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 50년전 구글의 출현을 예언하다?
피터 드러커, 50년전 구글의 출현을 예언하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2.0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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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1909년 11월에 출생해 2005년 11월에 별세했다. 95세가 향년이고 죽을 때까지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는 놀라운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피터 드러커는 예술과 학문 분야에서 부흥을 누리고 있던 빈의 혜택을 고스란히 받았다. 당대를 호령하던 음악가, 미술가, 소설가, 정치가, 경제학자와 직접 만나면서 19세기의 사상을 20세기의 것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애덤 스미스 경제학의 원리를 배웠고 최초로 기업가 정신을 주창한 조지프 슘페터는 피터 드러커 아버지의 친구였다.

드러커의 이러한 지적 성취는 그에게 놀라운 통찰력과 예지력을 선물했다. 그는 이미 1960년대 지식사회의 도래를 예견하면서 지식작업(knowledge work), 지식근로자(knowledge worker) 등의 용어를 최초로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2002년에 집필한 <넥스트 소사이어티>에는 자본주의 경제하에서 제조업을 대체하는 지식산업의 도래와 이 지식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마치 오늘의 이야기처럼 생생하게 펼쳐진다.

피터 드러커가 꿈꾸던 미래

피터 드러커가 그린 미래세계로 잠시 들어가 보자.

드러커는 미리 가본 미래에서 정보혁명과 새로운 경제지역을 논한다. 정보혁명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그 영향은 과거의 그 어떤 사건들보다 더 근본적이다.

정보혁명은 지난 200년 동안의 두 사건, 즉 18세기 후반의 1차 산업혁명과 19세기 후반의 2차 산업혁명과 무섭도록 닮아 있다. 덧붙일 것은 정보혁명이 다음 사회에 초래할 가장 큰 영향은 아직도 완전히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혁명과의 비교를 통해 살펴보자.

1770년대 중반 와트가 발명한 개량 증기엔진이 촉발한 1차 산업혁명은 서구 사람들의 사고체계에 즉각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쳤지만 1829년 철도가 발명되기 전까지, 그리고 그로부터 또 한 세대가 지나 사전 지불 방식의 우편제도 등장과 전신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그것은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1940년대 중반 컴퓨터의 발명도 마찬가지다. 정보혁명의 증기기관 격인 컴퓨터의 등장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지만 정보혁명이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큰 변화를 초래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1990년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부터였다.

1차 산업혁명은 지적재산권, 다국적 기업, 유한책임, 노동조합, 소비조합, 기술전문대학 그리고 일간신문을 등장시켰다. 2차 산업혁명은 현대적 공무원제도와 현대적 협동조합, 상업은행, 경영대학 그리고 처음으로 여성들의 사무직종을 만들었다.

 

SNS의 등장과 새로운 혁명

피터 드러커가 별세한 2005년에는 페이스북과 같은 SNS의 등장이 없었다. SNS는 사람들을 더 수평적으로, 그리고 더 정보공유적으로 만들었다.

동시에 빅데이터의 본격적인 출범도 피터 드러커의 생존시기에는 볼 수 없었지만 이미 드러커는 그러한 정보혁명이 가져올 새로운 이슈들과 산업구조를 예견하고 있었다.

따라서 미래사회의 또 다른 모습인 새로운 경제지역은 새로운 기관, 새로운 이론, 새로운 이데올로기 그리고 새로운 문제로 구성된다. 새로운 경제지역-EU, NAFTA, 그리고 미국의 여러 자유무역지대-은 전통적인 의미의 자유무역도 아니고 전통적인 보호주의도 아니다. 2030년의 사회는 새로운 문제로 구성되는 사회이다.

피터 드러커는 <넥스트 소사이어티> 제2부 정보사회(The Information Society)에서 지식 근로자, 인터넷, 정보독해력 등에 대해서 말한다. 이 부분에서 지식 근로자의 출현이 등장한다. 드러커에 의하면 다음 사회의 근로자들은 지식 노동자들이며 이들은 전통적인 노동계급과는 관계없는 자유로운 계층들이다.

따라서 기업의 CEO는 마치 서로 독립적이고 대등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총괄하는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지식을 부의 창출요소로 활용하는 이들에게는 사용자와 근로자의 개념은 ‘파트너’로 변화한다. 이러한 드러커의 성찰은 구글을 비롯 미국의 IT회사들에서는 이미 현실로 구현되고 있다.

드러커에 의하면 정보혁명의 충격에 기름을 부은 것은 정보 그 자체도 아니고,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비롯된 것도 아니다. 의사결정, 정책 또는 전략수립에 활용되는 컴퓨터나 자료처리 기법의 효과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전자상거래(e-commerce)에서 비롯됐다.

전자상거래는 범세계적으로 상품, 서비스 그리고 놀랍게도 경영자 및 전문직업까지도 유통시키는 하나의 주요한, 아마도 궁극적으로는 가장 중요한 통로가 될 인터넷의 폭발적인 증가 때문에 가능해졌다.

전자상거래는 경제, 시장, 그리고 산업구조, 상품과 서비스 및 그 유통, 소비계층의 세분화, 소비자의 가치관, 소비행위, 직업과 노동시장 등에 심각한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그러나 전자상거래가 가져온 한층 더 큰 충격은 사회와 정치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관점 그리고 그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보는 관점에 준 충격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드러커의 해석이다.

지식근로자·전자상거래와 정보혁명

피터 드러커는 철도가 산업혁명을 일으킨 진정한 혁명 요소였다고 진술했다. 프랑스를 하나의 국가와 하나의 문화로 만든 것은 철도였다. 이유는 철도가 새로운 경제의 장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 지리(mental geography)를 급속히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사람들이 철도를 통해서 진정한 이동 능력을 갖게 됐으니 철도나 자동차의 영향력은 엄청나서 말로 형언하기조차 곤란한 것이었다.

오늘날 정보혁명에서 전자상거래와 지식 근로자의 출현은 과거 산업혁명기의 기차의 등장과 같은 충격을 사회에 전파할 것이라는 것이 피터 드러커의 전망이었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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