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국가, 일본은 가능한가
정상국가, 일본은 가능한가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7.30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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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한정석 편집위원

지난 15일. 한국인들은 충격적인 뉴스 하나에 직면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 기지에 주둔한 미국 해병대가 출동하려면 일본의 양해를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
우리 정부는 즉각 성명을 통해 “주일미군은 한반도 유사시 후방 군수지원과 전략적 지원 역할을 위해 기지화돼 있는 만큼 자동투입 대상”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교도통신은 아베 총리의 발언을 인용한 뒤 “미일안보조약에 근거해 양국이 교환한 공문에 따르면 전투 행동을 위한 주일미군 기지 사용은 미일 간 사전 협의의 대상”이라고 아베의 발언에 힘을 실어줬다. 지지통신은 미국과 일본이 15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결정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하기 위한 협상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문제는 이제 동북아 질서의 변화를 가져올 무게중심이 됐다. 당연히 대한민국의 안보 역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의 영향력 하에 놓였다. 문제는 일본이 이러한 군사대국화를 ‘정상국가’ 또는 ‘보통국가’로의 길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일본이 말하는 정상국가의 의미는 무엇일까.

‘정상적인 국가’란 무엇인가

“정상국가라는 용어에 대한 공식적이거나 확립된 정의는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정상국가란 자신의 국익을 위하여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가라고 말하죠. 다른 이들은 영국과 프랑스처럼 핵무기와 같은 공격적 무력 투사능력을 가진 국가를 의미한다고도 보고 있습니다.”

일본 방위연구소 에이치 가타하라 소장의 말이다.가타하라 소장은 2007년 ‘일본의 정상국가(正常國家)로의 도약이 동아시아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세계질서의 변화가 일본으로 하여금 정상국가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은 정치권에서 집단적 자위권 정당화의 논리로 원용된다.

자민당의 전 사무총장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는 정상국가를 “국제사회에서 자연스럽다고 간주되는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고 (…) 국민들의 번영되고 안정적인 삶을 만드는 노력에 있어 다른 나라들과 충분히 협력하는 국가”라고 정의한 바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정상국가는 “스스로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 본래적 권리인 개별적이고 집단적인 자위권을 행사할 정치적 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무력의 사용을 포함할 수도 있는 국제적 집단안보 활동에 참여하는 국가”라는 의미다.

돌아보면 지금까지의 일본은 사실 정상국가는 아니었다. 2010년 동중국해에서 있었던 사건을 상기해 보자. 일본 해경이 중국 어선을 나포하자 중국은 즉각 석방을 요구하며 센카쿠 열도에 대한 무력 점유를 시사했다. 일본은 생각지 못했던 중국의 강경한 태도에 놀라 재판 없이 선장과 선원들을 석방했다. 이 사건은 일본 국민들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 사건을 기억한 듯 2012년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은 일본 국민의 자존심에 호소하는 공약을 마련하면서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국민의 안정과 안심을 최우선으로 개혁을 대담히 실행할 것. 둘째,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확실히 지원하고 취약한 입장의 사람이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것. 셋째, 일본의 문화와 자부심을 어린이들에게 물려줄 것.

자민당은 이 원칙들 가운데 ‘국민의 안정과 안심’을 집단적 자위권 추진의 배경으로 선택했다. 그것은 2010년까지 자민당이 천명했던 ‘일국평화주의’노선을 과감히 버리는 것이었다. 대신 ‘국가 안전보장 기본법’의 제정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실현한다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됐다.

결코 쉽지 않은 ‘역사전쟁’의 전선(戰線)

여기까지는 그리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일본은 이미 경제대국이며 세계의 어떤 나라든 자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 그리고 자유를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키는 것은 국가의 고유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얹어진 중국의 해양팽창 전략과 중일 영토분쟁 또한 일본으로서는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 변화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하다.

문제는 일본의 역사인식이다. 한국은 일본의 과거 식민지배의 경험과 위안부 문제를 들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비난에 가까운 입장으로 받아들인다. 중국 역시 입장은 같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 역시 일본의 손을 들어 주지 못한다.

그래도 일본은 강경하다.

“총탄이 퍼붓는 전장에서 생명을 걸고 뛰어다닐 때에는 맹렬집단, 정신적으로 드높은 집단을 위해주고 싶다고 생각해 위안부제도가 필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러 전쟁에서 보면, 승리한 측이 패배한 측을 강간했다거나 하는 등의 일은 산적해 있다. 위안부와 같은 일정의 제도가 필요했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2013년 5월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 시장은 위안부 제도가 전쟁에서 가능한 것으로 발언해 곤욕을 치렀다. 와세다 출신의 46세 젊은 변호사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게 놀랍지만 사실 하시모토 시장의 역사관은 일본 엘리트들이 갖고 있는 수정주의 사관으로 일컬어진다.

이면우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를 일본인들이 갖는 ‘역사(상대)주의(historicism)’라고 해석한다. 모든 현상이 역사성을 지니며 따라서 역사적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 현상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철학적 입장이다. 즉 역사란 현재의 시대정신에 의해 필요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럼으로써 이 문제는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역사전쟁’이라는 전선을 만들어 낸다. 일본 국민들이 갖고 있는 정신적, 문화적 자부심이 일본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일본 경제의 끝없는 추락이 자리한다. 1등 국가에서 2등을 거쳐 3류 국가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일본인들의 우려는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에서부터 비롯됐다.

2012년 8월에 발간된 아미티지-나이 보고서(The Armitage-Nye Report)는 현재의 미일관계를 표류(drift)로 규정하면서 이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미국과 같은 일등국가(tier-one nation)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일본은 지금 일류 국가로 존속하느냐 아니면 이류 국가로 떠내려가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와 출생률 감소, 200%에 달하는 GDP 대비 부채 비율, 6년 간 6명의 총리가 왔다 갔다 하는 정치적 불안정,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 만연한 비관주의와 내부 지향적 태도 등은 일본이 과연 국제이슈에 대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일류국가로 존속할 수 있을지 우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본에 충격 준 한 편의 보고서

이 보고서는 일본 정계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 동시에 아베 총리로 하여금 개헌을 통한 정상국가화와 이를 실현할 집단적 자위권의 추진에 확신을 불어 넣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문제는 이 보고서가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는 한일관계였고 그 핵심은 ‘역사문제를 해결하라’는 메시지였다. 하지만 아베 내각은 자신의 국민적 지지율을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 때문에 이 역사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전향적으로 나올 수 없었던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결정적인 딜레마는 오바마 미 행정부에도 존재했다. 미국은 일본의 역사왜곡과 과거 군국주의를 연상케 하는 정치인들의 발언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여 왔다. 이 부분은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아미티지는 지난해 일본을 방문한 자리에서 고노담화의 개정이 미국 정계의 대일관(對日觀)을 부정적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10월 초 미일안보협의위원회 회의(2+2)를 위해 일본을 방문한 존 케리 미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이 야스쿠니 신사가 아닌 ‘치토리가후지’(千鳥ケ淵)라는 전몰자 묘역을 방문한 것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다. 미국이 역사문제와 관련하여 일본 정부에 대해 비판적임을 보여준 사례라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미국이 일본의 역사관에 비판적인 입장을 갖는 이유는 오바마 미 행정부가 추진하는 아시아중시정책에 있다. 이면우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이 이 정책에서 두 가지의 목표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현재와 같은 미국의 지배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이에 도전하는 세력의 등장을 저지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아시아 지역시장 및 안보상의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미국이 이런 목표를 추구하는 데 있어 일본은 중요한 파트너다. 따라서 집단적 자위권 도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 안보적 차원에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한다. 하지만 일본이 지역 내에서 공고한 위치를 유지해야 하기에 역사 인식 문제와 관련해서는 비판적 자세를 유지한다는 해석이다.

미국과 일본은 서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조사가 있다. 중국을 바라보는 미국과 일본의 시각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이는 한일관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2013년 1월 요미우리신문이 실시한 미일 공동여론조사 결과는 일본이 중국의 부상에 대해서 얼마나 위협을 느끼는지를 미국과 비교해 잘 말해줬다. 중국과 관련된 문항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현재 일본과 미국의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일본인 응답자들은 첫째 수뇌들의 신뢰관계(84%), 둘째 중국에 대한 대응(82%), 셋째 무역 및 경제문제에의 대응(81%), 넷째 북한에 대한 대응(77%), 그리고 다섯째 자위대와 미군의 연대강화(76%)로 답변했다.

반면 미국인 응답자들은 첫째 수뇌들의 신뢰관계(85%), 둘째 무역 및 경제문제에의 대응(80%), 셋째 자위대와 미군의 연대강화(77%), 넷째 북한에 대한 대응(74%), 그리고 다섯째 중국에 대한 대응(70%)의 순으로 답했다.

‘일본(미국)에 있어서 군사적인 위협이 될 것으로 생각되는 국가 및 지역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답변은 갈렸다. 일본인 응답자는 첫째 중국(79%), 둘째 북한(77%), 셋째 러시아(45%), 넷째 중동(39%), 다섯째 한국(37%)으로 응답한 반면 미국인 응답자들은 첫째로 중동(74%) 둘째 북한(72%), 셋째 중국(58%), 넷째 러시아(41%), 다섯째 아세안(28%)의 순으로 답변했다. 일본과 미국 양국이 중국의 부상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인식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일본(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양호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일본인 응답자들의 경우 “나쁘다”(52%)와 “매우 나쁘다”(33%)는 부정적인 답변이 대부분이었던 반면, 미국인 응답자들은 “양호하다”(24%)와 “어느 쪽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51%)로 평가했다. 미국의 경우 “나쁘다”(14%)와 “매우 나쁘다”(6%)는 합해서 20%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일본과 대조를 이뤘다.

‘중국을 신뢰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일본인 응답자들은 앞선 질문들에 대한 응답과 마찬가지로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38%)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50%)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배적으로 피력했다. 반면 미국인 응답자들은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33%)와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30%)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많았다. 다만 긍정적인 이미지의 “다소 신뢰한다”(35%)는 비율도 일본(6%) 보다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상대방국가(미국 또는 일본)와 중국 중 어디가 더 중요하겠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일본인 응답자들의 과반수가 ‘미국이 중요하다’(59%)고 답변한 반면, 미국인 응답자들은 ‘일본’(41%)이 아닌 ‘중국’(54%)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일본의 중요성도 결코 작게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이 질문 역시 위에서 나타난 ‘미일중’ 3국간의 불균형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일본 ‘정상국가’의 길에 대한 대응전략을 도출할 실마리를 얻게 된다. 하나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과 군사대국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 역시 단기간 안에 전향적으로 변화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결국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미국을 중심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미·일 간의 국가적 이익 관점에서 미국이 중국을 보는 시각과 일본이 중국을 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 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성립한다. 다름 아닌 역사문제가 일본 국가정상화의 ‘아킬레스건’이라는 사실 말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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