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전쟁에 돌입한 美·中·日, 그런데 한국은...
자원전쟁에 돌입한 美·中·日, 그런데 한국은...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03.2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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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세계의 화두는 에너지다


17세기 유럽에서는 석탄과 함께 고래기름이 집집마다 중요한 연료였다. 특히 고래기름은 집안에서 불을 켜는 램프에 없어서는 안 될 국민연료였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도시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저녁 램프에 쓸 고래기름을 장만하는 것은 유럽 아낙들의 중요한 일과였다. 그러다 보니 고래기름은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가격이 폭등해서 모두가 아우성일 때 덴마크에서는 이 고래기름을 아주 싸게 파는 상인들이 등장했다. 그 고래의 이름은 사람들이 처음 들어 보는 것이었다.

기름도 좀 이상했다. 일단 냄새가 역했는데 화력은 이전의 어떤 고래기름보다도 좋았다. 이 이상한 고래기름은 덴마크 서민들로부터 차츰 다른 나라로 전파됐다.

사실 그것은 고래기름이 아니었다. 바로 석유를 증류해 얻은 등유, 즉 최초의 석유 가공품이었던 것이다. 유럽 상인들은 그것을 고래 기름으로 속여 판 것이다. 오늘날로 치면 유사 석유제품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이 등유로 인해 사람들은 밤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고 사회에는 지식과 기술이 축적돼 갔다. 하지만 이 등유 역시 비싸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우리는 전기를 사용해 빛을 만들게 됐고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는 석탄에서 석유로, 그리고 원자력에 이르렀다. 에너지라는 것이 결국 그 사회의 경제발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며 등장하게 된 것이다.

자원문제 ‘불안’느끼는 중국

현재 에너지 불안을 가장 많이 느끼는 나라는 단연코 중국이다. 1993년까지만 하더라도 원유 수출국이었던 중국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원유 수입국으로 전환됐으며 석유 및 천연가스의 해외 의존도는 날로 높아가고 있다.

이같이 ‘에너지 먹는 하마’가 된 중국은 해외 에너지 자원 확보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게 됐다. 실제로 해외자원 개발사업에서 우리나라와 경쟁하고 있는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자원을 싹쓸이 하는 것으로 원성이 자자하다.

중국은 에너지 회사 인수에도 적극적이다. 지난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제유가가 급락하자 2조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국영석유회사를 통한 해외 석유기업 및 자산인수를 활발하게 전개했다.

중국석유화학유한공사(Sinopec)가 2009년 6월 이라크 및 나이지리아 이권을 가진 Addax社를 88억 달러에 인수한 사건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는 당시 중국회사가 해외자산인수에서 성공한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이었다. 이라크 석유 이권과 관련, “재주(전쟁)는 곰(미국)이 부리고, 돈(석유)은 왕서방(중국)이 번다”는 비꼼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 후 첫 해외순방지를 결정한 곳도 대부분 자원부국들이다. 러시아, 탄자니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콩고 등에서 ‘자원외교’를 펼칠 예정이다. 급속한 도시화와 중산층 확산 과정에서 자원 확보가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자원외교에 일본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이 탄자니아,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5개국을 상대로 보유한 총 580억엔(약 6700억원)의 채권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오는 6월 일본 요코하마시에서 제5차 아프리카개발회의(TICAD 5)를 개최하기에 앞서 취한 조치다. 이 회의를 계기로 아프리카 자원외교를 강화하기 위해 우선 걸림돌을 제거하기로 한 것으로 평가된다.

자원외교에 사활 건 日아베신조

아베 신조 정권이 보다 싼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자원외교에 방점을 찍은 이유는 엔 약세 때문이다. 에너지 수입 비용이 급증하고 이로 인해 무역적자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아베 내각은 19일 에너지 관계각료회의를 출범하고 에너지 도입 가격 절감과 안정적 조달을 위한 전략 마련에 나섰다.

이러한 일본의 전략에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전력 생산을 화력발전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액화천연가스(LNG)와 석탄 수입이 급증하고 있는 원인도 작용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베 총리는 이달 말 몽골을 시작으로 4월 말부터는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며 에너지 외교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인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문제는 대한민국이다.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는 자원외교를 매우 중요한 정책으로 추진했지만 구체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08년부터 지난 해까지 정부의 자원외교에 따라 맺어진 양해각서(MOU)는 71건. 이 중 본 계약이 체결된 건 단 한 건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흐지부지 종결됐다. 어디에 문제가 있었을까.

무엇보다 사전에 치밀한 계획 없이 의욕이 앞섰던 점이 지적된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이 자원외교의 중요한 키맨을 자처함으로써 민간회사들과 공공기관들은 몸을 사렸고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터지면서 자원외교는 그야말로 지뢰밭이 돼 버리고 만 것이다.

이 가운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이 총리실 국무차장으로 재직하면서 자원개발업체 C&K마이닝의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개발을 도운 것과 외교부 공무원들이 연루된 사건으로 한국의 자원외교에 커다란 부정적 인식이 심어지게 됐다.

하지만 자원외교를 바라보는 정치권과 언론의 시각에도 문제는 있다. 자원외교 문제를 연구해 온 최성희 계명대 국제통상학과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분 및 인수투자방식의 해외자원개발사업에 대한 이해 부족이 문제입니다. 해외자원개발사업의 성과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주로 미비한 국내 도입량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석유의 경우 즉 우리나라 석유기업들이 산유국의 원유 및 가스 개발권을 아무리 많이 확보했을지라도 국내로 도입되는 물량이 없다면 무의미하다는 지적인 것이죠. 그렇다면, 지금까지 추진한 해외자원개발사업에 대한 지분확보전략은 더 이상 추진되지 말아야 타당한 것일까요?”

최성희 교수의 결론은 대상 자원의 국내 도입여부와 관계없이 해외자원개발사업에 대한 지분확보사업은 계속 추진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운송비용규모와 국내수급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우리나라로 도입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 동기에 부합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발 자원을 무조건 들여오는 것만이 상책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성희 교수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예를 들어 보죠. 북유럽지역에서 지분확보를 통해 개발된 원유는 우리나라의 기존 수입처인 중동지역 원유를 도입할 때 보다 더 많은 운송비가 요구됩니다. 만약 국내원유수급상황에 문제가 없다면 더 많은 운송비용을 들여가며 국내로 들여오는 것보다 북유럽주변국가에 판매하는 것이 사업의 수익극대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죠.”

최 교수가 주장하는 이러한 에너지 수급 전략은 대단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일단 해외자원개발권을 확보한 다음 국내 자원이 부족하면 국내로 들여오고 수요가 안정되면 부족한 다른 나라에 판매하는 전략이다. 사실 원유 부분에서 지금까지 추진해 온 지분참여방식사업은 중동지역에 편중된 우리나라 원유도입선 및 도입량 개선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위해서는 원유 지분투자를 캐나다나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로 다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중국 역시 ‘Loan for Oil’이라는 국내 도입을 위한 전략과 함께 지분 및 인수 관련 사업은 별도로 병행하고 있다.

지분 및 인수 관련 사업이 비록 국내도입물량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지는 않지만 그 사업자체가 가지고 있는 경제적 효과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중국은 이해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나친 공기업 주도는 경계해야

에너지외교와 관련해 또 하나의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지나치게 공기업 위주로 자원개발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대개 자원개발국가들이 국내 규제를 많이 부가한다는 점에서 정부 공기업 중심의 자원개발사업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비즈니스 스킬면에서 공기업이 민간기업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점은 대표적인 사례다. 공기업은 국가의 감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전에 리스크가 큰 자원개발사업에 투기적 지출을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렇게 지적한다.

“공기업이 투자하는 재원은 자기 돈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입니다. 투자가 성공하면 승진도 하고 새로운 자리도 생겨서 좋죠. 하지만 실패하면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부담을 지우게 됩니다. 이는 바로 ‘남의 돈으로 투자하는 격’이라는 문제점을 갖고 있습니다. 사업을 확대해 판을 키우는 데는 지대한 관심이 있겠지만 상업적인 동기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불확실한 미래를 두고 하는 대규모 투자를 이런 공기업에 의존하는 것은 불안합니다.”

셰일가스로 부활하는 미국

한편 미국에서는 셰일가스 개발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산업정책을 통해 경제 재건에 나서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2008년 이후 천문학적인 경기부양 자금을 쏟아 붓고도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문제로 재선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그러자 미국의 석유생산과 수출에 눈을 돌렸고 이 부분에서 약 15%의 생산량이 증가하자 실업이 극적으로 하락하고 경기하강도 멈추는 상황을 맞게 됐다.

미국 경기를 골치 아프게 만든 주택가격의 하락세도 멈췄다. 집권 2기에 들어간 오바마 정부는 아예 미국의 신성장동력으로 이 에너지산업을 지정했다. 지닌 2월 미국 에너지부가 발간한 ‘2013년 2월 단기 에너지 전망(STEO)’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올해 원유 생산량은 하루 평균 725만 배럴에 이르고 내년에는 57만 배럴이 늘어나 782만 배럴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내년의 미국 원유 생산량 전망치는 1998년 이후 최대치에 달하는 규모로 침체상태에 놓인 미국경제를 살릴 원동력으로 떠올랐다. 미국은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생산되는 오일 샌드 원유 수입량도 앞으로 지속적으로 늘려 미국 본토와 함께 북미대륙에서 에너지 자급자족을 이룬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미 에너지부에 따르면 이러한 극적인 반전은 노스다코타주와 텍사스주 암반층에서 채굴하는 셰일 오일이 지속적으로 늘어난 데 따른 결과였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미국이 2017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최대 원유 생산국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이러한 에너지 정책은 ‘미국 쇠망론’을 단번에 잠재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구나 중동지역 원유 의존도가 크게 줄면서 그동안 진행됐던 중동 개입정책의 변경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2035년쯤 에너지 자급자족 100%에 도달해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는 계기로 기능할 것으로도 전망된다.

그러나 생산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서는 에너지 산업에 대한 규제가 완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나친 규제가 생산성 향상의 장애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 연구소 CATO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이 석유산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경우 미국은 다시 제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러한 점은 한미 FTA를 체결한 우리로서는 매우 신중하게 주목해야 할 문제다.

석유고갈 위기론은 19세기 말부터 제기돼 왔다. 매장량이 앞으로 40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식의 ‘종말론적 협박’은 지난 40년 전, 아니 80년 전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석유는 고갈되지 않았다. 유전은 계속 발굴됐고 심지어 암반에서 채취하는 셰일 오일도 시장에 등장했다.

앞으로 북극해가 녹으면 그곳에서 또 엄청난 석유자원이 등장할 것으로도 예상한다. 아니 설령 석유가 정말로 고갈되게 된다면 다른 대체 에너지를 개발해 낼 것이다. 즉 문제는 에너지 자원의 부족,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진짜 문제는 어떻게 확보하느냐이다. 이를 위한 장기적이고도 올바른 국가전략이 요구되고 있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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