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위기론의 진실
삼성 위기론의 진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8.06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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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한정석 편집위원
ⓒ미래한국 고재영

삼성에 대한 위기론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 7월 8일 삼성전자는 공시를 통해 올해 2분기 매출액 52조, 영업이익 7조2000억의 실적을 발표했다. 시장의 반응은 충격 그 자체였다. 매출과 이익 모두 2년 전으로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실적은 오너 이건희 회장이 투병으로 삼성의 경영에 관여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더 빠르게 ‘위기론’으로 연결됐다.

이와 같은 실적 부진은 삼성의 주력사업인 스마트폰과 같은 정보통신(IM)부문의 매출 부진이 원인인 것으로 지목된다.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이지만 막상 삼성전자가 혁신적인 신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위기의 ‘본질’로 회자되는 것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입장은 좀 다르다.

삼성전자는 8일 이례적으로 설명 자료를 내고 2분기 실적이 시장의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한 배경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실적 악화 원인으로 ▲원화강세 ▲스마트폰과 태블릿의 판매 감소 ▲재고 감축을 위한 마케팅 비용 증가 ▲무선 제품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시스템LSI ▲디스플레이 사업 약세 등의 영향을 꼽았다.

이들 원인 중에 원화강세는 삼성전자의 경쟁력과 연관돼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정보통신부문의 실적 악화 원인은 구조적 문제라기보다는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게 삼성 측의 설명이었다.

 

일시적 현상인가, 본질적 문제인가

삼성전자의 매출과 영업부진이 ‘일시적 현상’인 것이라면 삼성전자 위기론은 과장된 측면이 없지 않다. 삼성은 항상 ‘위기경영’을 상시적 경영체제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항상 ‘잘 나갈 때가 바로 위기’라는 말을 강조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위기론이 쉽게 잦아들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삼성전자가 이미 정보통신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런 삼성그룹이 대한민국 경제에 차지하는 부분이 압도적이라는 사실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삼성의 수출액은 지난해 1572억달러로 한국 전체 수출액 6171억달러의 25%를 차지했다. 지난해 매출 상위 100대 기업은 2012년부터 2013년까지 1만7669명을 고용했는데 이 기간 동안 삼성의 3대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5094명, 삼성물산 854명, 삼성전기 500명 등 3곳에서만 6448명(36.4%)을 충원했다.

지난해 30대 그룹의 유·무형 투자액(연구개발비 제외) 95조8000억원 중에서 삼성의 투자액은 30%(28조7000억원)를 차지했다. 국내 증시에서 삼성그룹 상장사들의 시가총액은 증시 전체의 약 30%에 달한다. 가히 절대적이라고 할 만하다.

이러한 삼성이 국내외에 처한 환경은 심각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이 처한 현실을 “선두기업은 끊임없는 추격을 받고 있고 부진한 사업은 시간이 없다”고 표현한 바 있다. 삼성전자의 스피드 경영이 한계에 왔고 창조적 혁신경영으로 넘어가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의미하는 발언이었다.

“과거 삼성은 관리적 측면을 강조해 ‘관리의 삼성’을 모토로 했었죠. 60~70년대는 관리만 잘해도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이 80년대 이후 더 이상 통하지 않았어요. 세계화와 더불어 제품 경쟁력이 중요한 시점이 온 것이죠. 이때 삼성은 위기를 체감했고 이건희 회장 주도로 ‘전략의 삼성’으로 넘어갑니다.”

삼성SDI사장, 삼성종합기술원장, 삼성인력개발원장 등을 역임한 손욱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원 센터장의 말이다. 그는 말단 사원에서 삼성 전략기획실 전무에까지 올라 삼성의 경영혁신을 실무적으로 이끈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러한 손욱 교수는 삼성 내부에서 말하는 위기론은 ‘전략적 경영 차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건희 회장이 주도한 ‘전략의 삼성’

“1993년, 200여명의 삼성 임원들은 이건희 회장의 명령으로 유럽 선진국들의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토론을 해야 했습니다. 그때 삼성전자의 제품들은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죠. 당시 유럽의 선진기업들을 보면서 삼성 임원들이 받은 자괴감과 충격은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는 수준이었어요. 이건희 회장은 아예 경영을 중단해도 좋으니 임원들이 보고 깨달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자식과 마누라를 빼고 모든 걸 다 바꾸라’는 말로 요약되는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그렇게 나왔다. 사내에서는 격렬한 토론이 일었다. 이후 삼성은 1등 기업들이 하는 방법을 벤치마킹하는 방식으로 진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전략의 삼성’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그 결과 국내 대기업 절반이 몰락한 97년 IMF 위기에도 삼성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미 글로벌 스탠더드에 충실한 삼성이기에 생존할 수 있었다는 평가는 그래서 붙는다. 삼성과 라이벌이었던 현대그룹과 대우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해체된 사실은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1등 벤치마킹 전략’은 결국 ‘타도 소니’를 실제 상황으로 만들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반도체가 삼성을 망하게 할 것’이라고 평가했지만 결국 삼성 반도체는 세계 1위가 됐다. 국내에서는 휴대폰 1위 기업 모토롤라를 삼성 애니콜이 몰아내 버렸다. 삼성은 그러한 과정에서 ‘하드웨어 1인자’라는 평가를 얻어냈다. 하지만 숙명일까. 위기는 바로 그 하드웨어에서 시작됐다.

‘하드웨어’에서부터 비롯된 위기

2007년 1월 9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애플의 아이폰이 발표됐을 때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의 휴대폰 사업은 이제 끝났다고 예상했다. 아이폰은 휴대폰의 개념을 ‘휴대용 멀티미디어’라는 개념으로 바꿔버렸다.

아이폰의 강력한 인터페이스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의 힘이었고 이는 삼성전자로서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결국 구글의 개방형 안드로이드 솔루션을 채택해 ‘옴니아’라는 스마트폰을 시장에 내놨지만 아이폰에 비교할 바가 되지 못했다.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이 운명을 다한 것처럼 생각됐던 순간이었다.

추세가 역전된 것은 2010년부터였다. 삼성의 갤럭시S 시리즈 스마트폰이 애플을 무섭게 추격하더니 2013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 아이폰을 밀어내고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던 것이다. 그 힘의 배경은 사실 소프트웨어의 승리라기보다는 삼성이 가진 반도체와 액정 패널, 부품들의 수직적 결합에 의한 집요함의 승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하지만 이 역시도 레노버와 샤오미와 같은 중국 기업들에 의해 강력한 추격을 받는 입장이 돼 버렸다.

“신(新) 성장 동력의 해답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융합에서 찾아야 하는데 삼성은 제조업 중심의 하드웨어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지난해 6월 삼성 신경영 20주년 국제 심포지엄에서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은 삼성전자의 오늘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는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말로 삼성의 위기를 말한다. “지금 삼성이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와 휴대전화 세계 1위 자리는 언젠가는 다른 기업으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고 강조하는 현 전 회장은 삼성에 ‘제2의 신경영 선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제 삼성은 관리의 삼성, 전략의 삼성을 넘어 ‘창의의 삼성’으로 가야 하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창의력이란 개인들로부터 나오는 것이고, 결국 인재양성과 휴먼캐피털에 얼마나 투자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죠.”

손욱 서울대 교수의 이야기다.

삼성전자의 창의성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석학도 있다. 바로 브랜드 전문가 케빈 켈러 다트머스대학교 교수다. 그는 “삼성전자가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소비자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삼성이라는 브랜드의 이미지가 소비자들의 마음을 뒤흔들 만큼 감성적(emotional)이 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창의적이고 감성소구적인 면이 삼성전자에게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 최근 작가 복거일은 삼성에 대해 중요한 화두를 일간지 칼럼으로 제기했다. 삼성의 거대화에 따른 ‘관료주의’ 문화가 삼성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것은 삼성이 과거 ‘관리의 삼성’으로 성장할 때 기반이 됐던 사내문화의 잔재라고 볼 수 있다. 손욱 교수는 “관리의 기술과 전략의 기술이 사내에서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복거일 작가는 그러한 현상을 ‘변경(邊境)을 잃어버린 삼성’이라는 말로 요약한다.

‘변경(邊境)을 잃어버린 삼성’

변경이란 항상 도전과 창조가 일어나는 곳이다. 정착지에서는 더 이상 모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 삼성은 그러한 변경을 찾아서 위대한 개척의 노력을 경주해 왔지만 오늘의 삼성은 개척이 아닌 안주에 머무르려 하는 모습이 보인다는 지적이다.

삼성 내부의 관료주의는 민간기업도 거대화되고 중앙집권화되면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관료주의가 창의성의 적(敵)이라는 점에서 복거일의 주장은 되새겨 볼 만한다. 그러한 점에서 삼성전자의 위기는 리더십의 위기라는 해석도 가능해진다. ‘이건희 없는 삼성이 건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그래서 나온다.

이 문제와 관련해 패트릭 라이트 서던캘리포니아대학교 경영대 학장은 ‘포스트 이건희’의 리더십 문제를 거론한 바 있다. 그는 삼성전자가 애플의 인재 경영을 주목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애플의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정신을 유지하면서 이를 전략적으로 보완하는 팀 쿡과 같은 경영자가 삼성전자에 존재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문제는 삼성의 민감한 후계 구도 문제로 이어진다. 어떤 면에서 삼성이 피하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쟁점에 대해서도 매우 흥미로운 관점이 있다. 바로 삼성전자를 몇 개의 ‘전문기업’ 단위로 분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주장은 안티 삼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아니라 삼성에 우호적인 인사들로부터 제기됐다. 삼성전자 내 반도체사업과 가전사업, 정보통신사업 등의 융합이 과거처럼 시너지를 내기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휴대폰 사업을 향후 전기자동차 사업과 연계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렇듯 하나의 사업이 별개의 DNA를 가진 다른 사업과 연계되려면 해당 사업의 의사결정과 경영이 보다 신속하고 전문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 삼성전자는 다른 기업들과 제휴 사업을 하기 위한 조인트 벤처 설립 등의 문제에서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덩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조선일보가 개최한 ‘삼성전자 없는 대한민국’ 포럼에 토론자로 참석한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의 발언은 주목을 끌었다. 그는 “삼성전자에 대한 한국경제의 의존도가 지나치게 크기에 미래를 위해 삼성전자를 여러 기업으로 쪼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의 의도는 물론 삼성전자의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데 있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을 분리할 경우 50% 정도의 기업가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증권가의 분석도 존재한다.

삼성전자 분할론은 가능할까

물론 이 문제는 포스트 이건희 체제로서 삼성의 경영 승계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삼성의 관료주의를 극복하려면 의사결정의 전문화와 분권화라는 숙제를 풀지 않고서는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카이스트 장세진 교수와 스위스 IMD비즈니스스쿨의 파샤 마흐무드 교수가 삼성 신경영 20주년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제안은 상당한 무게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사람은 삼성의 미래 전략과제가 외국기업 인수합병과 지속적인 인재 확보, 창조성과 외부의 혁신을 받아들이는 방법 등에 달려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장세진 교수는 “삼성의 미래는 창조성과 외부로부터의 혁신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렸다”라고 주장하며 과거 삼성의 성공적 전략이 개방성과 협력적 네트워크체계를 강화할 때 주효했음을 상기시켰다. 따라서 앞으로 해외 전문기업들과 인재들을 얼마나 수용하고 협력네트워크를 구축하느냐가 관건이라는 주장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삼성의 위기를 삼성만의 위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기’라는 관점으로 돌아봐야 할지도 모른다. 삼성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겠지만 그러한 삼성을 대하는 대한민국의 입장은 무엇이냐는 질문 때문이다.

최근 최경환 부총리팀은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과세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하지만 기업의 사내유보는 실질적으로 이미 투자된 자산이라는 점이 지적되고 이 정책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자 ‘기업소득 환류세’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의 현금성 자산에 과세하겠다며 이때 ‘해외투자는 투자로 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렇게 되면 향후 삼성과 같은 대기업들에는 해외기업에 대한 인수나 투자, 첨단기술 도입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

정작 심각한 위기는 삼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삼성과 같은 대기업을 대하는 한국의 정치권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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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2015-07-13 11:20:06
옵니아는 안드로이드가 아니었습니다. MS의 Window Mobile이라는 OS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