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원리 실종 대한민국 '파쇼공화국'으로 가나
경제원리 실종 대한민국 '파쇼공화국'으로 가나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05.0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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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적발 시 30% 지분율이 넘는 재벌 총수에게 정상거래 입증 책임을 묻는 경제민주화 법이 논란이다.

이 법안이 어처구니없는 이유는 재벌 총수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잠재적 예비 범죄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재벌을 예비적 범죄자로 설정하는 배경에는 ‘불안감’이 있다. 경제가 날로 안좋아 질 경우 그 책임을 정치권력이 져야 한다는 히스테리가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그런 강박증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미 독일의 ‘나치 주주법’이 그랬다. 1차대전 패배와 함께 불황이 닥치자 독일 국민들은 자본주의가 실패했다고 여겼다. 이러한 불안감의 팽배를 등에 업고 나치는 기업들의 주주에 대한 신의성실원칙을 폐지하고 국가에 충성을 요구하는 주주법안을 만들었다. 나치의 파시즘은 그것을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경영학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보수주의자 피터 드러커는 1930년대 저서 <경제인의 종말>에서 한 사회에 경제원리가 실종되면 파시즘이 온다는 것을 독일과 스페인의 사례를 면밀히 추적해 밝혀냈다.

드러커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모두 경제원리를 두고 벌이는 담론이므로 그러한 경제원리를 무시하는 민족주의, 환경주의, 생태주의, 신비주의와 같은 비경제 이념이 경제원리를 몰아내면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파시즘’이 온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지금 벌어지는 ‘재벌 죽이기’는 경제논리가 아니라 드러커가 경고한 비경제 이념의 주술적 ‘마녀사냥’에 가깝다.

재벌은 ‘마녀’가 아니다

그러한 우리의 상황이 1940년대 나치즘의 태동기와 비슷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하지만 정치권에서 지금 벌이는 ‘경제민주화’ 경쟁을 지켜보면 피터 드러커의 통찰이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오죽하면 박근혜 대통령마저 ‘공약과 다르다’며 정치권의 과도한 파쇼적 경제민주화에 제동을 걸 정도인가 말이다.

우선 ‘재벌’이라는 존재에 대해 우리는 지나치게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재벌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스웨덴의 경우 발렌베리(Wallenberg) 가문은 햄버거 장사부터 첨단산업에 이르기까지 스웨덴 경제를 아예 통째로 주무르고 있다.

독일의 BMW는 운트(Ouandt)家가 지분의 40~50%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의 피아트(Fiat)는 앙겔리(Agnelli)家가 지분의 32%를 소유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석유재벌 코흐 인더스트리(Koch Industries)는 코흐 형제가 지분의 80%를 가지고 있는 세계 최대의 재벌기업이다.

마이크로 소프트 역시 게이츠 가문이 지분의 22%를 갖고 있고 캐나다의 재벌 시그램 (Seagram)은 브론프만(Bronfman)家가 36%를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 재벌(conglomerate) 때문에 양극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없다.

많은 사람들은 ‘재벌은 1%도 안 되는 지분을 가지고 그룹을 좌지우지 한다’고 주장하며 그 이유를 경제민주화의 당위성으로 말한다. 하지만 재벌총수가 그룹의 지분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의 배당은 늘어나고 그 결과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들의 배당은 줄어든다.

현재 재벌 대기업의 가장 큰 배당 수혜자는 바로 국민연금이다. 이건희와 같은 재벌 총수는 1%도 안 되는 지분을 가지고도 경영에 책임을 지고 수익을 내서 국민연금과 같은 다른 주주들에게 이익을 나눠주고 있는 것이다. 수익을 내는 재벌기업의 총수들은 오히려 국민들이 고마워해야 할 대상이다.

이러한 주장은 재벌을 옹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정의란 사회적 약자를 편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재벌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는 사실 기업이 사업부제도로 하면 아무 문제도 안 되는 거래행위다. 과거 정권에서 기업을 쪼개도록 강요했기에 지금과 같은 계열사들이 생겼을 뿐이다.

모기업으로부터 계열사가 일감을 받아 주가가 오르고, 그 이익으로 계열사 재벌 총수의 일가들이 이익을 보았다면 세금을 걷으면 된다. 그 세금은 오른 주식을 팔 때 차익에 부가하는 양도세나 배당을 받을 때 매기는 배당세 중에 하나다.

주식 가격이 오르거나, 계열사가 흑자가 났다고 대주주에게 고율의 증여세를 매긴다는 이야기인가? 그건 ‘괘씸세’이지 법의 정당성을 가진 조세가 아니다.

의제증여세는 ‘괘씸세’에 불과

우리나라는 포괄적 증여세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의제증여세와 같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와 같은 조세제도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폐지한 국가의 권력남용이다. 그런 파쇼적인 조세제도가 허용이 된다면 머지않아 중산층도 파시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다가올 자신들의 정치적 패배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선에서 ‘질 수밖에 없던’ 선거를 간신히 이겨서 여전히 지금도 선거에서 졌다고 생각하는 ‘공포감’이 있는 것은 아닌가.

자신들의 무능함으로 인한 경제 실패를 대기업과 재벌의 책임으로 돌리려는 비겁한 정치권의 작태는 중지돼야 한다. 경제적 자유를 잃으면 정치적 자유도, 종교적 자유도 모두 잃게 됨은 이미 역사가 증명했던 바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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