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짐, 공기업 철밥통 부수기
국민의 짐, 공기업 철밥통 부수기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1.2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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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조 파업을 계기로 정부가 공기업 개혁에 본격적으로 칼을 빼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첫 번째 서두를 ‘공공부문 개혁’으로 시작했다.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LH공사, 한전(한수원 등 발전 자회사 포함)등 12곳을 중점관리대상에 포함시켰다. 사업축소·자산매각·복지감축 등의 개선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기관장을 교체하겠다는 방침도 나왔다.

우리나라 공기업들의 빚은 493조원, 나라 빚 443조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아무래도 비정상적이다. 그렇기에 대통령은 공기업 개혁을 ‘비정상화의 정상화’ 의제에 속한다고 선언했다. 공기업 개혁이 국정운영의 최우선 과제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공기업 개혁은 역대 정권에서도 항상 용두사미로 끝나던 문제였다. 거미줄 같이 얽힌 관치 시스템과 관료들의 밥그릇, 그리고 공기업 노조와 야합한 좌파 정치세력들의 저항은 늘 공기업 개혁을 구호에 그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공기업 개혁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이 개혁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고, 초기에 예상치 못한 오류들이 등장하면서 정치적 리스크를 수반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한 문제를 5년 단임의 대통령제로는 현실 여건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 우세하다. 다시 말해 공기업 개혁은 정치 권력의 지형, 기상도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이야기다.

정치 지형에 민감한 공기업 개혁, 왜?

이번 철도파업의 경우에도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초반에 ‘원칙고수’를 대응방침으로 시작했다. 파업에 참여한 490명의 노조원들이 직위해제되고 노조위원장들이 수배됐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연대 총파업을 결의하고 이를 ‘박근혜 퇴진’이라는 정치투쟁으로 변질시키자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철도파업 기간 중에 50%밑으로 하락했다. 민주노총의 정치공세 전략이 주효했던 것이다. 대통령으로서도 부담이 됐으리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 때도 수서발 KTX의 민영화 정책은 추진과 보류, 재추진이라는 우여곡절을 거치며 진행됐지만 결국 대선을 목전에 두고 새누리당의 요구로 백지화됐다.

노무현 정부 역시 김대중 정부 때 국회 소위를 통해 여야가 합의한 ‘전력 민영화’가 노사정회의에서 노조의 반발에 밀려 무기한 보류됐던 사례가 있다. 그 결과 발전소를 추가로 짓지도 못하고 민영화도 하지 못하는 4년간의 시간을 겪으며 결국 전력대란을 가져오고 말았다.

어느 나라든 공기업은 존재한다. 다만 선진국 공기업과 우리 공기업에는 상당히 다른 정책들이 작용한다. 무엇보다 선진국들의 공기업 운영에는 ‘구분회계’라는 정책이 구현되고 있다. 구분회계란 공기업의 사업을 부문별로 나눠 어떤 사업에 어떻게 비용과 원가가 소요되는지 파악이 가능하다.

이러한 제도가 선진국들의 공기업 회계에는 기본 사항이었지만 우리나라 공기업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아 왔다. 그러다 보니 코레일과 같은 경우 도대체 어디에서 가장 많은 비용이 발생하고 어느 부분에 부채가 많은 지 알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결국 뒤늦게나마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말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고 7개 시범기관에 구분회계 제도 방안을 마련해 내년 상반기중 구분회계 정보를 산출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상이 되는 공공기관은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철도공사, 한국수자원공사, 예금보험공사,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7곳이다.

LH의 경우 보금자리주택사업과 주택임대, 산업단지 개발, 행복도시, 혁신도시, 토지은행 등 구체적인 사업별로 회계를 세분화한다. 또 철도공사의 경우 운송사업(고속, 일반, 광역, 화물)과 사업개발, 수탁 사업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수자원공사는 수자원관리와 수도시설, 4대강사업, 경인아라뱃길 등으로 구분된다.

기재부 관계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러한 구분회계를 통해 정부 정책에 의한 부채와 경영 부실에 의한 부채 등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 가령 수자원공사의 경우 정부 정책인 4대강 사업과 아라뱃길 사업 등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면서 부채가 급증했는데 구분회계를 통해 책임 소재를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맞춤형 부채 해소 방안을 마련 할 수도 있다.

이러한 구분회계로 공기업의 재무상태가 투명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공기업 개혁의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무엇보다 공기업의 경영에 자율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경영 자율성부터 확보해야

선진국들의 경우 전기, 가스처럼 자연독점이 이뤄지는 공기업의 요금은 정부가 아니라 독립된 규제위원회를 통해 관리한다. 정부가 여기에 관여할 경우 공기업에 투자한 민간주주들의 재산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의 경우 그러한 문제가 제기됐던 사건이 있었다.

지난 2011년 8월 한전의 소액주주가 김쌍수 전 사장을 상대로 적정 수준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아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이유로 배임책임을 물으며 무려 2조8000억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 사건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

이 소송의 여파로 김쌍수 전 사장은 임기를 불과 며칠 남겨두고 사임했으며 소송의 여진은 계속돼 2011년 11월 한전 이사회는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10%대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단독 의결하는 초유의 의사결정을 내렸다.

한전의 소액주주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12년 1월 이번에는 정부를 대상으로 7조2028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정부가 한전에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을 요구해 주주들의 이익이 훼손됐다는 것이 소송의 이유였다.

일련의 이러한 사건은 민간자본을 이용해 상장한 공기업들이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으로 민간 주주들의 이익을 훼손시키면서 사업을 전개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

한전이 뉴욕에도 상장돼 있다는 점에서 외국인 주주들이 앞으로 한전에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였다. 선진국들의 공기업이라면 이런 식의 자율경영을 훼손하며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별도의 규제위원회를 통해 요금 등이 결정된다.

이울러 공기업 개혁과 관련해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는 ‘민영화’다. 문제는 이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국민 인식이 매우 편향돼 있다는 점인데 이는 노조와 좌파 정치세력들에 의한 선동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공기업 중에서 민영화할 수 있는 부문은 전부 민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방과 경쟁 원칙 없이는 우리나라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 윤 전 장관의 지론이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핵심은 ‘민영화’라고까지 주장하고 있다. 오랜 관치경제를 해온 관료의 입장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역으로 공기업의 관치 경영의 폐해가 그렇게 크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괴담으로 전락한 민영화 주장

사실 현재의 대한한공, KT, 포스코 등은 모두 국영 내지는 공기업들이었다. 이러한 기업들이 민영화돼 망하기는 커녕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배경은 수요자의 선택에 부응하려는 시장의 힘이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포철이 민영화 결정이 나던 김대중 정부 때 대부분의 진보좌파매체들의 제목은 ‘포철 국민의 품으로’였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같은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던 일들은 모두 ‘신자유주의 음모’로 주장된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물론 볼리비아나 페루와 같은 나라들에서 공기업 민영화는 실패의 길을 걷기도 했다. 이 문제를 면밀히 추적했던 세계적인 경제연구소 CATO는 대부분 남미와 같은 독재국가에서 공기업의 민영화는 시장원리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특정 지배계층이나 그 가족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 재산을 사유화하기 위한 민영화였다는 점을 자세히 보고한 바 있다. 그러한 국가들의 민영화를 충분히 민주화된 우리와 비교할 바는 아니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반대 주장은 거의 괴담 수준에 이른다. 이번 수서발 KTX의 경우 민영화될 경우 부산행 요금이 25만원에 이른다는 유언비어는 그 비슷한 거리를 영국 철도요금에 대입한 경우였다. 하지만 이는 엉터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먼저 영국의 장거리 열차 요금은 시기별로 다르고 예약과 비예약의 경우가 다르며 어떤 경로를 거치느냐에 따라 다르다. 또한 철도를 통근수단으로 하는 이용자들의 요금을 저렴하게 묶어 두기 위해 장거리 요금을 비교적 높게 책정했던 면도 있다.

만일 수서발 KTX의 부산행 요금이 25만원이라면 여행객들은 차라리 3만원대의 고속버스나 그보다 훨씬 저렴한 비행기를 선택하게 되고 수서발 KTX는 손님이 없어 도산하게 된다. 그렇다면 누가 도산이 불보듯 뻔한 요금을 받을 생각으로 KTX를 인수한다는 것일까. 그런 것은 ‘상상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라는 것이 김정호 연세대 교수(경제학)의 주장이다.

이렇듯 공기업 개혁 가운데 민영화는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정책임에도 민영화를 괴담 수준에 이르도록 만드는 배경에는 흔히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기업의 귀족노조가 있다. 이는 비단 공기업 노조에 한하지 않고 공공노조 전반의 문제로 인식해야 하는 점이 제기된다. 공기업 노조와 공공부문 노조들이 서로 연대해 있고 이들이 다시 민주노총이라는 정치노조 산하에서 이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기업 개혁의 핵심은 공공노조개혁

한국의 공공부문은 2011년 기준 공무원 100만 명, 공공기관 종업원 25만 명, 군인 63만 명, 국공립 교직원 41만 명을 포함해서 23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전체 경제활동인구의 12%, 최종소비지출은 GDP의 22%를 차지한다.

지난해 295개 공공기관의 빚은 34조원 이상 늘어났다지만 공공기관 직원 연봉은 큰 폭으로 올랐다. 이렇듯 공공부문의 급여 수준은 민간과 대등한 수준인 반면 복리후생은 민간부문보다 양호하고 고용도 거의 보장돼 있다. 이러한 공공기관의 노조 설립은 1980년대 후반 이후 이뤄졌다.

노조조직률은 48%로 9% 수준인 민간부문의 5배를 넘는다. 이들은 금융노련, 정투노련, 전력노련, 광산노련, 연합노련과 철도, 통신, 병원, 사무직, 언론, 지하철, 교직원 노조, 공무원 노조와 같이 광범위한 산별노조를 포함하고 있다. 이들 노조는 대부분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과 같은 상급단체에 가입돼 있다.

우리나라 공공노조는 힘이 세다. 민간 노조의 경우 소속 기업의 경쟁력에 노조가 많은 영향을 받지만 공공노조의 경우 공공부문에 경쟁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교조와 같은 공공노조는 정치 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그러다 보니 이익집단임에도 견제할 만한 장치가 없다.

공공노조는 공공부문의 지속적인 확대를 원한다. 철도공사와 공항공사는 국민의 세금으로 적자를 메움에도 민영화 반대 투쟁을 벌인다. 전교조는 교육정보 공개와 교원평가에 반대하며 좌편향된 이념의 확산에 보다 적극적이다.

이렇듯 공공기관 근로자들은 노조활동으로 민간부문보다 약 70% 높은 평균임금, 최고수준의 복리후생, 고용보장, 민간부문보다 많은 각종 수당과 휴가를 얻어냈다. 대부분의 공공기관 단체협약은 노조조합원의 채용, 이동, 평가, 승진 등 인사원칙을 사전에 조합과 협의 또는 합의하에 시행하도록 규정하는 등 사용자의 경영, 인사권을 침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문제는 이 공공노조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공기업의 경우 심각한 경영 모순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대개 수백조원의 부채를 안고 있는 공기업들의 2012년 수익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기획재정부는 28개 공기업들의 2012 회계연도 결산 결과 총매출은 145조2000억원으로 16조9000억원 증가했지만 순이익은 마이너스 3조4000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2조9000억원이 더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공기업들의 재무상태는 더 악화됐다.

공기업 개혁의 출발이 공공노조로부터 시작돼야만 하는 이유는 그들이 공기업 개혁에 가장 큰 반대자 이익집단이라는 점과 함께 그들의 임금에 국민 세금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용자는 정부가 아니라 국가이며 다시 말해 납세주권을 가진 국민이라는 사실을 정치권은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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