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경제, 싸울 것인가 설득할 것인가
지하경제, 싸울 것인가 설득할 것인가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04.15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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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운명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죽음’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세금’이다. 미국의 국세청의 별명은 그래서 저승사자다.

탈세와 싸우는 박근혜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이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이 정책의 선봉대는 대한민국 국세청이다. 국세청은 지난 4일 조사국 직원 927명을 대거 투입해 차명으로 재산을 관리하거나 변칙적으로 경영권을 승계한 기업인과 역외탈세 혐의자, 불법 사채업자 등 224명에 대해 특별 세무조사를 한다고 밝혔다. 국세청이 특정 사안에 이처럼 대규모 인원을 꾸려 조사에 나서는 것은 처음이다.

국세청 탈세와의 전쟁

지하경제란 세금을 회피하는 모든 음성적 거래를 말하지만 보다 넓게는 조세회피를 위한 역외탈세와 같은 재산은닉을 포함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이 지하경제 크기가 OECD 국가들 가운데서 상당히 큰 수준에 이른다는 점이다.

국세청 추계에 의하면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2012년 기준으로 약 290조원, 명목 GDP 대비 비중은 약 23% 정도로 추정된다. OECD국가들의 평균 13%, 개도국 평균 26%에 비해보면 한국의 지하경제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하경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대략 세 가지 이유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첫째, 한국의 자영업 비율이 OECD 평균보다 매우 높다는 점과 자영업자의 실제적인 소득 파악이 힘들어 소득탈루율이 높다는 점이다.

한국의 자영업 비율은 취업자를 기준으로 볼 때 28.8%로 미국 7.0%, 일본 12.3%, 영국 13.9%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서 매우 높은 수준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10차례의 기획세무조사를 통해 조사대상이 된 고소득 자영업자의 소득탈루 규모가 약 3조6000억 원으로 소득탈루율은 48%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렇듯 자영업자들의 탈세행위는 국세청과 쫓고 쫓기는 세금 추격전을 불러온다. 문제는 국세청이 고소득 자영업자들의 탈루에만 집중하는 바람에 사실상 일반 자영업자들의 탈세 행위는 거의 적발하지 못하고 넘어간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는 서민층에 대한 탈세를 관용적으로 보는 사회풍토를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 사례를 보자.

올해 국세청에 적발된 작은 규모의 주점을 하는 A씨의 경우 지난해 휴업을 3차례나 반복했다. 국세청의 분기별 과세표준 소득규모를 피해가기 위해서였다. 올해에는 아예 폐업을 하고 다른 사람의 명의로 신규 사업자 등록을 냈다.

이런 식으로 국세청의 세금감시를 피해가는 것이다. 용산 전자상가에서는 은밀하게 현금을 내면 가격을 깎아 주거나 카드로 결제하면 가격을 더 받는 관행은 오래됐다. 이런 관행은 유흥주점에서 더 자주 발생한다.

자영업 탈세를 보는 이중 잣대

이러한 일반 자영업자의 전체 탈세 규모는 변호사, 의사, 연예인 등과 같은 고소득 자영업자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지만 사실상 서민들의 생계형 탈세라는 점에서 쉽게 비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 지하경제가 창궐하는 배경으로 국민연금, 의료보험과 같은 사회보장성 국민부담이 조세부담과 함께 급격히 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즉 준조세를 포함해 국민부담이 커지면서 조세 회피 유혹도 증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이 부분은 우리 고용시장의 왜곡과도 관계가 있다. 공식으로 사람을 고용하면 회사는 4대보험의 부담을 져야 한다. 그렇게 공제되는 급여는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생활비 부족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공식적인 임금거래가 아닌 형태로 이뤄지는 고용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이런 부분은 일용직 근로자나 외국인 근로자의 불법고용이 이뤄지는 소규모 자영업체의 비정규 고용에서 흔히 발생한다.

실제로 한국의 국민부담률은 2011년 25.9%로서 2000년 22.6% 대비 3.3%가 상승했다. 이는 OECD 선진국 중 가장 빠른 증가세다. 영국이나 미국의 국민부담률이 하락하고 있는 점에 비춰 보면 한국의 유난히 빠른 국민부담률 증가는 탈세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지하경제의 배경으로 부패문제가 있다.

한국의 부패수준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높아 지하경제 형성의 주요 원인이 되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 사회의 부패 정도를 나타내는 부패지수는 2008년까지 개선되는 추세를 나타냈으나 그 이후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국내 사회 각 부문의 부패 및 불투명성은 불법 자금 등을 형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하경제가 등장하는 배경이 알려져 있다면 이제 지하경제와 싸우는 방법도 자연히 등장하게 된다. 방법은 세금을 철저하게 거두는 길이다. 하지만 그것은 말이 쉽다. 국회예산처장을 역임한 최광 외대 명예교수(경제학)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기 위해서는 탈루되는 세원에 대한 방대하고 면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엇이 어디서 얼마나 새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지하경제와 싸울 수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국세청은 최근 대재산가와 대기업 오너들의 역외 비자금 추적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런 식의 지하경제 양성화는 빙산의 일각만을 다루는 일이 될 공산이 크다.

250조원에 달하는 한국의 지하경제에서 과연 이들 대기업과 대재산가의 탈루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의 방법으로 큰 틀에서 전향적인 세제개혁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다. 합리적인 조세제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단일세 도입 주장도

정부가 소득에 누진율을 부과해서 소득세를 매기면 사람들은 자신의 소득을 일정액 이상으로 노출하지 않기 위해 탈루하려는 동기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보자.

만일 연간 소득이 1억 이상인 사람에게 50%의 세금을, 1억 미만의 소득자에게는 30%의 세금을 부과하면 이 사람은 자신의 소득을 9000만원으로 신고하고 나머지 1000만원을 은닉할 욕구를 갖는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다시 최고세율 구간을 9000만원으로 정하면 이 사람은 다음에 자기 소득을 8000만원으로 신고하고 2000만원을 은닉하려 할 거라는 이야기다. 반대로 소득세 최고세율을 낮추면 이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소득을 은닉하려 들겠지만 은닉비용이 세금납부보다 크다면 이 사람은 차라리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이야기다.

실제로 이러한 상황은 미국에서 일어났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토마스 소웰은 그의 신저 <트리클 다운>에서 미국의 소득세율 변화가 어떻게 부자들의 출현과 감소를 가져왔는지 역사적 데이터로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즉 소득세의 최고세율이 높을 때는 부자들이 사라지고 이 소득세율이 하락하면 부자들이 증가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세제 개혁으로 소득세가 아닌 다른 유형의 조세제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세제변혁을 꾀하는 방법이다.

그러한 큰 틀의 변화중에 하나가 단일세(Flat Tax)라고 할 수 있다. 단일세는 소득에 매기는 누진세가 아니라 단일한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단일세는 복잡한 소득세 계산의 노력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즉, 세금계산이 복잡하면 할수록 조세회피나 누락의 정도도 크기 때문에 소득이 얼마나 되든지 단일한 세금을 부과하고 그 소득을 저축이나 소비로 처분할 때 소비세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소득세를 30% 단일세로 전환한 후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뤘다. 마피아들의 탈세도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근로자의 소득세에는 높은 세율을 매기는 반면에 자본에는 낮은 단일세율을 매긴다. 노르웨이는 노동소득에 28~48% 누진인 반면 자본소득에는 28% 단일세율이다. 핀란드는 노동소득에 27~50% 누진세율, 자본소득엔 28% 단일세율이다.

이러한 세제는 세원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 자본소득에 대한 탈루 비용을 높여주는 효과를 만들게 된다. 복잡하게 신고하거나 해외에 빼돌리느니 차라리 세금을 내는 것이 편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현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의 목적이 복지재원의 발굴에 있다는 점에서 경제운용에 영향을 주지 않는 숨은 세원을 발굴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로 지적된다.

이와 관련해 한국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각종 조세 감면정책 중에는 더 이상 효과를 보지 못하는 항목들이 많다. 특히 농지소재지 거주자가 8년 이상 직접 경작한 농지를 양도할 때 발생하는 양도소득세를 100% 감면해주는 제도 등이 그렇다.

기획재정부 조세지출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자경농지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액은 약 1조9000억원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이 제도가 정부의 쌀 소득보전 직접지불사업과 겹칠 뿐만 아니라 8년 자경농지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혜택이 사실상 농사를 짓지도 않는 비경작자에게 부당하게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러한 불합리한 조세감면제도 중에는 저축에 대한 비과세 감면제도도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국세청 통계자료를 기준으로 계산한 바에 의하면 2009년 원천징수신고기준으로 전체 이자·배당소득 48조1000억원의 28.5%에 해당하는 13조5000억원 정도가 조세감면으로 인한 세수 손실이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서 저축지원을 통한 자본 확보가 경제성장에 아직도 필요한지 문제시 되고 있다. 즉 우리나라의 GDP 대비 총저축률은 1970년 17.8%에서 2010년 현재 31.9%로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자소득세가 저축에 미치는 영향은 더 이상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개인연금과 기타 저축과의 대체탄력성이 매우 높아 이제 저축은 가계의 자산구성의 비율만 바뀌는 효과를 가져 온다는 것이다.

세무서는 서비스 기관

이렇듯 세원은 넓게, 그리고 세율은 낮게 펴는 조세정책은 한 국가의 경제성장에 매우 중요한 제도의 틀을 가져오지만 실제로 그러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정부 관료들에게는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기 쉽다. 즉 세제개혁으로 세수가 줄거나 목표에 미달되면 당장 문책이 따를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차피 세율을 높이고 탈세를 이잡듯 뒤진다 한들 불합리한 조세제도 하에서 세원은 은닉되기 마련이다.

정부는 이제 지하경제 문제를 놓고 부자와 대기업에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 전쟁에서 최후 승자가 누가될지는 여전히 모른다. 중요한 질문은 왜 이 전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정의구현인가, 아니면 복지 세원의 발굴인가. 조세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러한 부자들과의 전쟁만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데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일반 국민들이 갖고 있는 탈세에 대한 무신경과 그것이 국민 된 자의 의무라는 것에 무감각하다는 점이다.

부자든 서민이든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면 자신의 소득에 대해 정당한 신고를 하고 세금을 납부하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세무서는 징수기관이 아니라 세금납부 서비스를 지원하는 곳이 돼야 한다”는 최광 교수의 주장은 음미해 볼 만하다. “세금은 국민이 땀 흘려 번 것을 국가가 강제로 징수해 가는 것”이라고 연설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말을 현 정부는 되새겨 봐야 한다. 지하경제와의 전쟁은 전쟁이 아니라 국민 설득으로부터 시작되고 국민 편익을 위한 봉사로부터 추진돼야 하기 때문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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