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문화 권력을 되찾을 때”
“이제는 문화 권력을 되찾을 때”
  • 김범수
  • 승인 2012.12.31 17: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래인터뷰] 작가 이문열, 대선 이후를 말하다


18대 대선을 두 단어로 요약하면 ‘노장(老壯) 돌풍’이 아니었을까. 이번 대선에서 89.9%라는 경이적 투표율을 기록한 50대와 그 이상 연령층에 대한 언론들의 분석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정희의 폭주로 달아올랐던 TV토론, 反박근혜 정서로 물들었던 SNS의 기세는 결국 중장년층 유권자들이 투표를 위해 길게 줄을 서는 ‘명장면’으로 형상화됐다.

 

인터뷰│김범수 발행인, 황성준 편집위원

 

보수우파진영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이문열은 이번 대선을 어떻게 관전했을까. “스스로 아주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또래가 다 비슷한 생각이었던 모양”이라고 술회하는 그를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에서 만났다. 마야문명이 세계멸망을 예고했던 바로 다음 날인 12월 22일 아침에 이뤄진 이 인터뷰에서 이문열은 자못 힘찬 어조로 새로운 계획과 희망을 이야기했다.

 

-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악문원은 잘 운영되고 있는지요.

부악문원은 초기와는 달리 요새는 새로운 숙생들은 받지 않고 등단한 작가들을 위한 창작 레지던스로 사용하고 있어요. 두 달에서 6개월 정도 머물다 가곤 하는데, 오늘 나가는 사람이 있어서 이런저런 인사를 나누느라 전날 잠을 잘 못자긴 했습니다. 

 

- 대선도 이곳에서 보셨겠군요. 어떠셨습니까.

저는 그동안 제가 굉장히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이번 선거를 겪으면서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웃음) 신문에서 분석하는 걸 보면 5, 60대 심리를 많이 언급하잖아요? 저의 심리와 거의 차이가 없더군요.

방금도 전화를 한 통 받았는데요. 전혀 정치적일 이유가 없는 사람조차도 투표일이 가까워오니까 가슴이 답답해지고 가만히 못 있겠더래요. 그래서 자기가 안철수도 아닌데 투표를 꼭 하고 출국을 했다고 하네요. 다들 비슷한 심정이었나 봅니다.

저 같은 경우에 2002년이나 1998년 대선 때만 해도 결과 나오는 거 봐서 잠깐 밖에(해외에) 나갔다 온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근데 이번엔 뭘 또 나가나 싶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부대끼고 살고 싶은 생각도 안 들고, 고향(영양 두들마을)에나 들어가야지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습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 언론에서 표현하는 것처럼 ‘두려움’으로 표현해도 될 만한 정도의 감정이었습니까?

겁먹었다고 볼 수 있죠. 승자의 관용에 의해서 저에 대해 시비하지 않는다 해도 제 스스로가 그 세상을 살아갈 맛이 나겠나 싶더군요. 부끄러워서 이 감정을 얘길 못 했는데 막상 선거가 끝나고 언론들의 분석이 나오자 여기저기서 “나도, 나도”하는 전화가 울리네요.

다들 이번 대선을 그저 단순한 선거가 아니라 어떤 커다란 사건의 시작으로 읽은 모양입니다.‘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을 표현만 과격하게 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웃음) 대신에 세상에 대해서 몹시 비관적으로 기울었던 인식이 이제 조금씩 균형으로 접어드는 느낌을 받아요.

- 작가 이문열을 겁먹게 할 정도로 DJ-노무현 정부 시절에 많이 힘드셨던 건가요.

정말 힘들었어요. 너무 잔인해서 인터넷을 아예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거기 한 번 들어가면 1주일 동안 기분이 나빴으니까요. 내 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자해행위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근거도 없는 이상한 말들이 넘쳐나는 데 이걸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거예요. 과연 익명으로 말할 수 있는 자유라는 게 그렇게 큰 것인지 한번쯤 연구해볼 주제입니다. MB정부 들어서도 득 될 건 하나도 없었는데, 그 (공격의) 빈도가 좀 줄기는 했죠.

정보라는 게 이 사회에선 소통되는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흐릅니다. 송신도 수신도 이해도 일방적으로 돼요. 내가 보낸 정보를 고치지도 못하지요. 자기들끼리 정보 내용을 결정하면 진짜 발신자는 개입을 할 수 없는 구조가 형성됩니다. 한 번 굳으면 절대로 교정되지 않아요.

 

뚜렷한 경상도 말씨로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는 그는 의외로 악플, 루머에 관련된 사건들의 개요를 상당히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 뽀빠이 이상용, 주병진, 나꼼수, 타진요 등에 대한 판례와 세간의 인식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故 최진실 얘기가 나왔다.

 

허위정보로 손해를 봤어도 그 손해를 씻을 수 없다는 사실은 사람을 절망하게 만듭니다. 저는 최진실이 자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우연한 계기로 자세히 관찰하게 됐어요. 그 사람이 ‘문화 권력’으로 처음 지목되는 시점부터 봤죠.

처음으로 최진실이 문화권력으로 지목된 것은 인터넷이 시작된 1995년 무렵이었어요. 그녀가 배우로서 절정이던 시기였습니다. 그 때 소위 마오쩌둥의 홍위병 같은 느낌의 학술 반동권위를 차용한 개념들이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문화권력 중 연예계 대표로 최진실이 걸린 겁니다. 가장 잘 나가는 인물이었으니까요.

대표적인 흐름을 주도하던 잡지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최진실과 함께 문학계에서는 저를 집어서 공격했어요. 저한테 책을 직접 보내기까지 했는데, 10명쯤 꼽힌 문화권력 중 최진실이 있더군요. 딴 사람들이야 그런가보다 했는데 최진실을 보면서는 ‘참 불쌍하다. 어떻게 견디겠나’ 싶었거든요.

처음에는 성적인 행실이 나쁜 걸로 공격을 했어요. 그러다 나중엔 “돈 밖에 모른다”는 식으로 인성적 측면을 공격했고요. 그녀가 30대가 되면서 다시 한 번 드라마로 전성기를 맞이하자 급기야 그 사채업 루머가 돈 거죠. 이건 최진실에게 엄청난 절망감을 안겼을 겁니다.

그런데 그 루머를 유포했던 증권사 여직원이라는 용의자는 제가 알기론 벌금 얼마 내고 말았을 거예요.

- 선생님도 그녀와 비슷한 경험을 하셨군요.

수도 없이 당했죠. 변호사 친구한테 도움을 요청해서 처리했지만, 결국 끝에 가서 남는 건 저에게 죄가 없다는 증명 밖에 없었어요. 내가 입은 상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보상인 거죠. 개인한테는 형벌도 그런 형벌이 없습니다.

“MB정부, 문화 헤게모니에 무관심”

- MB정부는 좀 달랐습니까?

문화적 헤게모니에 관한 얘기를 하자면, MB정부에는 초기나 지금이나 제대로 이 문제에 대해서 신경 쓰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비유하자면 완전히 저쪽으로 넘어가버린 진지에 사령관이나 교체하는 정도인데, 그 사령관 역시 전문성 있는 사람이 아니었죠. 함락된 진지에 낙하산 타고 들어가서 적들 눈치나 보고 임기 채우다가 나가는 패턴이 반복됐어요.

- 평론 분야를 포함해서 문화계에 전반적인 변화는 5년 간 없었습니까?

전혀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념적으로 가장 참혹하게 황폐화된 곳이 문화 진지고, 그 중에서도 문학 쪽의 헤게모니는 90% 이상 저쪽으로 넘어가 있습니다. 그게 근원이 되어서 미술이나 음악 쪽으로까지 간 것이거든요. 돌아보면 나 밖에 없는 것 같은 느낌마저 받아요.

지난 10년 간 문화평론계에서는 저를 문학가 취급 안 했습니다. 정치가 취급했죠. 복거일, 박홍 신부, 조갑제 등의 인사들도 마찬가지에요.

그들이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결코 극단주의자도 아닌데, 이 세계에서는 그들을 그냥 두지 않고 괴물로 만들어서 없애버립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보수 문단에서 이름을 내걸고 ‘나 박근혜 지지한다’고 말한 문인은 보지 못했어요.

- 김지하 선생의 박근혜 지지가 상당히 화제가 되긴 했습니다.

네. 그런데 김지하 선생은 보수 문인은 아니죠. 그 분 같은 경우에는 상징성이 커서 (박근혜 당선인 쪽에서) 굉장히 감사해야 할 거예요.

별 효과 없었다는 사람도 있긴 한데, 효과라는 건 적극적인 효과와 소극적인 효과가 있을 수 있겠죠. 저쪽 진영을 끌어오는 힘은 없었을지 몰라도 이쪽 진영을 결속시키고 자신 없는 태도에 자신감을 부여했다는 측면에서는 분명히 기여했을 겁니다.

- 반면에 박근혜 당선인에 대해서도 대선 직후부터 ‘민영화 루머’ 등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폭력도 이상한 폭력이죠. 이제 막 다수 지지로 당선된 사람을 승인 안 하면 현대적인 다수결이나 대의제도를 아예 부정한다는 건지….
거의 절망적으로 보이는 상황 중에 하나는 ‘불복이 구조화’된다는 겁니다.

선거에 나온 후보 간에 득표율이 적어지면서 항상 불복자가 생기는 거죠. 예를 들어 노태우 정부 때 실제로 드러난 지지자는 36%밖에 없었어요. 반대자가 70% 가까이 된단 얘기죠. 반대자가 더 많은 상황은 대의제에 대한 의심을 부릅니다.

이런 상태가 이명박 정권까지 계속됐어요. 3, 40%밖에 지지를 못 받는 대통령이 연속됐는데, 노무현이나 김대중 대통령도 그 불복 구조 때문에 하고 싶은 거 아마 제대로 못 했을 거예요. 급기야 MB때는 불복이 조직화됐습니다.

이번에도 박근혜 후보가 과반 득표를 했지만 문재인 후보와 불과 2% 차이였죠. 여전히 구조화할 가능성은 상존하는 것이고 이슈만 생기면 촛불시위 했던 식으로 터지기 십상입니다.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에 대해 성토는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OUT’하라는 소리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죠.

- 다시 ‘무너진 문화 헤게모니’에 대한 얘길 해 보죠. 회복 혹은 정상화를 위해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겠습니까?

역으로 생각해서 저들이 자신의 권력을 형성한 과정을 보면 되겠죠. 길고 험난한 과정이 필요하겠다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됩니다. 60년대 중반, 군사정부 하에서 시작된 그들의 시도가 제대로 결실을 본 건 80년대가 되어서였거든요.

15년쯤 지나서 겨우 결실을 봤어요. 그러니 그들만큼 세월을 안 쓴다는 건 욕심이겠죠. 최소 15년 정도를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긴 시간을 구축해서라도 토대를 마련하지 않으면 지금의 사회적 비용은 계속 지불되겠죠.

단순히 문화기구 몇 개 만들어서 될 문제는 이미 아닙니다. 지난 5년 동안 MB정부가 중요한 포스트에 사령관을 낙하시켰지만 파급력은 10%도 못 됐다고 생각해요.

- 박근혜 정부의 인선에 대해서 말들이 많은데요. 한나라당 공천위원으로 참여하신 경험도 가지신 입장에서 인사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이건 상당히 주제 넘는 얘기가 되는데요. 사실은 저는 박근혜라는 사람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말하기 조심스러운데, 앞 뒤 없이 1/3을 잘라서 호남을 잘라서 준다는 식의 시도는 좀 무리수로 보입니다.

다만 누가 봐도 배려했다는 흔적은 아마 있어야 할 거예요. 의례적인 게 아니라요. 힘없는 자리 형식적으로 주는 그런 거 말고, 누가 봐도 분배했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정도가 되야겠죠. 그 이상 말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박근혜 人事 …‘배려의 흔적’있어야

- 박근혜 정부는 최악의 대외환경 속에서 국정을 펼쳐야 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입니다. 한국이 맞닥뜨릴 동아시아 정세,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전에는 중국을 관심 있게 보았는데 요즘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정보량은 많은데 오히려 이해 못 하는 게 많아졌습니다. 일전에 폴 케네디하고 두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만 그 때 제가 갖고 있는 정보로는 이해가 쉽게 안 가는 몇 가지 진단을 하더군요.

예를 들면 중국이 가장 먼저 직면할 어려움이 무엇이겠냐는 질문을 받고서 폴 케네디는 곧바로 물 부족 문제를 들더라고요. 물 부족이 그렇게 심각한 문제였나 싶었는데요.

사실 지금까지의 패턴을 보면 중국 사회가 통일을 이룬 뒤 100년 정도 지나면 붕괴에 들어갔거든요. 그 공식대로라면 이제 거의 다 된 셈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사례를 보면 송나라나 한나라는 토지관계나 생산관계를 가지고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어요.

최근 <중국이 강대국이 못 되는 32가지 이유>라는 책을 봤는데, 분배문제를 중시하는 제 생각과 비슷한 부분이 많더군요. 물론 동아시아 문제는 중국보다도 남북한 문제가 워낙 비중이 크긴 합니다.

- 일전에 북한의 가족들을 만나신 적이 있으셨죠.   

네. 배다른 동생들을 만나봤지요. 1998년의 일이니까 정보시효가 지났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 생각으로는 북한 주민들에게 독일 라이프치히 촛불시위를 기대하는 건 꿈이나 기적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었어요. 제가 보기엔 그들은 굉장히 비참하게 살고 있는데 그들은 그게 비참한 줄을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북한 체제에 대한 관념이 체질화돼 있어요. 글을 쓰려고 탈북자들을 인터뷰한 적도 있었습니다만, 그들이 북한의 3대 세습이나 독재를 격앙된 어조로 비판하지만 그것도 남한에서 교육을 받은 부분이 많았습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탈북은 삶의 한 방식이지 북한을 떠날 때 ‘체제에 대한 자유’ 같은 걸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는 거죠.

 

차기작 주제는 80년대 … 색다른 해석 시도할 것

- 작가 이문열의 미래는 어떻게 되나요. 작품 구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아주 오래 전부터 고민한 주제입니다만 80년대를 한 번 정리하고 싶습니다. 딴 게 아니고 오늘날의 출발점으로서의 80년대를 다뤄보는 거죠. 오늘날 모든 키워드들의 초시는 80년대고, 사회의 방향성이 이렇게 잡힌 것도 80년대거든요. 원래 <변경> 후속으로 생각한 작업인데, 시간은 빨라도 5년쯤은 걸리지 않을까 싶네요.

- 80년대 회고작들, 이른바 후일담문학을 보면 한 쪽으로 편중돼 있기도 하고, 심지어 그 편중조차도 제대로 못 한 것들이 많았죠. 운동권 내부 묘사도 잘못돼 있고요.

그걸 쓴 이들도 제대로 운동권 전선에서 뛰어본 적이 없을 테니까요. 지금껏 그런 문제 때문에 미뤄왔어요. 더 많은 책이 나오길 기다렸는데, 이제는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모르면 앞으로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이제 반대편으로 치중된 해석이 될지 모르지만 그런 걸 내는 것도 그것대로 의미가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한 30년 정도 지났으면 이제 그 시대에 유행했던 해석에서 벗어날 권리가 있다고 보거든요.

80년대 현대사는 다시 한 번 해석되어야 합니다. 갈 길은 멀지만 이제는 ‘진지한 진지탈환운동’을 벌일 때가 왔어요. 보수의 문제는 꼭 뭔가를 해야 할 때 안 한다는 거거든요. 이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습니다.

- 그간의 상처에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이제 보수적 생각을 가진 젊은 친구들도 많습니다. 좌편향 문화권력 사회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작용이 시작된 것이죠.

저에게도 이번에 위로가 된 게 SNS가 반드시 저들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았어요. 우리 사회는 보수-진보에 있어서 통상 6 : 4와 4 : 6을 왔다 갔다 하거든요. 그런데 왜 이 문화 분야만큼은 2 : 8이나 1 : 9가 되냐는 거죠. 뭔가 잘못된 것이고, 전 시대의 문화 권력이 한쪽으로 편중돼 있었다면 이제 거기에 저항할 때가 됐습니다.

- 아직 주류세력이라 말할 순 없지만 20대 젊은이들 중에 선생님들 팬이 많습니다.

이번 선거의 의미를 그런 부분에서도 찾을 수 있겠네요. <미래한국>과도 얘기할 기회가 더 많았으면 합니다.(미래한국)

 

정리 /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사진 / 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