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아무나 가나
국정원은 아무나 가나
  • 이원우
  • 승인 2013.09.0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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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의 헌신’을 위한 험난한 길


올해 초 MBC에서 방영된 드라마 ‘7급 공무원’. 방송국 PD를 꿈꾸며 취업을 준비하던 주인공 김서원(최강희 분)은 엉뚱하게도 국정원 시험에 덜컥 합격하고 만다. 두 기관의 입시 전형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면접 시험장에서 만나게 되는 남자 주인공 한길로(주원 분)는 ‘멋지게 살고 싶어서’ 국정원 시험에 지원했다고 말한다. 제목에서부터 드라마는 ‘국정원도 공무원’임을 강조하며 정보기관의 소속원이 아닌 ‘신입사원’으로 좌충우돌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려냈다.

공개 채용에도 비공개 내용 많아

청년 실업이 고착화되고 있는 지금 취업 준비생들에게 국정원은 어떤 존재일까. 어디든 일단 취직하고 싶은 상황에서 택할 수 있는 여러 옵션 중 하나일까? 국정원의 업무 영역과 직원들의 국가관이 논란이 되고 있는 지금,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을 원훈(院訓)으로 하고 있는 국정원으로 가는 길에 대해 알아본다.

한국의 국정원은 1961년 중앙정보부로 창설돼 1980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를 거쳐 1999년 현재의 국가정보원이 됐다. 비밀 채용으로 인력을 충원하던 중앙정보부가 공개 채용을 시작한 것은 1965년부터였다.

DJ정부 최초의 정보기관장을 지낸 이종찬 前 국정원장이 바로 공채 1기 출신이다. 1998년 처음으로 채용 웹사이트를 개설한 이래 현재까지 인터넷을 통해 입사 정보를 제공하고 원서를 접수하고 있다. 2007년에는 전국 61개 대학에서 대규모 채용 설명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국정원에 입사하기 위한 전형은 신입직 전형, 일반직 특별 전형, 경력직 전형 등 세 가지다. 이 중에서 신입직 7급 전형은 매년 여름(7~8월) 정기적으로 진행된다. 9급 신입직과 기능직 전형은 필요시 비정기적으로 실시된다. 모집 분야는 정보, 안보수사, 보안·방첩, 전산, 통신 등이며 정보 분야는 다시 국내 파트, 북한 파트, 해외 파트로 나뉜다.

7급 전형은 서류 전형, 필기시험, 면접시험의 3단계로 치러진다. 최종 전형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5-6개월로 알려져 있다. 합격자 신상 정보는 물론 채용 규모 또한 비밀에 부쳐진다. 채용 상담은 대면 상담 없이 전화로만 진행된다. 입사 경쟁률은 100대1 수준으로 전해지며 서류 전형에서 관건이 되는 학점과 어학 성적 역시 상당히 높은 수준을 갖춰야만 합격할 수 있다.

서류 전형을 통과하면 치르게 되는 필기시험은 종합교양, 논술, 국가정보학 등의 과목으로 나뉜다. 종합교양 80문제, 국가정보학 20문제를 객관식으로 치르고, 자료 제시형 논술시험은 1500자 내외의 답안을 제출하도록 돼 있다. 이 중에서 국가정보학은 국가정보원과 군무원 정보직에 응시하는 수험생들만 준비하는 시험 과목이다. 필기시험 이후에는 체력 검정과 면접이 치러져 최종 합격자를 가려낸다.

합격 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옥’

국정원을 준비하는 준비생들은 함께 모여 정보를 나누기도 한다. 다음 카페 ‘국가정보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규모는 회원수 약 2만 명 정도다.

필기시험이나 논술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글이 다수 올라와 있지만 타 취업 대비 카페에 비하면 활성화돼 있는 편은 아니다. 기타 국정원시험 대비과정을 운영하는 학원이 개설한 인터넷 카페에는 대통령경호처, 공기업 및 대기업 취업 정보까지 함께 제공하고 있다.

취업 준비생들이 공무원을 지망하는 것은 무엇보다 ‘안정성’ 때문이다. 지난 7월 하순 치러진 9급 공무원 시험은 20만5000명의 응시생을 끌어 모으며 정부 수립 이래 최대치를 경신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정원 신입사원의 경우 똑 같은 공무원이긴 하지만 합격 이후 안정된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고 보긴 힘들다. 일단 1년간의 고강도 훈련이 신임요원들을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는 2박 3일간의 지리산 종주 등반, 300m 상공에서 진행되는 강하훈련, 해군 특수전 부대에 입소해 받는 고강도 해양 훈련 등이 포함된다.

마지막 날의 훈련은 워낙 강도가 세 ‘헬 데이(hell day)’로 불린다. 지난 겨울 민주통합당 당직자들에 의해 오피스텔에 갇힌 여직원 역시 위의 훈련을 모두 소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MBC 드라마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국정원 요원들은 ‘블랙’, ‘화이트’, ‘그레이’ 등으로 나뉘어 활동한다. 백색요원(화이트)은 합법적인 신분으로 활동하지만 흑색요원(블랙)의 경우에는 직업과 신분을 철저히 위장해 활동한다. 회색요원(그레이)은 그 중간 단계로서 신분은 밝히지만 비밀공작을 수행하는 요원이다.

공작을 원활하게 수행하도록 국정원은 술 마시는 법, 화투나 마작 같은 잡기를 가르침은 물론 여성 요원들에게는 메이크업과 코디법까지 가르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정훈 국방 전문기자가 최근 펴낸 책 ‘공작’에 의하면 평범한 취업 준비생을 한 사람의 국정원 요원으로 변모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애국심과 동기애다. 육체적·정신적 측면에서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훈련과정을 통과한 그들은 ‘강건한 국익수호의 초석이 될 것을 다짐한다’는 애국심과 ‘동기들과 평생 동고동락하며 하나로 뭉치는 동기애를 실천한다’는 동료애로 뭉쳐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의 업무를 단순한 7급 공무원의 연장선상에 놓을 수 있을까. 그들을 국정원의 기계적인 지시에 타율적으로 희생되는 익명의 직원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조용한 성공’과 모두가 손가락질 하는 ‘떠들썩한 실패’를 감수해야만 하는 기묘한 운명의 주인공들이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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