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공천 폐지보다 급한게 많다
정당공천 폐지보다 급한게 많다
  • 미래한국
  • 승인 2013.08.0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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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새 정부 출범 이후 정치권을 달군 가장 뜨거운 정치적 쟁점은 정당공천제 존폐 논쟁이다.

정당공천제가 매우 중요한 이슈임에 틀림없지만 ‘폐지’에 ‘사활’을 건 이해 당사자들을 보면 쉽사리 납득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제를 바꾸는 개헌 문제도 아니고 정치권의 고질적인 부정부패 청산의 문제도 아니다.

과연 폐지론자들이 진정으로 우리 정치의 발전을 위해 부르짖고 있는지, 아니면 중앙정치의 감시와 견제를 벗어나 그들만의 기득권 고수를 위한 노림수인지 제대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치권 정당공천제 폐지 약속

작년 대통령선거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 후보가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 폐지를 약속했고 지방자치가 부정부패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개혁이 필요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이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기만 하면 우리의 지방자치가 살아나고 지방정치인의 비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은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이다.

정당공천제를 전면적으로 도입한 2006년 선거 이전에도 우리 지방선거는 공천 비리와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았다. 따라서 정당공천제 도입 이후 부정부패가 갑자기 증가됐다는 아무런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비리가 대폭 감소할 것이라는 주장은 객관적으로 납득할 만한 아무런 사전 분석 또한 제시하지 못한다. 폐지론자들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존했을 뿐이다.

폐지론이 지방정치인의 기득권 지키기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공천제 폐지는 그토록 강력히 주장하면서 겸직 폐지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 행태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한 언론사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 4월 현재 광역의원 가운데 39.3%가 겸직하고 있다.

현행 지방자치법에 규정된 공무원, 교사, 공공기관과 공기업 및 농수축협의 임직원, 새마을금고 및 신협 임직원, 국회의원 보좌관 및 비서관 등의 직종이 아니라면 지방의원은 어떠한 직업도 겸직할 수 있다.

직위를 이용한 음성적인 이권개입, 비리, 특혜 의혹 등의 유혹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무급 명예직에서 유급제로 전환돼 2006년부터 5천만원 전후의 연봉을 수령하지만 겸직 규정을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만일 공천에 의한 중앙정치의 감시와 견제까지 사라진다면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는 그야말로 지방토호세력의 독무대가 될 것이다.

폐지론자들은 지방자치와 정치를 분리할 수 있고,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지방자치는 정치와 분리될 수도 없고, 분리해서도 안 된다. 자치단체의 대부분의 사업은 중앙정부의 재정적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 또한 전시행정으로 초래된 재정 악화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간여와 지원이 필요하다.

특정 지역의 자치단체를 위해 일반 국민의 혈세가 투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 같이 지방자치를 순수한 행정 서비스 영역으로만 규정하고 중앙정치와 분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은 지역이기주의에 매몰된 시각이다.

최근 우리 정당들이 국민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정당이 없는 대의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직접민주주의를 추구하지 않는 한 정당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 정당이 없다고 상상해보자. 어떻게 선거를 조직화해 치를 것이며 어떻게 정부를 구성할 것인가. 국민들에게 엄청난 혼란을 줄 것이 자명하다.

정당명이 표기되지 않은 채 투표를 강요하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기권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 글의 독자들은 자신이 사는 동네의 구의원, 시의원 혹은 군의원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나마 정당이 표기되기 때문에 유권자들은 믿고 투표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책임정당정치’이다. 유권자들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다음 선거에 그들의 잘잘못에 대해 보상 혹은 처벌하는 환류 시스템이다.

지방 정치인 기득권 폐지부터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믿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작년 12월의 서울시교육감 재선거에서 투표용지가 인쇄된 이후 사퇴한 이상면 후보(기호 1번)가 상당한 득표를 한 것으로 추측된다.

14.03%가 무효표였는데 통상적인 극히 일부의 무효표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1번을 찍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비교적 관심도가 높은 서울시교육감 선거가 이 정도라면 정당공천이 없는 기초의원선거의 혼란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헌법재판소가 정당공천제 폐지가 위헌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이미 수차례 밝힌 바 있다는 사실이다. 다른 선거에서는 정당공천을 허용하고 지방선거에서만 정당공천을 폐지하는 것은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적은 지방정치인의 비리가 정당공천제와 직접적으로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이 검증된 바 없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대한민국 헌법은 제8조에서 ‘정당조항의 규범적 의미’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고 정당 설립의 자유, 정당 활동의 자유, 국가와 법률에 의한 정당의 보호를 명문화하고 있다. 따라서 유독 지방선거에서만 정당의 공천권을 박탈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특히 정당 활동에 있어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제8조②) 것은 당연한 헌법적 권리로서 보장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독 지방선거에서만 차별해 정당의 참여를 배제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다.

폐지론자들이 범하는 또 다른 중대한 오류는 미국의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허용하지 않는 비율이 70% 이상으로 많다는 것을 논리적 근거로 활용하는 점이다.

미국은 연방제 국가로 자치와 분권의 경험이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됐고 사전선거운동 규제로 묶여 있는 우리와 달리 일상적인 선거운동이 활발해 정당공천과 관계없이 후보의 소속정당을 누구나 자연스럽게 알고 있다. 50개 주 모두 정당공천을 허용하고 있고 지방법원 판사 선거에서도 정당이 공천한다. 또한 가장 큰 규모인 뉴욕시의 51명 의원 모두는 정당공천으로 당선된다.

폐지론자들이 정당공천제 폐지만을 주장하고 지방정치제도의 총체적인 개혁에는 침묵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진정으로 비리를 차단하고 싶다면 부정부패에 대응하는 강력한 법제도를 만들어 범법행위를 상상조차 못하게 해야 할 것이고, 특정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를 특정 정당이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기초의회 중선거구제와 겸직제도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정당공천제 폐지가 지방자치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면 지방정치인들이 지금 당장이라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지방자치 개선을 위한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인 처방은 정당의 민주성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다.


윤종빈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주리대 정치학박사
미래정치연구소장
한국정치학회 한국정치연구분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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