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이 중요하다
‘2등’이 중요하다
  • 미래한국
  • 승인 2014.09.04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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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훈 미래를여는청년포럼 조직운영국장

영화 ‘명량’이 엄청난 흥행 신기록을 세운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는 ‘히트작’이 있다. ‘해적’이다.

이 코믹 블록버스터를 살려준 진정한 일등공신은 캐릭터에 딱 들어맞은 연기와 비주얼, 그리고 출연 배우들 사이에서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 준 배우 유해진이다. 바다를 모르는 산적단에게 수영법을 가르치며 “음∼파! 음∼파! 이것만 기억하면 되는겨! 등신마냥 파∼음! 하면 뒈지는겨”하는 그의 연기는 말 그대로 ‘빵빵’ 터진다. 이 영화는 결국 유해진이 살려낸다.

그렇다고 유해진이 주인공인 작품은 아니다. 이 영화에는 농익은 청순 손예진도 있고 코믹한 나쁜 남자 김남길도 있다. 유해진은 아무리 잘해도 서열 2위고 조연이다. 하지만 유해진은 압도적 몰입감을 이끌며 자칫 산으로 갈 수도 있었던 영화의 중심축을 지켜낸다. 대체 불가능한 2등 배우의 연기는 본인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했을 때 사람이 얼마나 빛나는지를 확인시켜준다. 2등 유해진이 낼 수 있는 힘이다. 2등 마케팅까지 겸비한 이 영화는 벌써 관객 600만을 돌파했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이지만 잘 하는 2등도 필요하다. 지금은 분명 규격화된 1등만이 최고인 시대는 아니다. 2등도 얼마든 빛날 수 있는 세상이다. 1등 유재석이 필요한 순간도 있지만, 투덜대는 2등 박명수가 있어야 예능 ‘무한도전’이 산다. 이들이 서로 맞물리고 어우러져야 많은 이들을 즐겁게 하는 예능 한 편이 완성된다. 우리 사는 일도 그렇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줄 때 세상의 톱니바퀴는 굴러간다. 문화 과학 사회 정치 경제 각 분야에도 잘 하는 2등이 필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분야가 없다.

 

‘2등’이 살려낸 영화, 해적

이 말이 쉽게 와 닿지 않는 면도 있다. 획일화된 입시교육과 치열한 순위경쟁은 우리나라 10대들이 접하는 사회의 첫인상이다. 이에 대한 강렬한 학습효과와 학벌만능 직업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1등을 추구하는 것이 몸에 배어 있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과 마냥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고뇌하고 망설인다. 1등을 바라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니지만 당장 100%를 쏟아 붓지 못함에도 더 높은 곳만 바라보는 건 분명 뒷맛이 씁쓸한 인생의 단면이다.

최근 몇 년간 우리나라 수학영재들은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최고의 성적을 냈지만 결국 그들의 눈은 의대로만 향한단다. 아이들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으나 한편 안타까운 모습이다. 훌륭한 의사선생님도 필요하지만 훌륭한 물리학자, 화학자도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유력한 노벨상 후보 하나 없는 상황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유능한 문과 인재들은 여전히 고시로 몰린다. 몇 안 되는 선생님, 고위 공직자, 공무원이 되기 위해 고시원에서 독서실에서 청춘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고시원만큼이나 답답한 곳이 대한민국 정치판이다. 그것이 국민들의 삶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기에 위치와 역할에 맞는 책임정치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사태를 견뎌내는 대한민국 제1야당의 모습은 아쉽기 이를 데 없다. 국민들은 무능한 정부에 실망했지만 세월호 정치를 하는 야당에는 더 실망했다. 7·30 재보선 결과가 이를 방증해줬고 두 번이나 특별법 합의안을 깨고 장외투쟁을 하는 모습을 국민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국민은 여당을 택했지만 여당의 독주를 택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재보선 결과가 무색하게 야당은 다시 산으로 가고 있다. 한때 국민 48%의 지지를 얻었던 문재인 의원의 단식 행보를 보면 산으로 가는 배의 선장이 된 듯하다.

분명 대한민국 정치에는 건강한 야당이 필요하다. 정권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2인자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가 균형 있게 발전한다. 그 역할을 다 했을 때 만년 2등의 정권재창출도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야당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각자가 책임 있는 역할을 다 했을 때 대한민국 정치 톱니바퀴도 굴러갈 수 있다.

야당이 살아야 정치가 산다

세월호로 드러난 대한민국 곳곳의 역할과 책임 실종에 답답해하면서도 우리는 살아 있는 2등 신화를 가진 나라에 살고 있다. 50~60년 전, 아니 불과 30여 년 전에도 우리나라는 이류, 삼류 국가였다. 1등 선진국들의 산업화 요소, 민주주의 요소들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고 현재는 전 세계 경제, 외교, 문화를 선도하는 일류 국가가 돼 있다. 삼성은 애플보다 뒤늦게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점유율은 이미 애플의 그것을 뛰어넘었다. 우리는 2등의 빛나는 가능성을 확인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고달픈 한국 사회는 권위를 가진 교황이나 권력을 가진 대통령을 보며 ‘슈퍼 영웅’을 찾는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일상 속 ‘작은 영웅’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며 꿋꿋이 살아가는, 이런 보통의 영웅들이 더 필요하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삶은 그들이 가장 잘 이끌 수 있고, 그들이 가장 성공시킬 수 있다. 최고의 자리는 아닐지라도 그들이 책임 있는 역할을 다 할 때 톱니바퀴가 문제없이 굴러간다. 1등보다 빛날 수도 있고, 1등을 빛내줄 수도 있고, 모두를 비추는 일이 될 수도 있다. 당장 2등이고 조연이면 어떤가. 어차피 우리는 같은 결승점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다.


백경훈 미래를여는청년포럼 조직운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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