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 그 치명적인 마력(魔力)
음모론, 그 치명적인 마력(魔力)
  • 미래한국
  • 승인 2013.08.2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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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각국마다 ‘음모론’은 있다. 모든 나라에서 통용되는 인기 음모론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 그리고 유대인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음모론이다.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

이 음모론의 골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중세시대에 생긴 자유석공조합 ‘프리메이슨’은 사실은 유대인이 조종하는 집단이다. 프리메이슨은 석공이라는 자격으로 세계 곳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악마를 숭배하고 신을 부정하는 ‘금지된 학문’을 습득했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던 프리메이슨 중에는 십자군 전쟁 당시 ‘성당기사단’도 있다.

성당기사단은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과 주변에 주둔하면서 금융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이들은 악마 숭배에 빠져 있다 교황청에 의해 전멸 당했다. 하지만 성당기사단은 사라지지 않고 지하로 숨어들었다.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 때 루이 16세와 마리 앙트와네트 왕비를 단두대에서 처형한 자들이 외친 말이 ‘성당기사단의 복수를 했다’는 것이었다.

이들 성당기사단의 후예는 같은 시기 독일 바이에른의 인골슈타드 대학 교수이자 예수회 회원이었던 아담 바이스하우프트가 지식인 100여 명을 모아 만든 ‘일루미나티’로 뭉쳤다. ‘광명’이라는 뜻을 가진 일루미나티는 개신교 사상을 부정하고 악마를 숭배하는 조직으로 나중에 무신론과 나치의 모태가 된다. 이런 일루미나티가 큰 힘을 얻는 데는 프리메이슨의 도움이 있었다.

한편 프리메이슨의 직계 후예들은 미국 독립전쟁을 이끌며 미국을 건국한다. 워싱턴 DC 등의 도시계획도 모두 프리메이슨의 작품이다.

이렇게 프리메이슨과 이들의 후예인 일루미나티가 평정한 세상을 실제로 조종하는 건 유대인들이다. 유대인들은 산업화 시대를 거치고 제국주의를 부추겨 이들 뒤에서 세계의 금융, 언론, 법률, 정치 등을 지배하려는 기도를 한다. 이런 게 드러난 것이 ‘시온의정서’였다.

시온의정서에 따르면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가 지배하는 강대국들끼리 계속 전쟁을 일으켜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면서 언론 등을 통해 여론을 조성, 결국 세계를 하나로 통일해 유대인이 지배하는 단일국가를 세운다는 것이다. 이때 유대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은 모두 노예로 삼고, 공산주의화된 체제를 갖출 것이다.>

음모론자들은 그 근거로 미국 월스트리트와 영국 시티, 프랑크푸르트의 금융가를 장악한 것이 유대인이고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다수가 프리메이슨이라는 걸 내세운다.

음모론자들은 유대인 지배계급이 비밀결사조직인 프리메이슨과 일루미나티 외에도 ‘삼변회(Tri-lateral Commission)’와 ‘빌더버그(Bilderberg) 그룹’을 조직해 세계지배계획에 일본과 한국, 중국, 유럽 국가들을 끌어들였으며 UN과 EU, OECD 등이 세계지배계획을 실행할 조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에어리어 51'과 외계인 미국 지배론

국내 일부 음모론자들은 이명박 前 대통령과 김대중 前 대통령,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 故 문선명 통일교 교주,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등도 이 계획에 동조해 프리메이슨 회원으로 활동 중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실제로 삼변회에는 우리나라 재벌 오너와 유명 정치인 등 20여 명이 회원으로 참석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상상력을 발휘한 음모론도 있다. 바로 ‘에어리어 51’과 관련한 음모론이다.

이 음모론은 미 뉴멕시코주에 있는 미군의 비밀기지 에어리어 51에서부터 시작한다. 1947년 미 뉴멕시코주 로스웰에서 UFO가 추락하는 사건이 있었다. 여기서 수거한 UFO가 사실은 부서진 게 아니라 온전한 모습으로 에어리어 51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에어리어 51로 옮겨진 UFO는 비상조난신호를 자기네 별로 보냈고 10년 가량 흐른 뒤 UFO를 보낸 별에서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 美 대통령을 만났다는 것이다. 외계인과 협력하기로 약속한 美 대통령은 ‘마제스티 12(MJ 12)’라는 조직을 만들어 외계인과의 협력관계를 철저한 비밀로 부치고 외계인의 지구인 납치, 가축 생체실험 등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이 음모론 속에서는 미국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캐나다는 물론 러시아, 중국이 외계인과 협력하고 있다고 한다. 음모론에 처음 등장하는 외계인은 제타 레티쿠리 태양계에서 온 ‘그레이 외계인’이며, 나중에 등장한 파충류 외계인은 사람을 잡아먹는 것으로 나온다. 여기에 맞서는 ‘평화의 외계인’은 플레이아데스 성단에서 온 외계인이라고 주장한다.

이 음모론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이 외계인들의 기술을 받아들여 반도체, 레이저, 스텔스 기술 등을 개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미국에 있는 에어리어 51과 오스트레일리아에 있는 비밀기지 ‘파인 갭(Fine Gap)’에는 지하 수백 미터 아래에 외계인의 기술을 받아들이는 또 다른 비밀 기지가 있으며 외계인 침공에 대비한 무기들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이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외계인과 협력하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는 아직 공개하지 않은 무시무시한 비밀병기들이 있으며 외계인의 기술에 굴복한 미국과 동맹국들은 외계인의 앞잡이가 돼 지구를 지배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말한다.

음모론의 허탈한 진실

이런 음모론을 보다 보면 자신이 뭔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음모론 영화에서처럼 누군가 자신을 쫓아오고 소리 소문도 없이 암살당할 것만 같다. 하지만 모두 착각이다.

유대인 세계지배론의 허구는 현실 속에서 드러난다. 쉽게 표현하면 ‘전경련 회원사 오너들이 우리나라 경제를 지배하기 위해 살인, 약탈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말과 비슷하다.

현실 속에서 유대인은 이미 세계를 움직이는 핵심세력이다. 세계 최대의 농산물 업체, 석유업체, 금융업체 모두 유대인이 대주주다. 미국 정치권을 좌지우지하는 세력 중 하나가 전미유대인단체인 AIPAC다. 이 밖에도 유대인이 리드하는 업계는 다양하다.

하지만 유대인들 혼자 세상을 움직이는 건 아니다. 유대인에 맞설 수 있는 다른 세력들도 여럿 있다. 유대인들은 2000년 넘게 흩어져 살면서 적절한 수준의 경쟁과 견제가 있어야만 자신들도 더 성장하고 모두가 안전할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세계지배 따위에는 별다른 매력을 못 느낀다.

프리메이슨에 대한 음모론은 더 허탈하다. 프리메이슨은 20세기 후반 이후로는 공개적으로 활동한다. 영국의 그랜드 롯지나 미국 롯지 등은 회원들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한다. 사진도 올라와 있다.

우리나라에도 프리메이슨 지부가 있다. 대표적인 곳이 남산에 있는 서울클럽이다. 부산, 서울 등의 주한미군 기지에도 지부가 있다. 프리메이슨에 가입하고 싶다면 회원을 찾아 연락하면 된다. 프리메이슨 회원들과 사귄 뒤 추천을 받고 가입하면 된다. 관 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며 ‘새로 태어나 프리메이슨 회원이 된다’는 의식이 악마숭배라면 할 말이 없다.

‘외계인 음모론’은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에어리어 51과 파인 갭은 각국 정부가 기밀을 조금씩 해제하면서 ‘비밀병기 개발시설’이라는 게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외계인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사기꾼’이 아닌 사람이 드물다는 것도 이 음모론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부분이다.

이밖에 베스트셀러 ‘천사와 악마’에 무시무시한 조직으로 묘사됐던 ‘오푸스 데이’는 세계 각국 지부의 연락처와 담당자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이 단체는 냉전 때는 반공 활동에 앞장서다 소련이 무너진 뒤에는 세계 각국에서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6년 서울 혜화동성당에 담당자가 부임한 뒤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터넷만 뒤져도 나오는 이런 것들이 과연 ‘엄청난 비밀’일까.

유행의 이유와 폐해

베스트셀러 작가 댄 브라운은 이런 ‘음모론 조직’들을 모아 히트를 쳤고 이탈리아 언어학자 움베르토 에코도 ‘푸코의 추’와 ‘장미의 이름으로’라는 소설을 통해 음모론에 가려진 단체와 음모론자들의 모습을 희화화했다. 그런데 음모론에 대해 전혀 다르게 접근한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음모론을 검증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국내의 음모론자들 중 앞서 언급한 음모론이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인지를 찾아본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 유대인 세계지배론과 외계인-미국 결탁설의 시작은 1990년대 중반 미국 내 기독교 무정부주의자들이 만들어 인터넷에 퍼뜨린 것이다. 이는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세계 각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지만 금세 시들해졌다.

대부분의 서방 선진국에서는 음모론이 유행해도 먼저 사실 관계를 확인한 뒤에 그 주장을 따른다. 반면 시민의식 수준, 정치적&#8228;사회적 투명성이 낮은 사회에서는 음모론이 판을 치게 된다.

수준이 낮은 나라에 음모론이 퍼질 경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중국에서 유행하는 ‘화폐전쟁론’이다. 쑹훙빙이라는 작가가 쓴 ‘화폐전쟁’을 보면 앞서 설명한 음모론에 근거해 세계 경제 질서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중국이 초강대국이 되려면 세계를 지배하려는 유대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언론이 공산당의 철저한 통제를 받는 중국에서는 이런 음모론이 잘 먹힌다. 그러다보니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세뇌되는지도 모른 채 음모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주변국을 향해 욕설을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음모론에 세뇌된 사람들이 꽤 많다. 대부분 종교지도자와 정치세력들에게 세뇌된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음모론이 바로 ‘대중가수 악마숭배설’, ‘단군의 우상화’, ‘천안함 조작설’과 ‘광우병 쇠고기’, 최근에 일어난 ‘국정원 대선 개입’ 주장이다.

음모론이 판을 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사회 구성원이 현실에서 많은 고통을 겪는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음모론에 강한 매력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개인이 겪는 실패가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달콤한 무책임’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사악한 정치인과 언론, 학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시민들에게 이런 달콤한 무책임을 즐기라고 부추긴다. 재미로 즐기는 음모론은 사적인 모임에서의 가십으로 그치지만 현실을 뒤흔들 정도로 음모론이 주류가 된 사회는 결국 멸망으로 치닫게 된다는 걸 알아야 함에도 우리 사회의 정치인과 언론, 학자들은 ‘음모론 마케팅’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전경웅 객원기자 enoch20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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