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은 지금 남한에서 폭발중
북핵은 지금 남한에서 폭발중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02.26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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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왜 집요하게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할까.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하게 답하는 전문가가 한 사람 있다.

“북한 핵개발 최종 목적은 미국이 남북 간 싸움에 개입하지 못하게 한 다음 적화 통일을 하려는 것입니다.”

동북아 군사문제에 정통한 한국경제연구원 이춘근 박사의 말이다. 이춘근 박사는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그는 “오히려 북한은 미국과 싸우지 않기 위해 핵을 만든다는 게 더 맞는 말”이라고 북핵문제의 본질을 분석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려는 정치적 목적을 잘 염두에 둬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춘근 박사의 이러한 주장이 국제안보의 리얼리즘적 이론 분석에 의한 것이라면 경험적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군관계자의 주장도 있다.

대북 감청자료를 토대로 북한의 ‘제2 연평도 도발 의도’를 2차례 간파했던 한철용 예비역 소장은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이유는 핵무기를 확실히 보유해 미국이 자신들을 군사적으로 저지하지 못하게 한 다음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요리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렇듯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에 성공한 이후 3차 핵실험은 동아시아 정세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하지만 대응 전략은 저마다 다르다. 남한의 자위적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한미연합사 해체를 근간으로 하는 전시작전권 이양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7선의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미국의 핵우산을 ‘찢어진 우산’이라고 주장한다. 사실 한미상호방위조약상의 핵우산에는 미국이 일본에 보장한 것과 같은 ‘확증파괴’나 ‘자동개입’과 같은 확실한 보복에 대한 언급이 없다.

북한의 핵시설을 선제 타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미국이 한국정부의 동의하에 미사일로 풍계리의 지하 핵실험장을 파괴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최근 국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북핵문제 토론회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국방부에서 제기한 북한의 핵공격 징후 포착시 선제타격 방안에 대해 “비현실적”이라고 지적한다. 북한이 얼마나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지, 그리고 핵무기를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 파악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북한의 핵공격 ‘징후’만 가지고 북한 핵무기를 공격하겠다는 것은 매우 모험주의적인 발상이라는 이유다.

하지만 이러한 선제타격론은 북한에 대한 전쟁도발의 책임이 남한에 있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아울러 미국이 동의할 이유도 없다는 점이 문제다.

북핵 문제로 인정, 대응은 글쎄?

우리가 이렇게 북핵 문제에 대해 실력 행사로 대응하는 방안을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미국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계속 주장하고 있어 대조적이다.

그 대표적인 발언이 바로 지난 20일, 성 김 주한 미 대사의 주장이다. 성 김 주한 미 대사는 한국경영자총협회 주최의 한 연설에서 한국 사회에서 북한의 3차 핵실험을 계기로 전술핵 도입이나 핵무장론이 제기되는 데 대해 “한국이 그렇게 한다면 큰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중요한 것은 성 김 대사가 2015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 이전 문제와 관련해 “만약 한국 측이 준비되지 않았다면 전작권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전작권 전환 연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성 김 대사의 이러한 발언은 남한의 독자 핵무장이나 전술핵 재배치 문제의 대안으로 전작권 연장을 고려할 수 있다는 워싱턴의 메시지로 읽힌다. 그렇다면 북한의 입장은 어떨까. 이 질문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즉 북핵의 목적이 남한 적화에 있다면 북한은 어떤 형태로든 핵정치를 가속화할 것이며 이에 따른 국지전 도발은 핵공격을 전제로 더욱 대담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국방위 간사인 한기호 의원은 “만일 북한이 소형 핵무기를 이용해 제주 해군기지와 같은 곳을 타격하고 평화 휴전 협상을 제안한다면 정치인들은 이를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한 바도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의 제한적 핵공격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역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과거 미국이 NATO에 보장했던 핵우산이 게임이론상으로 무용지물이어서 프랑스 드골이 70년대 NPT를 탈퇴하고 독자 핵무장을 했던 경험에 기반한다. 당시 드골은 파리가 소련 핵공격을 받게 될 경우 미국이 이에 핵우산으로 보복하기 위해 소련과 상호 핵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없다고 보았다.

이러한 드골의 판단은 북한이 장거리 로켓 핵 미사일로 미국의 본토를 공격할 능력을 갖추게 될 경우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 딜레마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즉 미국이 서울에 터진 북한 핵에 보복하기 위해 북한과 전면적인 핵전쟁을 벌일 것이냐는 딜레마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국이 그동안 추진해 온 북핵대응 정책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무엇이 어디서 잘못됐기에 미국은 북핵을 막지 못했던 것일까.

중국과 좌파정권 북핵 비호가 위기 키워

북핵위기는 1차와 2차로 나뉜다. 1차 북핵위기는 중국이 자초한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2009년 미국의 핵폭탄 전문가인 토머스 C. 리드와 대니 B. 스틸먼은 ‘핵특급(The Nuclear Express)’이라는 책에서 80년대 초반 중국이 비동맹 국가들을 활용해 대미 군사전략으로 핵확산을 꾀해왔다는 점을 폭로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중국이 비동맹국들의 핵확산 재(再)이전 포인트(re-transfer point)로 북한을 이용해왔다는 점이다. 이 문제를 좀 더 살펴보자.

82년 당시 중국은 미국, 소련과의 군비경쟁에 있어서 비동맹국들의 핵무장을 통한 일종의 합종연횡의 전략을 생각했다. 당시 중국은 핵 및 미사일 기술을 이란, 시리아, 파키스탄, 이집트, 리비아, 예멘에 수출하면서 이 나라들이 미국과 핵전쟁을 벌이는 이이제이 모델을 설계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때 북한도 중국의 수출용 CHIC-4형 원폭 설계도를 입수하게 된다. 소련에 발주한 원자로로부터 핵무기에 필요한 재처리 연료를 확보한 북한은 1992년 핵처리에 대한 최초보고서를 IAEA에 제출했으나 IAEA가 모니터링한 플루토늄의 산출물과 북한 보고서간에 차이가 발생했다. 이에 대한 핵사찰을 북한이 거부하고 NPT를 탈퇴했던 것이 1차 북핵위기였다.

이 위기는 94년 미국이 한때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공습위기로까지 치달았으나 결국 북한에 핵무기를 만들 수 없는 경수로 시설과 중유공급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북한의 핵폐기 협상에 이르는 제네바 협정을 체결하게 된다.

문제는 북한이 2002년 경수로 건설중에 우라늄 추출을 시인하면서 제네바 협정을 전면으로 부정해 버렸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2003년 미국의 중유 공급과 경수로 사업도 중단된다. 이것이 2차 북핵위기였다.

문제는 북한이 핵에 대한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불능화’라는 제네바 협정에 사인하고서도 이를 위반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에 열중하고 있는 정황들이 있었음에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이를 극구 부정해 왔다는 사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북한은 핵을 만들 의지도 능력도 없다.”, “내가 책임지고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북한 핵에 대해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다는 주장을 거듭하던 중 2004년 11월 “북한의 핵보유가 자위적 수단이라는 데 일리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이유가 반드시 누구를 공격하거나 테러를 지원하려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발언해 온 국민을 경악하게 만든 사례가 있다.

결국 북한 핵무기는 국내에서는 김대중, 노무현 좌파 정권에 의해 ‘민족공조’라는 통일전술로 보호됐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미국은 이 문제를 6자회담을 통해 푼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하지만 6자회담은 항상 막판에 북한의 일방적 뒤집기와 생떼로 번번이 무산됐다. 북핵 전문가들은 ‘미국이 북한체제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부분 동의한다.

북핵위기 책임 날조 묵과해도 되나

이렇듯 북핵위기 그 자체가 북한의 판 뒤집기와 벼랑끝 전술에 의해 고조돼 왔음에도 국내 진보와 종북세력들은 적반하장식의 주장을 하고 있어 저의가 의심되는 것이다.

한 사례로 2010년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북 우라늄 은폐 주장에 대한 반박문’을 통해 “(영변의 우라늄농축시설은) 2009년 초까지만 해도 없었다”며 “북한의 농축우라늄계획 의혹에 대해 김대중 정부는 은폐한 적도 없고 북한 편을 든 적도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임동원 전 장관의 이러한 주장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은 2009년부터 시작됐고, 이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임 전 장관의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2010년 영변을 방문해 북한의 우라늄농축 시설을 확인하고 돌아온 미국의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의 발언을 근거로 한 것이다.

당시 <프레시안>의 보도에 의하면 헤커 박사의 주장은 “문제의 시설이 지난 2008년 2월 자신이 방문했을 때는 핵연료봉 제조공장이었던 것이 우라늄 농축 시설로 바뀌었으며 북한 측 관리들은 이 시설을 2009년 4월부터 짓기 시작해 헤커 박사의 방문 수 일 전에 완공했다고 말했다”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임 전 장관이 주장하는 ‘2009년 북한 우라늄 시설’은 전적으로 북한 관리들의 주장을 재인용한 것이 된다.

헤커 박사의 보고에 의하면 당시 영변에 1,000개가 넘는 원심분리기가 가동되는 것을 목격했다는 점과 그 장소가 5MWe 흑연감속로의 핵연료를 생산하던 핵연료제조공장이라는 사실이다.

북한은 이 시설의 내부를 걷어내고 원심분리기와 ‘초현대식 통제실’(ultra-modern control room)을 설치했다고 한다. 해커 박사는 2,000개의 원심분리기가 이미 설치돼 가동 중이라는 북한 당국의 말도 전했다.

이러한 북한의 우라늄 추출 사업은 이미 북한의 우라늄 농축 계획은 1997년 미국 언론들에 의해 처음 보도되면서 알려졌고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방북했을 때 강석주 북한 부총리는 “사실상 시인” 발언이 있었다.

IAEA의 핵사찰을 파탄내고 NPT를 탈퇴하기 위한 술책이었던 것. 이후 북한 정권은 태도를 바꿔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다. 우라늄농축에 관련된 시설도 장비도 인력도 없다는 것이 북한 당국의 일관된 입장이었다.

이에 한·미·일 등은 6자회담에서 합의된 신고의 대상에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이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북한은 한사코 그 존재를 부인하며 신고를 거부했다. 만일 북한이 우라늄 추출 계획이나 시설이 없었다면 6자회담에서 핵사찰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 임동원 전 장관은 북한의 대변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최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폈다.

“(북핵에 대해) 북한도 합의를 해놓고 약속을 안 지킨 측면이 없잖아 있지만, 미국도 약속해놓고 정권이 교체되면서 이전 정부의 약속을 뒤집어버리는 일이 반복됐다.”

정세현 전 장관의 이러한 발언은 미국이 북한을 압박해서 북한 핵위기가 왔다는 주장을 넘어 아예 북핵위기가 ‘미국의 약속 불이행’ 때문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북핵문제를 제3자 입장에서 주의 깊게 연구해 온 랄프 코사(Ralph Cossa) 국제전략문제센터(CSIS) 태평양포럼 회장은 지난 2011년 본지 <미래한국>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북한이 6자회담 성공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6자회담은 실패했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진실의 순간에 이르기 전까지는 보상을 대가로 협상을 진전시키다가 그때가 오면 발을 빼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핵폐기 검증은 지난 마지막 6자회담을 갑자기 멈추게 한 진실의 순간이었다. 실패의 이유를 대자면 20페이지 보고서를 써도 부족할 것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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