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0 재보궐선거의 출전 선수들이 모두 확정됐다. 이번 재보선은 당초 예상과 달리 경북 포항 남구와 경기 화성갑 지역구 두곳에서만 열린다.
새누리당은 경북 포항에 박명재 전 행정자치부 장관을 공천했고, 경기 화성갑에는 서청원 전 대표를 공천했다. 두 지역 모두 경선 없이 중앙당의 공천을 통해 후보를 확정했다는 점이 이례적이다.
이에 맞서는 민주당은 허대만 지역위원장을 포항 남구에, 오일용 지역위원장을 경기 화성갑에 각각 공천했다. 화성갑에 출마 가능성이 점쳐지던 손학규 전 대표는 당 지도부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결국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번 재보선이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양자 대결로 굳어진 가운데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일찌감치 재보선 불참을 선언한 바 있다. 이번 재보선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실시되는 마지막 선거다. ‘안철수 신당’의 재보선 불참은 신당 창당의 동력을 일부분 포기한다는 점에서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의원이 이번 재보선에 불참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분류된다. 우선 이번 재보선은 두 개의 지역구에서만 실시되기 때문에 기존의 예상과는 달리 ‘미니 총선’급으로 승격되지 못한 채 소규모로 치러진다. 따라서 안철수 의원으로서는 이번 재보선을 통해 신당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재보선에 불참한 안철수의 사연은?
두 지역구 모두 새누리당에게 우세한 곳들이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포항은 별도의 설명이 불필요한 새누리당의 텃밭이며, 경기 화성갑 지역구 또한 지난 세 번의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잇따라 승리한 지역이다. 2004년 총선에서는 탄핵 역풍에 힘입어 열린우리당 후보가 승리했지만, 2007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는 고희선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다.
이어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는 김성회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됐으며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에 실시된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도 고희선 후보가 새누리당 당적으로 당선됐다. 이어 고 의원이 별세하면서 재보궐선거가 열리게 되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으로서는 측근들을 출마시키더라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제3후보를 내고 무리한 승부를 걸었다가 패배하는 경우에는 정치적 위상도 흔들릴 뿐 아니라 야권 표를 분산시켰다는 비난으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자신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킨 데는 2005년에 실시된 두 번의 재보궐선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2004년 총선에서의 선방에 이어 2005년 4월과 10월 재보선에서 잇따라 승리하면서 ‘선거의 여왕’이라는 호칭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안철수 의원은 ‘재보선 승리’라는 중간 이벤트를 생략한 채 2014년 지방선거에 임해야 하는 상황이다. 즉 11월부터 2월까지 4개월 정도 창당 준비작업을 한 후 3월에 창당을 해서 지방선거를 맞이해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민주당 소속의 박원순 서울시장이 안철수 의원에게 비협조적이라는 점 또한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안 의원에겐 비관적인 변수다. 지난해 4월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입당한 박 시장은 안철수 신당 입당 가능성에 대해 현재까지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인상적인 성적을 거둬야 하는 안 의원 입장에서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박 시장이 신당에 합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비협조적인 박원순, 안철수에 ‘이중고’
오히려 박 시장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을 도전하는 것을 전제로 안 의원에게 역으로 ‘양보’를 요구하는 분위기다. 그는 지난 10월 8일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안철수 신당에서 서울시장 후보를 내겠다는 것이) 사실인지는 모르겠다”며 “기본적으로 안 의원이 지향하는 새로운 정치가 우리 사회에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에 협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안철수 의원의 최측근인 송호창 의원이 “공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내는 건 상식”이라고 받아치면서 양측의 감정 싸움 분위기까지 감돈 상황이다.
안철수 의원이 지난 2011년 10월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박원순 시장을 당선시킨 장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안철수 후보가 출마를 선언하자 그의 지지율은 50%대 이상으로 치솟았고,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던 박원순 후보의 지지율은 5% 미만이었다.
그러나 안 후보가 예상치 못한 양보를 하고 박 후보 지지 선언을 하면서 지지율이 낮았던 박원순 후보의 지지율은 폭등했고 급기야는 박영선 민주당 의원을 누르고 야권 단일후보로 선출됐다. 이어 그는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에게 7%p의 넉넉한 격차로 승리하고 서울시장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시장이 자신을 시장으로 당선시켜 준 안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에 선뜻 합류하지 않는 데 대해 안 의원으로서는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안철수 신당이 지방선거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가장 상징성이 큰 서울에서의 승리가 절대적인데, 박원순이라는 승산 높은 후보가 자신에게 합류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해 볼 때 박원순 시장이 야권 단일후보로서 새누리당과 1:1 대결구도를 만들 경우 내년 지방선거에서 선전이 예상된다. 그렇기에 민주당 소속으로 서울시장 재선에 도전하는 박원순 시장으로서도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추진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안철수 신당이 후보를 따로 내서 3자대결 구도가 형성된다면 진보좌파 유권자들이 대부분인 자신의 표밭이 잠식되면서 선거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내년 지방선거를 넘어 2017년 대선을 노리고 있다고 전제할 경우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를 하기 전에는 미묘한 갈등관계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이라는 거대 여당 앞에서는 지방선거 뿐 아니라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 모두 후보 단일화 없이는 승리가 어려운 입장인데 전국 규모의 큰 선거에서 일방적인 양보를 하는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념적으로 유사할 뿐 아니라 ‘反 새누리당’이라는 정파적 공통분모까지 가진 두 사람이지만 권력이라는 먹이 앞에서는 적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