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대통령 선거가 남긴 것
미대통령 선거가 남긴 것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11.08 0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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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이로서 미국은 역사상 흑인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하는 또 하나의 역사를 기록했다.

이번 대선에서 미국 유권자들의 관심은 경제였다. 대선 직전의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70%는 경제가 안좋아지고 있다고 답했으며 또 응답자의 60%는 이번 대선에서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했다.

흥미로운 것은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후보가운데 누가 더 경제를 잘 이끌어 가리라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롬니 후보가 51%를 얻어 45%를 얻은 오바마 대통령 보다 앞섰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공화당의 롬니 후보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대패했다.

백인 유권자 감소, 히스패닉 유권자 급증

원인은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가장 유력한 해석으로는 미국의 유색인종 비율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지난 1992년만 해도 출구조사 결과 투표자의 87%를 차지했던 백인 비중이 올해 72%로 줄었다. 이는 4년 전 대선 때 74%보다도 낮은 것이다.

반면 히스패닉 투표자의 비중은 1992년 2%에서 올해는 10%로 높아졌다. 하원의원 가운데 히스패닉은 24명을 차지하고 있으며 올해 총선 결과 히스패닉 하원의원의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해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아무리 유색인구 비율이 높아졌다고 해도 미국인들이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경제문제에서 신뢰도가 더 높았던 롬니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때문인가 하는 문제다.

이 의문은 오바마를 지지한 사람들의 80%는 미국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응답한 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대답은 각종 지표와 함께 일반적인 미국인들의 관점과 차이가 컸다. 다시 말해 오바마는 소위 ‘계급전쟁’(class war)이라고 불렸던 이념전쟁에서 공화당의 롬니 후보를 눌렀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롬니는 한 때‘세금을 내지 않는 미국인의 47%는 쓰레기’라고 말했다가 곤욕을 치룬 바가 있다. 롬니의 이러한 푸념은 비단 그 자신뿐만이 아니라 미국 경제에 대해 우려하는 미국의 주류계층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의 ‘계급전쟁(class war)'은 계속될 것인가

사실 오바마의 정치철학은 ‘큰 정부’에 있다. 반면 공화당의 노선은 ‘작은 정부’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달 한 연설에서 "당신의 성공은 당신의 힘만으로 된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오바마는 또 기업가들을 향해 "당신의 사업은 당신이 이룬 게 아니다(You didn't build that)"라는 발언을 해서 구설수를 빚기도 했다. 이러한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미국의 보수 지식인층은 오바마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 철학을 갖고 있다는 비판을 일찌감치 제기해 왔다.

과연 오바마 대통령이 사회주의 철학을 갖고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바마 대통령이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는 분노의 감정을 대중들에게 전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르상티망은 노예들이 군주에게 갖는 분노와 회한의 감정이 특정한 이념으로 작용하는 도그마를 지적한 말이다. 이 말은 다름 아닌 니체가 했다.

월가 점령시위대의 ‘1:99’ 외침도 그러한 르상티망의 발로라 볼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러한 분노를 정당하다고 인식했으며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은 현재 미국의 경제 불황은 오바마 대통령이 아니라 이전 부시 행정부의 실책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는 그간 오바마 행정부가 경기부양에 엄청난 재정을 쏟아 붓고도 경제를 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공화당은 그러한 재정의 20%를 감축할 것을 공약으로 제시했었다.

현재 민주당과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 정책은 공화당의 그것과 전혀 다른 방향을 취하고 있다. 흔히 재정절벽이라고 불리는 이 경제 정책의 충돌이 미국과 전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모두가 촉각을 세우고 있다.

오바마 정책, 한국에 유리하지만 않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이 본격적인 갈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보수 지식인들은 이번 선거에서 그나마 오바마 숭배(cult of Obama) 분위기를 저지했다는 점으로 위안을 삼는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의 승리를 계기로 더욱 편가르기와 좌편향된 정책들을 추구하리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이제 중국과 한국,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 방향은 미국의 재정지출 확대로 인해 지속적인 달러 가치하락으로 중국의 입김이 동아시아에서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과, 한미동맹관계에서 한국의 국방비 부담액이 더욱 늘어나리라는 점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군사지출 축소와 복지확대를 기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들은 하나같이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반기는 분위기다. 한미FTA를 오바마 행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가리라는 점으로부터 우리 대미 수출의 확대도 기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미국이 계속 재정적자를 확대하는 한, 약한 달러와 원화 환율하락은 우리 수출의 채산성과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악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기업들의 수출과 투자는 앞으로 중국의 내수 시장으로 더욱 빨려 들어가면서 미국의 추락하는 위상으로 인해 한반도에 중국의 영향력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접어들고 있다는 판단도 가능하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 핵에 대해 롬니의 폐기원칙과는 달리 ‘인내와 설득’이라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의 입지를 더 넓어 질 수 있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은 우리에게 반드시 유리한 상황만은 아니다. 무엇보다 미국 경제가 높은 세금과 공공지출 확대로 인해 그 회복이 요원하다는 점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재정지출을 늘려야 미국 경제가 살아날 것인지 아무도 확답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설사 그렇게 해서 단기적으로 미국 경제가 살아난다고 해도 천문학적으로 증가된 유동성이 만들어 낼 인플레는 결국 중장기 적으로 미국 경제의 건전성을 크게 악화시킬 것으로 자유 보수진영 경제학자들은 보고 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기 때문이다.

미국적 가치의 추락

미 보수진영의 블로그나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과거 미국의 자유주의 정신이 추구했던 프런티어 정신이 퇴색되어 가고 있다는 호소를 자주 접할 수 있다. ‘미국의 시민’이라는 자부심과 앵글로 색슨의 청교도적인 자본주의 윤리 정신은 오늘도 밀물처럼 밀려드는 유색인종의 이질적 문화로 인해 희석되어 간 지 오래다.

세금을 내지 않는 47%의 국민들이 그들에게 복지를 만들어 주는 세금의 80%를 내는 20%의 시민들에게 ‘너희의 것을 더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상황이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솔직히 믿기 어렵다.

사유재산을 사유재산으로 더 이상 보지 않으려는 미국의 자본주의 위기는 이제부터 가 진짜는 아닐까. 그리고 그 위기는 시장과 자본주의 체제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본질적으로 포퓰리즘의 속성을 가진 100년의 근대 이념의 수명이 다 했음을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미국에 가을이 있다면 그 가을은 이제 겨울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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