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수도원의 교부(敎父)들에게는 한 가지 믿음이 있었다. 페스트에 걸린 환자는 피를 뽑으면 낫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믿음은 교부들의 권위로 말미암아 부정되기 어려웠다.
현대 교부들의 미신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바로‘돈을 풀면 경기가 좋아진다’라는 믿음이다. 흔히 케인지언의 총수요진작 원리라고 불린다. 그들은 경기불황은 유효수요의 부족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불경기에 정부지출은 언제나 특효약이다. 사실 그럴까.
지난 14일, 미국 연준위 버내킹의장은 앞으로 주택시장 회복을 위해 무제한으로 모기지 채권을 정부가 구매하는 3차 양적완화(QE3)를 발표했다. 매달 400억$을 풀기로 했다. 하지만 이 효과에 대한 기대는 오히려 우려를 자아낸다. 왜 그럴까.
복잡한 경제이론을 일반인이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이 있느냐 없느냐를 생각해 보면 된다.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최근 월스트리트 기고문을 통해 정부가 1달러를 풀어서 1.84달러를 만들 수 있다는 미국의 케인지언, 빌색 미 농무장관의 최근 저소득층을 위한 푸드스탬프(식품구입권) 정책을 근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빌색 장관의 주장대로라면 10억 달러를 저소득층의 푸드 스탬프에 지출하면 약 20억 달러의 공짜점심이 생기는 것이다. 케인지언들은 이 도깨비 방망이 같은 마법을‘승수효과’라고 부른다. 뭐가 잘못된 걸까?
정부지출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노벨 경제상 수상자 고 밀튼 프리드만은 이 마법이 사기임을 밝힌 학자다. 그는 먼저 정부의 그러한 돈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물었다. 다시 말해 정부지출이란 세금과 빚이 재원이 된다. 버냉키의장이 한 달에 400억 달러를 무제한 풀겠다는 것은 다름 아닌 민간으로부터 돈을 빌려와 그렇게 지출하든지, 아니면 세금을 걷어서 해야 한다. 만일 빚을 내서 하겠다면 그 빚은 민간으로부터 빌려와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는 새로이 발행하는 정부채의 금리를 올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민간 기업이 투자를 위해 조달할 시중 자본이 정부채에 빨려 들어가 정작 민간 기업들의 자본조달 코스트가 올라간다. 당연히 투자가 줄어든다. 투자가 줄면 고용이 늘지 않는다. <표1>의 그래프는 그런 결과를 말해준다. 오바마 정부가 경제부양(stimulus)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실업률은 비웃기라도 하듯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면 돈을 마구 찍어내는 방법도 있다. 금본위제에서는 불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금본위제가 폐지된 이후, 정부는 교환을 보장해 주지 않는 불환지폐를 마구 찍어낼 수 있게 됐다. 이는 정부가 일종의 위조화폐를 합법적으로 찍는 것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 당연히 인플레가 일어나고 달러가치가 하락한다. 따라서 민간 석유회사는 이전 보다 더 많은 달러를 주고 석유를 수입해야 한다.
다시 말해 원자재가격이 급등한다는 이야기다.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기 때문이다. <표2>는 美정부가 금본위제를 포기한 이후, 불환지폐 발권을 통해 달러를 마구 찍어낸 결과를 보여준다.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론폴의원이 “미국이 시민의 재산을 약탈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모든 과정은 단지 머릿속으로만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미 연준위가 1차,2차 양적완화를 시도했을 때, 원유가격은 그렇게 상승했고 달러가치는 하락했다. 장기 이자율은 상승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유동성공급 효과는 인플레와 이자율 상승효과로 경기부양 효과가 상쇄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이는 케인즈 경제학의 재정지출 경제이론이 중장기적으로 제로섬 게임이며, 실제적으로 단기적 거품을 만들어 경기회복의 착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려준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예크는 이를‘술을 깨려고 해장술을 마시는 격’이라고 비유했다.
물론 케인즈 경제학의‘승수효과’가 효과를 보는 방법도 있다. 바로 무제한의 거품을 만드는 것이다. 터지지 않는 버블을 만들면 된다. 그러려면 정부의 재정지출이 무한히 계속되어야 한다. 가능할까? 정부는 무제한의 공짜 점심을 만들 수 있을까?
경제학은 유한한 재원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그래서 선택의 경로를 연구한다. 어느 국가든 생산한 것 이상으로 소비할 수 없다. 하지만 케인즈 경제학은 무제한의 생산이 가능하다는 전제를 한다. 케인즈 경제학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생산을 소화할 수 있는 소비인 것이다. 이쯤이면 독자들은 케인즈 경제학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감을 잡을 것이다.
케인즈 경제학은 과학이 아니라 정치이념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하이예크는 그래서 케인즈 경제학을 과학이 아닌 이념이라고 불렀다. 보고자 하는 현상만을 위해 보이지 않는 효과를 무시했기 때문에 이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일종의 주술이 개입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오늘날 여전히 케인즈 경제학은 정치가들과 관료들에게 매력적인 이론이다. 정부가 어떻게 하면 민간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치적 조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케인즈는 자신의 수요자극이론에 대해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1930년 대공황 기에 미국 정부는 케인즈 이론에 따라 엄청난 재정지출을 퍼부었지만 경기는 살아나지 못했으며 실업은 줄어들지 않았다. 이때 케인즈는 한 잡지에 이렇게 기고했다.
“아마도 내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전쟁과 같은 정도의 수요가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케인즈의 바람은 이뤄졌다. 세계 2차 대전의 발발로 미국은 전시동원체제로 진입했고 실업률은 모병에 의해 급격히 줄어들었다. 케인즈 경제학의 정당성은 이렇게 얻어졌지만 결국 대공황 기에 퍼부은 엄청난 재정적자는 이후 미국 경제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흔히 우리는 미국이 2차 대전 승리로 세계 경제의 강국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미국이 글로벌 경제의 강자로 떠오른 것은 공산주의 소련이 붕괴되고 세계화가 시작된 1990년대부터였다.
정부가 돈을 풀어서 경제를 살린다는 잘못된 신화의 오류는 이미 유럽경제의 재정문제가 보여주고 있다. 뉴저지주지사 그리스 크리스토퍼는 주재정의 바닥으로 퇴직자들의 연금과 의료보험비를 지급할 수 없게 되자“우리는 무덤을 너무 깊게 팠다”고 탄식했다. 이 모두 케인즈 경제학을 지지했던 민주당 정권시절에 발생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책임을 질 정치가나 관료는 없다.
프랑스의 경제철학자 바스티아는 거대정부의 모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부란 거대한 허구다. 사람들 저마다 다른 사람이 내는 돈에 의지해 살아가야한다면 말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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