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유럽의 끝에서
포르투갈, 유럽의 끝에서
  • 미래한국
  • 승인 2014.04.24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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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땅이 끝나고, 이곳에서 바다가 시작된다.”

포르투갈의 위대한 시인 루이스 지 까몽이스(Luis Vaz de Camoes)는 자신의 조국을 유럽의 끝, 세상의 끝으로 표현한다. 대항해시대를 연 포르투갈의 밤공기는 찼다. 내가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밤 11시. 서울에서 느낄 수 없던 차분함이 바람과 함께 내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소박하고, 조용함 속에, 그 옛날 찬란한 역사를 꽃피운 포르투갈은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한 나라다.

대학 시절 파두(Fado)와 카네이션혁명으로 기억되던 포르투갈에서 내가 찾으려고 했던 휴식은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때, 리스본?”
“딱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거 같아.”
“그게 뭔데?”
“뜨란낄루”

평온한 나라 포르투갈

포르투갈에 위치한 한국 회사에서 일하는 내 친구는 나에게 포르투갈 여행이 어떤지 물었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뜨란낄루(Tranquilo)는 고요한, 평온한 그리고 잔잔하다라는 뜻을 가진 포르투갈어다.

첫날 아침 8시 호텔 앞 에두아르두 7세 공원(Parque de Eduardo VII)에서 내려다본 리스본 시내는 소박함 그 자체였다. 빨간색 지붕은 리스본 시내를 감싸도는 떼주(Tejo)강과의 경계선이 불명확할 정도였다. 노란색 전차는 리스본 시내를 관통하며 관광객을 실어 날랐다. 전차 때문인지 7개의 언덕으로 이뤄진 리스본이 크지 않아 보였다.

1902년 완공된 산타 주스타(Santa Justa) 엘리베이터는 리스본 시내 상부와 하부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수단이다.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는 리스본의 지형적 특징을 대표하는 구조물로서 정상에는 시내가 한눈에 펼쳐지는 전망대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리스본은 시내 전망이 어느 도시보다 좋다.

특히 뽀르따 지 솔(Porta de Sol), 성 조르지(Sao Jorge)성 등의 건물은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그 끝에는 대서양으로 이어진 떼주강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들은 떼주강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따뜻한 포르투갈 에스프레소 비까(Bica)를 즐길 수 있다.

벨렝(Belem) 지구는 시내 중심가에서 여유로운 노란색 전차를 타고 15분 정도 지나면 도착한다. 빽빽이 들어선 빨간 지붕의 시내와는 달리 탁 트인 강변에 마누엘 양식의 제로니모스 수도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제로니모스 수도원은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로 발견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수도원으로 옛날 포르투갈의 영광을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다.

수도원 앞 공원에 앉아 바라보고 있으면 170년의 건립 기간이 무색할 만큼 완벽하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스친다. 포르투갈의 전성기가 이 수도원 하나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화려하며 웅장하다. 현재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포르투갈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수도원 앞 강변에는 해양왕자 엔리케의 500주년을 기념하는 발견 기념비가 서 있어 웅장한 수도원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리스본 시내의 모습

왕실의 휴양지였던 까스까이스

포르투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에그타르트다. 빠스떼이스 지 벨렝 (Pasteis de Belem)은 19세기부터 제로니모스 수도원의 비법으로 에그타르트를 만들어왔다. 가게 앞에는 비가 내리는 날에도 줄을 서서 에그타르트를 사기 위한 사람들로 붐빈다.

나 역시 그 맛을 느끼기 위해 2개의 에그타르트와 포르투갈 에스프레소 비까를 주문했다. 주문한 에그타르트의 맛을 보며 170년의 에그타르트 역사를 만끽했다. 흥미로운 것은 빠스떼이스 지 벨렝 옆에 스타벅스가 있지만 손님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포르투갈 리스본이 맘에 들었던 이유 중 한 가지는 근교에 둘러 볼 수 있는 소도시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중 까스까이스(Cascais)는 왕실의 휴양지로도 이용됐을 만큼 풍경이 좋았다. 까스까이스의 모습은 바쁘게 움직이는 대도시와는 대조적이었다. 조용한 마을 옆에 넘실대는 대서양의 파도를 보고 있자면 머릿속 근심이 다 사라질 정도였다.

해안가에 앉아 한 시간이 넘도록 여유롭게 풍경을 바라봤다. 여행의 묘미라면 여유가 아닐까? 그런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 까스까이스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평범하지 않은 까스까이스는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장소이다.

이곳에서 다시 기차로 40분, 리스본으로 돌아와 찾아간 곳은 파두(Fado) 공연이었다. 대항해시대 저 먼 바다로 나간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파두는 포르투갈의 전통 음악이다. 보통 파두 공연은 밤 9시 정도에 시작돼 저녁 식사와 함께 와인을 즐기며 새벽까지 이어진다. 두 명의 기타 연주자와 파디스타(Fadista)라고 불리는 파두 가수로 이뤄진 공연은 암전 속에서 진행된다. 관객들이 숨죽여 공연자와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이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눈을 감고 노래에 빠져 흥을 즐기며 공연을 즐겼다.

비까와 에그타르트

진정한 포르투갈을 만나고 싶다면 포르투로…

리스본은 어쩌면 다른 유럽 도시와 크게 차이점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정한 포르투갈은 어디에 있나? 포르투는 리스본에서 3시간 반 동안 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도착할 수 있다. 포르투는 포트와인이 생산되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하지만 나는 와인보다 포르투갈의 정체성이 스며든 곳이라고 생각한다. 포르투는 소박하면서도 시간이 멈춘 듯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곳이다. 도우루(Douro) 강변에 떠다니는 자그마한 배들, 언덕 사이로 지나가는 노란색 전차 그리고 100년도 넘는 시간을 함께 한 고서점 등이 과거와 현재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도우루 강변에서 잠시 여유를 즐긴 뒤 동 루이스 1세 다리를 올랐다. 이 다리는 높은 언덕과 언덕을 이어준다. 다리 위에서는 포르투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또한 바로 옆으로 전철이 지나가 접근성 하나는 끝내주는 명소다. 그 전철을 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성 벤뚜(Sao bento)역이다. 관광객들은 포르투갈 전통 타일 아줄레주(Ajulejo) 양식을 성 벤뚜 역 안에서 만날 수 있다. 아줄레주 양식은 포르투갈의 건물과 도시 풍경처럼 화려하지는 않다. 놀라운 것은 소박함이 묻어나는 푸른 빛 아줄레주 양식이 아직까지 보존돼 현재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포르투갈은 여행자에게 최고의 관광지며 쉼터라고 권하고 싶다. 여유로운 포르투갈의 분위기처럼 포르투갈 사람들도 조용하다. 흥미로웠던 점은 도움을 요청하면 주변에서 몰려들어 친절함을 베푸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말문이 터지는 순간 몇 년간 알고 지낸 이웃사촌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1970년대 독재 정권을 무혈로 물러나게 한 카네이션혁명도 무뚝뚝한 포르투갈 사람들의 희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을까. 6박 7일의 짧지만 포르투갈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바쁜 시간을 보낼 때면 그 소박하고 한적한 그 곳이 가끔씩 그리워진다.

 

 이명구 포스코건설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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