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대국시대’의 본질
‘新대국시대’의 본질
  • 미래한국
  • 승인 2013.06.2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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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국제정치의 구조적 변동이 보다 노골적으로 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있다. 얼마 전 오바마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은 우리나라 신문에 보도된 것과는 달리 북한 핵 이슈가 가장 큰 주제는 아니었다.

미국의 언론들은 중국의 컴퓨터 해킹을 아예 도둑질(Cyber Theft)이라고 명하고 중국이 이 같은 도둑질을 중지하지 않을 경우 미중 관계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한 오바마의 주장을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 중국은 미국과 더불어 중국이 세계 2대 강국이 됐음을 선언하고 있다. 양국 정상은 ‘신 대국관계’라는 이상적인 말로 양국의 관계를 규정하려 하지만, 두 개의 강대국이 모두 다 잘나가는 시절의 국제정치는 열전(Hot War)으로 비화되기 십상이며 잘 해야 냉전(Cold War)으로 귀결될 뿐이었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80년대 중반 브레진스키 박사는 미국이 공산주의가 된다 해도 혹은 소련이 자본주의 국가로 변한다 해도 미국과 소련 사이에 냉전이 해소될 일을 없을 것이라 단언했다.

브레진스키는 두 나라는 체제가 달라서 경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라 두 나라가 모두 다 잘 나가는 제국이기 때문에 운명적으로 부딪칠 수 밖에 없다고 보았다. 미소 두 나라는 충돌하는 제국(Colliding Empire)이었다.

과거 냉전시절과 현재의 차이점

냉전이 끝난 것은 소련이 미국과 충돌할 수 있을 정도로 잘나가는 제국이 더 이상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미소 냉전이 끝난 지 20년이 지난 오늘 미국과 중국 두 나라는 공식적으로 자신들은 경합하는 두 개의 대국임을 선언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은 각각 상대방과의 대결을 위해 자신 진영의 우방국들을 정비하고 있다. 미국이 먼저 정비한 동맹국은 일본이다. 중국이 급속히 부상하는 상황에서 지리멸렬하는 일본은 바람직하지 못했다. 한국 국민들은 다르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미국은 일본이 지금보다는 훨씬 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의 여론을 주도하는 영국의 주간 이코노미스트지는 아베노믹스, 일본의 민족주의화 등을 ‘중국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있으며 심지어 “자위대를 다른 모든 나라들처럼 정규적인 군대로 전환 시킨 ‘애국적’ 일본은 동북아시아의 안보에 기여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은 일본을 동북아시아 안보에 대단히 중요한 초석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일본에 이어 한국을 미국의 대 전략에 함께 동참해 줄 중요한 동맹국으로 엮어놓았다. 지난 5월 초 한미정상회담에서 발의된 한미동맹 60주년 기념 선언은 앞으로 한미동맹은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와 세계 문제 해결에 미국과 함께 할 나라임을 약속했다. 동맹이란 본질적으로 공통의 적(Common Enemy)을 가진 나라가 그 적에 대항, 함께 싸우자는 약속이다.

한반도를 넘어서는 동북아에서 한미동맹이 함께 다뤄야 할 적(敵)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느 나라를 의미하는 것일까?

미국은 한국을 동북아시아의 안보를 위해 절대적으로 중요한 린치핀(linchpin)이라고 말했다. 일본을 지칭하는 corner stone 보다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지정학적으로 봐서 한반도는 당연히 미국 동북아 정책의 린치핀이 되기에 충분하다.

중국의 속셈은 한미동맹 약화

중국 역시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과 철석 같은 동맹관계에 있는 것이 불편하지 않을 리 없다. 중국은 당연히 한국을 미국과 일정 수준 이격(離隔)시키려 한다.

일부 한국 국민들의 반미친중적 성격은 중국의 이 같은 전략을 가능케 한다. 중국은 한국군 수뇌를 중국으로 초청, 융숭한 대접을 해줬고 한국 언론은 이를 두고 한중 군사협력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호들갑을 떨었다.

TV 앵커 한 사람은 우리 합참의장이 중국에서 대접받는 것을 보고 ‘격세지감’이라며 감격했다. 이달 말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 중국 방문시 중국은 우리나라 일반 시민을 ‘감동’ 시키기 충분할 정도로 융숭하게 대해 줄 것이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모든 일들은 감격할 일이 아니라 ‘냉혹’하게 고찰해 봐야 할 일이다. 중국이 북한을 내팽개치듯 해가며 한국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유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중국이 북한을 압박할 것인지도 알아야 한다.

착각하면 안 된다. 중국은 북한을 결코 붕괴시키지 않는다. 건강과 돈이 충돌할 때 정상적인 사람은 건강을 택하듯 국가들도 국가안보와 경제가 충돌할 경우 당연히 국가안보를 택한다.

시진핑을 신세대 지도자로 환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불과 2년전 국방대학에서의 연설에서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을 ‘침략자들에 대항한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규정한 사람이다. 침략자라며 온 세계의 규탄을 받게 했던 바로 그 사건이 시진핑에게는 ‘정의’인 것이다.

한국은 지금 몸값이 오르는 느낌을 받을지 모른다. 미국도 한국을 중요한 나라라고 추켜줬고 중국도 한국이 소중하다며 융숭하게 대접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면(裏面)에 존재하는 미국과 중국의 냉혹한 계산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 경합하는 강대국이 아닌 상황이라면 양국 모두로부터 중요한 국가로 대접받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두 나라가 ‘대국관계’에 진입했다고 선언한 이 마당에 미중 두 나라 모두가 한국을 대접해 준다면 그때 우리는 당혹스러운 상황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오히려 훨씬 높다.

미국은 전략동맹이요 중국은 전략적 동반자라는 대단히 편리한 수사(修辭)는 이제 더 이상 써먹을 수 없는 시대가 됐는지 모른다. 잘못 하다가는 미국으로부터조차 버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美와 손잡고 中에 맞서는 日

아소 다로는 “일본과 중국은 좋은 관계에 있던 적이 없었다”고 단언함으로써 일본은 미국편이라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미국 태평양 함대는 오바마-시진핑의 회담이 끝나자마자 일본 해상자위대와 함께 센카쿠 ‘탈환’ 훈련을 함께 실시하고 있다.

중국이 빼앗아가면 미국이 다시 빼앗아 주겠다는 의미의 훈련이다. 진짜 친구는 말로 하지 않는다.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다. Friends in deed ! 그것이 정말 친구다.

북한이 대화하자고 말한 것을 보고 이제 긴장이 끝나고 평화가 왔다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북한에 대화란 혁명을 위한 전투의 일부일 뿐이다. 중국이 북한을 포기하고 한국의 친구가 된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제는 우리도 세상을 냉철하게 볼 수 있을 때가 되지 않았나.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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