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 금융위기와 러시아 지하경제
키프로스 금융위기와 러시아 지하경제
  • 김주년 기자
  • 승인 2013.04.29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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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금융 확정…조건은 '지하자금' 손실 용인


키프로스 금융위기 사태가 국제 금융시장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뇌관으로 등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키프로스에 10억 유로(약 1조4400억 원)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4월 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성명을 내고 3년 만기 대출을 통해 키프로스에 10억 유로를 제공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성명에서 약 10억 유로에 해당하는 “8억9100만 특별인출권(SDR) 규모의 3년 만기 대출을 통해 키프로스를 지원하기로 했다”며 “본 안은 오는 5월 초 IMF 이사회의 승인을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금융시스템을 안정화하고 재정 건전성을 달성하는 동시에 국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 경제활동 회복을 지원하는 일이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앞서 3월 16일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무장관들은 키프로스에 100억 유로(약 14조4000억 원)의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키프로스 은행의 모든 예금 계좌에 1회성 부담금을 물리라고 권고했다.

즉 10만유로 이상의 예금에 대해서는 9.9%, 그 이하 예금에 대해서는 6.75%의 부담금을 부과해서 채무 변제에 필요한 자금(170억 유로)의 일부인 58억 유로를 마련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러시아 자금이 키프로스로 간 사연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키프로스 사태로 열린 긴급회의에서 만일 키프로스 정부가 (유로존 회원국의 요구대로) 예금 부담금을 부과한다면 이는 ‘불공정하고 위험한 결정’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키프로스 사태의 중요한 이해당사자로, 키프로스 은행이 예치한 잔고 600억 유로 가운데 절반인 300억 유로가 러시아 예금주의 소유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키프로스 은행 예금(680억 유로) 중 러시아 투자자들의 예금이 190억 달러(약 21조 원)에 달할 것이라 추산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예금의 출처 대부분이 지하경제에서 나온 ‘검은 돈’이어서 실질적인 조치를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키프로스는 수년 전부터 러시아 ‘큰 손’들의 조세피난처로 활용돼 왔기 때문이다.

총인구 80만 명에 불과한 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로스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기에 내몰리게 된 직접적 요인은 인근 국가인 그리스의 구제금융이다. 관광을 주요 산업으로 삼고 있는 키프로스는 지난 2008년 유로존에 흡수되면서 금융산업을 국가적으로 육성했다.

키프로스 은행들은 인근 국가인 그리스의 국채에 거금을 투자했고 동시에 조세 피난처를 찾는 해외 자금이 대량으로 유입됐다. 특히 높은 이자와 돈세탁을 노린 러시아 투자자들이 대거 몰렸다.

이 와중에 그리스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키프로스는 큰 타격을 입었다. 그리스가 금융위기에 돌입하기 이전인 2010년 기준으로 키프로스 은행들이 보유한 그리스 국채는 이미 키프로스 GDP의 1.6배에 달했다. 그렇기에 그리스가 파산하면서 키프로스는 45억 유로에 이르는 손실을 입게 된 것이다.

IMF의 이번 구제금융안은 러시아 등 키프로스 기존 투자자들이 손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전제로 나온 것이다. 지난 3월 30일 파이낸셜타임스는 키프로스 최대 은행인 키프로스은행 고액 예금자들이 최대 60%의 손실(헤어컷)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금까지 예상했던 수준을 크게 웃도는 것이다.

투자자 손실 전제로 구제금융 받아들여

키프로스은행의 10만 유로(약 1억4250만원) 이상 예금자들은 예금의 37.5%를 은행주식으로 전환 받는 한편 예금의 22.5%가 추가 특별기금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은행주식이 사실상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는 상황인데다 특별기금 투입분은 이자도 지급받지 못한다. 이에 따라 당초 최대 40% 정도로 예상됐던 예금주들의 손실률이 1.5배 늘어나게 됐다.

예금에 대한 헤어컷은 키프로스가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100억 유로(약 14조2500억 원)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앞서 키프로스는 지난달 25일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등 이른바 ‘트로이카’와 합의한 구제안에 따라 자국내 2위 은행 라이키은행을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라이카은행 내 10만 유로 미만 예금은 키프로스은행으로 이전되고 10만 유로 이상 예금은 부채 상환에 사용하도록 했다.

니코스 아나스티아데스 키프로스 대통령은 키프로스의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탈퇴 가능성이 제기되는 데 대해 “우리는 유로존을 떠날 생각이 없다. 절대로 국가 미래를 실험하지 않을 것이다. 파산의 위험은 피했다”며 “모든 상황이 비극적이지만 상황은 통제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사태 초반에 항의하던 러시아도 자국의 ‘검은 돈’을 국가 차원에서 구제하지는 않겠다는 방침으로 선회했다. 이고르 슈발로프 러시아 제1부총리는 지난 4월 1일(현지시간) 국영 TV채널에 출연해 “러시아인들이 키프로스와 관련해 손실을 입는 것은 매우 딱한 일이지만, 러시아 정부가 어떤 대응을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슈발로프 부총리는 “키프로스에 있는 러시아 자금의 일부는 세금을 냈고 일부는 그렇지 않다”며 러시아 지하자금의 키프로스 유입 현황을 꼬집은 후 “정부가 지분을 가진 기업들이 심각한 손실을 입게 될지 여부를 사안별로 따져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키프로스 정부는 경제개혁방안도 발표했다. 니코스 아나스타시아데스 키프로스 대통령은 지난 4월 1일 카지노 사업 확대 및 역내 재투자 기업에 대한 면세 등이 포함된 개혁방안을 밝혔다.

이날 그는 “정책 초점을 성장 및 이를 위한 인센티브에 맞추겠다”며 외국투자자와 관광객 유입을 위한 카지노 사업에 대한 확대 허용과 기업재투자금에 대한 면세, 대출금 이자율과 지급조건 완화책 등을 설명했다. 아나스타시아데스 대통령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경제성장 12개안을 15일 내에 국무회의에 제출해 승인을 받겠다는 방침이다.

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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