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이 된 나라 누가 전기를 빼앗아 갔나?
찜통이 된 나라 누가 전기를 빼앗아 갔나?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07.1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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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수급 대란으로 2013년 대한민국의 여름은 찜통의 도가니다. 그런데 여기에 촛불로 단 시간 안에 무한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참여연대나 환경운동연합과 같은 진보단체들이다.

이들은 수력발전은 생태를 파괴하고, 화력발전은 환경을 오염시키며, 원자력발전은 방사능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10여년이 넘게 발전소 건설에 반대해 왔다. 그러한 모든 발전소들은 환경과 생태를 파괴하는 ‘자본의 惡’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전기란 오로지 민주촛불 발전이 대안이 된다.

전력 수급 위기는 발전부문 경쟁 도입 실패 때문

이들의 ‘발전소 건설 반대’와 ‘발전소 민영화 반대’는 오늘 우리 사회에 심각한 전력난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발간한 ‘전력산업 위기의 원인과 정책 방향’ 보고서는 현재 전력산업이 겪고 있는 전력수급 위기, 한전 적자누적, 설비부족, 전력 과소비 현상은 2001년 정부가 도입한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실패한 데 따른 영향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잠시 이 보고서를 들여다 보자.

2001년 김대중 정부는 그동안 한전이 독점하고 있던 발전·송전·배전·판매 등 4개 부문 중 발전부문을 6개 발전 자회사로 쪼갰다. 발전부문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조치였다.

송전·배전 등 나머지 부문도 분할 혹은 경쟁체제 도입을 검토했으나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노사정 협의과정에서 무기한 유보됐다. ‘신자유주의’ 정책임을 내세운 진보단체와 노조의 반대와 정치권 로비에 의한 것이었다.

이로부터 전력시설의 증설도 환경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함께 지지부진을 거듭했다. 지금의 전력대란의 비극은 여기에서부터 싹텄다. 이후 이명박 정부 들어 일부 구조개편과 민간 발전소의 전력구매 시장이 형성되기는 했으나 각 환경단체들과 노조, 그리고 좌파 진보단체들의 반대로 이 역시 지지부진한 성과를 보였다.

이와 관련해 KDI 보고서는 ‘구조개편 이후 전력설비투자와 전력생산에 대해 발전업체 간 경쟁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지만 경쟁의 실질적인 효과를 결정하는 시장거래제도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효과적인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는 지금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발전소 증가가 능사 아니다

2013년 대한민국은 사상 유례없는 초유의 전력대란을 각오해야 할 것 같다. 원전 가동 중단으로 올해 전력난이 더 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여름은 예년에 비해 50일 정도 길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기 소비량은 세계 9위에 달한다. 이 가운데 발전단가가 낮은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생산원가 이하의 싼 전기요금 덕택에 전력 소비량은 지난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연평균 5.6%씩 증가해 왔다.

여름철 전력피크 냉방 부하는 이제 1,700만kW를 넘어섰다. 원전 하나의 발전량이 약 100만kW이니 여름철 피크전력을 위해서는 원전 17기를 지어야 감당할 수 있는 규모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다. 우리나라 전력생산 능력이 결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면 왜 지금 전력난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우리나라에 발전기는 총 4,422대가 존재한다. 이 발전기로부터 생산할 수 있는 전력량은 약 8,300만kW. 이 가운데 부품 위조문제로 가동이 중단된 원자력발전소 2기의 전력량은 총 200만kW다.

원전 2기의 가동중단이 상당한 손실이기는 하지만 평소 전력예비율이 충분하다면 초유의 전력난까지 이어질 상황은 분명 아니다. 문제는 이 예비전력이 부족하다는 점에 있다.

한여름 전력 피크에 대비하려면 전력예비율은 10%는 넘어야 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지금은 5%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에 정부는 당초 내년이 되면 설비 예비율이 16%를 상회해 전력 사정이 상당히 개선될 것으로 봤다.

올해 신월성 2호기와 신고리 3호기, 내년에 신고리 4호기를 가동하는 대형 원전 공급 플랜이 있었던 것. 하지만 이 같은 정부의 계획은 가동을 앞둔 3기의 원전 모두 이번 위조 부품 파동과 맞물리면서 그 가동은 물 건너 갔다.

이와 함께 우리의 고질적인 전력난의 원인이 좀 더 다른 곳에 있다는 지적이 전문가들로부터 제기된다. 원가 이하의 공급주의 방식의 전력제도로서는 전력수요 증가를 따라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1인당 전력 소비량은 OECD 평균 국가들보다 비슷하거나 조금 높지만 가정용 전기사용량은 미국의 1/5, 일본의 1/2 정도에 달한다. 전체 전력의 50% 이상은 산업용으로 사용된다.

가정용 전기는 누진율이 적용돼 사실상 가정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싼 전기 공급이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다른 에너지 사용 대신 전기를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최근 가스레인지와 함께 전기레인지가 가정에 확대보급되는 경향이 이를 말해준다. 따라서 정부의 전력정책은 공급확대와 함께 적절한 수요관리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에너지 정책이 공급 중심으로 가면 규모의 경제에 따라 원전과 같은 대형 에너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죠.”

이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의 이야기다.

이러한 전력수급 문제는 정부 정책으로서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민간의 전력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대규모 블랙아웃이 발생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피크시의 전력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정부는 올해 들어 거의 매월 전력비상 경고를 내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원인은 우리에게 전력시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이 존재하지 않으면 도대체 얼마의 전기료가 합당한 것인지를 결정할 수 없게 된다.

아울러 전력생산에 있어 효율을 기할 수 없다. 실제로 한국전력의 누적적자는 현재 약 30조원에 달한다. 이 적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보전돼 왔다. 이런 문제는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가져온다. 경영개선이나 구조조정, 그리고 생산성 증대에 소홀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한국전력의 민영화와 함께 국내에도 선진국처럼 전력시장이 구축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앞에서 언급한 KDI 보고서가 우리 전력제도의 실패 요인으로서 비효율적인 전기 요금규제제도와 한전과 발전자회사를 공공기관으로 취급하는 지배구조를 꼽고 있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불안정한 경쟁체제는 비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며 ‘경쟁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전력산업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를 위해 보고서는 한전을 판매회사와 송전·배전 회사로 분리하고 판매단계에서 경쟁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매전력시장에서 실질적인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가격 상한을 정하는 선에서 직접적인 가격 입찰도 허용해야 한다는 점과 함께 판매사와 발전사 간 중장기 쌍방계약을 허용해 설비투자 위험과 미래의 가격변동에 따른 위험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가격 왜곡 시정해 전기 수요억제 필요

이렇듯 KDI 보고서는 한전과 자회사의 민영화를 비롯 전력시장제도 도입을 제안하고 있지만 정치권이 이를 실천에 옮길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경제민주화의 논리로 치자면 국내 전력시장 도입은 또다시 ‘시장만능주의’라는 비난과 함께 ‘신자유주의’라는 포퓰리즘 공세에 맞닥뜨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이 문제는 국민들과 시민단체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계몽과 함께 전력수요관리를 다시 짜야 한다는 과제를 남긴다.

현재 정부가 전력 설비 공급에 집착하는 방식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방식이다. 여기에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가 터질지 모른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발전기 가운데 27%는 20년 이상 된 노후 발전소들이라는 문제점이 지적된다. 강희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가 중화학공업 중심의 경제성장을 해오면서 어쩔 수 없이 전력공급 위주로 간 부분이 있었지만 이제는 전기요금 등 전력수요 정책을 현실화할 때가 됐습니다. 단기적으로 산업계가 힘들기는 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체질 개선을 해야 할 때라 할 수 있죠.”

사상 초유의 전력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에너지 가격의 왜곡 구조를 바로잡아서 전기수요를 다소 억제하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무슨 이야기일까. 현재 우리 전기요금은 전기를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1차 에너지인 등유보다 싸다.

이 같은 가격구조에서는 정부의 수요 대책이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에너지 세제의 종합적 개편을 통해 에너지 가격 역전 구조를 바로잡자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도한 유류세를 내리고 전기에 붙는 세금을 늘리자는 것이다. 기름값이 싸질 경우 전기요금이 비싸지는 것에 대한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와 함께 전력생산을 위한 기반시설 구축에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략생산에는 대규모의 LNG발전소를 비롯 배전소 시설과 송전탑, 때로는 원자로 시설이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시설들은 소위 님비(NIMBY·Not In My Back Yard)라 불리는 지역이기주의와 각종 진보·환경단체들에 인해 좌절되는 경향이 있다.

비근한 사례로 전력당국은 최근 영흥 화력발전소 7, 8호기 증설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에 위치한 남동발전 영흥화력본부는 수도권 전력의 20%를 책임지는 핵심 발전원이다.

현재 총 4기의 석탄화력발전소가 운영 중인데 전력당국은 이곳에 내년까지 석탄화력 5, 6호기를 짓고 앞으로 7, 8호기까지 지어 수도권 전력공급의 40%를 맡길 계획이다. 하지만 인천시와 환경단체들의 강력한 반발과 환경부의 미온적 태도로 영흥화력 7, 8호기 증설 문제는 수개월째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아울러 최근 전국민적 관심으로 떠오른 밀양 송전탑 사례도 있다. 송·변전 설비를 둘러싼 갈등은 밀양 지역 뿐만 아니라 북당진~신탕정 구간, 신울진~강원~신경기 구간, 군산~새만금 구간, 신중부변전소 및 송전선로 등에서도 겪고 있는 문제다.

신울진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를 수도권 동남부로 운송하기 위한 신울진~신경기변전소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한국전력이 2019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송전선로가 지나는 강원도 횡성 주민들이 지역 우회 통과를 요구하고 있다.

경기도 이천에서도 환경 피해 등을 이유로 주민들의 반발 움직임이 보인다. 한전이 2017년 완공을 목표로 최근 입지 선정 절차를 밟고 있는 신중부변전소도 유력 후보지 4곳에서 상당수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시설들의 구축 반대에 어김없이 환경단체들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전력 대란 문제가 제기된 이후에도 원주환경운동연합과 열병합발전소건설반대주민대책위원회는 지난 6월 24일 성명을 내고 시의 출자 동의안에 대한 심의 연기와 열병합발전소에 대한 반대에 나섰다.

원주환경운동연합은 “열병합발전소에 대한 검증을 마치고 문제가 없을 때 일을 추진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부분에 대한 검증은 이미 시도 차원에서 완료된 문제였다.

에너지 경제학자 앱스타인은 “과거의 사회주의자들은 붉은 옷을 입었지만 오늘날 그옷은 녹색으로 바뀌었다”라는 말로 사회주의자들의 환경운동 위장을 비판했다.

‘청와대에 에어컨을 허하라’

지난 6월 18일 국내 한 일간지 사설의 제목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최근 전력수급 대란으로 청와대 비서실에서 에어컨 가동을 멈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과거 박정희 대통령에 이은 박근혜 대통령의 절전 습관을 풍자한 글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여름밤 집무실에서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틀지 않은 채 부채로 더위를 식히며 집무를 보곤 했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그렇게 집무를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경제규모 세계 13위, 무역규모 세계 8위라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실에서 전력난으로 한 여름에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는 점은 그렇게 유쾌한 사실만은 아니다.

중국에서 방한한 탕자쉬엔 전 국무위원은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 청와대에서 “덥지 않다”라며 점잖게 외교적 수완을 발휘했지만 페이스북의 젊은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는 정장 차림을 하고는 내내 청와대에서 땀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정부는 오늘의 전력 대란 문제의 원인과 대안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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