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되는 ‘최경환노믹스’
걱정되는 ‘최경환노믹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8.1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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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과세를 하자는 법안이 야당으로부터 발의됐다. 발의의 주인공은 새정치민주연합(새민련)의 이인영 의원이었다. 그때 새누리당의 한 중진은 이렇게 말했다.

“기업에 세금을 매긴다고 투자가 늘어날 거라 생각한다면 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그 여당의 중진 의원은 다름 아닌 현 최경환 부총리였다. 기세 좋게 말했던 그는 8개월 만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당시 반대했던 사내유보금 과세를 정책으로 내놨다. 경제학자인 그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 같은 것이 있었을 리는 없어 보인다. 그의 180도 바뀐 정책에 재계는 아연실색했다.

최경환 부총리는 금융경제학으로 위스콘신에서 경제학 박사를 했다. 시장경제론자였고 재계로부터 지지를 받던 학자였다. 그러니 그 스스로 반대했던 사내유보 과세는 자신이 입안한 정책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결국 현 정권의 ‘실세’로부터 주문된 경제정책이라고 봐야 하고 그렇기에 효과를 알 수 없는 ‘정치적 계산’으로 봐야 한다.

최경환 부총리는 그러한 이상한 길을 ‘지도에 없는 길’이라고 표현했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최경환노믹스’는 모험주의와 포퓰리즘의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는 위험한 도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 부총리

목적은 ‘내수 회복’ … 결과는?

최경환 부총리팀의 경제정책은 한마디로 ‘내수 회복’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는 이제까지의 부동산 정책을 ‘한겨울에 여름옷’으로 비유했다. 냉랭한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시키기에는 지금과 같은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은 효과가 없다는 게 최 부총리팀의 관점이었다.

최경환 팀의 부동산 정책은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 ▲LTV·DTI 완화 ▲주택청약제도 완화 ▲분양가상한제 폐지 등으로 등장했다. 이에 시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강남권 재건축과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거래 문의가 늘고 호가가 뛰는 등 부동산시장 곳곳에서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한국감정원은 지난 7월 마지막주 서울 아파트값이 0.02% 올라 16주 만에 상승세로 전환됐다고 발표했다. 부동산가격의 선행지표격인 경매시장의 열기도 달아올라서 지지옥션에 따르면 7월 수도권 아파트 평균 낙찰가율은 84.5%로 지난해 동월(78.5%)보다 6.0%포인트 올랐다. 기존에 집을 보유한 사람도 청약에 당첨될 수 있도록 청약제도를 바꿔 유주택자의 분양 가능성을 높이고 대출규제를 푼 것은 주효한 정책이었다.

일단 부동산 경기의 활성화 물꼬를 튼 새 경제팀은 기업의 소득을 가계로 환류시킨다는 ‘기업소득 환류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사내유보에 과세하겠다던 정책논리에 허점이 드러나자 이름을 바꾼 조삼모사형 정책에 불과하다.

기업들의 사내유보는 현찰을 회사에 쌓아 둔 것이 아니라 운전자산이나 기타 유동자산 등에 이미 투자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새 경제팀은 이제까지의 유보금은 놔두고 앞으로 형성되는 새로운 유보금에 대해 배당이나 투자를 하지 않을 경우 과세하겠다며 그 이름을 ‘기업소득환류세’라 명명하는 촌극을 벌였다.

가관인 것은 이 정책의 담당자인 세무공무원의 발언이었다. 기업이 해외에 투자하는 것은 가계로 소득을 환류하는 것이 아니기에 과세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 그렇게 되면 기업은 자신의 이익을 해외 유망기업 인수합병이나 조인트 벤처 설립, 첨단기술 구입, 원자재 확보와 같은 부분에 투자해야 하는 투자비용이 늘어나게 된다. 최경환 경제팀이 이 정도 사실을 모를 리는 없겠지만 일단 세월호 참사로 이반된 민심을 ‘대기업 때리기’로 달래보자는 속셈이 읽히는 대목이다.

‘지도에 없는 결과’ 나올 수도

무엇보다 최경환 경제팀의 야심찬 계획은 ‘무제한 재정확대’에서 극대화된다. 무려 41조원의 정부지출을 통해 죽어가는 경기를 되살려보겠다는 계획이지만 사실 이러한 계획은 막대한 공적자금 투여와 재정확대로 ‘잃어버린 20년’을 겪어야만 했던 일본 경제가 갔던 길이다. 이런 길을 새 경제팀이 ‘지도에 없는 길’이라고 표현한 건 사실 그 길이 포퓰리즘으로 뻗어 있는 길이자 ‘정치적 노림수’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은 아닐까.

그 결과는 제대로 훈련된 경제학자라면 누구나 고개를 가로젓게 되는 ‘망조의 길’이다. 상식에만 입각해 판단해 보더라도 불경기에 그렇게 막대한 돈을 풀어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아무도 불황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무조건 돈을 풀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뉴딜정책은 미국 경기를 살리지 못했다. 미국 경기가 천문학적인 정부의 재정투입에도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 비로소 성장의 모멘텀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부에 ‘더 이상 쓸 만한 재원이 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부 지출이 멈춘 곳에 민간 부문들이 작동되기 시작하면서 미국경제는 1950년대와 60년대에 불황에서 탈피, 급격한 호황 국면으로 진입했다.

정부가 재정을 늘리면 늘릴수록 민간부문의 자금조달 코스트는 높아지고 비효율이 증대한다. 결국 단기적으로 거품을 통해 경기가 좋아지는 착시 현상을 빚을 수 있지만 이는 진정한 성장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김대중 정부 시절 인위적으로 확대한 신용카드 경기의 거품이 꺼지면서 겪은 충격과 고통을 잘 기억하고 있다.

41조원의 경기부양은 시베리아 벌판에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는 것과 같다. 당장은 몸이 녹고 따뜻한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겠지만 그 물이 식어 얼기 시작하면 결국 동사에 이르는 쇼크를 피할 수 없다. 이 파국을 막기 위해 다시 더 많은 더운 물로 샤워를 하게 되고 끝내 더운 물이 떨어지면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디폴트’를 선언하게 된다. 최근 아르헨티나 디폴트 사태는 정부 공공지출이 복지라는 이름으로 한 번 확대되면 이전으로 다시 돌리기가 불가능하다는 진실을 말해준다. 복지의 이름으로 투입되는 공공지출은 마약과 같기 때문이다.

최경환 부총리는 아베노믹스를 모방하면서도 아베노믹스의 약발이 더 이상 듣지 않으려 하는 국면에 사내유보 과세라는 어처구니없는 칼을 빼들었다. 그걸 ‘지도에 없는 길’이라 부르는 건 자유겠지만 그 결과 대한민국이 ‘지도에 없는 나라’가 되지는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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