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을 ‘보쌈’하는 사회
성공을 ‘보쌈’하는 사회
  • 이원우
  • 승인 2013.03.0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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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할머니보쌈과 놀부보쌈의 차이는?

최근 한국의 경제 분야에서 가장 맹렬한 성장(?)을 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동반성장위원회다. 그들이 조선호텔, 반포동 팔래스호텔 등 고급호텔에서 회의만 마치고 나면 시장경제의 대원칙에 위배되는 굵직한 사안들이 발표되기 때문이다.

현재 동반성장위원회의 위원장은 이화여대 대외부총장과 명예교수, 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등을 역임한 유장희 교수다. 그는 2009년 한국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한국 서비스 육성을 위해 규제는 완전 제거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반성장위원회의 수장이 되자마자 서비스업에 각종 규제를 도입하자고 나선 셈이다.

유장희 위원장이 ‘환호성’ 지른 이유

동반성장위는 지난 2월 5일 제21차 위원회를 열었다. 그리고 ‘생계형 골목상권’에 대한 보호가 절실하다는 이유를 들면서 제과점업과 음식업 등 서비스업 14개 업종과 제조업 2개 업종 등 총 16개 업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대기업은 이 분야에 손을 대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로 인해 파리바게뜨, 뚜레주르 등 프랜차이즈 빵집은 동네빵집이 있는 500m 이내에는 신규 출점이 금지됐다. 이들은 이미 같은 브랜드의 빵집을 500m 내에 출점할 수 없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를 받던 상태이기 때문에 이중규제의 지배를 받는 셈이다. 또한 프랜차이즈 빵집은 연 2% 이내의 범위에서만 가맹점을 신설하도록 했다.

파리바게트를 운영하고 있는 SPC 그룹은 이 조치에 강력하게 반발했지만 결국 지난 20일 “동반성장위원회의 권고를 적극 수용한다”는 것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유장희 위원장은 이에 대해 “최근 해당 대기업에서 권고를 따르겠다는 뜻을 밝혀와 우리는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빵집들만 규제의 대상에 포함된 건 아니다. 동반성장위는 한식·중식·일식·서양식·외국식·분식·기타 음식점업 등 7개 업종의 음식점업에 대해서도 작년 12월 31일 기준으로 점포수의 확장 자제 및 진입 자제를 권고했다.

이로 인해 CJ의 빕스, 목우촌의 미소와돈, 롯데리아의 T.G.I 프라이데이, 대성산업의 디큐브 한식저작거리, SK네트웍스의 자연, 현대그린푸드의 명가냉면, 한화호텔앤리조트의 티원, 신세계푸드의 보노보노 등 대기업 8개 업체는 앞으로 3년간 점포수를 2012년 말 기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대기업의 무차별적 시장 장악을 규제한다”는 것이 동반성장위의 지론이었던 만큼 이들을 규제하는 것에는 그나마 예측가능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중소기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기업도 아닌 이른바 중견기업 또한 신규 출점에 제한을 받게 되면서 동반성장위의 조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전체주의적 발상에 ‘허점’ 있어

예를 들어 놀부NBG는 중견기업으로 분류돼 주력 프랜차이즈인 놀부 보쌈과 놀부 부대찌개, 그리고 새롭게 런칭한 놀부설렁탕 출점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생겼다.

하지만 놀부보쌈의 경쟁업체인 원앤원의 원할머니보쌈은 신규 출점 제한을 면했다. “원앤원은 중소기업기본법에 따라 상시 근로자수 200명 이상, 매출액 200억 원 초과 요건을 충족하지 않아 중소기업에 속한다”는 것이 동반성장위의 설명이다.

허나 소비자 입장에서 놀부보쌈과 원할머니보쌈에 얼마나 커다란 차이가 느껴질지는 미지수다. 마찬가지 논리로 죽 음식점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본죽 역시 규제의 화살을 피했고, 허름한 인테리어로 향수를 자극하는 새마을식당은 대기업으로 분류돼 규제대상에 포함됐다.

‘외국계 중견기업’으로 분류돼 규제 대상에 포함된 놀부NBG의 역사는 전형적인 ‘골목상권 성공 스토리’다. 김순진 놀부NBG 회장은 1987년 서울 신림동 신림극장 뒤편에 5평짜리 보쌈 가게인 ‘골목집’을 열 때까지만 해도 ‘손맛 좋은 아줌마’일 뿐이었다. 그러다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솜씨를 인정받으며 1989년 첫 브랜드 ‘놀부보쌈’을 낸 것이다.

2012년까지의 놀부NBG가 전국에 수백 개의 가맹점을 내는 데 ‘동반성장’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시장에서 치열한 승부를 펼쳤을 뿐이다. 하지만 놀부NBG가 충분한 성공을 거뒀다는 판단이 서자 동반성장위원회는 권고를 빙자한 규제의 마수를 뻗치고 들어왔다. 신림시장 뒷골목에서부터 26년간 고군분투해 온 놀부NBG의 성공은 ‘나쁜 성공’인가?

2011년 모건스탠리 프라이빗에쿼티 아시아에 51% 이상의 지분을 매각하며 외국계 한식기업이 된 놀부NBG의 현재 상황은 다소 지지부진한 면이 있어 강자(强者)로서의 시장지배력이 그다지 큰 형세도 아니다. 다만 ‘원할머니보쌈보다 더 빨리, 더 크게 회사를 키운 것’이 규제의 철퇴를 맞게 된 이유일 뿐이다.

놀부NBG도 26년 전엔 ‘골목상권’

동반성장위원회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규제에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 “권고안일 뿐 법적 효력은 없다”는 식으로 말하곤 한다. 실제로 이 위원회는 정부 산하의 조직이 아니며 외견상으로는 민간위원회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조치 하나하나가 기업들에게 얼마나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지는 최근 동반성장위의 사무총장이 장남 결혼식 청첩장을 대기업들에 돌린 사실이 드러나 사퇴한 소동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국내기업 입장에서 동반성장위의 권고를 거스르는 건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번 조치가 상대적으로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외국계 기업들의 시장지배력을 키워주는 촉매가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명동에 3곳의 매장을 운영 중인 아웃백코리아는 오는 3월 25일 서울 명동 로얄호텔 맞은편 Tavenue 2층에 명동중앙점을 오픈할 예정이며 올해 매장 4개를 더 오픈할 예정이다.

일정 수준 이상 성공하면 그 결과를 ‘보쌈’해 동결하길 시도하면서도, 결코 완벽하지 않아 권고를 따르는 국내기업만 손해를 보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는 동반성장위원회의 권고안. 이번 시도가 한국경제의 동반성장이 될지 동반자살이 될지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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