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구제금융을 신청하며 유럽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된 스페인. 부동산 가격의 폭락이 유럽의 실물경제 전체에 막중한 부담을 주고 있다. 마드리드 인근에서 한때 45만유로(약 7억원)에 달했던 3층짜리 주택이 최근 12만유로(약 1억8000만원)에 팔렸다고 한다. 수영장까지 딸린 마드리드 시내 30평대 아파트도 1억원대에서 거래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2003년 분양가 대비 70% 가량 폭락한 가격이다.
‘초토화’ 수준의 한국 부동산 시장
우리나라는 어떤가. 여야 대선 경선후보들의 대진표가 드러나고 있는데 6개월도 남지 않은 연말 대선을 가를 잠재적 핵심 이슈로 부동산 문제가 주목되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국 수도권 부동산시장도 초토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불황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2012년 상반기 서울 아파트 매매가 변동률은 -2.14%였다. 이는 2003년 이후 최저 수치다.
구별로는 재건축 아파트들이 많은 송파구(-3.34%)와 강남구(-3.29%)의 낙폭이 컸으며 도봉구(-2.87%), 영등포구(-2.56%), 노원구(-2.51%), 양천구(-2.23%), 서초구(-1.97%), 용산구(-1.38%), 마포구(-1.35%) 등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교통-학군-편의시설 등 3박자를 다 갖춘 인기지역 아파트들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 중 ‘블루칩’에 해당하는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2012년 7월 7일 현재 전용 77㎡의 호가가 7억8000만원에도 나왔다. 이 아파트는 지난 2006년 11월 11억6000만원에 거래가 된 적이 있다. 압구정동 구현대 2차(175㎡)의 시세는 올해 초만 해도 23억원대였으나 현재 20억원 부근에서 형성돼 있다. 올해 초 11억9000만원이었던 송파구 잠실동 우성아파트(149㎡)도 2012년 7월 현재 10억5000만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거래의 활성화를 나타내는 지표인 구매량도 바닥을 치고 있다.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상반기 서울에서의 아파트 구매량은 2만5,02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2.5% 감소했다. 이 가운데 서울시민들이 구매한 아파트는 1만4,228건, 그 밖의 지역주민이 구매한 아파트는 1만801건으로 지난해 대비 56.9%와 58.2%에 그쳤다.
문제는 한국의 부동산시장이 스페인이나 과거 일본의 경우처럼 붕괴될 경우 그 여파가 다주택 소유자들과 금융권에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주택가격 하락으로 은행권이 부실해지는 금융대란으로까지 이어지면 무주택 서민들이 은행에 맡겨 놓은 예금이 위험해질 수 있으며 전월세 보증금까지도 돌려받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은행권이 무너질 정도로 부동산 거래가 얼어붙을 경우 취득세, 등록세, 양도세 등 부동산 관련 세수가 감소하면서 취약계층에게 갈 복지 재원까지도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부동산 불황이 ‘하우스 푸어’(House Poor)의 고통으로만 그치지 않고 ‘하우스리스 푸어'(Houseless Poor)들에게까지 고통이 확산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부동산 가격 폭락은 전세금 반환 위험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지난 6월 27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내놓은 ‘전세가격 상승에 따른 세입자 리스크 분석’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주택의 전세가구는 전국에서 96만6000가구에 달했다. 이 중 35.3%인 34만1000가구에서 ‘전세 포함 LTV’(주택담보대출·전세보증금 합계액이 매매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가 70%를 웃돌았다. 80%를 넘은 가구도 4만3000곳(4.5%)으로 집계됐다. 또 수도권과 지방광역시의 전세 포함 LTV는 최근 1년 새 평균 14.4%포인트 상승했다.
부동산 악재, ‘하우스푸어’ 뿐 아니라 서민 -무주택자들에도 직격탄
또한 법원 경매로 넘겨진 아파트의 낙찰가가 계속 낮아져서 팔아도 빚도 못 갚는 ‘깡통 아파트’들이 속출하면서, 전세로 들어간 세입자들이 보증금을 떼이는 일들도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인천 영종도의 한 대형 아파트는 분양가 5억3000만원짜리가 경매에 넘겨져 3억원대에 낙찰됐고, 은행이 대출원금과 이자까지 합쳐 낙찰금액 전액을 가져갔다. 결국 이 집에 전세로 살던 세입자 A씨는 채권 순위에서 밀려 전세금 8000만원을 고스란히 잃게 됐다. 결국 ‘부동산 매매’와는 거리가 먼 무주택자들과 서민들의 입장에서도 부동산 자산가치 폭락이라는 이 상황을 고소해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간 부동산가격 하락을 선동해 왔던 좌파진영에서조차도 부동산 경기의 경착륙은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노무현 정권에서 부동산 정책 설계에 깊숙이 관여했던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부동산가격의 급락이나 폭락을 막아야 한다. 경기부양을 통해 폭락을 저지하는 선에서 연착륙 시킬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부동산 자산이 우리 가계 자산의 80%다. 일부에서는 거품이 더 빠져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주장이야말로 너무나 무책임한 접근법”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4월 총선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과반수 의석을 확보했지만 서울에서는 참패했다. 특히 야당 시절과 2008년 총선 당시 압승했던 강북권에서는 노원갑, 서대문을, 은평을 세곳에서만 이겼다. 여기에 새누리당의 오랜 텃밭이었던 분당에서도 승리는 했지만 2008년 총선에 비해 민주통합당과의 격차는 확연히 좁혀졌다.
이는 2006년과 2008년까지 뉴타운 등 재개발 바람을 타고 상승했던 강북지역과 분당 등 수도권의 집값이 하락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강남권은 집값 하락에도 불구하고 다른 자산이 많은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기에 우파정당에 대한 지지가 상대적으로 탄탄하지만, 강남 외 지역에서는 집값 하락과 부동산 경기 냉각에 불만을 품고 정부 여당에 등을 돌린 30-40대 유권자들의 비율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2월 대선 가늠할 핵심 변수…대책은?
특히 부동산시장의 냉각이 정부의 각종 규제와 시장에 부담을 주는 각종 정책들로 인해 비롯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부에 대한 유주택자들의 분노는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우선 노무현 정부 시절 시작된 재건축 관련 규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다. 재건축을 하면서 일반분양을 할 경우 임대아파트와 소형 주택들을 의무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규정은 강남권 재건축아파트 소유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수도권 부동산 경기가 반등하는 조짐이 보이던 2009년과 2011년에 정부가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부활시키면서 시장의 회복 흐름을 끊었다는 점 또한 실착으로 지목된다. DTI 규제는 노무현 정부 말기였던 2007년에 시작된 후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시장 활성화를 위해 해제됐으나,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들을 중심으로 부동산시장이 회복될 조짐을 보이자 2009년 9월에 재강화된 바 있다. 이어 2010년 8월에 강남 3구를 제외하고 전면 해제됐으나, 시장이 회복세로 가던 2011년 3월에 다시 규제를 부활시키면서 수도권 부동산시장은 1년 반 가량 불황에 늪에 빠져 있는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보금자리 주택도 시장을 왜곡시킨 주범이라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보금자리 주택은 공공이 재정 또는 기금의 지원을 받아 건설, 매입해 분양 또는 임대를 목적으로 공급하는 주택으로, 서울 강남구 세곡동과 송파 위례신도시, 서초구 우면동, 하남 미사지구, 양천구 신정동, 송파구 오금동 등 수도권 요지 곳곳에 건설돼 왔다.
이들 보금자리 주택이 주변 시세의 70% 가량에서 분양되면서 대기수요를 흡수하는 진공청소기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집을 살 여력이 되는 사람들마저도 보금자리 주택 당첨을 위한 ‘무주택자’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전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이어졌다. 결과는 매매수요 감소와 전세가 상승이었다. 정부가 부동산시장에 개입해서 세금으로 공급(보금자리 건설)을 늘리고, 수요를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시장을 심각하게 왜곡시킨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제2동탄신도시와 위례신도시가 2015~2016년경에 입주 예정이며, 김포 한강신도시는 올해와 2013년에 입주한다. 이렇듯 서쪽에서는 김포에서, 동남권에서는 동탄과 위례에서 도합 5만가구 가량의 물량폭탄이 쏟아질 경우 빈사상태인 수도권 부동산시장엔 ‘확인사살’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수도권 부동산시장은 과연 이대로 침몰하는 것일까. 강한 조치들을 실행에 옮긴다면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다.
우선 시장 왜곡의 주범인 보금자리 주택 건설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아직 건설과 분양이 시작되지 않은 지역은 규모를 줄여서라도 ‘물량폭탄’을 막아야 한다. 시장이 정상화되기 전까지 수도권 신도시들을 추가로 선정하고 건설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강남권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재건축 일반분양에서 소형주택 및 임대주택 건설 의무를 완화시키고, 초과이익 환수제도 역시 시장 상황을 감안해서 폐지시켜야 한다. 이렇게 되면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살아나면서 급매물이 소화되고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강남권 및 비강남권의 새 아파트들에까지 회복세가 확산될 수 있다.
강남권 재건축 규제 완화해야
수도권 외곽 거점들에 대한 개발로 주거여건을 개선시키는 조치도 필요하다.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 시절이던 지난 2011년 3월에 창동·상계, 연신내·불광, 마곡, 문정·장지, 천호·길동, 망우, 대림·가리봉, 사당·남현 등 서울 외곽에 위치하면서 경기지역 도시들과 인접한 주요 지역을 수도권 일대 광역생활권 차원 중심지로 육성한다고 밝힌 바 있다.
대규모 택지개발 사업과 신도시 건설 등으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주거지역은 확장되고 있는 반면 이들 지역은 서울 도심으로 장거리 통근을 하는 과정에서 교통 불편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화문-을지로-여의도-강남권에만 치중된 업무지구가 이들 외곽 지역으로 분산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사실상 올스톱된 상태다.
통상적으로 부동산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은 교통, 학군, 편의시설의 3가지다. 업무지구 직장 및 주요 거점과의 접근성이 좋아야 하며, 자녀들을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좋은 학교들이 주변에 있어야 한다. 여기에 여가활동을 즐길 수 있는 쇼핑센터, 영화관 등 생활편의시설의 존재가 필요하다. 서울시내 외곽 거점들을 개발하며 좀 더 많은 지역들의 주거여건을 개선시키는 일 뿐 아니라 지하철 신규 노선과 GTX(수도권광역철도) 등 새로운 교통수단들을 보급하는 정책은 그래서 중요하다.
잠실, 여의도, 용산에서 진행 중인 대형 개발 프로젝트의 향방도 서울권 부동산 시장의 회복 여부와 직결될 수 있다. 잠실에서는 123층 높이의 롯데 슈퍼타워가 순조롭게 건설 중이며, 서울에서 교통이 가장 좋은 지역으로 손꼽히는 용산에서는 국제업무지구 건설이 진행되고 있다. 또 금융 중심지인 여의도에서는 70층 높이의 국제금융센터(IFC)와 파크원이 건설 중이다. 롯데타워는 서울 잠실 및 서울 동남권에 수만개의 일자리 수요를 창출하며 지역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을 수 있다. 또한 용산 국제업무지구와 여의도 IFC는 각각 서울 중심부와 서부권에 일자리 수요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가계부채에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DTI 등 금융규제를 완화시키는 조치와 취득세, 등록세, 양도세 등 과도한 부동산 관련 세율을 내리는 일도 거래 활성화를 위해 시급하다. 여당도 수도권 주택거래 활성화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 달라고 정부에 촉구한 바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 7월 5일 민생경제종합상황실 3차 회의를 열고 ‘주택시장 동향 및 대책’과 관련해 “수도권의 부동산 침체가 하우스푸어 등 서민경제를 위협하고 있는 점을 감안, 경기침체로 이어지지 않도록 수도권 주택거래 활성화 대책을 조속히 구성해야 한다”며 “취득세 감면, 분양가 상한제 폐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폐지, 건설회사 유동성 지원 등의 효과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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