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지 않은 자율형 사립고
자유롭지 않은 자율형 사립고
  • 이원우
  • 승인 2013.09.0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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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평준화 지역 자사고 학생 선발권 제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자사고)에서 ‘자율’이 사라지고 있다. 자사고의 핵심인 학생 선발권에 제한이 가해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난 13일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시안)’을 발표했다. 이 정책안은 현재 일반 고등학교들이 위기를 맞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그 요인을 특목고 및 자율고(자율형 공·사립고)에서 찾았다. 즉, 일반고 학생들이 전체 고등학생의 71.5%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학생 선발권이나 교육과정 자율성 등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일반고가 수준이 낮은 학교처럼 인식되는 현실을 개선하고 자율형 공립고 수준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 교육부의 취지다. 이를 위해 교육부는 두 가지 측면의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우선 일반고 내부에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일반고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자율화 및 다양화’, ‘일반고 학생을 위한 진로직업교육 확대’, ‘행정·재정 지원강화’ 등을 제시했다.

문제는 교육부가 일반고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외부 변수, 즉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에 대해서도 제한을 가했다는 점이다.

‘자율고 제도 개선 및 특목고 지도·감독 강화’라는 명목을 달고 있는 개선안은 특히 평준화 지역에 위치한 39개 학교에 대해서 “2015년부터 성적 제한 없이 ‘선지원 후추첨’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한다”고 밝힘에 따라 첨예한 논란을 유발했다.

제한을 받게 되는 학교의 경우 자율형 사립고의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도 학교로 하여금 학생을 자율적으로 뽑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어떤 식으로든 학생을 선발하게 되면 성적 서열화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부의 정책에 대해 자사고 교장들은 즉각 반발했다. 전국 자율형 사립고 교장들의 모임인 전국자사고연합회 소속 40개 학교의 교장들은 21일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부의 방침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자사고연 “선발권 박탈은 자사고 죽이기”

김용복 배재고 교장은 “일반고 슬럼화는 2000년대 초반부터 벌어졌으며 일반고였던 배재고 역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자사고로 전환했다. 그런데 일반고 붕괴의 책임이 마치 생긴 지 4년밖에 안 된 자사고에 있는 것처럼 몰아가는 건 옳지 않다”고 성토했다.

백성호 한가람고 교장은 “서울에서 한 해 입학하는 자사고 학생 6600명을 모두 일반고에 배정해도 한 학교당 30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을 일반고로 보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회 회장인 김병민 서울 중동고 교장은 “만일 교육 당국이 이번 안의 시행을 강행할 경우 총력 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선발권만 유지된다면 우리도 성적 제한을 폐지하고 입학사정관제 등을 통해 학생을 뽑겠다”고 밝히며 “다양한 인재를 키우려면 어떤 식으로든 선발권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40명의 교장들은 연합회 명의의 성명을 내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에 숨겨놓은 자사고 무력화 정책을 즉각 철폐하고 학부모 및 학생의 학교 선택권 보장과 교육의 수월성 향상을 위해 자사고뿐 아니라 모든 학교의 학생 선발권을 확대하라”고 주장했다.

교육부가 자율형 사립고에 대해서까지 제재안을 마련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자율 교육’에는 더욱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특히 2013년에는 1월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이 영훈국제중 입시 비리 논란에 휘말리며 ‘학생이 학교를 선택하고 학교가 학생을 선택’한다는 자율 교육의 본질적 취지가 크게 위협받은 바 있다.

영훈국제중과 대원국제중의 신입생 선발 과정에서 다양한 방식의 부정입학 사례가 있었음은 사실로 드러나 부정적인 여론은 더 탄력을 받았다.

국제중 입시 비리로 자사고까지 수세?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교육부는 지난 14일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이에 따르면 오는 11월부터 특성화중, 특목고, 자사고 등에 속하는 학교가 지정목적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교육감 직권으로 지정기간 중에도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

소급적용 조항이 없어 이 개정안만으로 문제가 된 영훈·대원국제중에 대한 지정 취소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개정안은 ‘입학부정 또는 회계부정 등으로 학교 운영상 공익에 반하는 중대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를 지정 취소사유로 명시하고 있어 제2, 제3의 국제중 사태를 막겠다는 의도를 쉽게 읽을 수 있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방안에도 국제중 사태의 잔향이 드러난다. 평준화 지역 39개교에 대해 선지원 후추첨 방식을 강제함과 동시에 사회통합전형(舊 사회적배려대상자전형)을 폐지한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은 이재용 부회장 아들이 영훈국제중 입학 당시 응시한 것으로 알려져 많은 논란이 된 전형이다. 이 부회장의 아들은 결국 학교를 자퇴했고 사회적배려대상자전형 역시 사회통합전형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교육부는 이마저도 시행할 수 없도록 제한한 것이다.

결국 국제중 입시 비리로 대표되는 자율 교육의 위기는 자율형 사립고에 대한 제재로까지 이어지며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을 아우른 규제의 확대를 용인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8월 27일 서울시의회 임시회가 ‘혁신학교 조례안’까지 가결시키면서 대한민국 교육에서 사적 자유의 입지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에 진입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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