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
  • 미래한국
  • 승인 2013.06.03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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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보는 눈] 이종윤 상임고문‧한국기독교학술원장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 방미 수행중 여성 인턴의 허리를 툭 쳤느니 아니니 언론들이 온통 관심을 집중하며 나라가 떠들썩하지만 성경에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성경과 세상의 관점이 이렇게 다른데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에도 전혀 다른 차원이 있다.

성경속의 바울은 히브리인으로 신앙적 애국심이 강한 모범 크리스천이요 시민이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주께 아뢰라고 가르친 그가 동족을 위해서는 왜 큰 근심과 고통이 있다고 했을까?

자기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 그가 같은 배를 타고 같은 운명에 처한 동족들이 하나님 앞에서 버림받는 길로 치닫고 있는 것에 대하여 큰 근심과 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흔히 애국심이란 국가라는 어떤 실체를 사랑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국가는 21세기에 사는 이들에겐 공동이익 집단이다. 혈연, 지연, 이념을 말하나 나라 사랑이란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다.

5천만을 누가 전부 사랑할 수 있을까? 내 주변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애국심이다. 따라서 애국 또는 애국심은 사랑에 밑받침이 된 것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번민해 본 적이 있나? 당신의 가족, 친족, 이웃, 장애인, 타문화권 노동자, 노숙자, 가난한 자, 병든 자, 학대 받는 북한의 동족 위해 고통을 느끼고 비난을 받으면서도 저들을 돕고 사랑하면서 슬퍼해 본 적이 있는가.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자와 운명을 같이 한다는 뜻이다.

환자를 사랑하면 그의 병이 내게로 옮겨 올 수 있고 죄인을 사랑하면 나도 죄인이라는 같은 운명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랑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선지자 에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을 사랑했다.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애굽으로 갈 때 그곳까지 자의반 타의반으로 따라갔다. 결국 그는 애굽에서 돌에 맞아 죽었다. 희생없는 애국, 애족은 말하지 말자.

사도 바울은 내 자신이 저주(anathema) 즉 천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질지언정 이스라엘이 구원받기를 원했다. 바울의 애국심은 소망에 근거된 것이다. 사도는 자기를 죽이기까지 괴롭히는 유대인들이지만 그들에겐 가능성이 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백성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빼앗긴 어두운 시절에 윤치오는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애국가를 지었고 남궁억은 3·1운동으로 전국이 피냄새로 악취를 품길 때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비단실로 짜놓은 반도 강산)을 주신 하나님께 찬양했다. 유관순은 일본 헌병대에 끌려가 나는 하나님이 시켜서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고 했다.

남강 이승훈은 재판장에서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이 주신 제 자유를 지키면서 남의 자유를 존중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우리는 만세를 불렀다”고 했다. 하나님을 소망으로 바라본 이들은 현실의 암울함 속에서도 미래에 주실 자유, 정의, 평화의 나라를 바라보고 사랑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항상 있어야 할 믿음, 소망, 사랑의 애국자다. 애국심은 위태로울 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항상 있어야 한다. 우리는 동족을 위한 큰 근심과 고통을 당한 사도처럼 하나님 백성을 내 몸처럼 사랑하자.

이종윤 상임고문‧한국기독교학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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