6%를 쓰고 있고, 한국은 6.9%로 41개 나라에서 35번째다. 즉 과잉진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체 의료비는 다른 OECD 국가에 비해서 낮다.

포괄수가제 하의 적정수가에 대한 독일의 사례를 보면 거의 10년에 걸쳐 정부와 의료계의 공동연구를 거쳐 완성됐지만 한국은 포괄수가제 도입 상황에서 적정수가와 적정치료의 가이드라인에 대한 연구도 전무한 상황이다.

따라서 포괄수가제를 선시행하고 후보완할 것이 아니라 적정수가와 적정치료의 가이드라인에 필요한 명확한 근거자료를 통해서 보완하고 차후에 포괄수가제를 시행하는 절차가 오히려 합리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인 것이다.

포괄수가제의 문제는 더 있다. 바로 환자의 생명권이 누구에게 있느냐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의사들이 포괄수가제에 반발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포괄수가제가 기본적으로 의사들의 전문성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사들이 이 부분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환자의 생명권을 정부가 의사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의사는 환자를 위해 최선의 방안을 제시할 의무가 있고 그러한 의사의 제안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환자 자신이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의 주장은 이렇다.

“포괄수가제가 실제 얼마큼의 국민 건강에 피해를 가져올지를 국민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복지부가 일방적으로 포괄수가제에 대해 ‘의료의 질 하락 없이 국민의료비 절감을 도모’하는 제도라는 주장을 의사단체가 반대하고 있는 것이죠. 의사단체가 공식적으로 전면 반대를 함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가 국민 여론을 형성해 일방적으로 정책을 집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의료의 가격도 중요하지만, 적정수가에 따른 가이드라인 제시로 과소 또는 과잉진료되지 않도록 하는 의료의 질(quality)은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한국의 지금 상황은 의료의 질에 대한 논의보다 가격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는 문제가 포괄수가제가 안고 있는 문제로 제기된다.

지금까지 자율선택인 포괄수가제가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강제 시행하는 정책 행태라는 점인데 미국뿐 아니라 포괄수가제를 도입한 국가에서도 선택권 없이 민간 의료기관에게 강제 시행을 하도록 제도화한 나라는 없었다는 점이 지적된다.

저가(低價)로 인한 의료자원 남용도 문제

하지만 정부의 의료재정에 대한 고민도 무시할 수 만은 없어 보인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 의료비 지출은 가파르게 증가해 왔다. 2002~2009년 국내 보험 의료비 지출 증가율은 7.7%로서 동기간 OECD국가 평균 3.6%를 두 배 이상 웃돌았다.

병원 입원일수 역시 OECD 평균 7.2일이었으나 우리의 경우 14일을 넘었다. 지난 8년간 의료비 지출의 구성을 보면 진료비는 줄어드는 반면, 입원비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들은 국민들이 의료자원을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과도하게 소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선진국에서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포괄수가제가 반드시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는 이유도 있다.

우선 포괄수가제는 서비스 공급량을 늘리고자 하는 의료공급자의 경제적 유인을 차단하고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낮추게 된다. 개인의료비 절감을 통해서 전체 국민의료비 상승을 억제하게 돼 건강보험 재정의 안정성을 확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정부는 포괄수가제를 적용하면 환자가 전액 부담하던 비급여 진료비용을 반영해 보험가격으로 정하고, 환자는 20%만 부담하므로 비급여비용 부담이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병․의원 당연적용으로 행위별 수가제와 비교할 때 환자부담이 평균 21% 줄어들 것으로도 예상한다.

구체적으로 자궁수술은 5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제왕절개분만은 40만원에서 30만원으로, 탈장수술은 29만원에서 21만원으로, 백내장 수술은 24만원에서 18만원으로 환자부담금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이다. 또한 과잉검사나 항생제 남용을 줄여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며 진료비 예측가능성도 높아 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밖에도 포괄수가제는 진료비의 청구 및 심사절차가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간소화돼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어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에 유리하다. 동시에 의료의 과다이용을 제한하는 강점을 갖는다. 이는 병원진료의 투명성, 효율성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포괄수가제는 건강보장의 급여범위가 제한된 현 상황에서 진단군별 정액수가에 비급여를 포함시킴으로써 급여 범위를 실질적으로 확대하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실제로 포괄수가제를 연구해온 미국의 다나 포지온 교수는 1983년에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도입된 미국 DRG 지불제도가 비용의 예측, 병원의 생산성 측정, 의료의 질 관리를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한국은 의료의 질 측정법을 강화할 필요가 있고, 평가 결과에 따른 보상이 필요하며, 왜곡된 환자 선택방지를 위한 감시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아울러 의료공급자들의 의료 서비스의 질과 관련해 정보 제공에 대한 인센티브나 디스인센티브를 권고하면서 높은 IT수준을 감안할 때 한국은 질 관리에 대한 기본 인프라가 잘 갖춰졌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의사가 만들고 환자가 선택하게 해야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본다면 포괄수가제 그 자체는 그렇게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는 제도는 아니다. 문제는 어떤 종목을 어떤 조건으로 패키지할 것인가에 대한 것은 공무원이 아니라 의사들이 결정할 문제라는 점이다. 그래야만 의사들이 환자의 생명권에 대해 보다 세심한 주의와 책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동시에 이 포괄수가제가 환자와 병원 모두에게 선택으로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포괄수가제를 하는 병원을 선호하는 환자가 있을 수 있고 자신의 상태에 따라 행위별 수가제를 하고 있는 병원을 환자가 선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공공의료기관은 포괄수가제를 적용하고 민간 병원의 경우 선택권을 주는 방법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 환자단체들과 의사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각성이다. 의료자원 역시 무제한 공급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과소비가 이뤄지면 가격인센티브가 없을 경우 의료의 질 하락은 피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정부는 일정 기간 의료 서비스를 절제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의료 보험비를 할인해 준다든지, 환급하는 인센티브를 검토할 필요도 있다. 실제로 독일의 경우 새로운 의료보험법 개정에서 그러한 인센티브를 도입해 공공의료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그러면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는다. 이러한 모든 조정의 주체는 누구일까. 바로 정치권이다. 하지만 여, 야 할 것 없이 복지를 주장하는 정치권이 표를 의식해 공공 의료 서비스 수혜를 줄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결국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를 위해서는 의사와 병원에 부담을 지우는 수 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아닐까. 여야 정치권 모두 이 포괄수가제 논란에 침묵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다름 아닌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놓고 정부와 의사들 간에 한 치 양보 없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환자의 생명권은 도대체 누구에게 있는가? (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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