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인종 우대, 더 이상 없다”
“소수인종 우대, 더 이상 없다”
  • 미래한국
  • 승인 2014.05.1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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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대법원, ‘백인 역차별’ 주장 손 들어줘
 

미 연방대법원은 지난 4월 22일 대학에서 신입생을 선발할 때 소수인종을 우대하는 소수인종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을 금지한 미시건대의 결정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미시건 주는 2006년 주민투표를 통해 공립 대학에 소수인종우대정책을 적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주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미시건대는 이에 따라 소수인종 우대정책을 신입생 선발 과정에서 금지했고 이에 미시건 주의 이 헌법개정에 대한 위헌소송이 진행됐다. 대법원은 이날 찬성 6명, 반대 2명의 판결로 미시건 주의 헌법개정이 합헌이라고 인정했다. 이번 판결은 소수인종 우대정책의 합헌성 여부가 아니라 누가 이 정책과 관련한 논쟁을 해결할 것이냐에 대한 것으로 각 주정부가 유권자들의 투표 등 합헌적인 의결과정을 통해 관련 정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준 것이다. 이에 따라 각 주에서는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얼마든지 소수인종우대정책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길을 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는 캘리포니아, 워싱턴, 플로리다, 미시건, 네브라스카, 애리조나, 뉴햄프셔, 오클라호마 등 8개 주에서 소수인종우대정책을 금지하고 있는데 이번 판결로 다른 주들도 그 뒤를 따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의 행정명령(11246)으로 시작된 소수인종우대정책은 흑인민권운동과 거의 역사를 같이 하고 있다. 당시 미국에서는 인종차별을 당해 왔던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돼 1964년 인종, 성, 출신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는 시민권법이 제정됐고 1965년에는 읽고 쓰기 능력 테스트나 투표세 등 사실상 흑인들의 투표 참여를 막던 정책들을 폐지하는 투표권리법이 마련됐다.

1965년 존슨 대통령이 도입

소수인종우대정책은 노예제도와 인종차별 등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해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지위에 있는 흑인들에게 취직 및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자는 제도다. 대학과 기업들이 입학생 선별이나 직원채용 과정 중 흑인과 같은 소수인종에게 적극적(affirmative)으로 정원의 일정 비율을 할당하거나 가산점을 주는 행동(action)을 취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이 정책 덕분에 많은 소수인종이 대학에 입학하고 기업에 취직하며 정부 사업을 수주하는 등 우대를 받아왔다. 대학의 경우 백인 학생만 있던 대학에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이 늘어나기 시작, 캘리포니아 버클리대의 경우 1990년 전체 학생의 23%가 히스패닉, 7%가 흑인이었다.

이 정책은 1990년대 중반부터 비판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첫째 이유는 역차별이다.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등 소수인종을 우대하다보니 백인이 역으로 차별당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2008년 백인 여학생 에비게일 피셔는 텍사스대 오스틴 캠퍼스 입학을 거부당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 자신이 백인이라는 이유로 같은 성적의 소수 인종학생들로부터 역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이 무시됐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대학들은 소수계 인종의 입학 인원을 할당해 놓고 있는데 이 경우 같은 실력의 백인 학생과 경합을 벌이더라도 소수계에게 우선권이 주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차별을 받을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제임스 웹 전 민주당 연방상원의원은 소수인종우대정책으로 백인의 역차별이 심화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웹 전 의원은 이 정책은 역사적으로 노예제, 인종차별 등을 겪은 미국 내 흑인을 대상으로 실시된 것이지만 1965년 새 이민법으로 대거 이미 온 모든 유색인종에게 적용되면서 이 정책은 백인을 역차별하는 것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흑인이 우리 정부로부터 당했던 고충은 미 역사상 전례가 없는 것”이라며 “하지만 얼마 전부터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사람들은 우리 정부로부터 차별을 받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웹 의원은 “소수인종우대정책은 최근 미국에 도착한 이민자들이 이 나라에서 몇 세대에 걸쳐 살았던 비슷한 처지의 백인보다 앞서게 하고 있다”며 “그 결과 인종 간 화합이 손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소수인종우대정책으로 피해 보는 아시아인

그는 백인 중에 소수인종 못지않게 특혜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 많다며 정부는 도움이 필요한 일부 소수인종에 대한 지원은 계속 해야 하지만 백인을 역차별하는 획일적인 소수인종우대정책은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수인종인 아시안계도 이 정책으로 차별을 받고 있다. 미국 아이비리그에 입학원서를 내는 아시안계 학생들은 지원서에서 인종을 묻는 질문에 ‘백인’이라고 표시한다고 한다. 아시안이라고 표기하면 아이비리그 대학이 아시안계 학생들에게 더 높은 입학 잣대를 들이대 SAT 점수가 다른 인종보다 높아도 입학하지 못하는 ‘차별’을 받기 때문이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신입생을 뽑을 때 아시안들에 대해서는 다른 인종과 달리 점수면에서 훨씬 높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린스턴대 토마스 에스펜세이드 사회학과 교수는 1997년부터 아이비리그 대학 합격자들을 조사했는데 당시 1600만점 기준의 SAT에서 백인은 1410점, 흑인은 1100점이면 입학이 가능했지만 아시안계는 1550점은 돼야 입학이 가능했다.

인종별로 SAT 점수 커트라인이 다른 것이다. 소수계 우대정책에 따라 아시안계 학생은 아시안계 학생 몫으로 정해진 비율 이상을 받지 않는 아이비리그 대학들의 방침으로 실력이 좋은 아시안끼리 경쟁, 커트라인이 다른 인종에 비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배경으로 캘리포니아는 1998년 대학 입학생 선발 때 소수인종우대정책을 금지했다. 순전히 실력으로만 입학생을 선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는 아시안 학생들 증가와 흑인, 히스패닉 학생의 감소였다. 2011년 기준 캘리포니아공대는 전체 학생의 1/3이 아시안계이고 버클리대의 경우 학생의 40% 가량이 아시안계다. 버클리대에서 1990년 각각 전체 학생의 22%, 17%를 차지하던 히스패닉, 흑인은 2011년 각각 11%, 2%로 급감했다.

둘째 이유는 이른바 ‘미스 매치’(Miss Match) 때문이다. 이 정책에 따라 대학에 입학한 소수인종 학생들이 수업의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데 이를 ‘미스 매치’라고 부른다.

 

특혜를 통해 입학한 학생들 적응 못해

리처드 샌더 UCLA 법대 교수는 “어떤 종류든지(인종, 운동 실력, 졸업생과의 연줄, 그밖의 다른 사항) 특혜를 통해서 입학하게 된 학생들이 겪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증거가 나오고 있다”며 “이들은 결국에는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졸업률이 낮으며, 이공대에서의 전과율이 높고, 대학생활에서 겉돌게 되고, 자존감도 낮아지며, 자격증 시험(예컨대 변호사 시험)에서 훨씬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샌더 교수는 “수만명의 소수민족 학생들이 우대정책을 통해 입학을 하게 되고, 특히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게 된다”며 “결과적으로 이 학생들은 과학 분야에서 다른 전공으로 전과를 하게 되고, 그 전공조차 사실상 더 쉬울 바가 없다면 저조한 성적을 거두거나 제대로 진학하지 못하게 된다. 그결과 STEM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백인이 흑인의 7배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셋째, 흑인들의 민권 신장이다. 대표적인 예가 투표권리법의 일부 조항이 위헌 판결을 받은 것이다. 연방대법원은 지난해 6월 흑인 투표권 보장의 보루로 여겨졌던 투표권리법(Voting Rights Act) 일부 조항을 위헌 판결했다. 연방대법원은 이날 과거 인종차별이 심했던 일부 남부지역의 주 정부가 선거법을 수정할 경우 연방정부의 승인을 사전에 받도록 한 투표권리법 4조를 위헌 판결했다.

이에 따라 앨라배마, 조지아,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등 9개주는 자체 선거법을 변경할 때 더 이상 연방 법무부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역사는 1965년으로 끝나지 않았다”며 투표권리법이 제정됐던 1965년과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흑인이 백인과 거의 비슷한 유권자 등록률과 투표율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2년 대선에서는 미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투표율이 백인보다 높았다. 흑인 투표율은 66.2%였고 백인은 64.1%였다. 1965년 투표권리법이 제정될 당시 미시시피의 경우 백인의 유권자 등록률이 69.9%일 때 흑인은 6.7%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4년 미시시피에서 흑인 유권자 등록률은 76.1%로 72.3%인 백인을 능가했다.

상하원 의원 등 연방 차원의 선출직에 당선된 흑인이 1970년 10명에 불과했으나 2010년에는 43명으로 증가했고 주 차원의 선출직 흑인은 1970년 169명에서 2010년에는 642명이 차지했다. 흑인 시장은 1967년 두 명에 불과했지만 2011년 초 658명으로 증가했다. 미국에서는 노예제와 인종차별의 뼈아픈 역사로 흑인 등 소수인종을 우대했던 것이 제도적으로 끝나는 시대가 됐다.


애틀란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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