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2013년 체제를 위하여
보수의 2013년 체제를 위하여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12.3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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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좌파-진보 진영의 원탁회의에서는 ‘2013년 체제’라는 아젠다가 채택됐다.

창비의 이사장 백낙청씨가 제안하고 당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이를 선언했다.

한마디로 쁘띠부르주아(중산층)의 87민주체제를 넘어서 노동자, 농민 중심의 민중주의 체제와 미군철수, 연방제 통일이 목표였다.

당시 이해찬 전 총리, 함세웅 신부,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김상근 목사, 이창복 민주통합시민행동 대표,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 이학영 진보통합시민회의 상임대표 등 20~30여 명이 참여했다.

이른바 ‘진보 빅텐트’론으로 표상됐던 이 야권연대의 힘으로 지난 5월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은 당초 목표인 과반수 의석에는 못미쳤으나 81석에서 127석으로 대약진을 이뤘고, 舊민주노동당이 주축이 된 통합진보당은 5석에서 13석이 늘었다.

반면에 새누리당은 153석에서 1석이 줄은 152석을 차지해 일견 선전한 듯 보였지만, 친박연대 14석이 모두 전멸했다. 보수진영의 한 축을 이뤘던 자유선진당 역시 18석에서 5석으로 축소됐다. 한마디로 좌파-진보의 대승리로 평가할 수 있는 변화였다.

무엇보다 19대 총선에서는 이석기, 이정희, 김재연과 같은 종북 노선주의자들이 제도권 의회에 진출했다. 이와 함께 원외의 종북세력들도 대거 제도권 주변에 포진하게 됐다.

따라서 2012년 가장 큰 수확을 올린 쪽은 종북진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합법적 활동공간이 보장된 것이다.

이후 12월 대선에서 151석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무소속 안철수 후보에게 양자 대결에서 밀리는 수모를 계속 맛봐야 했다. 40%대의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는 결국 안후보의 사퇴로 효과를 잃었지만, 51.6%라는 득표율의 승리 요인은 아이러니하게도 보수노선을 버린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 대한 보수의 총집결이었다.

종북-좌파의 2013년 체제는 포기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종북-좌파의 ‘2013년 체제’는 포기되었을까. 130석의 야권연대 의석은 패배를 인정하고 자신들의 실패를 거울삼아 중도주의로 노선을 수정할 것인가. 예상되는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다라는 것이다. 이들은 48%라는 국민이 문재인이 아니라 자신들의 ‘2013년 체제’를 지지했다고 믿고 있다. 어차피 문재인 후보는 그들의 대리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북-좌파 진영의 ‘2013년 체제’ 아젠다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를 추동할 모멘텀이다. 이들은 박근혜 정권의 실수와 약점이 노출되기 만을 기다리고 있다. 작가 이문열씨가 말한대로 ‘불복의 구조화’가 이미 이들 내부에 깊숙이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자유-보수진영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앞에 서게 된다.

이념의 사상전을 다시 이 좌파-진보-종북의 진영과 치러야 할 것인가. 물론 그렇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하지만 그 방법론에 있어 과거의 종북비판과 반공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미 박근혜 정권이 상정하고 있는 통치의 근간에는 ‘포퓰리즘’으로 인한 ‘공약의 시한폭탄’이 보수진영에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종북을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라는 ‘아는 문제’보다, 좌-우에 걸친 포퓰리즘과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라는 ‘모르는 문제’가 보수진영이 풀어야 할 숙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자유-보수의 2013년 체제’라는 길항적 리더십이 요청된다. 그것은 좀 더 세심한 주의와 새로운 이론의 수용, 그리고 자유주의적 가치를 내면화할 것을 요구한다. 바로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자유주의’를 보수이념의 근간에서 적극 수용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2013년,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러한 자유주의를 재확신해야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과 발전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 박정희 시대의 유신체제는 대한민국의 번영과 시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내부의 자생적 공산주의 위협을 탄압한 것이지, 민주주의를 압살한 것이 아니었다. 민주주의란 자유와 번영을 위한 수단적 제도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도 유신헌법이 90%라는 국민의 선거 지지율로 통과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유신의 체제가 요구되었던 74년의 상황도 이해하지 못한다. 당시 오일쇼크로 세계경제가 곤두박질 쳤고, 월남전의 패색이 짙어졌으며, 워싱턴에서는 주한 미군 철수가 논의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더구나 북한은 사회주의법을 만들어 본격적인 고려 연방제를 주창하고 나왔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남한에서 이러한 종북의 노선이 자생적 공산혁명의 선동으로 준동하고 있었다는 점은 더욱 모른다.

어느 사회든 그 사회에는 생존, 자유, 평등, 번영이라는 4개의 키워드가 아젠다를 만든다.

생존은 그 사회의 알파와 오메가다. 생존이 없다면 자유도, 평등도, 번영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74년에 대한민국은 어떤 생존의 문제를 안고 있었던가. 이러한 시대적 인식이 없다면 국민의 90%가 찬성해서 통과시킨 유신헌법과 체제는 ‘독재’로 남게 된다.

그러한 역사 인식으로는 종북-좌파가 추동하는 ‘2013년 체제’에 맞설 수 없다.

역사는 여전히 이념이라는 잉크로 쓰여지기 때문이고, 이념에서 패배한 자의 역사는 현재에서 정당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미래한국)

한정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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