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김종학 PD를 죽였나
누가 김종학 PD를 죽였나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08.2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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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놓고 돈먹기’ 외주드라마의 저주
 

2000년대 초반 방송계에 드라마 제작붐이 일면서 ‘김종학프로덕션’은 새로운 펀딩 기법을 도입했다. 잘나가는 작가들과 스타들을 속칭 ‘아도쳐서’ 제작에 입도선매하는 방식이었다.

김종학은 명작가 송지나를 비롯 이병헌, 최지우 등 스타들을 먼저 섭외한 후 이들을 내세워 펀딩을 유치하는 기법을 사용했다. 이들이 흥행의 보증수표라는 점을 최대한 활용했던 것.

그 결과는 스타들의 개런티 상승이었다. 당시 ‘김종학프로덕션’ 외에도 ‘올리브 나인’, ‘초록뱀 미디어’, ‘삼화 네트웍스’ 등 쟁쟁한 프로덕션들이 SK텔레콤과 KT, CJ와 같은 대기업의 투자를 받던 중이어서 자본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흥행성이 있는 스타라면 서로 잡아야 하는 치킨 게임이 일어났다.

2006년 김을동 한나라당 의원이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공개한 드라마 연기자들의 출연료는 2001~2003년까지는 회당 600만원 선이었다.

2001년 SBS의 ‘여인천하’에서 강수연은 회당 400만원을 받았고 2003년 MBC ‘대장금’에서 이영애의 회당 출연료는 600만원이었다. 이후 스타들의 출연료는 스타유치 경쟁을 통해 천정부지로 오르기 시작했다.

천정부지의 스타 출연료

2005년 SBS ‘프라하의 연인’의 전도연이 회당 1500만원을 받으면서 1000만원대가 깨졌다. 전도연은 불과 4년전인 2001년 같은 방송사인 SBS의 ‘별을 쏘다’에서 회당 600만원을 받았었다. 2005년 같은 해 MBC의 ‘슬픈연가’에서 김희선, 권상우가 회당 2000만원의 출연료를 받더니 2007년 MBC ‘에어시티’에서 이정재, 최지우가 회당 4000만원을 돌파했다.

이듬해 2008년 KBS ‘못된 사랑’의 권상우의 회당 5000만원 돌파를 계기로 같은 해 MBC의 송승헌은 ‘에덴의 동쪽’에서 회당 7000만원의 출연료 스코어를 기록했다.

그야말로 로켓상승 속도를 방불케 하는 스타 출연료 폭등은 드라마 주연 뿐만 아니라 조연들의 개런티마저 상승시켰다. 이러한 출연료는 회당 3억에 육박하는 외주 드라마 제작비의 60%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 스타들이 모두 흥행을 보증하지 못했다는 점이고 그 결과 드라마 외주제작사들은 엄청난 적자의 늪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류붐이 사그라들면서 더 심각해졌다.

2001년부터 ‘가을동화’로 한류붐을 탔던 드라마 수출 증가율이 2005년 75%를 정점으로 찍은 후 2008년까지 연속 10%대로 주저 앉으면서 투자자들 마저 손실의 구렁텅이로 내몰렸던 것. 제작사나 투자자 모두 지옥행 열차를 탔다. 김종학프로덕션은 그런 쓰나미의 한복판에 있었다.

김종학프로덕션은 2006~2008년까지 모두 400억이 넘는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 흑자를 낸 것은 2006년 3억8000만원이 유일했다. 2007년 386억, 2008년에는 126억의 적자를 각각 기록했다.

2005년 일본계 자금을 끌어들여 100원대의 사모펀드로 제작한 ‘태왕사신기’는 그 제작비가 당초 예상을 넘어 적게는 200억, 많게는 300억에 이르렀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정산은 여전히 끝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한 구조여서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러한 드라마 제작방식은 숱한 위험과 유혹을 불러온다. 자칫하면 사기와 횡령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그런 사례를 보자. 한 지상파 방송사의 인기 드라마는 제작 내내 ‘사기’ 시비에 휘말렸는데 그 원인은 세트장 건설과 관련이 있었다.

부동산 투자에도 나선 외주사

드라마의 경우 촬영 세트장은 그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 관광명소가 된다. KBS의 ‘가을동화’가 촬영됐던 양평은 그런 대표적인 경우였다. 만일 한류 붐을 타고 드라마가 일본, 중국에서 히트라도 하면 그 촬영장소는 그야말로 ‘대박’이 난다. 그 대박은 다름 아닌 부동산 사업에서 난다는 이야기다. 지자체가 그런 사업에 뛰어들었다.

대개 지자체는 도심 근교나 요지에 공원부지로서 국유지를 갖고 있다. 그러한 지자체들은 인기 드라마 세트장을 유치하고 싶어 하기에 드라마 협찬을 이유로 국유지를 드라마 제작사나 협찬 건설사에 공시지가로 불하한다.

그렇게 불하된 토지는 용도변경이 돼 가격이 순식간에 속칭 ‘따따블’로 오른다. 그러면 제작사는 그 부동산을 담보로 융자나 펀딩을 한다. 드라마 제작이 부동산개발업이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 지방의 중소 건설사들은 한때 드라마 제작에 중요한 투자자로 참가했다. 기업의 브랜드 인지 제고 효과와 함께 잘하면 부동산에서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히트하지 못하면 그 손실은 모두 투자자에 돌아간다.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처음부터 그 드라마가 흥행이 안 될 것을 알면서도 제작사와 건설사가 짜고 투자자를 속였다는 의심을 갖게 마련이다. 그 의심은 당연히 소송으로 이어진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작사가 흥행을 확신하거나 제작비에 차질이 생겨 투자자에게 원금을 보장하는 펀딩을 유치하기도 한다. 소위 이면계약을 하는데 여러 투자자들과 이면계약을 하다보니 정작 정산에 임해서는 도저히 이익분배를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당연히 사기소송이 뒤따르게 된다.

김종학프로덕션도 그러한 문제에 봉착했다. 김종학 PD는 연예기획사를 하는 자신의 조카로부터 사기 소송을 당했다. ‘태왕사신기’를 둘러싼 잡음은 세트장 투자를 비롯해 수많은 부가사업권과 장부외 부채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김종학 PD는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스스로 예술가라고 생각하는 자신의 명예에 ‘사기꾼’이라는 주변의 험담과 욕설은 그로서는 참아내기 어렵고도 남았을 것이다.

김종학 PD는 ‘태왕사신기’ 제작에 앞서 국내외 금융자본의 투자를 받아 주식시장에 김종학프로덕션을 우회 상장했다. 일본계 자본금을 끌어들여 유상증자로 자본금을 늘렸고(2005년 8월), 100억 원대의 사모펀드를 조성해(2005년 11월) ‘태왕사신기’ 제작을 위한 별도의 회사(TGS컴퍼니)를 설립했다.

김종학프로덕션의 TGS컴퍼니 지분은 50%였다. 김종학프로덕션은 법의 적용을 받는 제도권에게는 양해를 구할 수 없었기에 자신을 믿고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의 정산을 뒤로 미뤄야 하는 상황도 심심치 않게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한 ‘태왕사신기’의 불행에 이어 2012년 그가 심기일전해 연출한 드라마 ‘신의’의 흥행부진이 김종학이라는 브랜드를 나락으로 끌고 갔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우리는 그렇게 ‘큰 별’을 잃었다.

이제 우리 TV드라마 외주제작의 관행은 이대로 좋은가를 생각해 봐야 할 때다. 한국의 드라마가 단지 오락물로 그치지 않고 해외수출을 통해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높이고 한류문화 전파의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도 TV드라마의 전략적 부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외주 관행 이대로 좋은가

콘텐츠진흥원이 2009년에 발간한 TV드라마에 대한 보고서(드라마 제작, 유통의 현재와 진흥 방향)에 따르면 2008년 우리나라의 문화 콘텐츠 해외수출은 총 1억1600만 달러였고 이 가운데 드라마는 1억500만 달러로 91%를 차지했다.

또한 국내에서 제작된 드라마 가운데 70% 이상이 해외에 수출될 정도로 국내 드라마 전반이 해외에 인기가 있었다. 이러한 드라마는 한국문화를 해외에 보급하는 데 가장 ‘프렌들리’한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에 수출된 ‘겨울연가’, ‘대장금’, 중국에 수출된 ‘사랑이 뭐길래’, ‘대장금’, 베트남에 진출한 ‘의가형제’ 등은 한국문화를 현지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로써 한국음식과 한글 등 한국문화를 학습하려는 해외시민도 많이 증가했다. 콘텐츠진흥원의 이 보고서는 한류 영향으로 한글을 공부하는 해외 시민은 14개국 10만명에 육박한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러 수출되는 드라마는 한국의 대외 이미지 개선에 탁월한 콘텐츠로 작용한다.

2008년 국제문화산업교류재단이 발표한 ‘한류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종합조사연구’ 에 따르면 일본내 한국에 대한 친근감은 2001년 50.3%에서 ‘겨울연가’ 붐 이후 2004년 56.7%로 상승했다. 2008년 일본 내각부의 여론조사 결과 ‘한국드라마를 시청할 수록 한국인에게 긍정적 이미지가 강화된다’는 보고도 있었다.

한류 드라마는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준다는 여러 보고가 있다. 경제적 관점에서도 한류 드라마는 한류비즈니스에 중요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문제를 연구한 김영덕 콘텐츠진흥원 수석연구원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드라마에 의해 형성된 인기와 스타의 가치가 다른 콘텐츠로 전이되거나 또는 침투하는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겨울연가-일반한류드라마-관광-영화-출판-대중음악(드라마 OST 등)-팬미팅 등-뮤지컬-애니메이션 등으로 가치가 확산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에서 성공을 거둔 ‘겨울연가’의 전체적인 부가가치는 추산이 불가능할 정도다. 관광의 경우 드라마의 주요 배경지가 된 춘천의 남이섬은 일본인 팬들의 관광코스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북새통을 이뤘고 최종회의 촬영지 배경이 된 거제도의 외도도 관광지로 인기를 끌었다.

또한 남이섬의 경우 ‘겨울연가’가 대만, 일본, 중국 등 해외 각지로 수출되면서 관광객이 매년 20만 명이 늘어나는 기염을 토했다. 그 결과 2009년에는 200만 명의 관광객(외국인 25만 명)이 찾는 국제 관광지로 발돋움하기도 했다. 창조경제가 달리 없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한국 드라마의 부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드라마의 외주제작 관행이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외주 제작사의 저작권과 연출권의 확보 문제가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드라마 외주제작에서 제작사는 그야말로 방송사의 ‘제작 지원사’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외주제작사가 제작비를 펀딩해 오면 방송사는 자기 회사의 드라마 PD를 연출자로 파견하는데 대개 방송사는 외주제작 PD의 연출력을 믿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사의 연출권을 주장하게 된다. 문제는 드라마가 흥행에 실패해 적자를 보더라도 방송사의 PD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점에 있다.

‘연출의 신’의 비극

아울러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지금과 같은 당일 회당 ‘날림치기’ 제작보다 16부작이든 32부작이든 전작이 사전 제작되는 관행이 들어서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를 위해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프리세일을 할 수 있는 유능한 마케터들이 존재해야 한다.

한국의 드라마는 ‘악으로, 깡으로’ 그렇게 잘 만들고서도 정작 팔아먹지 못하는 이상한 유통 상품이다. 김종학 PD의 불행도 어찌 보면 그런 곳에 있었다.

故 김종학 PD의 별명은 ‘악바리’였다. 100여명의 스태프와 엑스트라들이 움직이는 드라마 촬영 현장은 그야말로 소리 없는 전쟁터였고 아무리 집념이 강한 감독도 현장에서 자기가 원하는 그림을 얻기란 불가능한 법이다. 하지만 김종학 PD는 달랐다. 그는 ‘OK 컷’이 나올 때까지 NG를 외쳤다.

그렇게 악착스럽고 타협이 없는 김종학이었지만 모든 연기자들과 스태프들은 그와 일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손대는 작품들마다 공전의 히트를 날렸고 수많은 스타들이 그의 손을 통해 탄생했기 때문이다. 김종학과 일을 했다는 것은 보증수표였고 김종학 사단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런 김종학 감독은 한 평 남짓한 초라한 고시텔에서 자신의 생을 자살로 마감했다. 승승가도를 달리던 김종학 PD의 모습을 기억하는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그를 아는 주변에서는 이미 예고된 불행이었다. 그는 ‘연출의 神’이었을지는 몰라도 손익을 계산하는 ‘제작의 神’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좀 더 합리적인 제작 시스템이 필요했다.

지금과 같은 외주제작 드라마 시스템으로 우리는 또 어떤 별을 잃게 될지 모른다. ‘돈 놓고 돈 먹기’식의 드라마 제작 관행이 지금처럼 횡행한다면 말이다. 그러고보니 ‘가을동화’와 ‘겨울연가’를 제작했던 윤석호 PD의 이야기가 세간에서 사라진 지도 오래됐다. 일본 최대의 광고기획사 덴츠에서 100억원의 펀딩 제안을 받았던 그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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