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선생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황장엽 선생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기도했다
  • 미래한국
  • 승인 2013.10.10 09: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
 

10월 10일은 황장엽 북한 전 노동당 비서의 기일이다. 황장엽 선생은 북한 김일성의 통치 원리가 된 주체사상의 창시자로서, 북한 권력의 핵심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다 돌연 1997년 망명해 남한에서 북한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왔다. 그런데 유물·인본주의 주체사상의 상징적인 존재인 황장엽 선생이 생전에 그의 사상과는 반대쪽에 위치한 기독교에 귀의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남한에서 황장엽 선생과 친남매 이상의 친분을 유지했던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는 “황장엽 선생님이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고 증언했다. 주선애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독교교육학 박사로서 장신대 교수를 24년 동안 역임하며 고 하용조 목사 등의 교회지도자를 양성했다.

지금은 탈북민 돕기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주 교수는 지난 9월 중순 <미래한국>과 인터뷰에서 “황장엽 선생님은 북한에서 주체사상을 대신할 것이 기독교밖에 없다고 믿었다”고 강조했다.

 

- 황장엽 선생과는 어떤 계기로 친분을 쌓게 되셨나요?

2001년일 거예요. 평양 정의여학교 동창회를 마치고 몇 사람이 모여 동향인 황 선생님을 처음 찾아 뵀어요. 본인은 평양상업학교에 다녔다면서 제가 다닌 정의여학교를 잘 알더라고요.

그런데 거기서 지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어요. 식사도 국정원 직원이 주면 먹고 내놓는 식이었거든요. 그때부터 토요일마다 황 선생님이 탈북자 모임에서 강연을 하러 갈 때 제가 일행이랑 북한 만두 같은 음식을 만들어 갔어요. 그렇게 몇 년을 만나면서 서로 의지하는 친구가 됐죠.

- 왜 그렇게 황장엽 선생에게 정성을 쏟게 되셨나요?

하나님께서 북한을 복음화 해야 하는데, 이 분을 통해 하시려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이 분이 주체사상을 버리고 복음을 받아들이면 북한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크게 공헌하겠다는 생각이었죠.

 

“주선애 선생, 나하고 형제 합시다”

 

- 두 분이 깊은 우정을 쌓으신 것 같습니다. 마치 황혼 로맨스의 주인공처럼요. 두 분의 일화를 좀 소개해 주세요.

언젠가 황 선생님이 갑자기 ‘주 선생 나하고 형제 합시다’ 하시는 거예요. 놀라서 대답도 못했어요. 선생님이 우리나라에 참 의지할 데가 없으셨던 것 같아요. 언젠가 측근들이 생신 상을 차리려고 하는데 한사코 거절하셨어요. 그런데 갑자기 ‘주 선생 집에서 하면 내가 가지’라고 하셔서 그 때부터 돌아가시는 해까지 우리 집에서 쭉 생신 상을 봤어요.

그리고 2006년인가. 황 선생님이 국정원 외부 안가로 나오시면서 핸드폰이 생겼어요. 그리고 ‘아침에 전화해도 괜찮겠습니까?’ 하시더니 그 때부터 오전 8시나 8시 반에 매일 전화하셨어요. 안부 인사나 오늘 무슨 강의, 모임이 있다는 일상적인 내용이었죠. 그러기를 한 5년 했을 거예요.

전 주일날 오후에 전화했어요. 하루 종일 말씀을 못 하시니 말벗이라도 하려고요. 어느 날은 ‘지금 뭐 하세요’ 했더니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서 먹는데 맛있구만’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함께 먹자고 농담을 했더니 정말 만들어 온 적도 있어요.

- 황장엽 선생은 기독교에 적대적인 북한 주체사상을 만든 사람입니다. 교수님은 어떤 식으로 전도하셨는지요?

황 선생님은 사실 어려서부터 기독교에 대해 익숙했어요. 10여년 손 위인 누님이 계신데 독실한 신자셨대요. 그 누님이 황 선생님이 책을 보고 있으면 왜 성경책을 안 보고 그런 책을 보냐고 야단도 치셨다네요. 저한테 ‘주 선생은 예수 믿지 않는다고 우리 누님처럼 야단은 안 쳐’라고 하시면서 웃기도 하셨죠.

전 믿어야 한다고 억지로 압박하지 않고 그냥 다른 교인을 대하듯이 평범하게 대했어요. 황 선생님이 기독교인을 만나는 좋은 느낌을 갖게 하는 것부터 시작하자는 거였죠. 그분은 세계를 다니면서 소위 주체사상을 전파했잖아요. 평생의 신념으로 붙들고 있던 것을 버리는 것이니 밖으로는 나타내려 하지 않았어요.

-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황 선생이 기독교에 귀의했나요? 만약 인본주의 사상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황 선생이 기독교를 믿었다면 북한 선교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습니다.

전 사도바울이 기독교를 핍박하다가 선교사가 된 것처럼 황 선생님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어요. 표현은 안 했지만 전 황 선생님이 신앙을 받아들인 것으로 생각해요.

식사할 때 기도하고, 하용조 목사님이 입원했을 때 황 선생님께 기도를 부탁했더니, 제대로 하더라고요. 하나님 아버지로 시작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말로 마치셨어요. 자기 책상에 성경책을 놓아두기도 했죠.

 

“주체사상이 사라진 北 주민 마음에 기독교가 들어가야”

 

- 황장엽 선생은 기독교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혹시 북한에서 주체사상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여기지는 않았을까요?

통일 돼서 북한에 올라가면 기독교밖에 북한 주민의 마음에 들어갈 게 없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북한 사람들의 빈 마음에요. 기독교가 이 땅의 소망이라는 거죠. 그리고 종북주의자들을 몰아내는 것도 기독교 지도자에 달렸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예전 개화기에는 기독교가 나라를 살렸는데, 남한에서 지금 이렇게 기독교가 변해서 어떡하냐고 심각하게 걱정하기도 했어요. 국가는 누가 지키냐는 거죠. 그래서 황 선생은 기독교가 살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분의 마음 속에는 기독교가 소망이었던 것 같아요.

- 황 선생은 종북세력에 대해 경고하고 일반 여론뿐만 아니라 지식인들이 좌경화되는 것에 걱정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까지 좌경화되고 있다고 걱정했어요. 그래서 같이 지방 순회하면서 기도회와 강연을 했어요. 제주도, 대구, 부산 같은 곳에 다녔죠. 저와 목사님들이 기도하고 황 선생님이 강연을 해주셨어요.

- 이번에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된 것을 보면 황 선생의 걱정이 맞았네요.

전 이들이 잡힌 게 너무 감사해요.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용기를 가졌다는 것도요. 그들에게는 맹목적인 유토피아 건설의 소망이 있잖아요. 사회주의 사상을 통해 평화 세상을 만든다는 헛된 꿈을 꾸고 그것을 진짜로 믿어요. 우리도 반성해야 해요.

개화시대에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만든다는, 세상 구원의 꿈을 줬는데, 지금은 그게 없어요. 그냥 물질주의와 개인 행복이 목사들의 강연 내용이죠. 기독교적 민주주의라는 방향 감각을 상실한 것이에요.

- 그렇다면 황장엽 선생은 주체사상을 공부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을까요?

본래 과학을 하고 싶었대요. ‘내가 그때 과학을 했으면 좋은데’라고 하셨어요. 일정시대에 시멘트 회사에서 일하던 중에 해방이 됐다고 해요. 그때 서울로 왔어야 했는데 부모가 계신 고향을 찾아서 북한에 갔대요. 황 선생님은 ‘그게 시작이야. 그게 잘못됐어. 여기 왔으면 그렇게 안 살았을 텐데’라고 하셨어요.

- 황 선생이 이렇게 속 깊은 얘기를 할 정도면 주 교수님에 대한 믿음이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이런 말을 했어요. ‘난 주 선생이 나보다 한 해 아래지만 누님처럼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는데, 자기 나름으로는 마음의 의지가 됐나 봐요. 시나 연하장을 써서 보낸 것도 있어요.

황 선생님 돌아가시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오라 해서 간 적이 있어요. 그분이 저한테 황 선생과 연애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마음대로 생각하세요’라고 하고 말았죠. 황 선생님이 남자로서야 뭐 볼 게 있나요? 그분도 여자가 아니라 신앙으로 마음의 위로가 됐을 거예요. 제가 의지가 됐던 것 같아요.

- 주 교수님은 탈북민 문제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지셨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전 북한 선교와 기독교 교육이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탈북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죠. 통일이 되려면 먼저 남북한 사람들이 통합돼야 하잖아요. 그리고 북한 선교를 위해서는 탈북자부터 선교해야 해요. ‘탈북자 종합회관’이라는 사업이자 프로그램을 만들어 하고 있어요.

 

“북한 선교를 위해선 탈북자 마음부터 얻어야”

 

- ‘탈북자 종합회관’ 활동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탈북자는 안착이 가장 중요해요. 그리고 기독교가 그 일을 해야 해요. 기독교 정신이 탈북자 마음에 들어가서 하늘의 소망을 가슴에 두고 용서받고, 마음의 치유가 되면서 안착이 되는 거예요. 탈북자는 그들을 이해하고, 치유하고, 사귀고, 만나면서 사랑과 생활로 감화시켜야 해요.

그래서 저희는 4박5일 프로그램을 만들어 같이 숙식하고 여행하면서 체험 학습을 해요. 5년 동안 1100명이 다녀갔어요. 그러니 전 늘 바쁘죠. 그 친구들이 하루에 한 번 씩만 전화해 봐요. 전 이게 북한에 기독교적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는 지도자를 양성하는 길이라 믿어요. 그래서 당신들이 편안하게 살려고 여기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북한 가서 소를 기르든지 사업을 하든지 각자 역할을 하나씩 맡아서 하라는 식으로 가르칩니다.

- 요즘 많은 단체들이 탈북민 지원 활동을 하는데 교수님이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탈북자를 대하는 것은 통일 이후 북한 주민들과 만나는 것에 대한 준비입니다. 우리 교인들이 탈북자를 끌어안는 훈련을 해야 해요. 그런데 북한 사람들은 순수 봉사를 믿지 않아요. 거기선 그런 게 없거든요.

이걸 해결하려면 저 사람이 나를 인격적으로 존중하는구나 알게해 줘야 해요. 사랑하고 친구가 돼야 해요. 이벤트로 밥 나눠주고 선물 주는 행사, 돈 주는 지원은 필요 없어요. 교육하고, 탈북자 애들 봐주는 식의 손으로 봉사하는 사랑이 진짜 사랑입니다.

 

인터뷰/강시영 편집국장 ksiyeong@futurekorea.co.kr
정리·사진/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