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제개편, 소득세에만 목맬 필요 있나?
세제개편, 소득세에만 목맬 필요 있나?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09.0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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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세제개편안이 논의도 못해보고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버렸다.

‘거위털 뽑듯, 고통을 안 주면서…’라고 했던 조원동 경제수석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인사불성 상태에 빠졌고 현오석 부총리는 새누리당내에서도 사퇴하라는 압력을 받기에 이르렀다. 사실 정부가 내놓았던 세제개편안으로 인한 국민 부담은 ‘세금폭탄’이라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8·8 세제개편안을 보면 연봉 3450만원 초과 434만명(28%)이 소득세 부담이 늘어나는 대상이다.

이 가운데 4000만~7000만원 계층에서는 연 16만원, 7000만~8000만원 계층은 연 33만원, 8000만~9000만원 계층은 연 98만원, 9000만~1억원 이하 계층은 113만원, 3억원 초과 계층은 865만원 소득세 부담이 느는 것으로 추정됐다. 연소득 7000만원 이하 계층까지는 수정 전 세제개편안으로 늘어나는 세금 부담액이 월 1만원 약간 넘는 수준이었다.

‘중산층 복지’의 함정

그런데 정부가 지난 13일 발표한 세제개편안 수정안, 다시 말해 세부담 증가 기준선을 원안의 연봉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올린다는 내용에 대해 국민 51.5%가 찬성한다는 SBSNBC와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수치에는 그저 실소가 나올 뿐이다. 그런 조치가 오히려 소득 계층간에 위화감만 조성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정부가 사용하는 ‘중산층 복지’라는 말의 함정이다. 누가 중산층인가? 정부의 중산층 기준은 정책 때마다 달라져 왔다. 4·1 부동산 대책 때는 연소득 6000만원 이하가 중산층이었고, 재형저축 출시 때는 연봉 5000만원 이하, 생애첫주택대출 대상 지정 때는 부부 합산 연소득 5000만원 이하였다.

그런데 이번 세제개편안에서 정부는 1911만~5732만원의 중간인 3450만원 이상을 ‘담세 능력이 있는 중산층’으로 봤다. 그러니 중산층 쥐어짜기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도대체 왜 정부는 그렇게 ‘얼마를 벌면 얼마를 내라’는 식의 소득과표에 연연하는 것일까. 그보다는 세제항목부터 손을 보면 세금의 누수를 막고 국민 반발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들이 없지도 않다. 그러한 사례를 보자.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해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각종 조세 감면정책 중에는 더 이상 효과를 보지 못하는 항목들이 많다. 특히 농지소재지 거주자가 8년 이상 직접 경작한 농지를 양도할 때 발생하는 양도소득세를 100% 감면해주는 제도 등이 그렇다.

기획재정부 조세지출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자경농지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액은 약 1조9000억원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이 제도가 정부의 쌀 소득보전 직접지불사업과 겹칠 뿐만 아니라 8년 자경농지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혜택이 사실상 농사를 짓지도 않는 비경작자에게 부당하게 제공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러한 불합리한 조세감면제도 중에는 저축에 대한 비과세 감면제도도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현재 우리나라 경제 상황에서 저축지원을 통한 자본 확보가 경제성장에 아직도 필요한지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즉 우리나라의 GDP 대비 총저축률은 1970년 17.8%에서 2010년 현재 31.9%로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자소득세를 낮추거나 감면해 준다고 해서 저축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뿐만 아니라 가계저축이 현재로서는 개인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 개인 저축에 대한 유인 메리트는 어차피 적다는 이야기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국세청 통계자료를 기준으로 계산한 바에 의하면 2009년 원천징수신고기준으로 전체 이자·배당소득 48조1000억원의 28.5%에 해당하는 13조5000억원 정도가 조세감면으로 인한 세수 손실이다. 이런 세수의 누수 문제부터 손을 보는 것이 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조세저항도 적다.

조세방법에 대한 권위 있는 전문가의 연구결과를 참조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런 인물 가운데 크리스토퍼 헤디(Christopher Heady) 교수가 있다. 그는 OECD에서 수석 조세정책 연구관을 역임했다. 국제적으로 매우 신뢰할 수 있는 조세연구자다.

2011년 헤디 교수가 21개 OECD 국가들의 조세정책을 연구한 결론은 경제가 처한 국면에 따라 탄력적인 조세제도가 성장과 분배를 향상시킨다는 점이었다. 헤디 교수는 이 조사연구에 대해 ‘New evidence from 21 OECD countries’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조세제도와 경제성장

그의 결론은 자유주의 조세론자들이 주장하는 바를 경험적으로 입증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즉 법인세의 인상은 소득세의 인상보다 더 심각하게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또 헤디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소득세보다 소비세를 증가시키는 것이 GDP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주목할 만한 점은 부채가 있는 저소득층의 소득세를 줄여주는 것이 단기적으로 소비지출을 늘려 경기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헤디 교수는 2008년 포브스지에 유럽의 법인세 인하 경쟁은 실제로 유럽경제에 도움이 됐다고 기고한 바 있다.

당시 그가 OECD 조세 정책관료라는 점에서 보면 대단히 하기 어려운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관료라기보다는 팩트에 충실한 학자의 양심을 지킨 것이다. 무엇보다 세금에는 당연히 조세저항이 따른다는 사실을 정부가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소득이 높은 자에게 세율을 높이면 당연히 고소득 자영업자 계층은 자신의 소득을 탈루할 방법을 찾게 된다.

소득 탈루 시도는 뻔한 수준

실제로 이러한 상황은 미국에서 일어났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 토마스 소웰은 그의 신저 ‘트리클 다운’에서 미국의 소득세율 변화가 어떻게 부자들의 출현과 감소를 가져왔는지 역사적 데이터로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즉 소득세의 최고세율이 높을 때는 부자들이 사라지고 이 소득세율이 하락하면 부자들이 증가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세제 개혁으로 소득세가 아닌 다른 유형의 조세제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세제 변혁을 꾀하는 방법이다.

그러한 큰 틀의 변화 중의 하나가 단일세(Flat Tax)라고 할 수 있다. 단일세는 소득에 매기는 누진세가 아니라 단일한 세율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단일세는 복잡한 소득세 계산의 노력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즉, 세금계산이 복잡하면 할수록 조세 회피나 누락의 정도도 크기 때문에 소득이 얼마나 되든지 단일한 세금을 부과하고 그 소득을 저축이나 소비로 처분할 때 소비세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소득세를 30% 단일세로 전환한 후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뤘다. 마피아들의 탈세도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근로자의 소득세에는 높은 세율을 매기는 반면에 자본에는 낮은 단일세율을 매긴다.

노르웨이는 노동소득에 28~48% 누진인 반면 자본소득에는 28% 단일세율이다. 핀란드는 노동소득에 27~50% 누진세율, 자본소득엔 28% 단일세율이다. 이러한 세제는 세원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는 자본소득에 대한 탈루 비용을 높여주는 효과를 만들게 된다. 복잡하게 신고하거나 해외에 빼돌리느니 차라리 세금을 내는 것이 편하다는 이야기다.

‘성실 납세’ 인센티브 만들어야

이러한 세금과 관련해 생각해 볼 좋은 사례가 있다. 바로 범죄의 비용이다.

요즘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소매치기 범죄는 거의 사라졌다. 소매치기 범죄자들이 개과천선을 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신용카드 사용을 생활화하면서 지갑에 많은 돈을 넣고 다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갑을 하나 소매치기 해서 얻을 수 있는 범죄수익 대비 잡혔을 때 처벌받는 코스트가 너무 높아진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사람들이 세금을 회피하고자 하는 심리에도 적용된다. 소득을 탈루하는 비용이 소득을 신고해서 세금을 내는 편익보다 크다면 사람들은 가능한 소득을 신고하고 세금을 납부하려 할 것이다. 다시 말해 탈세에는 서민과 부자를 떠나 온정주의를 없애고 대신 성실납세에는 인센티브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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