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과 함께 떠나버린 것들 …
문창극과 함께 떠나버린 것들 …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7.08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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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총리 후보의 자진사퇴가 새누리당을 지지해 온 보수진영의 분열로 이어지고 있다. 그 분열의 양태는 심각하다. 일각에서는 ‘새누리 집토끼의 탈출 시작’이라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 철회와 레임덕의 본격화를 전망하는 의견들도 대두되고 있다.

“(문창극 총리 후보가) 자진사퇴한 이후 청와대 게시판에 수많은 글이 올라갔어요. 박근혜 지지자들이 박근혜 비판자로 돌변했습니다. 돌변해서 그동안 누적된 불만을 거기에 쏟아부었는데 아마 한 정치인이 지지자로부터 이렇게 많은 비판을 받은 것은 좌든 우든 처음이 아닌가 생각이 됐습니다.”

보수진영의 아이콘 조갑제 대표가 지난 30일 한 강연에서 한 말이다.

김대중 조선일보 주필은 1일자 사설에서 ‘박 대통령은 지금껏 들은 척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혼자’를 즐기다가 그야말로 ‘혼자’가 되기 직전이다’라고 썼다.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은 “문창극은 사퇴가 아니라 피살됐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줄 세력은 이제 없어졌다. 특정 지역, 특정 그룹 정도는 남아 있겠지만 의미 있는 오피니언 세력으로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우파 야당’으로 돌아섰다”고 한 칼럼에서 그렇게 단언했다.

분열하고 있는 보수진영

전통적인 보수진영의 여론이 이렇듯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날선 비판을 제기하게 된 배경은 사실 지난 대선에서 ‘대안 부재’라는 선택지의 한계가 있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많은 인사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소통과 행정능력에 의문을 가진 것은 사실이었다. 경제민주화와 세종시 문제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결정은 보수층 오피니언과 다른 것이었고 박 대통령의 반일친중적 태도 역시 보수진영의 불안감으로 남아 있었다.

대선 전, 박 대통령의 5·16과 유신에 대한 사과는 박정희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층에게는 뼈아픈 일이었지만 그래도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넘어간 것이 사실이었다.

“대통령이 되면 달라질 거라 생각했던 것이죠. 우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하면 종북과 좌파들을 척결할 것이고, 그런 기회를 얻기 위해 잠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는 것에 동의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문창극 사태를 보면 오히려 우리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에요.”

아스팔트 애국보수단체를 이끄는 한 우파 운동가는 자신의 심정을 그렇게 털어놨다. 아마도 그의 생각이 가장 오른쪽에 있는 보수진영의 생각일 것이다. 문창극 후보에 대한 대통령의 태도는 그러한 불안과 불만이 축적돼 있다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양상이라고 해석할 만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60%대에서 최근 30%대에 진입했다는 보도는 실제로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바닥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고정 지지율은 30%대를 보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아 있는 30%대의 지지자들이 과거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의 지지자들과는 달리 여론 형성에 전혀 영향력이 없는 메시지 수신자들이라는 점이다. 그나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옹호 논리를 창출하던 오피니언 그룹들은 박 대통령을 떠난 나머지 30%대에 있었다. 그들은 비판적 지지세력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정확히 예측했던 이영작 전 한양대 석좌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대통령의 리더십에서 찾는다. 대통령이 자신을 찍어 준 사람들을 믿고 일을 해야 하는데 반대파에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다보니 지지자들의 속을 새까맣게 만들고 있다는 해석이다.

속이 타들어가는 지지자들

“원칙대로 하면 됩니다. 법이 정한 원칙과 대통령이 소신에 따라 결정하면 지지자들이 집결하게 되죠. 돌아선 우파의 마음을 다시 돌려 놓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이영작 교수의 처방이다.

이 교수는 그러한 원칙의 회복의 첫단추로 전교조 사태를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할 것을 주문한다. 불법에 엄정하게 대응하고 자신에 대한 도전을 허락하지 말라는 충고다.

동시에 이번 KBS 사장 임명에 자신의 국정 철학을 제대로 구현할 인물을 임명해서 이에 반대하는 노조세력과 분명하게 승부를 볼 것을 주문했다.

그런 승부를 봤던 정치인들이 있다.

1989년 11월 노태우 대통령은 대처 영국 총리 대처와 회담하면서 대처 총리의 노사정책에 대해 이렇게 물었다.

“우리는 지난 30년간 열심히 배우고, 일하고, 수출해서 많이 발전했습니다. 요즈음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노사분규나 젊은층의 극단주의 등 어려움이 많습니다. 총리께서는 노사분규를 과감히 처리하여 산업평화를 이루는 데 성공하셨는데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노사관계의 비결은 간단합니다. 일반 노조원들은 순진하고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일합니다. 문제는 노조 지도층인데 그들이 모든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노조지도자(union boss)가 파업을 하려면 노조원 전체의 비밀투표에 의한 동의를 받아야 되도록 법을 고쳤습니다. 그랬더니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가담치 않았고 간혹 파업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피해가 있으면 그들에게 책임을 지우도록 돼 있습니다. 요는 노조 지도층의 독재적 권위를 분쇄해야 합니다.”

대처 총리는 1984년 소련의 자금지원을 받던 스카길의 탄광노조와 맞서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었다. 대처는 그 순간 대결은 불가피하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회고록에서 대처는 “노조가 정치적 목적을 가진 집단한테 넘어갔으므로 이제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썼다. 그녀는 탄광노조와의 투쟁에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었다. 그리고 승리했다. 결과는 영국 경제의 회생이었다.

정치생명을 걸었던 대처

미국 30대 캘빈 쿨리지 대통령(1923~29년 재임) 역시 그러한 인물이었다.

“미국의 국업(國業)은 비즈니스다(The business of America is business)”라는 미국이 가야 할 방향을 꿰뚫은 쿨리지는 주지사 시절 사회주의 노조 파업에 주군대를 파견해 강제 해산을 시켰다. 쿨리지는 노조위원장의 면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누구도 그 어느 때라도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할 권한이 없다.”

쿨리지의 이러한 원칙과 소신의 정치는 노동자 파업에 질려 있던 국민들에 의해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쿨리지 대통령 시절 미국은 역사상 가장 높은 경제성장과 발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길을 갈지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7·30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승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에 보수 재집결을 통한 승부전을 펼 것인지, 아니면 다시 새누리당이 중도좌파의 노선으로 좌클릭해서 포퓰리즘 전략을 구사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현재로서는 새누리당의 포퓰리즘 재구사가 유력해 보인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각종 공식 연설문은 매끄럽고 그럴싸한 어휘구사가 반복되지만 공허한 게 특징이다. 글만 그런 것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인식도 마찬가지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결정적인 대목이 제주 4·3 희생자 추념일을 국가기념일로 하겠다는 대선 공약이었다.”

조우석 미디어펜 논설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한마디로 ‘포퓰리즘’으로 정의한다. 특히 대통령의 현대사 인식이 엉망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박 대통령이 386적인 좌파 사관을 갖고 있는 것에 의문을 표했다.

그러한 의문은 어쩌면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는 핵심 참모진의 면면을 보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는 점이 있다.

우선 청와대 문고리 4인방이라 불리는 비서관들이 과거 대학 운동권 출신들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들은 1998년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함께 보좌관으로 참여했다. 이들의 성향은 사회주의 PD계열이었으며 구 소련의 몰락과 함께 운동의 방향을 잃고 민주화운동 진영내 NL주사파의 영향력에 밀려 전향이 아닌 퇴색한 이념가들이라는 평가가 있다.

한 예로 2004년에 뒤늦게 박근혜 대통령 진영에 참여한 조인근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은 서강대 운동권 출신의 논객이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고 이춘상 보좌관이 결성한 것으로 알려진 친박진영의 SNS그룹 <포럼동서남북>은 2007년 2월 과거 군사정권 때 학생운동을 했던 인사들이 주축이 됐다.

이들 비서관의 맏형은 이재만 총무비서관이다. 그는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다만 이재만 비서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의원 시절부터 핵심 보좌관으로 일해 왔으며 한양대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했다. 그의 지도 스승은 6·7·10대 국회의원을 지낸 원로 정치인 예춘호 전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이사장의 아들인 예종석 한양대 교수다. 예종석 교수는 2000년 박원순 시장과 함께 아름다운재단 설립을 주도했고, 그의 부친 예춘호 씨는 좌익투쟁으로 옥고를 치른 한겨레민주당 총재를 역임했다. 이재만 비서관이 갖고 있는 세계관의 일면이 어떤 것일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이렇듯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인식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청와대 핵심 그룹들은 자유 보수이념의 가치와는 태생적으로 거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종북이라거나 사회주의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다만 이들이 자유 보수의 가치를 내면화하지 않은 중도좌파성향의 세계를 갖고 있고 그러한 참모그룹의 활동 결과 경제민주화나 5·16과 10월유신에 대한 반민주성 인정, 제주 4·3희생자 추모일의 국경일 제정에 반대하지 않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보수와 거리가 있는 청와대 핵심그룹

정가에서는 이들 청와대 4인방과 보수 원로들인 7인회간에 알력이 본격화되고 있고 그 과정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이 추천한 문창극 총리 후보의 사퇴가 이뤄졌던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선택은 많지 않다. 남은 임기내 국정을 원활하게 유지하는 방법은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요구와 목소리를 국정에 반영하는 길뿐이다. 집권하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만든 국회선진화법을 발의한 그 결과가 자신의 레임덕만을 자초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직접 국민에게 물어야 한다. 거기에는 솔직한 진정성이 필요하다. 한일간의 외교갈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전교조의 불법 시위와 다가올 민주노총의 정치파업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원칙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권력을 잡았으니 ‘오늘도 무사히’라는 생각이라면 그것은 가당치도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가 그 평가를 회복해야 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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