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태양’을 바라보는 두 개의 마음
하나의 ‘태양’을 바라보는 두 개의 마음
  • 이원우
  • 승인 2013.08.1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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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 둘러싼 논란 재점화 … 日, 주변국 감정 무시하고 공식 허가?


찬란한 태양에서 뻗어 나오는 열여섯 갈래의 햇살. 욱일기가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6일 산케이신문은 “아베 신조 내각이 욱일기 사용에 대해 ‘문제없다’는 입장을 정부 견해로 공식화하기 위해 문서 작성을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다. 또한 이 조치가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이 욱일기를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적대시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책 차원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일본인들이 욱일기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을 잘 드러낸 기사는 한국 언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8월 5일 동아일보에 게재된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규슈대 특임교수는 ‘출구 없는 한일관계 우려한다’라는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욱일기는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를 상기시킨다고 하지만 그런 주장이 나오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 욱일기는 아사히신문의 회사 깃발과 같이 ‘정기(精氣) 넘치는 아침의 태양’에 지나지 않는다.” 아사히신문은 일본에서 좌파 성향으로 분류된다.

본지 <미래한국>과 인터뷰한 미치가미 히사시(道上尙史)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장 역시 “욱일기를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대다수 일본인들은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현지에서 욱일기 문양이 하나의 ‘장식’으로 받아들여지며 각종 장식품과 의상, 예술품 등에 등장하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정말로 욱일기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일본인들은 혹시 혼자만의 극복과 정리를 통해 욱일기가 함축하고 있는 복잡다단한 부정적 의미를 씻어버린 것은 아닐까. 욱일기의 의미와 역사,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오늘날의 한국과 일본의 모습에 대해 알아본다.

2차 대전 일본군의 상징

욱일기 문양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은 19세기 전후로 알려진다. 도쿠가와 막부가 처음으로 일장기를 일본 상선의 공식 문양으로 채택했던 시기다.

이 무렵부터 일장기의 여백을 햇살 문양으로 채운 욱일기 역시 민간에서 자주 사용됐다고 한다. 그리고 메이지 정부는 1870년 태양에서 열여섯 갈래의 햇살이 뻗어 나오는 욱일기를 육군기로 공식 지정했다. 1889년에는 일본 해군도 뒤를 따랐다.

욱일기가 ‘세계화’되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역시 2차 세계대전이었다. 욱일기가 일본군의 상징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군 부대 VF-11 ‘선다우너즈’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난다. 1942년 창설된 이 부대는 처음부터 일본군 섬멸을 위해 조직된 것으로 선다우너즈(sundowners)라는 이름은 ‘태양을 격추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부대가 운용했던 F4F 와일드캣, F6F 전투기의 후미에는 언뜻 욱일기와 비슷한 문양이 그려져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태양이 절반만 그려져 있다. 즉, 태양이 ‘지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는 욱일기로 대표되는 일본군을 패배(down)시키겠다는 의미다. 실제로 선다우너즈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100여 대의 일본군 항공기를 격추시키며 혁혁한 공로를 세웠고 1995년까지 존속했다.

한편 1945년 일본군은 항복을 선언하며 군을 해체했다. 이와 함께 욱일기 역시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1952년 자위대가 창설되면서 다시 한 번 이 조직을 대표할 문양이 필요하게 됐다. 그리고 해상자위대는 다시 한 번 열여섯 갈래의 욱일기를 군기(軍旗)로 채택했다. 육상자위대 역시 여덟 갈래 햇살의 욱일기를 군기로 채택하며 뒤를 따랐다. 치안(治安)을 목적으로 한 자위대가 다시 한 번 ‘일본군’의 문양을 계승한 순간이었다.

일본인에게는 전통, 주변국에는 상처

현재 욱일기 문양을 사용하는 일본인들이 반드시 2차 세계대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이는 일본 내부에서 펼쳐지는 스포츠 경기의 관중석에서도 욱일기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를 테면 일본인들에게 욱일기란 한국의 태극 문양과 비슷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태극 문양을 심볼로 응용하는 부대는 수없이 많지만 어떤 한국인도 태극 문양을 군대의 상징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욱일기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일본인들이 세계대전과 군국주의를 연상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일본인들의 설명이다.

다만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은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계기를 통해서 욱일기의 존재를 인식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 만남이 상처투성이의 계기였으므로 욱일기를 볼 때마다 그때를 상기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사고의 메커니즘이다. 일본 당국은 이 부분에 대해 어떠한 교육을 하고 있을까.

일본의 전설적인 밴드 사잔올스타즈(サザンオ-ルスタ-ズ)는 지난 7일 발매한 신곡에서 일본의 역사 문제를 언급하며 많은 화제를 낳았다. 뮤직비디오에는 박근혜 대통령, 오바마 대통령, 아베 신조 총리, 시진핑 주석 등의 모습을 한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우연히 뉴스를 봤을 때, 이웃 나라에서 화를 내고 있었어. 아무리 대화를 해도 서로의 주장은 변하지 않아. (…) 교과서는 현대사를 알기 전에 끝나버려. 그걸 가장 알고 싶은데, 왜 이렇게 돼버린 거지?”
- 사잔올스타즈 ‘피스와 하이라이트(ピ-スとハイライト)’

지난 1일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 발언을 통해 “욱일기가 우리 국민과 과거 일본의 제국주의에 피해를 본 측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는 일본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들이 깊은 생각 없이 욱일기를 사용하고 있는 일본의 모습은 과연 그 문양이 함축하고 있는 주변국의 상처가 바다 건너 일본에까지 제대로 전달됐는지를 묻고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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